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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482화 (479/1,590)

# 482

회귀자 사용설명서 482화

벌은 받아야지(3)

수인을 맺는 것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몸에서 터져 나온 기운은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종류의 마법.

이쪽의 몸을 감싸고 있는 정체불명의 촉수에 힘이 꽉 들어갈 정도였으니 마력의 양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27군단의 만인장이자, 악마 서열 1,000위권에 빛나는 리무르아 역시 긴장한 거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얼굴을 확인하자 시야에 비친 것은 광대까지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모습.

‘이거 막을 수 있는 거지?’

어째서 웃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쪽의 감정은 저쪽이 느끼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본의는 아니지만, 갑작스레 시작되려고 하는 괴수 대격돌에 불안감을 느끼게 된 것은 당연지사.

수백 개의 빛의 구체가 하늘을 수놓은 모습을 본 순간 괜스레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제각기 의지를 가진 것처럼 움직이고 있는 마력의 집결체.

‘이, 이거 씨바… 나까지 죽이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

분위기만 보면 그랬다. 일단은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있는지조차 의문.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휘말리며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모습은 마치 이전의 율리에나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어떻게 봐도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죽어어어어어어어!!!”

떠오른 마력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 것은 순식간.

콰드드드드득!

콰지지지지지지지직!!!

콰아아아아아앙!!!

일부는 리무르아를 둘러싸고 있는 악마들에게, 또 일부는 그녀에게로 날아갔다.

갑작스레 몸을 구속하고 있는 촉수들이 헐거워진 것이 느껴진다.

아마 이쪽에 몇십 가닥을 붙여놓은 채로 전투에 임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생각일 터.

지금의 마법이 그녀에게도 위협적으로 다가온 것이 틀림없으리라.

순식간에 몸을 내빼자 곧바로 거대한 촉수들이 앞을 막아섰고, 겹겹이 쌓인 채로 마법을 막아내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재밌네.

라고 말하기에는 이를 악물었다는 게 느껴진다.

실제로 그녀의 촉수는 마력의 집결체에 의해 계속해서 그 힘을 잃어가는 중이었으니까.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마법이 계속해서 촉수를 삼키며 전진하고 있다. 마치 분해하는 것처럼 말이다.

‘개 씨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이쪽도 좀 생각해 주라!’

“그웨에에에엑!”

콰드드드드드드득!

“크워어어어어!!!”

콰와아아아아아아앙!

실제로 여기저기에서는 폭음과 함께 악마 군단이 녹아내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

리무르아의 멋진 등장을 위해 함께해 줬던 악마 제군들이 마력에 녹아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장면은 확실히 비현실적이라 평할 만했다.

‘이게 뭐야….’

“죽어!!! 죽어!!! 죽어어어어어!!!”

일부의 구체에서 뻗어 나온 마력의 가시들이 수십 악마들의 머리를 꿰뚫는다.

그걸로도 모자라 그 자리에서 폭발하듯이 터지는 녀석들의 모습은 가관.

정확한 마법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되지는 않지만, 내부에서부터 마력을 움직여 터뜨리는 종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마치 기적이라도 보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그녀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내 몸에 강림한 베니고어의 모습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고 느껴졌을 정도.

대군이 쓸려가는 모습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이게… 뭐야… 시바….’

“그웨에에에에엑!!!”

콰지지지지지지지직! 퍼어어어어엉!!!

‘이거 실화냐고….’

사실 정하얀을 여기까지 끌고 오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함께한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끌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등에 지는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을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었다.

‘시이바…’

하지만 이 정도라면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다. 지고 있는 리스크보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가치가 훨씬 더 크다.

다가올 전쟁에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퍼즐 중 하나.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마법적 한계를 뛰어넘는 그 모습은 경이롭다는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였다.

공간을 꽉 채우고 있던 악마들의 대다수가 전멸.

단순한 들러리라고는 하지만 이 악마들 개개인은 결코 약한 개체라고 볼 수 없다.

대륙을 기준으로 분류하자면 적어도 영웅 등급에 랭크되는 쪽. 그런 악마들이 마법 한 방에 넝마가 된다.

1회차 전쟁 영웅.

어째서 김현성이 정하얀을 그렇게 감싸고 돌았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하아… 하아… 하아….”

‘이게 성장치 맥스를 찍은 게 아니라고?’

“죽여 버릴 거야. 갈기갈기 찢어서… 주, 죽일 거야.”

-아끼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조금 슬프네.

“그, 그 입 다물어!! 다물어어어!!!”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한번 커다란 마법이 터져 나온다.

‘진짜… 이게 무슨….’

그 와중에도 괴수 대격돌은 한번 벌어진 입을 다물 틈이 없을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었다.

첫 번째 공격을 막은 이후에는 리무르아의 턴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정하얀의 턴은 끝나지 않은 모양.

마력으로 이루어진 화살이 정확히 그녀만을 노리고 쏟아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와중에 피아 구분은 하고 있는 것이다.

“이이이이익!!!”

바닥에서 생성되기 시작한 사슬. 그 어떤 것이라도 태워 버릴 것 같은 불꽃.

너무나도 명확하게 실체화돼 눈으로 확인이 가능할 정도로 정제된 바람.

라이오스 때 보였던 공간을 좀먹는 아네모네의 검붉은 구체.

그 외에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어처구니없는 마법들과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폭음까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지형이 뒤바뀌고 있다는 것 정도는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십 가닥의 촉수가 그녀를 향해 쏟아졌고, 정하얀은 제 자리에 서서 쏟아지는 촉수들을 마력으로 붙잡는다.

아까와 같은 속도로 접근해 보려고 했지만, 맛탱이가 가버린 마법사가 그런 공간을 허용해 줄 리 만무.

본인이 쏘아 보낸 마법으로 방향을 바꾸거나 움직임 자체를 상쇄시킬 수 있는 덫을 사방에 깔아놓는다.

거리를 좁히려고 하는 자와 떨어지려고 하는 자의 싸움. 쉽게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던 리무르아 역시 점점 더 얼굴을 굳히고 있다.

본인의 생각대로 전투가 흘러가지 않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게 틀림없으리라.

목숨을 빼앗지 않는다는 페널티 때문에 제대로 움직일 수 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만약 그 페널티가 없더라도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 됐을 거라는 것 정도는 인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페널티를 떠안고 있는 건 하얀이도 마찬가지고.’

-겨우 이 정도로?

“이이이이이익! 죽어!!! 죽어!!! 제발 죽어!!!”

-넌 못 지킬 걸… 오늘 빼앗기게 될 텐데… 이거 미안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다, 닥, 닥쳐!! 닥치라고오!!!”

-저 남자를 어떻게 다뤄야 제대로 즐겼다는 생각이 들까. 내가 없이는 살 수도 없는 몸으로 만들어줄 자신 있는데… 일주일만 지나도 너 같은 인간 계집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될걸. 넌 질 거야. 바닥에 처박혀서 질질 짜게 될걸.

“히끅… 닥, 닥쳐….”

-일이 끝난 다음에는 머릿속을 백치로 만들어 버리는 게 좋겠네. 온종일 다른 건 생각지도 못할 만큼 바보로 만들고 천천히 저 구역질 나는 인간을 탐닉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 그렇게 하는 게 좋겠네. 하으….

“그… 그 입 다물라구우… 다물어…. 다물어!!! 흐어어어어엉… 죽으란 말야!! 죽어어어!!!

거의 동수라고 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정황이 뒤바뀐다.

‘확실히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다르네.’

경험이 괜히 중요한 게 아니다. 가벼운 도발에 넘어가 무리한 마법을 펑펑 쏴 재끼는 정하얀의 모습은 가관.

악마 군주 역시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입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광기에 물들었던 얼굴에는 어느새 짜증과 불안감이라는 감정이 들어선다. 본인이 한계라는 걸 직감한 것이다.

애초에 몸 상태도 정상이 아니었다.

정하얀은 이미 여기에 오기 전부터 마력 탈진 현상을 겪고 있었고, 실제로 체내에 남아 있는 마력도 많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대마법사의 심장으로 인해 어느 정도의 마력을 회복했다고 한들, 이전과 같은 컨디션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는 거다.

조심, 또 조심하며 마력을 소비해도 승리를 점칠 수 없는 상대에게 흥분한 채로 마력을 펑펑 써대고 있으니 금방 한계가 찾아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법은 속 빈 강정이 되어가고 있었고, 리무르아에게 조금 더 많은 공간을 허용하고 있었다.

이 이상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히끅… 허으어어어엉… 나가!! 나가라구우!! 나가!!!”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더 이상 마법이 발현되지 않게 된 것.

-이거 슬퍼서 어떡하나… 텅텅 바닥나 버렸네요.

“이이이이익!! 이이이이이이익!!!”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는지 단검까지 빼 들고 광년처럼 달려들었지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진다.

정하얀의 머리카락을 들어 올린 채로 있는 힘껏 뺨을 후려치자 다시 한번 몸이 형편없이 바닥에 처박히는 게 시야에 비쳤다.

‘애 잡겠다. 씨바… 그만해라.’

슬그머니 눈치를 주자 본인도 심했다는 걸 인지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모습.

단 두 방으로 정하얀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바닥난 마력으로 방어막을 펼칠 수도 없는 상황.

리무르아에게 저항하기에는 정하얀의 신체는 너무나도 유약했다.

“흐어어어엉… 콜록… 콜록…. 오빠아… 오빠아….”

‘아우야… 가슴 아파….’

“오빠아… 히끅… 우웨에에에엑… 오, 오, 오빠아….”

이제는 몸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태.

다시금 촉수에 구속된 채로 메소드 연기에 들어가자 정하얀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계속해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틀비틀 일어서며 달려오고는 있었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하고 풀썩 쓰러져 버린다.

“오빠아… 가지 마요오… 가지 마… 히끅… 흐어어어어엉….”

‘그러지 마… 마음 약해지게….’

“데려가지 마… 데, 데… 려가지 콜록… 콜록… 데려가지 마.”

-싫은데?

“히끅… 흐어어어어엉… 히끅.”

“하얀아.”

“오빠아… 오빠아아….”

다시 한번 일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지만 이번에도 역시 몇 걸음 가지 못하고 풀썩 쓰러져 버린다.

입에서는 계속해서 혈액이 울컥울컥 튀어나오고 이미 온몸은 넝마가 되어버린 상태.

가슴이 찢어지기는 했지만, 이 신파는 제대로 마무리 지어야 했다.

정하얀의 버릇을 고친다는 목적뿐이었다면 적당히 끝을 맺었겠지만, 조금 더 커다란 그림을 그리고 있었으니까.

“제…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그녀는 돌려보내 주세요.”

‘멘트 지렸고요.’

“흐어어어어어어어엉… 그러지 마… 그러지 마요… 히끅….”

-이런 모습을 보이면 조금 더 괴롭히고 싶어지는데… 하지만 어차피 저 여자는 살려둘 생각이기도 했고, 그 대가가 당신이라면 나는 환영이야.

“감… 사합니다.”

“오빠아… 히끅… 오빠아아아!! 콜록!! 콜록!!! 흐어어어엉… 오빠아….”

내 몸이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천천히 하늘로 떠오른다.

깜짝 놀란 정하얀이 다시금 우다다 달려오기는 했지만, 돌부리에 걸려 앞으로 넘어졌다.

눈물 콧물을 다 흘리며 닿지도 않는 손을 뻗는 것은 물론 엉금엉금 기어서라도 이쪽을 붙잡으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잘못했어요. 히끅… 잘,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히끅. 히끅.”

“…….”

“흐어어어어엉… 잘못했어요. 잘못… 내가 잘못했어요.”

“…….”

“제발… 제발… 제발… 히끅… 히끅.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신님. 제발… 제발… 한 번만….”

“…….”

“히끅… 히끅… 오빠아….”

“…….”

“…….”

“잘 지내야 돼.”

아름다운 엔딩을 위한 씁쓸한 미소 한 방. 목 놓아 오빠를 외쳐대는 정하얀을 보고서는 가슴 한편이 씁쓸하기는 했지만.

‘이게 신파지. 이게 신파야.’

만들어진 결과물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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