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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484화 (481/1,590)

# 484

회귀자 사용설명서 484화

슈퍼스타L(2)

-이제 곧 도착입니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군요. 벨리알 님께서 처음 소환되신 장소가 이 장소가 맞습니까?”

“네”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는 않은 모양이군요.”

-예.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저희와는 다르게 더 높은 격을 가지고 계신 벨리알 님께서는 현세의 활동에 제약이 따르니까요. 아마 저 성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하시면 편하실 겁니다.

‘이건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아직 이 대륙을 둘러싸고 있는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준 신화 등급과 신화 등급의 차이라는 거네. 억제력 같은 건가 봐.’

자세히 어떤 사정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충분히 답을 유추할 수 있을 같았다.

한 차원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없는지의 차이.

신화급 존재가 대륙을 동네 마실 다니듯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게 더 이상하다.

이 정도 억제력은 있어야 한다.

특히나 소환된 경우에는 그 억제력이 더욱더 빛을 발할 거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의미로 능력치가 소폭 상향 조정되는 것 역시 억제력의 한 종류일 터.

물론, 벨리알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에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지, 없는지는 크게 상관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저기 싸돌아다니게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제대로 설계되어 있기는 하네.’

당연한 소리겠지만, 이 대륙이 허투루 설계되지는 않았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아마 그게 아니었다면 이 대륙을 관리하는 트롤러 놈들이 몇 천 년 전에 대륙을 말아먹었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다.

당장 베니고어와 엘룬 쓰레기만 봐도 답이 나오는 상황이다.

“현세에 소환된 것은 리무르아 님과 벨리알 님이 끝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만인장이 전부 소환되지는 못했지만 1,000위권에 랭크된 다른 동료들 역시 벨리알 님의 부름에 답한 상태입니다. 아마 곧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일단 벨리알 님을 알현하는 게 먼저겠지만요.

“오랜만이라 조금 긴장되는군요.”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 27군단은 언제나 이기영 님께 우호적이니까요. 그리고 노파심에 말씀드립니다만, 아까 나누었던 약속은….

“아, 네. 약속했던 가계약은 꼭 해드릴 테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이기영 님.

“하지만 배역 건은 확답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아시다시피 이게 워낙 중요한 부분이라. 하지만 실망하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미 리무르아 님께서 워낙 중요한 일을 해주시기도 했고, 그만큼 강한 인상도 남겼을 테니까요. 리무르아 님을 저에게로 보낸 것이 벨리알 님이 아니십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아마 벨리알 님께서 라무르아 님을 많이 아끼시나 봅니다. 베니고어의 재림이라고 불리는 대륙의 영웅을 납치하는 막중한 임무를 내리신 것이니까요. 다음 이야기를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퀄리티가 있는 배역을 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사실 아직 각본이 전부 나온 상황도 아니지 않습니까. 좋은 배역을 준다는 확답을 드릴 수 있다면 저로서도 마음이 편했겠지만, 혹시 모를 상황 때문에 약속드리기가 어렵다는 점,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이유라면 오히려 환영입니다. 이기영 님.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니 벨리알 님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 이후에 따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 여배우의 표정은 가관.

준 신화급 존재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라 조금 긴장했다.

하지만 리무르아의 얼굴을 확인한 이후에는 다시금 입꼬리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장담하건대 다른 악마들 역시 그녀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리무르아가 배역 건에 대해 먼저 선수를 쳐온 것 역시 혹시나 다른 악마를 보고 생각이 바뀔까 불안해서 그런 거겠지.

-자꾸만 쓸데없는 말을 드리는 것 같군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리무르아 님께서 저를 위해 해주신 일은 절대 잊지 않을 테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해 주시니 조금은 안심할 수 있겠네요.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아무튼, 어서 들어가시죠. 벨리알 님께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네, 리무르아 님.”

성에 도착한 이후 짧은 대화를 나누며 길을 걷자니 어느새 커다란 알현실의 앞이었다.

왠지 모를 압박감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적의는 아니다.

아마도 신화급의 존재가 내뿜는 존재감이 그 원인일 터다.

약간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건만 내 마음을 모르는 리무르아는 벌컥 문을 열어버렸다.

숨도 쉬기 힘들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반대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한 느낌.

조심스레 고개를 드니 인간의 양식과는 거리가 먼 내부가 눈에 띈다.

‘취향 한번 참 고약하구먼.’

정체불명의 살덩이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은 물론 뭔지 모를 마수의 두개골도 여기저기에 걸려 있었다.

정돈되지 않았지만, 정돈된 느낌.

중간중간에 엔틱한 양식의 장식품들이 어우러져 묘하게 소름 끼치는 분위기를 만든다.

-오랜만이군. 구역질 나는 인간.

하지만 저 모습보다 더 기괴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만마의 지배자께 하찮은 필멸자가 인사, 또 인사드리겠습니다요.”

다소 인간형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리무르아.

그와는 반대로 차마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외관을 가지고 있는 벨리알의 외관은 본능적으로 어떤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둘 중 어느 쪽의 모습이 일반적인 모습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누가 더 악마에 어울리냐고 묻는다면 당연 벨리알 쪽이다.

72악마 군주 중에 27위권에 랭크된 악마다운 외관이었다.

‘변신 비슷한 것도 가능할 것 같던데….’

실제로 리무르아가 외형을 변경시킬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72대군주 중 하나가 자신의 겉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 외관을 바꾼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을 읽힐 수도 있으니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이다.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푸흐흐… 그렇게 아부 떨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나.

“아부가 아닙니다요. 전부 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와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정말로 보고 싶었습니다. 벨리알 님. 지난번에 그렇게 벨리알 님을 보내고 나니 조금 더 제대로 대접해 드리지 못한 게 어찌나 후회되던지….”

-그렇게 저자세로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지 않나. 결국,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것은 내가 아니라 너다. 그리고 대접 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네가 나를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대접하는 것이 옳지. 리무르아에게 들었을 것 아닌가. 너도 나름대로 득을 보기야 했겠지만, 저번 계약으로 인해 제대로 득을 본 것은 바로 나다. 아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고.

“저야 항상 벨리알 님을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되었다. 허례허식 따위는 집어치우고 자리에 앉지. 너를 위해서 준비한 것이 많다.

‘이래서 사람이 능력이 있어야 돼.’

이쪽을 대접해 주고 싶다는 건 허언이 아닌 것 같다.

실제로 한쪽에 비치된 정체불명의 식탁에는 여러 가지 음식과 술이 나열되어 있다.

지옥에서 먹는 음식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음식들도 있었다.

그것을 보니 얘네도 식사하기는 한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도 있겠지만, 맛은 그다지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들로 준비했다. 부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네가 나에게 해준 것에 비하면 부족하겠지만 말이다.

“감사할 뿐입니다요.”

-마음 같아서는 내 권능의 일부라도 내리고 싶다만 현재로서는 쉽지 않을 테니 나중을 위한 즐거움으로 남기도록 하지.

“나중을 위한 즐거움이라 하신다면….”

-나중에 우리 쪽으로 올 것이 아닌가. 인지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네 격이라면 충분히 현세의 육신을 집어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시기상조로 보이기도 하고 네 재능과 육체가 너무나도 형편없어 준비할 게 많겠지만…. 길게 본다면 2,000년 정도면 충분하겠군.

‘이미 악마 취급인데 이거….’

스카웃을 당했다는 게 찝찝한 적은 또 처음이다.

그제야 그 리무르아가 나에게 묘하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마 벨리알이나 배역 건의 언급이 없었더라도 나에게 정중한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미래의 직장 동료, 심지어 72군단의 군단장에게 신임받는 인물과 미리 인맥을 쌓는 건 그녀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 새끼들은 왜 이렇게 확신하고 있는 거야.’

현세의 육신을 집어 던지고 상위로 갈 가능성이 있다는 건 내가 베니고어나 엘룬에게 스카웃받을 수도 있다는 것 아닌가.

어째서 악마 쪽으로 진영을 옮길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심지어 신성력도 가지고 있는데.

벨리알이 이 정도라면 아마 베니고어와 엘룬도 이쪽을 신계로 불러들이고 싶어 애가 타고 있을 거다.

-신성력이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문제없겠지. 루시퍼 같은 사례도 있고. 뭐, 아직은 멀고 먼 이야기다. 나중을 대비하기보다는 현재 현재 눈앞에 있는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게 더 중요하겠지.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슬쩍 벨리알을 바라보자 갈라진 바위의 틈 같은 입으로 와인을 들이키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그러고 보니 리무르아 그 아이를 만났지. 어떻던가. 그 아이는?

“기품이 넘치는 여성분이셨습니다. 또 벨리알 님께서 신임하고 계신다는 걸 알 수도 있었고요. 굳이 이번 일의 시작으로 리무르아 님을 선택하신 것을 보니 딱 하고 느낌이 오지 뭡니까. 군단 내에서 밀고 있는 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연기력도 상당하신 것 같고,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없더군요.”

‘그 촉수도.’

-리무르아에게는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았지만, 그동안 챙겨주지 못했지. 이번 기회에 조금은 챙겨주고 싶어서 보냈는데 혹시나 기분 나쁘지 않았으면 좋겠군.

“기분 나쁠 일이 뭐 있겠습니까. 오히려 감사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런 일은 본래 첫 번째 임팩트가 중요한 법 아니겠습니까. 리무르아 님은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다해주셨으니 다음에도 중요한 일을 맡으실 겁니다. 아암. 그렇고 말고요.”

-아냐, 아냐. 그래도 이 건은 따로 사례하도록 하지. 본래라면 내가 직접 그녀를 챙기는 것이 맞겠지만, 알다시피 이 자리에 있다 보면 여러 가지로 신경 쓸 게 많아. 특히나 우리 27군단은 갑작스럽게 성장한 상태라 내부적인 문제도 많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랫것들의 눈치도 보지 않고 어떻게 집단을 이끌 수 있겠나.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아랫것이 있어도 함부로 편애하기 힘들고,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놈이 있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제거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이 새끼….’

-정말 문제야. 그렇지 않나.

‘햐. 이 악마 같은 새끼. 진짜 악마 새끼네 이거.

이번 일을 통해 벨리알이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놈들은 쳐내고, 신임하는 놈들은 위로 올린다.

단순한 계약이나 마이너스 감정을 뽑아내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27군단의 재정비.

일부 악마 놈들의 숙청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 애들도 레벨업 좀 할 수 있겠네.’

어떻게 보면 윈윈이라고 할 만했다.

‘준비 잘해라, 얘들아. 운 좋으면 경험치 챙길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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