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7
회귀자 사용설명서 477화
니가 한 거 아니지?(2)
한밤중에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만 해도 속으로 내심 기분이 좋았다.
괜스레 감성이 풍부해지는 새벽 3시.
김현성이 고해성사를 위해 찾아온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계속되는 밀당에 김현성은 이미 한계를 맞이한 지 오래.
제대로 된 업무도 보지 못할 정도로 피폐해졌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더욱더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진행하고 있던 김현성 교실도 문을 닫았고 모의전에도 불참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어젯밤에는 술에 잔뜩 취해 잠에 들었단다.
결국에는 참지 못해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딱히 이상한 상황은 아니었다는 거다.
‘하아. 술 취해서 찾아온 거면 불편한데….’
그러나 생각과는 반대로 입꼬리가 올라간 것은 당연지사.
반가운 마음에 굳게 닫힌 문을 열었지만 김현성 대신 보인 것은 조노보노.
진심 어린 고백 대신 황당한 소식을 들을 거라곤 조금도 생각지 못했다.
“부길드마스터….”
“네.”
“연방, 연방이….”
“네?”
“연방이 무너졌습니다. 정확한 정황은 현재 파악 중에 있으며 들리는 소문으로는 북서쪽 지역의 1/5이 완전히 폐허가 되었으며 계속해서 피해가 누적되었다고…. 국가로서의 기능 회복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합니다.”
‘무슨 개소리야.’
갑자기 왜.
가장 먼저 생각이 났던 사람은 당연 김현성.
슬며시 소름이 돋았지만 녀석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곤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지.’
타이밍이 조금 묘하지만 김현성을 이번 일의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떻게 봐도 무리가 있다.
슬슬 이쪽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던 시기.
확실히 달라지기는 달라졌다.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내 얼굴에서 불신이라도 봤는지 조노보노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일단 모시겠습니다.”
‘이거 몰카 아냐?’
혹시나 김현성이 나를 붙잡기 위한 회심의 파티를 준비한 것은 아닌지의심해 볼 정도.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몰카일 거라고 행복회로를 돌렸지만 무거운 표정을 하고 있는 몇몇 얼굴을 본 이후에는 행복회로가 모두 불타버린 상황.
회의실에 들어서고 똥이라도 씹어 먹은 것 같은 지도부의 표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각한데….’
병사들과 비서들이 정신없이 돌아다닌다.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이들의 얼굴에 당혹감과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위협을 대비하기 위한 훈련이었지만 실제상황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
특히나 연방의 지도자들은 다른 지역에 있는 이들보다 더 극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명예추기경님.”
“아… 게르한 님.”
“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혹시 뭔가 알고 계신 게 있으십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니네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잖아, 이 새끼야.’
“저도 막 소식을 듣고 온 참입니다. 연방에서 따로 연락이 오지는 않았습니까?”
“정확하진 않지만 약 2시 즈음에 연락이 끊긴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 저도 보좌관에게 들은 이야기라.”
“따로 브리핑은 없었습니까?”
“네. 아직까지 공식적인 브리핑은…. 아마 곧 시작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일단은….”
녀석이 막 입을 벌린 차.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 기영 씨.”
“파란 길드마스터. 이거 오랜만이로군요.”
게르한이 은근슬쩍 반가운 척을 해봤지만 김현성은 조금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조금 감정적이 됐다고 한들, 김현성답지 않은 행동이라 느낀 것은 당연지사.
눈인사라도 할 거라 알았건만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었다.
‘얘 왜 이래.’
그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했던 녀석이었다.
조금 의아했지만 그 이유를 알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술 냄새.’
지독한 술 냄새가 올라온 것이다.
‘얼마나 마신 거야?’
김현성 정도의 마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저렇게 취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고 보니 겉모습 역시 엉망.
항상 말끔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녀석이었건만 지나치게 초췌해 보였다.
헝클어진 머리와 정돈되지 않은 모습조차 잘생겨 보이는 게 조금 불공평하지만 일단은 녀석을 자리에 앉혔다.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순간 미쳐서 검을 날리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울 정도의 상태였으니까.
‘힘들기는 하겠네.’
안 그래도 정신적으로 힘든 타이밍에 갑작스레 이런 커다란 사건까지 일어났으니 복장이 터질 것이다.
균열 박물관 때와 이번 훈련까지 본인의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해 보면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렸을 가능성도 높다.
그나마 중간중간 충분한 휴식시간을 가졌기에 망정이지 그것마저 없었더라면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조금 기분이 나빠 보이는 게르한의 등을 슬그머니 두드린 이후에 김현성과 함께 자리에 앉자 곧바로 연방의 관계자가 브리핑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김현성이나 베니고어가 말한 위협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겠지.’
지금까지의 일을 생각해 보면 더욱더 그렇다.
‘뭔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이번 일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이지만….
김현성이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도 될 것 같다.
지금 당장은 브리핑을 들어보는 게 먼저니까.
“일단 이른 새벽에 모여주신 분들께 감사와 사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따위의 말로 시동을 거는 건 어느 나라에서나 똑같은 모양.
본격적인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일단 최초 보고를 받은 시각은 12시 34분이었습니다. 연방의 수석마법사가 11시경 거대한 마력의 유동을 감지했고 대지가 크게 떨린 뒤 완전한 암전 상태가 되었다고 보고되었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지역은 대도시 아메라이며 해당 지역의 연방 시민들은 11시 43분 즈음 대피를 시작해 2시 32분쯤, 일부 시민과 모험가를 제외하고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
“해당 지역을 빠져나오지 못한 이들은 지하의 마련된 대피소에 고립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하며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조사 중에 있습니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는 보고와 지속적으로 거대한 소리가 들린다는 게 현재 파악된 정황입니다.”
‘단서가 시발 너무 적잖아.’
대도시 아메라.
연방의 중심.
미국인들이 소환되는 튜토리얼 던전이 있는 장소였고 연방 경제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 있는 도시다.
웬만한 소국만 하다 보니 생산시설을 비롯한 여러 중요시설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
연방 내에서 아메라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그런 것치고는 대응이 너무 느린데.’
그나마 신속하게 시민들을 대피시켰다는 건 잘했지만.
11시경에 터진 걸 12시 34분에 보고 받았다는 건 조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무려 1시간 34분이 지체된 상황. 카일리 예일과 게르한 같은 놈들은 뭘 하고 있었는지 궁금한 것이 당연하다. 그 마법사 여자가 뭘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게르한은 아마 헛짓거리를 하고 있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현재 아메라로 진입한 조사단은 귀환하지 못하는 상태에 처했으며 그리폰이나 다른 수단으로도 안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대지가 떨리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주변 타 도시에서도 피난 작전이 진행 중이나 숲에 있는 몬스터들이 흥분한 상황이라 그마저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흐음.”
“연방의 수석 마법사가 계속해서 단서를 파악하고 있지만 아메라 근처에 있는 마력의 파장이 흩어진 터라…. 수준이 높은 마법사들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지금까지 들어온 정보는 여기까지며 유기적으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적당히 잘 버무렸네요.’
뭔가 추론을 하고 싶어도 단서가 너무 적다.
연방 측에서 공개를 꺼리고 있을 가능성도 전혀 배재할 수 없는 만큼 일단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당장 나와 김현성 사이를 찢으려고 한 장본인들이 아닌가.
뭔가 다른 뜻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갑자기 폭발이 일어났고 도시가 완전히 붕괴되어 버렸다고 해도 기실 안쪽의 상황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이 대륙 연합.
특히나 교국의 통수를 치기 위한 설계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아니, 거의 확신에 가까웠다.
‘앙큼한 거 보소…. 그래, 누가 뒤를 봐주고 있는 거야?’
카일리 예일의 머리카락이 하얀색으로 변한 게 내 눈에 보이고 있었으니까.
‘마력 탈진 현상.’
괜찮은 척 하고 있지만 힘들어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
수준이 높은 마법으로 머리카락 색깔을 가려봤지만 마음의 눈에는 그녀의 하얀색 머리카락이 너무나도 똑똑히 보이고 있었다.
아직 제대로 된 연결점은 찾을 수 없었지만 갑작스레 고립된 아메라와 그녀의 하얀 머리카락은 너무나도 수상했다.
‘생쇼를 한다. 생쇼를 해.’
“곧바로 병력을 마련해 고립되어 있는 시민들을 구출하는 게….”
“아니죠. 일단은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하는 게 우선입니다.”
“너무 시간을 허비했다가는…. 일단 타 도시에 있는 연방민이라도 구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합니다. 아직은 적이 누구인지, 의도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지 않습니까.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조금 더 지켜보는 게 어떨지….”
“이럴 때를 대비해 모여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일단 무슨 일이든 바로 대응할 수 있게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하지요. 언제든지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이거는 일단 생색은 내자는 거고….’
돌아가는 상황이 우습다.
연방소속이 아닌 이들은 슬금슬금 발을 빼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피해자인 연방은 어서 빨리 지원군을 보내야 한다고 외치는 상황.
모인 의미가 무색해질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당장 내 일이 아니라고 안심하는 쓰레기들도 이해할 수 있지만 지금 연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자기들이 관리하고 있는 지역에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확신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지금 당장 지원군을 보내야 한다고 말할 타이밍이었지만 그렇게 할 리가 만무하다.
카일리 예일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이상, 조금 더 천천히 상황을 지켜보며 시간을 끌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고립되어 있는 시민들이 있다고 한 들, 솔직히 내 알 바는 아니다.
아예 그것 역시 거짓일 확률도 배제할 수는 없고.
‘한 3일이면 되려나.’
카일리 예일의 뒤를 캐 유리한 상황을 설계하기까지의 시간.
변수가 있지만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약간의 시간이 지난 이후에는 입술을 꽉 깨물 수밖에 없었다.
정하얀과 심지어 한소라의 머리카락까지 하얀색으로 물들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니네 시바 뭔 짓 한 거야….’
분명히 마력 탈진 현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