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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462화 (460/1,590)

# 462

회귀자 사용설명서 462화

조혜진 사용설명서(7)

‘무슨 신데렐라도 아니고….’

녀석이 비치렐라를 찾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녀석의 스케줄 표를 보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뻔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훈련과 업무 말고도 다른 스케줄이 갑작스레 생겼으니 쉽게 알아차리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것도 조금 된 이야기.

비치렐라가 저 멀리 왕국 연합으로 떠난 것으로 모자라 유랑생활을 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한 뒤로는 따로 밖으로 나가는 일이 굉장히 뜸해졌다.

담백한 이별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쪽을 둘러싸고 있는 복잡한 사건이 흐릿해졌다는 것에 쾌재를 부른 것은 당연지사.

그 결정타로 준비하고 있었던 게 바로 조혜진이었다.

그러할진대….

분명 그러할진대.

아직까지 저 신발에 집착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진짜 외골수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째서 녀석이 저것에 집착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한 호감 때문이라기보다는 실수에 대한 후회라고 판단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한 순간의 실수로 좋은 인연을 상처 입혔고 그에 대한 사과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회귀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본인의 실수를 어떻게든 바로잡으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엄한 데서 스트레스 받고 있으면 안 되는데….’

안 그래도 정신건강을 염려하고 있던 타이밍이었다.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다른 문제로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은 당연했다.

조혜진을 투입하는 시점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주먹을 꽉 쥐었지만 녀석은 조혜진이 들어온 것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생각에 빠져 있었다.

‘시바.’

이쯤 되니 조금 민망해진 것은 조혜진.

한껏 꾸미고 힘을 주고 등장했건만 내 님은 그녀가 등장한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이거 상처 입겠는데.’

본인이 겉모습이 달라졌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지만 안 그래도 이유 모를 부담감에 주눅 아닌 주눅이 들어 있는 상황이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문을 열었을 때 김현성이 보여주는 리액션을 기대했다는 건이 분명.

선머슴 같기는 해도 쟤도 여자긴 여자니까.

본인이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모든 망상이 순식간에 날아간 것으로 모자라 안 그래도 부족한 자존감에 더욱더 커다란 상처가 생겼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는 없다.

“첫 번째부터 완전 꼬였네요.”

옆에서 중얼거린 이지혜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주저앉을 수 있을리 만무.

“혜진 씨. 가볍게 헛기침이라도 하세요. 그리고 평소처럼 인사하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

“혜진 씨, 제 말 들려요?”

-…….

‘시발! 빌어먹을 아바타 오작동!’

한 번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첫 번째 명령부터 오작동을 일으킬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제기랄!’

최악이라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는 조혜진의 얼굴을 보니 내가 다 애가 탄다.

“다른 생각하느라 저런 거예요. 아직 당신 얼굴은 보지도 못했고 정신 차리고 다시 한번 갑시다. 헛기침 한번 해봐요. 바로 반응할 테니까. 헛기침 해보라니까요. 가만있을 거예요? 인사라도 합시다. 좀.”

-기, 길드마스터

-…….

1차 시기 실패.

-길드 마스터?

-아, 혜진 씨?

다행히 2차 시기는 성공이다.

깜짝 놀랐다는 듯 전방을 보곤 구두를 서랍 안으로 집어넣는 녀석의 모습은 가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모션이었다.

본인도 민망하기는 했는지 슬그머니 서류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태세전환을 하고 있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조혜진의 겉모습은 언급하지 않았다.

뭔가 리액션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것은 당연지사.

항상 갑옷을 입고 다니던 본인의 부관이 갑작스레 평상복을 입고 풀세팅을 하고 등판했다.

사람이라면 넌지시 말을 건네는 게 도리다.

‘예쁘다’라든지 ‘아름답다’라는 말은 오버일지 몰라도 ‘평상시와 옷차림이 조금 다르시군요’라는 말 정도는 들어야 이 노력이 보상받는다.

너무나도 평소와 같은 느낌에 이지혜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 왠지 모르게 자신이 부정당하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물론 조혜진도 그녀의 표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단 자리에 앉아요.”

-이, 일단 자리에 앉아요.

-이미 앉아 있습니다만….

‘미친.’

“그대로 말하라는 게 아니에요. 시바. 말 그래도 자리에 앉으라고요, 혜진 씨.”

-아! 아… 아! 네.

-네?

“대답하지 말라고 했잖아. 이 멍청한 여자야. 나 엿 먹이려고 작정했어?”

-아… 무것도 아닙니다. 길드마스터

-확실히….

-네?

-혜진 씨 지금….

-네.

‘왔나?’

-몸이 많이 안 좋으신 것 같습니다. 오후 훈련에 나오지 않아서 조금 걱정했는데… 괜찮으신 겁니까? 열이 조금 있으신 건 아닌지… 오늘은 들어가서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전부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내가 상정할 수 있는 상황을 벗어나고 있다.

진심으로 조혜진을 걱정하는 말투와 어조.

나라도 김현성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평소에는 그렇게 똑 부러졌던 여자가 괴상한 혼잣말을 지껄이는 것은 물론 평소와 완전히 다른 행동을 보이고 있다.

혹시 머리에 이상이 생겼거나 열이 오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뜻밖의 축객령에 조혜진은 무척 당황한 표정. 어떻게 하냐는 듯이 카메라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얼굴에는 괜스레 입술을 꽉 깨물었다.

“별거 아니라고 둘러대세요. 그리고 그렇게 티 나는 표정 짓지 말고요. 일단은 자리에 착석해서 평소처럼 움직여 봅시다. 딱히 다른 거 하지 마요. 미션 같은 것도 안 드릴 테니까. 말 그대로 그냥 업무 본다고 생각하세요.”

-…….

다행히 이번에는 정확히 입력이 전달됐다.

-아닙니다. 길드마스터 몸이 안 좋은 것은 맞지만 기본적인 업무를 보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정말로 괜찮습니다. 그보다 죄송합니다. 너무 갑작스럽게….

-아니요. 괜찮습니다. 갑자기 몸이 아픈 걸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혜진 씨한테도 휴식이 필요하니까요. 그보다 어디 약속이라도 나가시는 겁니까?

‘왔다.’

“그렇다고 합시다.”

-네.

-평소와 옷차림이 조금 다른 것 같아보여서…. 주제넘은 참견이었다면 죄송합니다.

-아,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보기 좋군요. 의외의 모습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이게 맞지. 진짜 언급 안 해줬으면 섭섭할 뻔했다, 현성아.’

옆에 있는 이지혜도 크게 안심하는 듯 한 표정.

조혜진의 반응이야 불 보듯 뻔했다. 살짝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얼굴을 붉히고 있었는데 마치 세상을 다가진 듯했다.

누가 보면 김현성과 약혼이라도 한 줄 알 것이다.

“이딴 거에 일일이 기뻐하는 반응 보이지 마세요. 이건 솔직히 당연한 겁니다.”

김현성도 영 맹탕은 아니다.

만약에 정말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더라면 연애 사이코패스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을 터.

반응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조혜진의 얼굴은 이미 활짝 펴져 있다.

다시 한번 주의를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무표정한 얼굴보다는 웃는 얼굴이 백번 나으니까.

저렇게 웃으니 겉모습뿐만이 아니라 분위기도 달라진 것 같다.

조금은 자신감을 찾은 듯한 얼굴로 본인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주먹을 꽉 쥘 수밖에 없었다.

‘나쁘지 않아.’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딱히 이룬 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악의 첫 만남을 제외하면 나름대로 시작이 좋다.

조혜진의 자존감을 올리는 것도 성공했고 김현성에게 달라진 조혜진의 이미지를 박아 넣는 것에도 성공했다.

현재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조혜진의 반응만 봐도 평소에 저런 멘트를 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직 축포를 터뜨리기에는 이르지만 언제나 시작이 반이다.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조혜진과 김현성.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펜으로 종이를 긁는 사각사각 소리만 들린다.

“괜히 의식하지 마시고 평소대로 하세요, 혜진 씨. 지금 반응 보려고 이러고 있는 거니까. 혜진 씨 달라진 모습에 다른 액션이 있는지, 현성이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조금 캐보려고 하는 거니까요. 힘드시겠지만 저는 없는 사람 취급하세요. 절대로 의식하지 말고요.”

그러나 움직임이 달라지지 않는다.

“평소처럼 대화도 좀 주고받고 잡담 좀 하고 그렇게 해요. 이제 와서 부끄러워 할 필요 없잖습니까.”

-이게 평소대로 하고 있는 겁니다.

말을 해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리하고 있는 서류 뭉치에 슬쩍 글을 적어 놓는 게 시야에 비쳤다.

“업무시간 동안 서로 아무 말도 안 주고받는다고?”

-효율이 떨어지니까요.

“…….”

생각보다 더 엉망이다.

조혜진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계속해서 일에 집중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가관.

간혹 말을 주고받기는 했다.

‘커피 드시겠어요?’

‘서류 좀 주세요.’

같은 영양가 없는 대화.

애초 조혜진이 혼자 이룩한 게 별 거 없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

아예 걸음마조차 시작하지 못한 아이한테 무리한 주문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떠올려 볼 정도였다.

계속해서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반응을 볼 수가 없다.

‘일 참 열심히 하시네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괜스레 내가 다 초조하고 어색하다.

종이 넘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장내.

그 와중에도 저 멍청한 여자는 현 상황만으로도 좋은지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정체불명의 위기감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거다.

무언가 다른 방향을 강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느껴 조심스레 입을 열자 곧바로 반응해 오는 조혜진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가야 돼.’

“방금 현성이한테 약속 있다고 말한 거 기억나죠? 기억나면 짧게 고개 끄덕여요.”

-…….

“잠깐 밖에 나갔다가 10분 후에 다시 들어가요. 주머니에 보면 연극 관람 티켓 2장 있을 겁니다. 검은 백조에 친구랑 함께 보러 가기로 한 연극이었는데 갑작스레 검은백조에 일이 생겨 약속이 취소됐다는 걸로 합시다. 마침 표는 두 장이고 한 명이 없는데 은근슬쩍 같이 가자고 제안 한번 해봅시다. 거절은 없습니다. 무조건 이렇게 말씀하셔야 됩니다.”

-어떻게 그런 걸 말합니까.

“데이트 신청 같은 거 아닙니다. 데이트 아니고요. 착각하지 마세요. 아직 그 정도 아니니까. 어디까지나 약속이 취소된 거고 그래서 땜빵 멤버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부담감 느끼지 말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세요. 조금 부끄러워하는 연기 곁들여주면 좋고요.”

-알겠습니다.

전반전에 깔아놓은 빌드업을 생각보다 빠르게 사용할 시점이다.

조혜진의 어설픈 연기력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말하기 쉬울 것이다.

감정 배제하고 없는 사실을 나불대는 장면이었으니까.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예상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운 모습에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였으니 다른 표현이 필요 없으리라.

오히려 문제는 다른 쪽에서 발생했다.

-그래서… 마침 한 자리가 남아서 말입니다만 괘, 괜찮으시면 함께 보러 가시겠습니까?

-연극 말입니까?

-네, 길드마스터. 최근 유행하고 있는 연극입니다. 제목은 잠자는 숲속의 연금술사로… 최근에 유행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마침 균열 극장에서 극단이 찾아온다고 하더군요.

-아… 그 연극.

-알고 계시는 겁니까?

그래. 가는 거야.

-네. 들어본 적 있습니다. 기영 씨가 전에 재미있을 것 같다는 말했었던 것 같은데 저는 아직 업무가 조금 남아서…. 괜찮으시면 기영 씨와 다녀오시는 건 어떻습니까?

‘이, 이, 이… 그 누구보다 나를 생각해주는 고마운 새끼!’

이중적인 마음이 교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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