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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476화 (473/1,590)

# 476

회귀자 사용설명서 476화

니가 한 거 아니지?(1)

‘이런 얼굴은 처음 보는데.’

평소 녀석을 생각해 보면 파격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순간적이지만 자신의 감정을 다 숨기지 못했던 모양.

저도 모르게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는 모습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나마 가장 어울리는 말은 하늘이 무너졌다는 표현.

나라라도 잃은 것처럼 보이는 얼굴은 복잡해 보이다 못해 충격 받은 느낌을 들게 할 정도였다.

깜짝 놀란 것 같기도 했고, 슬퍼 보이기도 한다.

온갖 감정이 들어선 얼굴은 금방 본래대로 돌아왔지만 아직 당황했음이 남아 있다.

설마 일이 이렇게 돌아가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리라.

‘그래. 그럴 만도 하지.’

소문을 듣기는 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만큼 녀석과 나 사이에 유대감이 있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실제로 내가 린델과 파란에 가지고 있는 애착을 생각해 보면 그럴 리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당연하다.

갑작스레 이적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한들, 그다지 실감나지 않았을 거라는 거다.

주변 환경이 바뀌고 있는 와중에도 찌라시로 치부했을 것이고, 실제로도 그걸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헛소문이겠지.’

혹은.

‘그럴 리가 없어.’

정도로.

한데 그 소문이 사실이 되어버렸다.

열심히 일만 하던 바깥양반이 지치고 외로웠던 안사람에게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를 받은 얼굴이라 할 만했다.

‘그러니까 수신제가치국평천하 했어야지, 현성아.’

애써 침착한 척 하며 나를 바라보는 김현성이 다시금 입을 열어오는 게 시야에 비쳤다.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단계에 있으시다는 건 무슨 뜻인지….”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사실 이런 방식으로 알려드리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아직 제대로 결정한 것도 아니니까요. 조금 더 명확해지면 넌지시 말을 꺼내려 했습니다만 이렇게 먼저 물어 오시니… 저도 미리 말씀을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먼저 말씀드리는 게 조금 더 좋을 것 같군요. 후임자도 정해야 하고 인수인계 과정도 거쳐야 하니… 오히려 조금 적절한 타이밍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

“…….”

“그, 그건….”

“너무 갑작스럽게 말씀드려서 죄송할 뿐입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네. 사실은 몇 달 전부터 해왔던 생각입니다.”

‘정확히는 네가 나를 피하기 시작했던 날부터야, 현성아.’

“…….”

“다른 환경에서 새롭게 시작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었고, 이런 말씀 드리기 조금 민망합니다만 지금의 파란 길드는 제가 없어도 충분히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터라, 기왕이면 조금 더 제가 필요한 곳에서 움직이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도 파란 길드는 성장 중이고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현성이 많이 당황했구나.

머릿속이 복잡한 게 눈에 보인다.

말리고 싶기는 한데 어떻게 말을 꺼내야 좋을지 판단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원래 화술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하던 녀석이다 보니 매즈기라도 쳐 맞은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본인이 자각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하얀처럼 말을 더듬는 것은 물론 손가락을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눈동자도 요리조리 굴리고 있었고… 하도 적응이 안 되는 모습이다 보니 녀석의 얼굴이 낯설다.

“아직. 아직은 시기상조가 아닌 듯싶습니다. 물론 기영 씨의 생각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

“호, 혹시라도 제게 뭔가 섭섭한 게 있으시다면….”

그래도 눈치가 없지는 않다.

갑작스레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 내부적인 파악에 들어가고 있는 모양인 것 같았다.

‘찔리는 게 좀 있기는 있겠지.’

대표적으로는 슬슬 나를 피해왔던 지난날의 잘못된 과거가 떠오르고 있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내가 그런 이유에 대해 이것저것 입을 열 리 만무했다.

애초에 조금 더 나은 대우를 받기 위해서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딱히 그런 건 없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현성 씨에게는 감사함뿐이라….”

“그래도… 혹시라도 캥기시는 게 있으시다면 곧바로 말씀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불편해하시는 게 어떤 일이든 간에 최대한, 아니, 무조건 수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디.”

“아직 뭐 하나 확실하게 결정한 것은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말씀을 드렸지만 다시금 파란에 남을 가능성도 높고요.”

‘그래도 마음이 떠났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겠지, 뭐.’

이미 그렇게 행동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뭔가 이유가 있으시다면… 최대한 조건을 맞춰 드리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하시는 일에 비해 연봉도 많이 부족하신 것 같고… 그동안 휴가다운 휴가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필요한 것은 전부 길드에서, 아니, 제가 따로 준비해 드릴 테니 안정을 취하신 이후에 다시 한번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뇨. 딱히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아직 파란은 기영 씨를 필요로 합니다. 아니, 사실 파란보다도 제가 기영 씨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넘치는 발언은 자제해라, 현성아.’

“일단은 제가 길드마스터의 자리에 앉아 있지만 저 혼자 이 길드를 성장시켰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영 씨 역시 파란의 주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이런 말씀을 하시니 솔직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파란에서 운영하고 있는 포션 사업과 균열 박물관 사업은 계속해서 이어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릴 테니까요. 아마 수입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없을 겁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로 제가 남겨놓은 것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최대한 맞춰 드리겠습니다. 제가 없어도 문제될 여지가 없게요. 파란 멤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설득이 조금 어렵겠지만 하얀이나 엘레나도 계속 파란에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조치를….”

“아니, 겨우 그런 걸 걱정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

‘이거 재밌네. 진작 좀 할 걸 그랬다, 야.’

“정말 그런 걸 걱정해서 그런 게 아니라… 사실 파란에서 벌이고 있는 사업은 유지해도 없어져도 그만입니다. 제가 걱정하고 있는 건 고작 그런 게 아닙니다.”

‘왜 진작 안 했을까. 시바….’

“아! 호, 혹시 만약 이적하신다면 어느 쪽을 생각하시고 계신 건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조심스럽지만 연방 쪽을….”

‘이건 답이 너무 뻔하지.’

“연방이라면.”

“네. 게르한 님과 자밀라 님이 계신 연방 쪽으로 이적하는 걸 고려해 보고 있습니다. 정확히 어느 길드나 클랜으로 들어갈지는 아직 협의 중에 있습니다만 지역은 확실히 연방 쪽이 될 겁니다. 바다가 보이는 풍경이 아주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더군요.”

표정이 애매해진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은 가관.

이제야 머릿속으로 퍼즐이 맞춰지고 있는 것이리라.

본래 심증은 가지고 있었으니 이제야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거겠지.

어째서 린델과 교국을 사랑하는 이기영이 연방으로의 이적을 생각하고 있는지 그 답을 찾은 것이다.

자신에게 문제를 찾으려고 했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외부에서 문제를 찾기 시작한 것이라 봐도 무방할 것 같았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연방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지옥불의 게르한과 자밀라를 생각했을 게 틀림없었을 테고….

지금쯤이라면 거의 확신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갑작스럽게 이적의사를 밝히고 있는 파란의 기둥.

중간에서 분탕치는 놈들.

간단히 생각해도 답이 나온다.

왠지 모르게 표정이 조금 서늘해진 느낌.

어떤 식으로 나올지 조금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세간의 소문과는 다르게 좋은 분들이더군요. 생각도 깊은 것 같고… 솔직히 수준 자체는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나 길드 운영에 많은 난항을 겪고 있는 것 같았는데 은근슬쩍 도움을 요청하시는 걸 들어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렇군요.”

“그러고 보니 최근에 현성 씨와 함께하시는 카일리 예일 님께서도 연방 소속이 아닙니까?”

‘이거 참 우연이다, 현성아. 그렇지?’

“네. 아마도 그럴 겁니다. 무슨 바쁜 일이 있는지 최근에는 길드로 찾아오지 않았습니다만….”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했으니 찾아오지 않았겠지.’

“그렇다면 연방에 대해서 많이 들어보셨겠군요. 사실 교국 입장에서도 가장 덜 알려진 곳이 연방이라… 여러 가지로 신기한 것도 많고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은 것 같았습니다. 특히나 아직 공략되지 않은 던전이 많다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물론 전설 등급과 영웅 등급의 던전은 현재 막혔습니다만…. 아무튼 이렇게 오랜만에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현성 씨. 실례지만 슬슬 밖으로 나갈 때가 돼서….”

“아… 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시간을….”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즐거운 시간이기도 해서. 아!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조금 더 확실해 질 때까지는 길드원이나 외부에는 비밀로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중요한 훈련을 앞두고 있기도 하고 이런 상황에 괜한 혼란을 드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돼서 말입니다. 현성 씨도 잘 아시다시피 은근히 정신적으로 약한 애들이니까요.”

“…….”

“특히나 덕구나 하얀이에게는 말씀하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네.”

“그럼…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네. 그럼.”

‘현성아. 조금 가슴 아프긴 하지만 이게 다 널 위해서 그런 거야. 어떻게 하면 좋을지는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거라고 본다.’

슬그머니 시원섭섭하다는 표정을 보이면서 마무리.

고민하고 있는 속내를 전부 고백했다는 뜻을 내비친다.

표정 연기까지 완벽하다고 할 만했다.

마치 작별인사를 고하는 것처럼 김현성을 슬쩍 스쳐 지나갔지만 녀석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마 내가 바깥으로 나간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일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 분명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로 절박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이미 하고 있는 연방 쪽에 대한 조사를 계속해서 진행하는 것은 물론, 이쪽을 잡아두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고민해 볼 것이 분명했다.

제3세력이 이간계를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확정 지었을 때 어떻게 나올지에 대해서도 궁금하고.

혹시나 미련 없이 떠나라고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절박해 보이는 녀석의 얼굴을 보니 그런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김현성은 절대로 이쪽을 떠나보낼 생각이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붙잡으려고 할 것 같은 느낌.

연봉 협상 카드와 휴가 카드 이후에 나올 카드가 뭔지 궁금했고, 전체적으로 조금 즐거워졌다.

밑밥을 전부 던져 놓은 것은 물론, 미끼까지 잘 던져 놓은 상황, 조용히 앉아서 즐겁게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이전과 달랐던 것은 그 기다림이 결코 길지 않을 거라는 것.

빠르면 오늘, 느리면 내일 중에 답을 들고 나타나게 되리라.

김현성 발등에 불똥이 떨어질 상황이었으니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 아닌가.

확률은 낮지만 자신이 회귀자라는 사실을 어필하며 남아 있을 것을 종용할 가능성도 크다.

무리수 같겠지만 가지고 있는 카드로는 확실하기도 하고 그럴듯한 명분도 생길 테니까.

상황은 나쁘지 않다.

정확히 28시간이 지난 이후에 들려온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모든 게 완벽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부길드마스터….”

“네.”

“연방, 연방이….”

“네?”

“연방이 무너졌습니다. 정확한 정황이 어떻게 된 건지는 현재 파악 중에 있으며 들리는 소문으로는… 북서쪽 지역의 1/5이 완전히 폐허가 되었으며 현재도 계속해서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고… 국가로서의 기능은 회복할 수 없다고 하, 합니다.”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참신한 개소리.

‘현성아… 시바… 이거 니가 한 거 아니지?’

당장 찾아가 묻고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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