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4
회귀자 사용설명서 474화
이간질(5)
“최근 들어서 조금 노골적인 것 같지 않아요?”
“누구?”
“누구긴 누구예요. 그쪽 라인이죠, 뭐.”
“아아. 걔네들. 뭐, 그쪽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괜찮겠어요?”
“요즘 하는 짓 보면 귀엽기도 하고 그리고 그쪽에서도 굳이 극단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없거든. 우리보다 더 조심스러우면 조심스럽겠지. 꼬리 밟히면 망가지는 건 저쪽이니까.”
“그럼 뭐, 무난하게 가고 있다고 봐도 되네요? 김현성, 이 사람만 빼면요.”
“혀, 현성이도 나름 무난하기는 해.”
“무난하기는요. 솔직히 오빠도 비슷한 생각 하고 있잖아요? 이런 식으로 떡고물을 던져봤자 별로 달라지지 않을 거. 아무리 파란 길드가 돈이 썩어 난다지만 무상으로 쉼터를 건설해 준다는 건 제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거든요. 연주 언니가 돕고 싶다고 말했을 때 얼마나 뜯어 말렸는지 아마 상상도 못 할 걸요. 검은 백조가 파란처럼 낭낭한 것도 아니고 안 그래도 최근에 벌려놓은 사업도 많은데….”
“…….”
“대외적인 이미지를 노리고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솔직히 파란 길드 같은 경우에는 더 이상 쌓아올릴 이미지도 없잖아요. 정말로 이런 복지가 훈련의 질을 늘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경기도 오산이라고 말해주고 싶다니까요. 몇몇 집단은 호구 잡았다고 좋아할 게 뻔하니까. 뭐, 다른 말 할 필요도 없지.”
“그래도, 실제로 꽤 잘해주고 있는 얘들도 있잖아. 효과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 물론 미비하지만.”
“실드 쳐주는 거 진짜 웃긴 거 알아요? 아무리 그래도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간 시간이 벌써 며칠 째인데… 정말 이래도 되는 거예요?”
‘아니…. 이러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지혜야.’
애써 김현성을 두둔하기는 했지만 이지혜와 비슷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남아서 이런 식으로 고쳐나가려는 건지는 몰라도 답답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그동안 김현성이 고군분투하기는 했다.
침체되어 있는 합동 훈련의 분위기를 끌어올리고자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 것이다.
균열랜드에서 쓰고 남은 양산형 자제들로 숙소를 세워주는 것은 물론 부식이나 보급품들 역시 길드의 이름으로 지원한 상황.
훈련 외의 것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 효과가 미비할 거라는 건 안 봐도 뻔한 이야기다.
애초에 할 의지가 있는 인간들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나태해질 대로 나태해진 인원들은 김현성의 솔루션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본인이 열심히 하면 뭐가 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김현성의 하루 일과는 더욱 바빠졌다.
훈련과 업무로 빠듯한 일정에 타 길드와 클랜에게 검을 가르쳐 주는 시간이 추가됐고, 그것은 새벽 늦게까지 이어졌다.
내 눈으로 확인한 녀석의 눈은 조금 짠해 보였을 정도.
하지만 성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소규모 인원으로 시작했던 김현성의 검술 수업은 점점 더 인원을 늘려나가기 시작했고 열의 역시 넘쳐 보였으니까.
애초에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인물들을 데리고 하는 훈련이다 보니 성과가 없는 것이 이상하리라.
김현성의 가르침이 입소문을 타기도 했고….
물론 그것 이상의 결과는 얻을 수 없었다.
몇몇의 권력자는 김현성이 재능 있는 모험가를 빼내려는 건 아닌지 의심했고 그 결과 의도적으로 연무장에 인원들을 내보내지 않는 길드가 늘어난 것이다.
자유 훈련마저 길드 단위로 막고 있으니 코미디 같은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남아 있는 것은 정말로 열의가 있는 소수의 인원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가르침을 청하는 몇몇 개념 찬 길드뿐.
연무장에서 부는 작은 훈풍이 대륙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기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런 소년 만화 같은 일이 생길 리 만무하지 않은가.
시간이 흐를수록 전체적으로 나태해지기 시작했고 몇몇 집단은 예비군 훈련에 온 것 같은 행태마저 보이고 있다.
김현성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 입장에서는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쯧….’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인원은 소수였지만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인원은 절대다수.
열혈과 근성, 노력으로 새로운 바람을 불어오는 이상향은 절대로 오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아마 본인 역시 조금씩 이건 아니라는 걸 깨달아 가고 있을 터.
‘답답하겠지.’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려고 하는데도 움직이지 않은 이들이 있다.
심지어 린델 연합이나 파란과의 모의전이 시작되는 날이면 파티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빼기 일쑤.
파티원들이 다칠 것을 고려한 보이콧 아닌 보이콧이었다.
김빠지는 상황에 차희라 역시 ‘나도 안 할래. 우리 애들도 마찬가지고. 재미없네’라는 소리와 함께 텐션을 내렸고 엘레나와 이종족들도 형식적으로만 훈련에 참가하는 듯한 느낌으로 노선을 전향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갑자기 푹 가라앉았다는 건 굳이 훈련에 참가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이야기였다는 거다.
“그 와중에 적폐 놈들은 아직도 이간질이나 하고 있고요. 오빠에 비하면 적폐 같지도 않은 놈들인데. 귀엽게 보이겠어요?”
‘말이 너무 심하다, 지혜야.’
“아직도 적당히 받아주고 있어요?”
“뭔가 써먹을 수 있는 구석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일단은 간보고 있는 거지. 뭐, 아직 그쪽에 합류한 인원이 몇 명인지도 정확하게 파악 못 했고. 현성이는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다는 건 나를 그만큼 믿는다는 거겠지.”
“믿음 하나는 대단하네요. 거의 매일 그러고 있는데도… 솔직히 요즘 오빠 생활 거의… 쓰레기 같잖아요.”
“쓰레기 같은 짓을 했을지언정 쓸데없는 일은 없었으니까. 뭔가 또 열심히 머리 굴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할 거야.”
“흐음…. 오빠.”
“응?”
“이거, 제가 한번 해결해 봐도 돼요?”
“어떻게?”
“글쎄요. 아직은 비밀. 솔직히 확신하지는 못 하겠는데 영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오빠는 그냥 평소대로만 지내면 돼요. 아니, 오히려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그놈들이랑 놀아나면 될걸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긴 한데….’
이지혜라면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저렇게 본인이 나서는 경우에는 말이다.
일단은 고개를 끄덕여 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정확히 어떤 방법으로 조질 건지에 대해서는 조금 의아하기는 했지만….
몇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를 찾아온 박덕구를 보고서는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얘 진짜 귀신같네.’
“형님, 거… 파란 길드를 탈퇴할지도 모른다는 게 참이요?”
‘이거였구나.’
괜스레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참인지 아닌지, 그것부터 말해주쇼.”
“헛소문이야. 누가 그래?”
“뭐, 어디에서부터 흘러들어온 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뭐, 그런 소리가 들려옵디다.”
어째서 이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나 자신이 조금 멍청하게 느껴질 정도다.
당겨서 안 되면 밀어내 보면 된다.
생각보다 너무 쉬운 해결책이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 나는 김현성과 이 건에 관련해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
김현성이 지쳐 떨어지기를 바랐고 일단 기다려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효과야 있었겠지만 다소 답답함을 느낄 수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이에 대한 이지혜의 솔루션은 무척 간단했다.
‘적폐 축제 여러분이 그리는 그림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면 된다는 거네.’
간단히 말해 이간계에 걸려드는 척 하는 것으로 끝.
실제로 이기영이 파란과 김현성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흘린 것이다.
물론 김현성은 아직까지 파란을 찢어놓으려는 제3세력이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내 쪽에서 뭔가 액션을 보여준다면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 볼 수도 있고, 지금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조금 작위적이라는 생각도 해볼 가능성이 높다.
지금껏 이쪽이 만나고 있던 적폐 여러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것이 분명하다는 거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조금 불안한 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시도는 해볼 만한 이야기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몇몇 분위기를 흐리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 현성이가 환멸을 느껴야만 했고, 그 결과 뭔가 다른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고 느껴야 했다.
물심양면으로 퍼주고 있는 집단에서 알고 보니 나와 자신을 찢어놓으려고 하고 있단다.
실제로 이쪽은 그 이간계에 영향을 받고 있고.
부처님도 폭발할 만한 상황이라는 거다.
‘아무리 현성이가 무골호인이라고 해도 이 꼴 보고도 가만히 있으면 호구지 호구.’
최소한 이 시점에서 이것보다 더 설득력 있는 수단은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몇 발 멀어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김현성은 그 누구보다 이쪽을 아끼고 또 아끼고 있고….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파란에 내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커다란 만큼 어떤 액션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단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입을 연 것은 당연지사.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게 참이요?”
하지만 대답은 애매하게.
“아직까지 계약기간도 남아 있고 지금 당장 파란을 떠난다고 해도 갈 곳도 없는데, 뭐.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괜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덕구야.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훈련에 집중해야지.”
“끄응….”
“정확히 뭐라고 들었는데?”
“뭐, 별건 아니요. 형님이 요즘 안 좋은 사람들이랑 어울리고 있다는 소문이랑… 그것 때문에 린델을 떠날 수도 있다고…. 현재 파란에 환멸을 느껴서 연방 쪽으로 이주할 수도 있다는 건데. 형님, 혹시 우리 형씨랑 싸우기라도 한 거 아니요?”
“나이가 몇인데 싸우겠어.”
“아니, 그런 소리가 아니라 뭔가 의견충돌이라든지 그런 게 있는 건 아닌지 묻는 거요.”
“딱히 그런 건 없었는데.”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많이도 흘렸네.’
박덕구에게 정체불명의 소문에 대해 들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지혜가 흘린 소문을 생각해 보면 정황상 그녀가 나와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뭔가 찜찜했던 것은 박덕구 이자식이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었다는 것.
‘이게 정상적인 건가. 이 새낀 뭐야, 도대체.’
보통 이런 종류의 소문을 흘릴 때는 조금씩, 조금씩 정보를 풀게 마련이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걸 풀면 근원지가 들킬 염려도 있을뿐더러,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
당연하지만 이지혜가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했을 리 만무하다.
사방에서 천천히, 아주 느리게 퍼져나가도록 의도했을 거고 최소 며칠은 지나야 이 소문이 제대로 자리 잡도록 설계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 새끼는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 거야? 직접 들은 거처럼.’
가십에 민감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무슨 특성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혹시나 해서 슬그머니 마음의 눈을 발동시켜봤지만 역시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이지혜가 바깥으로 나간 지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해 보면 더욱더 그렇다.
혹시나 따로 정보 길드를 두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정보 전문 산하 길드라도 두고 있는 거 아니냐, 진짜?’
우스갯소리에 불과했지만 지난 행적을 보면 그럴 듯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새끼도 가끔 회귀한 건 아닌지 의심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