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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456화 (455/1,590)

# 456

회귀자 사용설명서 456화

조혜진 사용설명서(1)

“콜록! 콜록! 콜록!”

“오, 오, 오빠 괜찮으세요?”

“콜록!”

“오, 오빠.”

“콜록! 콜록!”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조혜진의 목소리에 사레가 걸려 버렸다.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기침에 가슴이 아플 정도였다.

혹시나 건강에 이상이라도 생긴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는 정하얀이 마치 사제라도 불러올 것 같은 기세였기 때문에 급하게 손을 들어 그녀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잠깐 사레 걸린 거니까. 큼! 크흠! 큼!”

“무, 무, 물이라도 가져와 드릴까요?”

“아냐. 어차피 들어갈 건데, 뭐….”

“괜찮으신 거 맞으시죠?”

“응.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정말로 사레 걸린 거라니까.”

“그, 그래도….”

“괜찮아.”

한참이나 콜록거린 뒤에도 정확한 정황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건 무슨 또 뚱딴지같은 소리야.’

조혜진이 무언가 착각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별것 아닌 정황을 토대로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이 틀림없으리라.

너무 어처구니없는 발언이라 심장이 벌렁거린 것은 당연지사.

쓸데없는 말이라고 일축하고 싶지만 나라 잃은 조혜진의 표정은 여전했다.

그 와중에 계속해서 밖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은 가관.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대충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김현성이 혼자 균열 여관으로 간다고 했을 것이고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낀 조혜진은 초조한 마음으로 길드의 앞을 서성거렸을 것이다.

방구석에서 한가하게 녀석을 기다리기는 건 그녀의 성격상 불가능했을 테니까.

‘그렇게 불안하면 차라리 미행을 하든가. 아니면 따라간다고 고집을 부리든가 해야지. 이 멍청한 여자야.’

물론 김현성이 그 미행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불안해하는 것보다는 낫다.

김현성도 김현성 나름대로 답답하기는 하지만 이 여편네 역시 마찬가지.

어째서 두 사람의 사이에 진전이 전혀 없는지 알 수 있었다.

괜스레 속으로 멍청한 여자라 그녀를 꾸짖고는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들어봐야 했기 때문이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또 여기서 서성거린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안에서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요.”

“그 말씀은… 부길드마스터도 듣지 못하셨던 겁니까?”

“네. 저도 처음 들어본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혜진 씨가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지도 모르겠는데… 그거 확실한 정보는 맞습니까? 제가 알기로 현성 씨가 만나는 사람은… 검은 백조의 연주 씨 정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관계도 연인 사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요.”

“그, 글쎄요…. 사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덕구 씨가….”

“네?”

“거의 확실하다고….”

“네?”

‘박덕구 이새끼는 또 무슨 소리를 지껄인 거야.’

조금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이상한 쪽에서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이상한 부분에서 트롤링을 일삼기도 하는 녀석이었으니까.

이번에는 후자인 모양.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 형님! 아니요?”

“…….”

“형님!”

호랑이도 제 말하면 나타난다는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시야에 비친 것은 커다란 덩치의 박덕구.

오랜만에 보는 것도 아니고 저 돼지는 반갑지도 않다. 오히려 점점 더 걱정되기 시작한 것은 당연지사.

도대체 무슨 소식을 듣고 무슨 이빨을 털었길래 김현성의 타임라인이 연애 중으로 바뀌어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저 돼지가 진짜.’

왠지 모르게 득의양양한 표정은 가슴 속에 있는 불안감에 불을 지피기 시작.

성큼성큼 걸어온 녀석이 나를 꽉 껴안았을 때에도 그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거 오랜만이라면 오랜만인데… 진짜 반갑구만. 그나저나 형님, 그 소식 들은 거요?”

“뭐?”

“거, 우리 형씨가 묘령의 여인과 늦은 밤, 심야의 데이트를 즐겼다는 사실 말이요. 바로 어젯밤이었다니까!”

말은 저렇게 하지만 본인이 먼저 확대해석해 쓸데없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으리라.

“워낙 늦은 밤이어서 목격자가 몇 명 없기는 한데 틀림없다니까. 나도 깜짝 놀랐다는 거 아니요. 솔직히 우리 형씨는 여자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남자는 남자였던 거지.”

“천천히 설명해. 정확히 뭔데?”

“큼큼. 아, 형님은 아직 못 들은 건가. 어차피 나중에 듣게 되겠지만 미리 이야기해 줄라니까 제대로 들으쇼. 거,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형씨가 요 근처 식당에서 웬 아름다운 여성이랑 무척이나 끈적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거 아니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를 두고 와인을 마셨다는데 거의 그 정도면 확실한 거나 다름없지. 형씨 성격에 조금 이상하게 생각되는 일 아니요. 생각해 보쇼. 어디 우리 형씨가 밤늦게 다른 여자랑 와인 짠하고 쪽쪽 할 사람이요?”

끈적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심지어 쪽 하지도 않았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우리 형씨가 먼저 스캔들을 만들지 누가 알았겠소. 이건 내가 감이기는 한데… 아마 그 여자도 보통이 아닐 거요. 어떤 불여시인 줄은 몰라도 분명히 경험이 보통이 아닐 거라니까. 한편으로는 조금 걱정되기도 하지. 꽃뱀 같은 게 우리 형씨를 물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으니까.”

‘그거 나야, 이 돼지 새끼야.’

옆에 있는 조혜진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지는 건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떠벌리는 데 여념 없는 모습은 확실히 선동의 귀재라고 할 만했다.

녀석이 저렇게 계속해서 입을 털게 내버려 둔다면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묘령의 여자가 파란 길드마스터의 애까지 뱄다는 헛소문이 퍼질 것 같은 느낌.

김현성이나 다른 이들에 대해 신경을 쓰느라 이 돼지가 이런 떡밥에 관심을 가질 거라는 걸 계산하지 못했다.

무척이나 흥분했는지 상기된 얼굴은 가관.

다행히 김현성의 상대를 조사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박덕구가 작정하고 파고들면 정체가 금방 드러나고 말리라.

“역시….”

“아직 단언하기에는 이릅니다, 혜진 씨. 사무적인 관계로 만난 사람일 수도 있고요. 아무래도 균열 랜드 초기니 상인부터 유력 클랜의 클랜마스터까지 만나야 할 사람이 많을 겁니다.”

“그런가요?”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다는 거 아니요. 일로 만났다는 사람들이 찹살떡처럼 끈적끈적해졌다는데…. 그거 이상한 거 아니요? 거, 듣기로는 그 두 사람 모습이 몇 년은 만난 연인 사이 같았다고 합디다. 안 그래도 우리 형씨가 낯을 많이 가리는데 처음 만난 사람이랑 그렇고 그런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것도 이상하고. 그리고 이건 그냥 내 추측인데….”

“네.”

“최소 1년은 숨기고 있었을 것 같은데… 그동안 우리도 몰랐던 비밀 연애 같은 걸 하고 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니까.”

‘입 닥쳐, 이 돼지 새끼야.’

“이렇게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애초에 말도 안 되고, 또 남의 연애사에 우리가 이렇게 떠드는 것도 웃기지.”

“그렇기는 한데… 그것도 생각하기 나름인 거 아니요? 형씨가 만약 결혼이라도 하고 덜컥 애까지 생기면 우리한테도 형수님이랑 후계자가 생긴다는 건데…. 당연히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자세히 알아봐야지. 야심한 밤에 둘이 돌아다녔다는 것부터 뭔가 낌새가 이상하기도 하고…. 심지어 오늘 아침에도 길드 하우스를 떠나서 안 들어왔으니까. 정황상 백퍼센트나 다름없지. 음음. 그렇고말고.”

“그건….”

“뭔가 일이 있기는 있다는 거요. 분명히 부끄러운 거겠지. 길드원들한테 알리기도 조금 그렇고 또 현성 형씨 같은 사람은 이제 유명인이나 다름없으니까 언론도 신경 써야 될 테고.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걸 보면 형씨도 슬슬 대외적으로 알리는 게 어떨까, 생각해 보고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니까. 다시 말해 간을 보고 있다는 거지.”

도대체 왜 이 돼지 새끼의 말은.

‘설득력 있는 거지?’

분명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1년 전부터 김현성이 여자를 만나고 있었다는 헛소리는 어떻게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말하자면 퍼즐 조각이 맞지 않는 개연성 없는 이야기.

하지만 이 돼지 새끼는 맞지도 않는 퍼즐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데 성공했다.

단순한 헛소문을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억지가 다분한 개소리로 공감을 이끌어낸 것이다.

조혜진은 이미 박덕구의 추측에 60% 이상의 신뢰를 보내고 있는 느낌.

박덕구가 파놓은 함정에 제대로 걸려들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1년 전부터 연애를 하고 있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내 생각에는 일적으로 만난 게 맞을 것 같은데. 굳이 지금 와서 공개하려는 의도가 없어 보이는데. 타이밍도 이상하고 상황 자체도 자연스럽지 않으니까. 이번에는 덕구 네가 잘못 짚은 것 같다.”

“솔직히 형님 말도 일리가 있기는 한데 왠지 모르게 냄새가 난다니까?”

“무슨 냄새?”

“우리 형씨의 상대랑 형씨가 엄청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을 것 같다는 냄새 말이요. 이게 정확히 뭐라고 표현해야 될지는 모르겠는데 가끔 이렇게 촉이 올 때가 있다니까. 내 경험상 이럴 때는 거의 100% 확률로 들어맞았고.”

‘이 귀신같은 새끼.’

적어도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다는 건 제대로 맞췄다.

마치 베일 것 같은 예리함에 나도 모르게 목구멍으로 침을 삼킬 정도였다.

“그리고… 조금만 관점을 다르게 생각해도 답은 쉽게 나올 수 있다니까. 지금에 와서 공개하려고 계획한 게 아닌 거요.”

“그게 뭔 소리….”

“공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건 아니요? 이를테면 거, 덜컥 아기라도 생겼다든가.”

“네?!”

‘무슨 개소리야, 이 새끼야.’

“대충 설명이 되지. 지금까지 숨겨왔던 애인을 갑작스레 세상 밖에 내놓은 건데 시기상으로 생각해 보면 대충 맞는 것 같고… 요즘 형씨가 얼굴이 성치 않았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거요. 아마 나라도 심란했을 테지. 지금이야 평화로워졌다고 하지만 대륙에서 아이를 키울 생각 만해도 정신이 아찔해지는데 어휴….”

‘니 생각이 더 아찔하다.’

“어쩐지 요즘 혼자 산책하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들었소.”

“그건 너무 무리수….”

“또 다른 정황도 있다니까. 생각해 보쇼, 형님, 혜진이 누님. 솔직히 형씨가 우리한테 말도 없이 휙휙 사라진 게 어디 한두 번이요? 심지어는 일주일, 이주일 연락이 안 될 때도 있었는데. 제대로 어딜 다녀왔는지도 말해주지도 않고… 뭔가 일을 하러 왔다 갔다 하기는 했을 테지만 며칠 정도는 그 여자를 만나는 데 시간을 쏟았던 게 틀림없겠지. 이제야 조금 궁금한 게 풀리는 것 같다니까.”

‘어떻게 얘는 그걸 이렇게 이어붙일 수 있는 거야.’

스토리텔링의 대가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오죽했으면 박덕구에게 한수 배워간다는 생각을 할 정도.

선동은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걸 해명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어떻게든 김현성에게 실드를 쳐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한 기세에 눌려 변명하기도 쉽지가 않다.

단지 저녁식사를 같이했을 뿐이다.

이 돼지 새끼는 그걸 하루만에 1년간 만난 여자친구가 김현성의 아이를 임신한 걸로 만들어버렸다.

‘이… 미친놈이.’

딱히 할 말이 없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꼴을 그대로 지켜볼 수 있을 리 만무.

“너무 성급한 것 같다, 덕구야. 만약에 정말 그렇게 큰일이었다면 현성 씨가 우리한테 말을 해줬겠지. 그리고 길드마스터가 밖으로 나가 있었을 때의 스케줄의 대부분은 내가 알고 있어. 여자를 만나거나 할 여유는 없었을 거다.”

“그렇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혜진 씨. 덕구가 착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사, 사실… 조금 분위기가 심상치 않기는 했어요. 어제 밤새 무슨 편지를 쓰시는 것 같아서.”

“네?”

“자세히는 듣지 못했지만 서재에 틀어박혀서 편지를 쓰셨는데….”

“프로포즈용 아니요?”

‘그런 거 아니야, 이 새끼야.’

아마 사과의 편지일 것이다.

김현성의 성향을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밤에 한 사과로도 성에 차지 않았던 거다. 아마 신발을 돌려주면서 사과의 편지도 함께 전하려는 계획이었을 것이다.

곧바로 서재에 틀어박힐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별다른 내용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박덕구가 떠들게 놔뒀다가는 숨겨진 아이까지 있는 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 것은 당연지사.

듣는 귀를 조심하라는 듯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자 그제야 조금 잠잠해지는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부길드마스터?”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조혜진답지 않은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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