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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467화 (465/1,590)

# 467

회귀자 사용설명서 467화

대륙 합동 훈련 (2)

‘우리가 기다릴 짬밥은 아니지.’

교국 내에 있는 유력길드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앞에 설 자격이 있다. 모험가들의 수준이 가장 높은 이유도 있고, 무엇보다 단일 국가로써 가지고 있는 힘이 가장 커다란 국가였으니까.

왕국연합이니 무슨 연합이니 하는 것들이라고 해봐야 덩치가 커다란 공화국과 교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거다.

물론 공화국이 한풀 꺾인 지금은 어느 쪽이 탑독 인지 굳이 계산해 볼 필요도 없다. 최근 일어난 몇 가지 사건으로 인해 파란 길드의 주가는 천장을 뚫을 것처럼 치솟아 올라가 있었으니까.

외부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 가지고 있는 자금줄과 사업능력, 파란길드는 어딘가에 대기업이나 다름이 없다.

우스갯소리로 파란의 포션 공장의 불이 꺼지면 대륙의 모험가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

그것뿐만이 아니다. 파란이 망하면 린델도 망한다는 개소리가 성행하는 중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현재 파란이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조금 과장된 감이 없지 않지만 세세하게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린델이 망한다는 건 오바에 가깝지만….

오히려 우리가 주목받게 된 배경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파란이라는 단일 세력이 가지고 있는 무력, 현 대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가치였다.

제한이 있다고는 하지만 신화 등급의 검을 들고 설치는 파란의 길드 마스터 김현성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공화국과의 전쟁에서 보여준 말도 안 되는 모습들을 내가 봐도 입이 떡하니 벌어졌으니까.

등급을 먹이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평가하기로는 당연히 SSS급, 용병여왕 차희라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심지어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인지 차희라보다 김현성을 더 높게 쳐주는 분위기가 만연하고 있었다.

김현성과 차희라 본인은 굳이 그런 명성에 집착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내가 보기에도 현재의 김현성은 차희라와 비슷하거나 더 강하다.

나머지 길드원도 마찬가지다. 탱커가 귀하기로 소문난 이 동네에서 박덕구는 공격력이 약하지만 최고의 탱커로 매번 언급되는 이들 중 한 명이었고 조혜진이나 김예리는 점점 주가가 폭등하고 있었다.

지난 전쟁에서 보여줄 게 없었던 하얀코인과 소라코인은 하락 조짐을 보이고 있었지만 라이오스의 영웅으로서 괜찮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병력 전체에게 버프를 걸고 유지했던 엘레나 역시 SS급의 사제라고 이름을 날리고 있는 상태, 박덕구의 그녀, 황정연과 신임할 수밖에 없는 안기모는 부족한 파란의 스쿼드를 메워 주는 소중한 전력으로 그에 걸맞은 대우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선희영도 제법 유명해졌고….’

무엇보다 김창렬과 유아영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규모 자체는 중소 클랜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구성원 하나하나가 한 클랜이나 길드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하고 개성 있는 이들이다 보니 유명해지는 것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아마 호사가들의 입장에서도 덩치만 크고 실속 없는 대형길드들보다는 이쪽이 더 이야깃거리가 많았으리라.

배경이 이렇다 보니 파란의 엠블럼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없는 건 당연한 거고. 시선이 집중되는 것 역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박덕구가 이래도 되나 싶은 얼굴로 깃발을 크게 들어 올렸고 그게 무슨 신호인지 아는 이쪽은 천천히 말을 몰고 김현성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세계인들에게 우리 민족이 얼마나 예의 있는 민족인지에 대해 설파하고 싶어 했던 조노보노와 김현성도 눈치가 없지는 않은지 슬그머니 대열을 형성하기 시작. 당연히 선두는 우리의 얼굴마담 김현성이다.

물론 우리 현성이와 돈독한 관계라는 걸 홍보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을 지니고 있는 나는 녀석의 오른쪽 뒤, 조혜진의 포지션은 왼쪽 뒤다.

그 뒤로 길드 깃발을 들어 올리고 있는 박덕구와 도열해 있는 파란 길드가 모인 것은 순식간, 김현성이 타고 있는 그리폰이 슬쩍 발걸음을 옮기자 길을 막고 있던 인원들이 눈치를 보며 길을 비키기 시작했다.

‘키야….’

조금이지만 쭈삣쭈삣 하고 소름이 돋는다.

바로 앞 열에 있던 이들이 길을 비키자 그 앞에 있던 이들도 자연스럽게 밀리게 되고 그 앞에 있는 이들까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껴 슬금슬금 눈치를 보고 있다.

시작은 군중심리에 불과했지만 어느새 길을 막고 있는 이들은 어느덧 홍해처럼 갈라지며 파란 길드가 걸어가고 있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파란….”

“선두에 선 게 김현성이야?”

“유니콘에 타고 있는 건 조혜진일 테고….”

“저 엘프가…. 엘레나. 파란에 입단했다는 게 정말이었나. 헛소문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저거 봐. 선희영이야. 진짜 선희영이다.”

따위의 말들을 중얼거리고 있는 이들.

‘궁금하기는 하겠네.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일 테니까.’

“이기영.”

“빛의 연금술사, 대륙의 영웅.”

“파란의 2인자. 어떻게 봐도 남 밑에 있을 사람이 아닌데…. 재미있군.”

뭐가 재미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엑스트라 같은 대사를 던지는 녀석들도 일부 존재한다. 오그라드는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뭐라 딱히 말하지 못할 카타르시스는 있다.

그동안 개처럼 구르고 고생했던 게 보상받는 듯한 느낌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리라.

항상 장난기 넘쳤던 몇몇 녀석들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무게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굉장히 딱딱한 얼굴로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고 파티원들의 뒤를 따르며 따라오는 길드 직원들의 얼굴에는 언뜻언뜻 자부심이 비치기 시작한다.

심지어 박덕구 녀석까지 굳은 표정, 녀석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게 조금 우스워 보이기는 했지만 나 역시 어울리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만큼 누구를 놀릴 상황은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거물인 척, 대단한 놈인 척.’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홍해처럼 갈라져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인원들의 얼굴은 모두 제각각, 동경의 시선, 질투의 시선, 온갖 감정이 뒤섞인 듯한 모습을 바라보는 인간군상은 재미있다고 말할 만했다.

“김현성…. 생각했던 것보다 더 괴물인데….”

‘눈 제대로 달려 있는 놈이 한 명은 있네.’

“이전보다 더 성장한 건가.”

“기가 차는군. 이게 들어온 지 5년도 안 된 모험가라고?”

“소문이나 마력 홀로그램이 과장된 게 아니었잖아. 제기랄.”

물론 그 와중에도 이쪽은 쉴 새 없이 마음의 눈을 놀리기 시작. 마주친 적 없었던 타국의 강자가 어느 정도 수준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다.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고.’

어떻게 보면 딱 평균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 교국 8좌 정도에 랭크되기는 모자라지만 안기모 정도의 수준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한 클랜이나 길드의 중역을 맡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낮은 건가.’

안기모를 기용한 건 전투능력이나 센스, 근접사제라는 특수성 때문이지 재능이나 스텟 때문은 아니었으니까.

어디에선가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파란 길드 마스터.”

“…….”

“맨하튼 길드의 길드 마스터. 카일리 예일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돼서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

‘왠지 익숙한 얼굴.’

시야에 비치는 것은 키가 큰 여자였다. 전체적으로 슬림한 체형에 금발 머리, 파란색 눈, 아름답다면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얼굴이다. 전체적으로 한껏 꾸민 것 같다는 인상에 자신감도 있어 보였다.

어째서 그녀가 저런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뻔할 뻔 자. 마음의 눈으로 전체적인 스텟을 확인하니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을 자격이 있다고 여겨졌다.

‘자신감 뿜뿜할 만하고요.’

마법사계열, 교국 8좌 하위 스쿼드 급. 성향은 열정 넘치는 야심가. 특성도 쓸 만하고 전체적으로 잘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가지고 있는 스펙 자체로만 봤을 때는 안개 소환사보다 쓸 만하다. 물론 그놈이야 특수능력이 있으니 비교할 수 없지만 굳이 비교해 보자면 딱 그 정도였다.

‘재미는 있네.’

말 그대로였다.

‘얘도 1회 차 때 한 가락 했을 것 같은데.’

슬그머니 김현성의 눈치를 본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뭔가 다른 액션은 없다.

아군이었는지 적군이었는지 구분하기는 힘들었지만 그녀의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는 모양, 마검사 정진호를 만났을 때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을 보니 이름 모를 가면쓰레기와 그 일당들처럼 쓰레기 짓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물론 확률은 낮지만….

‘감정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고.’

우리 현성이도 제법 성장했으니까. 뭐, 솔직히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과거의 적이 꼭 다시 적이 되리라는 법도 없고….

무엇보다 대륙 내에서 전쟁을 완전히 끝내려고 하는 지금으로서는 1회 차의 빌런이라고 해도 마냥 빌런으로 대우할 수는 없다. 그 누구보다 김현성이 이걸 제일 잘 이해하고 있을 거고….

사실 그보다 더 중한 것은 어째서 이 여자가 갑자기 이쪽에 접근해 친한 척을 하느냐다.

단순히 인사를 건넨 것 가지고 너무 확대해석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했지만 세상에 이유 없는 행동이라는 게 어디 있겠는가. 하물며 이런 타이밍에 슬그머니 끼어든 것도 신경 쓰인 것은 당연지사. 박수라도 쳐 주고 싶은 심정이기는 했다.

함부로 말을 걸면 안 된 것 같은 분위기에서 갑작스레 말을 거는 게 쉬운 건 아니었으니까.

“카일리 예일 님이셨군요.”

“들어 본 적 있으신가요?”

“사실 제 견식이 짧아 자세히는 듣지 못했지만 서부에서 명망 높은 마법사 한 분이 계시다는 걸 들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지구에서 무척 유명했던 사람이라는 것도 말입니다.”

“그것까지 알아봐 주실 줄은 몰랐는데…. 영광입니다, 파란 길드 마스터.”

“아니요. 오히려 제가 더 영광입니다.”

‘아.’

어쩐지 얼굴이 익숙하다고 했다.

‘배우였구나.’

제대로 이름은 모르지만 스크린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순식간. 원체 그런 쪽에 관심이 없어서 눈치채는 게 느렸지만 파란 길드의 몇몇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깜짝 놀란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린델에도 연예인이었던 사람 몇 명 보고는 별 반응이 없었는데, 아무리 녀석들이라도 실제로 얼굴을 보니 신기하기는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쪽이 이기영 명예추기경님이시겠죠. 만나서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네. 저도 반갑습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실물이 더 아름다우신 것 같습니다.”

“영광입니다. 명예추기경님.”

지금은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슬쩍 내비치자 알아서 떨어져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다시금 목표물로 김현성을 설정하는 모양새, 은근슬쩍 옆에 끼어들어 와 함께 향하는 모습은 내가 봐도 발군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얘 똑똑하네.’

담이 세고 기회를 잡을 줄 아는 성격이다. 적당히 욕심도 있는 것 같고….

‘하기야….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아남았겠지.’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보통 유명인들은 그 끝이 별로 좋지 않다. 특히 여성일 경우에는 더욱더.

대부분 튜토리얼에서 영 좋지 못한 꼴을 당하게 된다는 걸 떠올려 보면 이 여자의 성공은 꽤 놀랍다고 할 수 있는 수준, 아마 그녀의 성공을 도왔던 원동력이 지금 같은 행동일 것이다.

적당히 유명세를 이용하고, 적당히 녹아들고, 도박도 할 줄 안다. 아무도 손을 들려고 하지 않을 때 손을 들고 발표를 할 수 있는 사람.

조금 시선이 집중되기는 했지만 저 여자는 김현성과 함께 이야기하며 안쪽으로 먼저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먼저 안쪽으로 들어간 거야 사실 별것도 아니지만 녀석과 친분을 쌓았다는 걸 외부에 노출시키는 건….

‘의미가 있지.’

지금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을 다른 권력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뻔할 뻔 자.

‘지금 와서 인사하면서 끼어들기도 애매할 거고….’

왕년의 여배우는 이렇게 쉽게 녹아들 수 있었는지는 예상하지 못한 모양인지 제법 환하게 웃고 있다.

호랑이 등에 탄 여우. 딱 그런 표현이 어울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재밌네.’

확실히 여러 가지 종류의 인간들이 모이는 자리는 재미있다.

“오, 오빠. 저, 저 여자 누군지 알아요?”

하지만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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