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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471화 (468/1,590)

# 471

회귀자 사용설명서 471화

이간질(2)

보통 이런 경우를 작업 친다고 표현한다. 호구하나 잡고 사기 칠 때 하는 것과 비슷한 짓거리라는 거다.

이 새끼들이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아니면 뭔가 다른 속내가 있는 건지 아직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당연히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대륙에 닥쳐올 위기를 막기 위해 모인 인원들이라고 한들, 기본적으로 여기에 모여 있는 이들은 모두 타인들이었으니까.

지금 사이좋게 지낸다고 해서 마지막까지 사이좋게 끝난다는 보장이 없다는 건 그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이야기, 지금 이 순간에도 서로 견제하고 있는 집단들이 많다는 걸 생각해 보면 더욱더 그렇다.

파란의 경우에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명실상부 최강, 발을 뻗고 있는 사업만 수십 가지, 소수의 인원이 무색할 정도의 전투력은 다양한 영역에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단순히 린델 내에서만 국한되어 있는 이야기도 아니다.

이 조그만 길드가 대륙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보니 그 영향력을 조금 줄이고 싶다고 판단한 길드들이 많다는 건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겉으로는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사바사바 거리고 있겠지만 뒤에서는 무슨 생각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

포션 사업을 하다 수입이 반 토막 난 자식도 있을 거고, 여러 불법적인 사업이 완전히 막혀버린 놈들도 있을 거다.

‘이 새끼도 그렇고, 저 새끼도 그렇고.’

안 그래도 슬슬 견제가 들어올 때라고 느끼기는 했지만, 이쪽에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받으려고 하는 놈들이 그 대상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 이 합동훈련이 있기 전부터 계획하고 있던 작업이었을 터, 파란 길드에 대한 조사가 내부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이고 파란 길드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했을 것이다.

김현성과 이기영의 사이를 틀어지게 하는 것으로 영향력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판단이 섰을 거고…… 실행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판단했겠지.

바깥에서 보는 파란의 이미지는 절대 선에 가까웠으니까.

‘나쁜 방법은 아니네.’

나 역시 비슷한 방법을 강구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외부에서 보기에 파란의 권력 구조는 지극히 기형적이다.

김현성은 부 길드 마스터인 내게 상상도 할 수 없는 권한을 쥐여주고 있었고 나는 그 권한을 바탕으로 사방에 영향력을 휘두른다.

파티에 대한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불분명하고 심지어 대외적으로는 이기영 명예 추기경이라는 인간의 위상이 더 높다.

하나의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는 없다지만 파란의 경우에는 두 개의 태양이 떠 있는 상황, 아슬아슬해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만약 김현성과 내가 찢어진다는 뉴스가 대륙에 퍼졌을 때 파티를 열 권력자가 한 트럭이 넘는다고 장담할 수 있다.

‘지난 5일 동안…….’

은근슬쩍 설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슬그머니 허리를 뒤로 젖히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자 괜스레 슬퍼지기 시작했다.

‘난 우리가 친구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쁜 새끼들.’

정하얀 마냥 찰싹 달라붙어 있는 자밀라도 그렇고…….

‘사랑했다. 나쁜 년아.’

물론 아직 의심하기에는 이르다. 실제로 우리 적폐 축제 여러분들과 나는 그동안 둘도 없이 돈독한 시간을 보냈었으니까.

사람 믿기 좋아하는 나지만 이번만큼은 김현성처럼 의심병이 도진 것일 수도 있다.

‘아암. 사람은 쉽게 의심하면 안 되지.’

일단 떠보고 싶기는 하다. 정말로 내가 빌드업 당하고 있는 건지는 확인하고 싶었으니 말이다. 슬그머니 입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방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하하……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 길드 마스터는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에 저를 쳐낼 생각이셨다면 진작에 쳐내시려고 하셨겠죠.”

“크흠…….”

“명예 추기경님…… 이런 말씀 드리기 정말로 죄송합니다만…… 사람이라는 건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이미 파란길드는 예전의 그 파란 길드가 아니고요. 다들 그렇듯 열정 넘치게 움직이던 시절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그런 길드가 아니지 않습니까. 몸을 한번 움직일 때마다 대륙 전체가 주목하는 길드이기도 하고…… 처음에는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셨을 수도 있지만, 점점 더 명예 추기경님의 권한이 커지는 걸 걱정스러워하시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 현성이 그런 사람 아니야. 이새끼들아.’

“게르한 님의 말이 맞습니다. 명예 추기경님. 파란 길드 마스터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라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해 준비를 하셔야 한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끄응…….”

‘득달같이 달려드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않습니까. 하하…… 보험을 들어놓는다고 생각하시면 편하실 겁니다. 무언가 행동을 취하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준비를 하는 걸로도 충분히 도움이 될 테니까요. 저희 왕국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즐비해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암요. 아마 대륙 전체를 두고 봐도 많을 겁니다. 집단 내에서 길드 마스터 외의 인물이 영향력이 커지는 걸 두고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을 수도 있지만 아마 속으로는 명예 추기경님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겁니다.”

“베니고어 여신에게 선택받았다는 그 상징성도 그렇고…… 빛의 힘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그 힘도 그렇고…… 실제로 린델과 교국 내에서는 명예 추기경님의 인지도가 더 높지 않습니까.”

“두 분의 신뢰가 돈독한 건 이미 전 대륙에 알려져 있는 이야기입니다만…….”

“…….”

“…….”

“여러분들 왜 그러세요. 우리 명예 추기경님 불편하시게…… 이런 좋은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꼭 나누셔야겠어요?”

슬그머니 침묵으로 일관하자 반응이 온 것은 자밀라 쪽이다.

중재하는 척하며 게르한을 비롯한 적폐 여러분께 눈빛을 보내는 모습은 가관, 마음의 눈이 아니었다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찰나의 시간 동안 이루어진 시선 교환이었다.

‘너무 대놓고 작업 치지 말라는 거겠지.’

이상하게 비칠 여지도 있을 테니까. 그 목소리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적폐 여러분들을 보자 괜스레 한숨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 놈도 빠짐없이 한통속이었구나. 이놈들.’

확실히 내가 봐도 빌드업이 너무 성급해 보이기는 했다. 잠깐 틈을 보였다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꼴을 보니 다른 쪽으로도 영 재능이 없는 모양이다.

그만큼 우리가 친밀하게 지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만약 나라면 더 조심스럽게 움직였을 것이다.

5일이 아니라 한 달을 사전작업 기간으로 잡고, 안 좋은 소문을 조금씩 조금씩 흘린 이후에 지금과 같은 상황을 연출했을 것이 분명, 이 자식들도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겠지만 때마침 먹음직스러운 떡밥이 보여 참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대화의 흐름을 생각해 보면 튀어나올 만하기는 했다.

‘히야. 진짜 세상에 믿을 새끼. 현성이 말고는 없구나.’

지난 5일간의 시간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리는 듯한 배신감. 욕심 많은 적폐 놈들에게 마음을 주면 안 된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뭐가 그렇게 필요했니. 포션 사업이야? 아니면 린델이 너무 커진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어? 무기사업까지 뻗어 나가서 그래? 아니면 자유무역협정이 불공정해 보였어?’

마음에 걸리는 건 사실 한둘이 아니긴 하다.

“게르한 님이 조금 취하신 모양이에요. 자자. 쓸데없는 말을 빨리 잊으시고 빨리 한 잔 더 받으세요. 명예 추기경님. 다른 분들도 나쁜 뜻은 없으셨을 거예요. 다들 명예 추기경님이 걱정돼서 노파심에 한 말씀씩 드린 걸 테니 너무 괘념치 마세요.”

“이거…… 정말로 죄송합니다. 명예 추기경님. 제가 괜한 소리를 한 것 같아서…….”

“저도 사과드리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쉽게 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표정 푸세요. 명예 추기경님. 저를 봐서라도요. 네?”

“큼…… 여러분들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닙니다. 잠깐 다른 생각이 들었던 터라…….”

“다행이로군요. 불편하셨다면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명예 추기경님.”

“하하하……. 아닙니다. 다 이 못난 사람을 걱정해주셔서 해주신 말씀들이 아닙니까. 오히려 제가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게 맞습니다. 사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건 시기상조인 것 같지만 한 번쯤은 고민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정말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혹시라도 고민이 깊어지신다면 언제든지 상담해 드릴게요. 명예 추기경님.”

“네, 만약 그때가 되면 꼭 자밀라 님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럼 짠 할까요?”

‘티키타카 오지네. 이 새끼들.’

게르한을 비롯한 몇몇 적폐들이 공격이라면 내 옆에 있는 자밀라는 완급조절을 해주는 포지션에 있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놈들인지 원대한 뜻을 위해 급하게 결성된 파티인지는 모르겠지만 호흡 하나는 칭찬해 주고 싶은 기분, 만약 자밀라와 이쪽의 사이가 조금 더 깊어진다면 나와 김현성 사이를 벌리기가 더 쉬워질 것이다.

베갯머리 송사보다 효과가 좋은 방법도 몇 개 찾아보기 힘드니까.

‘너랑은 끝이야. 이년아.’

원래부터 그럴 생각 따위는 없었지만 조금 더 강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상황 자체는 재미있다. 교국 안에 있을 때만 해도 누군가 나를 향해 작업을 쳐온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특히나 이기영 명예 추기경이 어떤 인간인지 알고 있는 이들은 더욱더 그렇다.

말 한마디 하기도 전에 엎드려 기는 이들이 대다수라는 걸 생각해 보면 이 자식들의 반응이 무척 신선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호구로 보였나.’

정보가 없다면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기영 명예 추기경의 대외적인 이미지는 대륙을 위해 이 한 몸 희생하고 불사르는 성인의 이미지였으니까.

파란의 매체나 교국의 국민이나 아주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들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거다.

“사실…….”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은근슬쩍 이야기를 꺼낼 것처럼 간을 보자 설레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적폐들의 얼굴은 가관.

“혹여나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기보다는……. 그냥 최근에 길드 마스터와 사이가 소원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라…….”

몇 놈이나 되려나. 또 누가 누가 연루되어 있으려나.

“말씀하시기 힘들겠지만…….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명예 추기경님과 저희 사이 아니겠습니까.”

나한테만 붙어 있는 것도 아닐 거고 말이야.

김현성에게 붙어 있는 인간이 누구인지도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만 조진다고 해서 이간계가 완성되는 건 아니니까.

때려 맞추기에 불과하지만 아마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김현성에게 말을 걸었던 그 여자가 아닐까.

‘카일리 예일?’

처음 이후에도 김현성과 함께 있는 걸 몇 번 본적이 있다.

‘거의 확실하네.’

* * *

“오늘도 혼자 계시는 건가요? 파란길드 마스터?”

“아…… 케일리 님이군요.”

“업무 보느라 많이 힘드시겠어요.”

“익숙합니다. 그나저나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아직 식사하지 않으신 것 같으셔서 함께 식사라도 할까 하고요. 저녁 늦게 드시잖아요? 실례가 안 된다면…… 파란의 식당에서 함께 먹어도 괜찮을까요? 불편하시면 그냥 돌아…….”

“아닙니다. 안 그래도 말씀드릴 게 있었는데……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곧바로 가시죠.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파란 길드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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