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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491화 (488/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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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 491화

악마는 악마다워야 악마다(3)

모든 상황이 순식간에 급해졌다.

‘진짜 약이라도 빨았어?’

대륙 연합이 한 계단 성장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즐거운 상황이기는 했지만 현재로서는 즐겁지 않은 상황이기도 했다.

이사 후 집 정리가 끝나지도 않았음에도 집들이 손님들이 들이닥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아무리 그래도 아메라까지 당도하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겠지만, 솔직히 똥줄이 탈 수밖에 없었다.

본래 던전 공략에 필요한 절차 따위는 깡그리 무시하고 돌진해 오는 것이다.

‘미친 것도 아니고 진짜….’

아무리 이쪽에서 정보를 퍼줬다고 한들, 현재 대륙 연합이 가지고 있는 정보로 공략 작전 자체를 실행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에 가깝다.

현재 녀석들이 모은 정보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각 거점의 위치나 사천왕의 존재일 터다.

심지어 도노반과 카르페디악의 소재는 조금 조심하라는 의미로 흘리지도 않았다.

식량 창고에 자리 잡은 식인악마 발리토스와 아메라의 중심에서 소환 유지에 필요한 마력을 뽑아내고 있는 리무르아의 소재.

그리고 그 외 자잘한 몇 가지 공략 팁. 딱 이 정도가 녀석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 전부였다는 거다.

‘외곽 공략부터 진행하면서 정보를 모으겠다는 심산인 건가? 아무리 준비가 빨라도 한계가 있을 텐데. 제대로 준비한 건 맞아?’

적 지휘부가 정확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다.

적어도 김현성의 스타일이라고는 볼 수 없는 병력 운용이었다.

이런 종류의 공략에서 녀석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첫 번째도 안전, 두 번째도 안전이었으니까.

차희라가 있는 붉은 용병의 주도로 움직이고 있을 거로 생각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불 같은 성미의 바젤 추기경이 사고를 쳤을 가능성도 있지만 조금 더 점수를 주고 싶은 쪽은 역시나 붉은 용병 주도설.

물론 단순히 압박하고 반응을 보려는 계획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윽고 들려온 목소리에는 잠깐 침묵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43거점이 무너졌습니다.

“네?”

‘방금 집결하고 있었다며 갑자기 43거점은 왜 무너지는데.’

-41거점에서는 전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아직은 별다른 피해가 없어 보이며 일부 사제들의 내뿜는 빛에 벨리알 님의 영역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역겨운 베니고어의 신성력 때문인지 중급 악마들로 막아내기에는 속수무책입니다.

‘얘네, 진짜 약 빨았나 봐.’

-42거점도 마찬가지입니다. 벌레 같은 인간 놈들이 아주 약이 바짝 오른 모양이더군요. 일이 아주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도 재미없어, 이 새끼야.’

조금 당황스러웠는데도 불구하고 주변 악마들은 이쪽으로 시선을 보내기 시작.

이제야 지루한 시간이 끝났다는 듯이 즐거워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현재 일이 꼬이고 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똥줄이 타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완벽하게 일이 진행될 거로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초장부터 상황이 계속 꼬이고 있었으니까.

‘아, 이거 괜히 나선 거 아닌가. 괜히 한다고 했나….’

본래 감독이니, 총책임자니, 프로젝트 매니저니 하는 자리가 이렇다.

잘되면 모두에게 칭송을 받고 존경받는 인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실패하는 순간 모든 책임을 지게 되기도 한다.

지금이야 벨리알이 우리 기영이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를 시전해 주고 있지만 일이 망해가는데도 호의적인 시선을 보낼 리 만무하다.

수천 년 동안 자신을 보좌하던 충신을 제거하는 쓰레기 같은 악마 놈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커다란 걱정이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물론 현재까지는 위험할 정도로 일이 틀어진 것은 아니다.

-슬슬 시작이로군요. 하하핫. 이거 정말로 기대됩니다. 이기영 님.

“하, 하하.”

-이것도 머릿속에서 계획 중인 시나리오 중 하나이신 겁니까? 병력을 모두 채워넣기 전에 인간들이 공격해 들어오는 걸 예상하시다니. 과연….

“뭐, 그렇다고 보셔도 무방할 겁니다.”

-하지만 너무 쉽게 무너진 것은 아닌지. 거점에 조금 더 병력을 투자해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지원군을 보내기에도 이미 늦기도 했고, 이대로라면 아무런 실적도 없이 3거점을 준다는 게 조금….

-하하하하. 뭘 그렇게 걱정하고 계십니까. 이기영 님이라면 필시 다른 생각이 있으실 겁니다.

‘생각 없어. 이 새끼들아.’

하지만 입은 멋대로 열리기 시작. 거의 본능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하핫. 본래 적당한 희망이 있어야 이후 맞이할 절망이 더욱더 큰 법입니다. 오늘의 승전보에 취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취한 인간 놈들에게 고통을 줄 생각을 하니 벌써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는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역시 그렇군요. 하하하하. 그럼 41부터 43거점은 본래부터 버리는 패였던 겁니까. 이거 깜빡 속았습니다. 이기영 님. 과연 대단하십니다! 정말로 대단하세요!

당연히 버리는 패는 아니었다. 이렇게 쉽게 날치기로 통과될 거점도 아니었고.

솔직히 아쉽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사실 대륙 연합 측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눈에 보이기는 한다.

41거점, 42거점, 43거점, 전략적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 세 개의 거점을 우선 빠르게 공략한다.

이후 이 세 개의 거점을 전진기지로 삼겠다는 의도가 너무 명확하다.

안정적인 보급로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이 전진기지의 필요성은 충분하고도 넘친다.

정보 수집이 탄력을 받게 될 거라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

교국과 공화국을 예로 들어본다면 캐슬락 같은 곳이라 봐도 무방하다.

적당히 해 처먹고 지옥으로 돌아가야 하는 악마들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내어줘야 할 거점이기는 하다.

하지만 치열한 접전을 통해 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아까운 것이 사실이다.

1차원적으로 봤을 때는 이기영 경질설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타이밍이었다.

‘이기영 호 침몰, 포백 수비 고질적 문제.’

‘정답은 세트피스. 아쉬운 첫 경기.’

이름 모를 나라의 축구 감독을 비판하는 기사가 갑작스레 생각나기 시작한다.

“아마 마법으로 커다란 성벽을 쌓고 공략한 거점을 전진기지로 삼겠다는 생각일 겁니다. 연방 쪽으로 뻗어나가기 유리한 지형에 있으니까요. 아직 정보가 부족하기도 하니 정보 수집은 덤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도노반 님을 투입해야지요.”

-아….

“똘똘 뭉쳤던 인간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건 순식간일 겁니다.”

-역시나 그렇군요.

‘대충은 둘러댈 수 있겠는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위에 있던 악마들이 갑작스레 무릎을 꿇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순간적으로 ‘이게 뭔 일이야’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몸이 반응하기 시작.

높은 분이 등장했다는 생각에 잦은 사회생활로 단련된 무릎은 너무나도 쉽게 바닥을 마중 나갔다.

같은 자세로 부복한 이후 들려온 것은 무척이나 익숙한 목소리.

-잘들 되어가고 있나.

‘벨리알. 시바….’

왠지 모르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27군단의 지배자.

‘얘는 갑자기 또 여기 왜 온 거야.’

-벨리알 님을 뵙습니다.

-만마의 지배자이신 벨리알 님을 뵙습니다.

“지고의 존재이시며 세상 모든 필멸자들의 존경을 받아 지옥의 대군주 벨리알 님을 뵙습니다요. 오늘도 참 존엄하신 모습이옵니다.”

-아부는 되었다. 그런 소리를 듣기 위해 이곳을 찾은 건은 아니니. 소식은 들었다. 역겨운 인간.

“네?”

-41거점과 42거점, 43거점을 성과 없이 잃었다지.

‘시바….’

“어차피 잃어야 할 거점이었습니다. 일은 잘 풀려가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벨리알 님.”

-탓하기 위해 말을 꺼낸 것이 아니니 긴장할 필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겠지. 어차피 이것 역시 모두 네 역겨운 머릿속에 들어가 있었던 시나리오가 아닌가. 이 정도 일로 허둥지둥할 정도로 나는 멍청하지 않아. 그동안 고생하지 않았나. 단지 그걸 치하해 주고 싶을 뿐이다. 생각보다 조금 이르다만 어찌 됐건 27군단으로서의 첫걸음이 아닌가.

‘그러니까 왜 이렇게 동료 취급을 하고 그래.’

“그렇기는 합니다만….”

-장차 27군단의 미래를 짊어질 네가 출사표 없이 나간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도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했고.

“그 말씀은….”

-아무 말 하지 말고 따라오라.

‘제기랄. 이제 스케일은 그만 좀 키웠으면 좋겠는데. 그만 좀 키워.’

스케일이 커지면 커질수록 혹여나 실패했을 때의 상황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담담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지만 역시나 가슴은 좌불안석.

갑작스레 높아진 부담감에 괜스레 이곳을 뛰쳐나가고 싶어진다.

벨리알은 평소답지 않게 입가에 웃음을 띠고 있었고, 심지어는 조금 기분이 업된 것 같은 표정이다.

저 감정이 분노가 됐을 때의 상황을 생각하니 괜스레 입술이 바짝 말라오기 시작했다.

-축하드립니다. 이기영 님.

-벨리알님께서 정말로 이기영 님을 아끼시는 모양입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 있는 떨거지 악마들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이쪽에 환호를 보냈다.

대답하기 싫어 시선을 고정한 채 벨리알의 뒤를 따라가자 시야에 비친 것은 도열해 있는 27군단이었다.

-우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

‘왠지 이럴 것 같더라니. 씨바….’

심지어 만인장들도 위치한 모습은 가관.

장관이고 절경이라 부를 만했지만 내게는 가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경건히 앞에 서서 박수를 보내고 있는 모습은 진심으로 이번 프로젝트의 시작을 축하하는 것 같은 얼굴들.

리무르아와 로노베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도노반마저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그만해! 이 새끼들아. 적당히 좀 띄워도 된다.’

이미 전투 준비를 마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평소의 예복과는 다르게 모두가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갑옷으로 온몸을 가리고 있는 도노반이나 기창과 방패를 들고 있는 로노베.

다른 악마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내지르는 함성은 귀와 심정을 저릿하게 울리게 할 정도.

이 광경을 보라는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벨리알의 얼굴에는 어딜 봐도 흐뭇함이 가득했다.

단상 위에 올라가 한 곡조 뽑아보라는 듯 나를 이끄는 손길이 두려워지기는 처음이다.

이런 무대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현 상황에서 말을 잇기가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벨리알 님. 27군단의 출정입니다. 벨리알 님께서 직접 한마디 내려주시는 게 이들에게도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 역겨운 인간. 아니, 이제는 이기영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군.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준비한 것이 아니라 네가 준비한 것이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굳이 숟가락을 얹을 정도로 철판이 두껍지는 않아.

‘좀 얹어도 된다니까.’

-보이나? 지금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27군단을 지배하는 군단장이 바라보는 풍경이다.

‘어쩌라고 시바….’

-지금 네가 바라보고 있는 풍경은 아주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아… 네.”

-언젠가 네가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기도 하지. 어떤가. 마음에 드나?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조, 조금 부담됩니다. 벨리알 님께서 저를 신경 써주시는 것만으로도 이 우매한 필멸자는 영광 또 영광입니다.”

-진심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진심이다. 진심이야.’

-올라가 보아라. 그리고 군단에게 네 목소리와 네가 누구인지를 알리거라.

‘제기랄.’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다. 마치 협의문을 작성하기 전 사진이라도 찍는 정치인처럼 어깨를 붙잡고 있는 벨리알의 모습에 다시 한번 커다란 함성이 튀어나온다.

눈치 없는 자식이 엄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이쪽의 등을 떠미니 자연스럽게 몸이 단상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장내에 침묵이 가라앉았다.

눈을 질끈 감고 무슨 말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에는 천천히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만나게 돼서 너무나도 영광입니다. 친애하는 동료 여러부운!!!

마치 저당이라도 잡힌 것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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