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3
회귀자 사용설명서 473화
이간질(4)
‘뭐야. 이거… 어떻게 한 거야? 이런 게 가능한 거였어?’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 것은 당연지사.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있는 김현성도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이 식사를 이어가고 있었고, 무엇보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뭐야.’
마치 지금까지 있었던 대화를 듣고 있었다는 듯한 질문.
-소, 소, 소문 어디에서 들었냐고 물었잖아요. 아… 지, 지금은 대답할 수 없겠네. 시, 실수했구나. 만나서 물어보는 게 빠르겠다.
‘어떻게 들을 수 있는 거지? 아니, 그보다 이거… 마법이기는 한 건가?’
자세히는 알 수 없다.
어떤 종류의 마법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단순한 텔레파시라기보다는 마치 의념을 쏘아 보낸 느낌.
그 어떤 마력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바깥으로 새어나가는 음성을 차단해 주기 위한 마력의 벽이 유지되어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더욱더 그렇다.
차단 마법에 누군가 개입했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했고 실제로도 마력의 벽은 아무 이상 없이 작동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이 안에서 나오는 말을 듣지 못한다는 게 당연하다는 거다.
고유 능력이나 다른 종류의 능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종류의 능력이 있다는 걸 들어 봤을 리가 만무하다.
기분이 찜찜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기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조금 이상하다 못해 소름이 끼쳐올 지경이었으니까.
‘누구지?’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누가 자신에게 생각을 전달하고 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아 있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아직 파란의 파티원 몇몇과 김현성이 전부였다.
“카일리 님, 뭔가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요. 파란 길드마스터… 그보다 방금….”
“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길. 뭐야, 진짜?’
“그보다 아까 하셨던 말씀에 대해서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 지옥불의 게르한이라는 사람과 기영 씨가 어울린다는 게….”
“말씀드렸다시피 상당히 질이 안 좋은 사람이라서요. 저도 단순한 오해라고 생각했지만 파란 길드마스터의 표정을 보니 그렇지도 않을 것 같네요. 염려하시는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닙니다. 딱히 걱정되는 부분도 없고요. 물론 다른 쪽으로는 조금 걱정이 됩니다만… 최근 취해서 들어오는 일이 잦아지기는 했습니다. 평소보다 무리하는 느낌도 들었고요. 그래도 모의전이나 합동 훈련 때는 꼭 얼굴을 비췄는데….”
“그렇다면 소문이….”
“아뇨. 그건 아닐 겁니다. 기영 씨가 사람을 만나고 다니는 걸 좋아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관리에 대해서는 철저한 터라, 아마 카일리 님이 생각하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네. 당연히 저도 그저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이에요. 혹시나 명예추기경님이 안 좋은 추문에 휩싸일까 걱정이 돼서…. 그래도 교국의 기둥 같은 분인데, 이런 소문이 들린다는 것만으로도 이미지가 깎이실 수도 있잖아요? 누군가 악의적으로 흘린 소문일 수도 있고요. 물론 단순 소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게 없지는 않지만….”
“…….”
“당장은 좀 더 지켜보시고 걱정되시면 말씀이라도 꺼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런 문제는 대화로 풀어나가는 게 중요하니까요.”
-화, 화, 화장실로 와요. 안 오면 큰일 나니까. 꼬, 꼭 와야 돼요? 안 오면 내가 찾아갈 거니까. 빨리 와요.
‘도대체 뭐야.’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려던 찰나 다시 한번 들려온 목소리.
여전히 주인을 찾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사실상 무시해도 별 상관이 없을 거라고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왠지 모르게….
‘불길해.’
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볼 정도였다.
이성은 당연히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말을 무시해야 한다고 그래야 네가 안전할 거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 목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해 보고 싶기도 했다.
굳이 스스로 위험을 향해 들어가는 싸구려 B급 공포 영화의 엑스트라 조연이라도 된 듯한 심정이었으니 다른 말이 필요 없으리라.
‘이 샌님은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기는 싫다.
-그, 그, 그냥 궁금한 것 몇 가지 물어보려는 것뿐이에요.
적의 함정일 수도 있고, 이쪽의 계획을 알아챈 파란이 뭔가 수를 쓰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타 길드의 세력일지도 모른다.
당장 이 장소가 맨하튼 길드의 길드 하우스가 아닌 만큼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지만, 파란이 길드 하우스 내에서 나를 정리하겠다고 생각하는 건 터무니없는 상상이요, 비약이다.
이 목소리가 적이라고 해도 자신의 몸에 해가 생기지는 않을 거라 확신 할 수 있었다.
-빨, 빨리 아, 안, 안 움직이면 싫은데….
“…….”
‘감에 따르자.’
결국에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목소리의 주인이 원하는 건 대화인 듯싶었으니까.
“잠시….”
“아. 예.”
괜스레 침을 삼키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당연지사.
식사 도중에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다는 인상을 남기기는 싫지만 이미 김현성과의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리라.
뭔가 커다란 성과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기본은 했으니까.’
이런 건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해결하면 된다.
아직 시간은 많고 기회도 많다.
그것보다는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우선이다.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자 이윽고 목적지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문을 열기 무섭게 익숙한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사실 익숙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제대로 얼굴을 마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정하얀.’
파란의 촉망받는 대마법사.
상대적으로 이기영과 김현성에게 가려져 있기는 했지만 그녀 역시 온 길드가 주목하고 있는 인물들 중 하나.
교국 8좌급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대륙의 정상을 다투는 마법사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 이었다.
슬쩍 눈치를 보며 세면대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때였다. 바로 옆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와, 와줬구나. 다행이다.”
“당신이었군요.”
“아… 네. 가, 갑작스럽게 죄, 죄송해요. 그러니까. 너무 궁금해서….”
“어떻게 마력으로 차단된 방벽을 뚫고 음성을 들을 수 있었나요? 그리고 제 머릿속으로 목소리를 전달한건 사념인 건가요? 아니면 고유 능력이나 특성 같은 종류의 마법인 건가요? 아니면 따로 주문을…. 아니, 그것보다 대체….”
“설명하자면… 어, 어려운데…. 나, 나중에 알려 드릴게요. 일… 단은 내 질문이 머, 먼저니까. 그렇죠? 내가 먼저 지, 질문했잖아. 그렇지? 맞죠?”
“아… 네. 그러니까 질문이….”
“그… 소문 어디에서 들었냐고 물었어요.”
“어떤….”
“우리 오빠가 나쁜 사람들이랑 어울리고 있다는 소문이요.”
“…….”
“밤마다 나, 나쁜 여자들이랑 어울린다고요. 마, 막 술에 취해서 그렇다고 해, 했잖아요?”
“글쎄요. 어디서 들었는지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얘 조금 이상한데? 병신인가?’
정확히 뭐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약간 모자른 것 같다.
‘천재라고 하더니….’
그 반대가 더 설득력 있어 보일 지경이었다.
독감이라도 걸린 것처럼 몸은 파르르 떨고 있었고 눈은 충혈되어 있다.
피부는 이상할 정도로 새하얗게 질려있었고 입꼬리는 삐죽 튀어나와 있다.
계속해서 말을 더듬는 모습은 일종의 조현병이라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
가장 처음에 봤을 때부터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이렇게 정면으로 보니 정상이 아닌 것 같다는 게 확 전해져 온다.
“거짓말일 수도 이, 있겠네요. 헛소문 같은 게 분명해.”
‘바보는 써먹기 쉬운데…. 이용할 수도 있으려나.’
“글쎄요. 길드 숙소에서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보면 영 설득력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까 하얀 씨는 명예추기경님과 무슨 관계….”
“서, 서로 사, 사, 사, 사랑하는 사인데….”
“용병여왕님이랑 사귀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 그 여자 이야기는 하지 말고요. 차… 차희라 진짜 싫어. 그보다 그… 소문 정확히 어디서 들었냐고요. 누가 봤어요? 누, 누가 들었대요?”
“저도 들은 이야기라 자세히는 몰라요. 그래도 거의 확실하다고 봐요. 명예추기경님이 최근 어울리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질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서….”
“거짓말하는 거… 아, 아니죠?”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어떤 여자들인지는 아, 알아요? 어디서 온 여자예요? 저, 전부 더러운 여자인가요? 그, 그렇겠지? 전부 다 더러운 여자일 거야.”
“아뇨. 정확히는….”
“뭘, 뭘, 뭘, 그렇게 모르는 게 많아요? 정, 정, 정말 거짓말하는 거 아니에요? 나 거짓말하는 거 진짜 싫어하는데. 특히 이런 거짓말은 너무 싫은데….”
“거짓말이 아닐….”
이라고 말을 내뱉었던 바로 그때였다.
‘어?’
눈앞에 있는 정하얀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순간적으로 화장실 안이 어두컴컴해진 것은 물론 팔이 한쪽으로 날아간 듯한 느낌이다.
비명을 내지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배가 열리며 내장이 쏟아지고 사방에서 날아오는 바람의 칼날들이 온 몸을 난도질하기 시작한다.
그 어떤 전조도 없었다.
‘아, 아아아아아악!’
근육이 찢어지고 피부가 뜯긴다.
몸이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다져진 기분이 드는 것은 물론, 점점 더 고깃덩어리가 되어가는 것만 같다.
‘주… 죽여줘. 죽여.’
같은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상상도 할 수 없는 만큼, 말로 제대로 표현할 수도 없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어떻게든 움직이려고 움직여 봤지만 당연히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미친 여자는 알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며 단검으로 사방팔방을 찍어 내리기 시작했다.
‘제발 그만해…. 제발. 내가. 잘 못… 내가….’
꿈에서 깨어나듯 토악질을 한 것은 그로부터 약 1분 정도가 지난 이후.
“우웨에에에에에에에엑!”
검정색 풍경 대신 자리한 곳은 화장실 안.
피로 범벅이 되어 있던 아까와는 다르게 확실히 타일 바닥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살았어…. 사, 살았어.’
몸을 매만져 보고, 팔을 만져본다.
방금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든 게 정상인지, 계속해서 넘어오려고 하는 토악질을 참아내며 필사적으로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뭘 본 거야. 방금 도대체 뭘 본 거지.’
아까 전부터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의 연속.
방금 여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리가 덜덜덜 풀려온다.
저도 모르게 토악질을 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고 눈에서는 계속해서 눈물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마치 실성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
덜덜 떨려 무어라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당연히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지만 누가 이런 현상을 야기 시켰는지는 이해가 간다.
“지금 확실히 말해요. 거, 거짓말은 아닌 거죠?”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것은 이미 오래.
이기영이나 김현성, 린델의 3대 길드나 파란이 가지고 있는 이권.
머릿속에 들어가 있던 계획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살기 위해서라면 생각하지 않아야 했다.
더 이상 다른 게 눈에 들어올 리 만무.
다소 농담처럼 흘린 거짓 소문, 그 거짓 소문이 진실이 되게 만드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래야 방금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네… 아, 아마도.”
빠져나갈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듯한 기분.
청렴결백의 상징인 교국의 명예추기경이 스스로 타락하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