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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524화 (518/1,590)

# 524

회귀자 사용설명서 524화

반 감금(2)

솔직히 이 2주가 그리 고통스러운 시간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머리카락이 잘려져 있거나 삼시 세끼 모두 군만두가 나오는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식사는 두말할 것도 없이 퀄리티가 높았고, 방 안 생활 역시 쾌적했다.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대접받는 쪽.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생활이었다.

이런 편의가 기분 좋았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그야말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가 없었으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아무것도 할 필요도, 심지어 몸을 움직일 필요도 없다. 배가 고프면 밥을 시키면 되고, 필요한 게 있으면 사람을 부르면 된다.

시도는 해보지 않았지만 아마 먹여달라고 하면 먹여줄 가능성도 크다.

최근까지 선희영과 엘레나, 정하얀이 번갈아 가며 죽을 먹여줬다는 걸 생각해 보면 더욱더 그렇다.

답답하기는 하지만, 적당히 즐거운 면도 있었다. 침대에 누워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누워서 책이나 읽는 시간이… 사실 딱히 싫지만은 않았다.

물론 채울 수 없는 답답함은 분명히 존재했다.

방이 넓다고는 한들, 행동 반경이 제한되어 있다는 건 굉장히 불편했으니까.

내 의지대로 이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것과 나갈 수 없는 것의 차이는 크다.

처음 1주일 정도는 순순히 말에 따라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잠자코 있었지만, 그 이후부터는 이 방에만 갇혀 있는 게 조금씩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혜진과 체스도 하고! 마! 밥도 묵고! 사우나도 하고! 마! 수영도 하고! 마! 틈틈이 놀기는 했지만, 한 장소에 2주 동안 있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버틸 만큼 버텨보려고 했지만, 이 반 감금 생활이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사실 몇 주 노는 것 정도야 나도 상관없었지만, 흘러가는 상황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시바….’

혼자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니다 악마에게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했던 게 트라우마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변하고 있다는 게 눈에 보일 정도.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어서 외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이기영 친위대.

그래, 그 친위대가 맞다. 이기영 친위대란다. 이제는 하다 하다 못해 이기영 친위대까지 만들어주셨단다.

‘말이 친위대지, 시바.’

현재도 저 바깥에서 묵묵히 문을 지키고 있는 놈들. 파란 길드의 인장을 달고 있는 그 새끼들이 자칭, 타칭 이기영 친위대라고 불리는 녀석들이다.

물론 나는 이 새끼들을 뽑은 적도 없고 내 친위대로 임명한 적도 없다.

어디까지나 김현성을 비롯한 파란 길드원들의 작품이다.

남자 2명과 여자 2명의 상위 모험가들이 각각 조장들을 자처하고 있었고, 이들 밑에는 각각 15명의 조원이 있다고 들었다.

모든 인원을 본 적은 없었지만, 구성원 모두가 상위 모험가에 랭크될 정도로 능력이 있는 이들.

김현성은 또 이런 애들을 언제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르겠다.

정리하자면 이기영 친위대는 4명의 조장과 60명의 조원으로 구성된 셈.

심지어 그들을 지원하는 길드 직원들의 숫자를 고려하면 이기영 개인 친위대는 그 덩치가 파란 내에서도 가장 커다랗다고 할 수 있었다.

당장 던전 뺑뺑이를 돌리면 상상할 수도 없는 금전적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상위 모험가들에게 고액 연봉을 주며 쓸데없는 경비에 시간을 쏟고 있으니 답답해 속이 터질 지경.

김현성은 뿌듯해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게는 인력 낭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거 너무 심했던 건가.’

이쯤 되니 일을 너무 크게 벌인 것은 아닌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할 만했다.

감금 보호 조치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모자라 친위대까지 창설했을 줄은 누가 알았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 문을 열어보려고 했지만 역시나 철컥 철컥 하는 소리 외에는 들려오는 게 없다.

반대편에서 문이 열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얘는 잠도 안 자고 뭐 해?’

시야에 비친 것은 친위대의 2번대 조장. 김예리와 동갑내기로 쌍검을 사용하는 검사. 김현성만큼은 아니지만, 높은 민첩을 가지고 있는 밸런스 형으로… 이름은….

‘박리안.’

얼굴의 한쪽에 긴 흉터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외관이었다.

전체적으로 차가운 인상을 보이는 게 문제이기는 했지만 스텟 자체는 꼬맹이 김예리와 비견될 정도.

어린 나이답지 않게 이상하게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아우라 같은 게 있다.

심지어 흘러나온 목소리는 괜스레 몸을 작아지게 만든다. 뭔가 관상 자체가 왕이 될 관상이라고 해야 하나.

모르긴 몰라도 1회 차 때 한 자리 해먹던 녀석이라는 건 확실할 것이다. 그러니까 김현성이 불러온 거겠지.

“무슨 일이십니까? 부길드마스터.”

“그러니까… 리안 씨.”

“말 편하게 해주셔도 됩니다. 부길드마스터. 항상 말씀드리는 거지만 저희들은 부길드마스터의 손과 발입니다. 그 어떤 것을 명령하셔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럼 여기에서 나가게 해주라, 좀.’

“뭔가 필요하신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그게 아니라… 조금 답답해서 말입니다. 바깥에 좀 나가고 싶은데….”

“…….”

“…….”

“이 근방만 잠깐 돌아다녀 보고 싶습니다. 리안 씨도 함께 계시니 아마 별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겁니다.”

“…….”

“…….”

“현재는 길드마스터가 부재 중입니다, 부길드마스터. 곧 길드마스터께 연락을 취해 곧바로 야간 산책 스케줄을 잡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살다 살다 야간 산책 스케줄이란다.

이미 몇 번 들어본 말이었지만 다시 한번 저 말을 들으니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온다.

“산책 스케줄 말고… 린델은….”

“아직 린델은 일반인들의 출입도 허락하지 않고 있는 지역입니다. 정하얀 님을 비롯한 일부 마법사들만이 연방 복구 작업에 투입되고 있는 상황이고, 현재 부길드마스터의 상태로는 바깥의 마력을 견디기 힘드실 겁니다. 라고 길드마스터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해진 것 같은데….”

“엘레나 님과 선희영 님께서도 이기영 님의 바깥 출입을 추천하지 않으셨습니다. 현재 경과가 무척 좋으니 아마 조금만 더 요양하시면 자유롭게 활동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지금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몸의 회복에 집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죄송합니다, 부길드마스터. 다른 부탁은 전부 들어드릴 수 있지만….”

“…….”

“길드마스터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부길드마스터의 명령이라면 길드마스터를 공격하라는 명령이라도 수행하라고 하셨지만, 혹시나 건강에 피해가 갈 수 있는 행동은 무조건 배제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건강하다니까.’

“아, 위로될지는 모르겠지만, 곧 길드마스터께서 오신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곧 산책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셨으면….”

‘무슨 산책 스케줄이야, 싀바….’

바깥 공기를 마시고 싶다는 것 역시 통하지 않는다.

‘내가 떼쓰면 네가 뭐, 나를 이길 수 있겠어?’

라는 마음으로 임했던 게 바보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힘드신 것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길드마스터. 하지만 이 모든 게 부길드마스터를 보호하기 위한 길드마스터의 뜻이라는 걸 잘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보호하려고 해서 문제지.’

상황 자체는 고개를 끄덕일 만하지만 모든 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일단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겠다.

정보와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굳은 의지도 알 수 있었고, 내가 상처받을까 봐 무서워 하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판단하건대 ‘제발 날 죽여줘’ 가 제대로 먹혀들었던 모양이다.

물론 김현성의 표정은 한결 편해졌다.

녀석이 정말로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무척 마음이 가벼워 보였다는 것.

본인에게 책임을 강요하지 말라고 절규했던 상황과 대조하면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극적인 변화였다.

하지만 모든 치료에는 부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게 그 부작용인 거고….’

본인이 자각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에 대한 녀석의 신뢰는 더욱더 강해졌다.

아마 김현성에게 나는 자신의 책임을 대신 들어줄 수 있는 형제이자 친우가 아닐까.

그래서 더욱더 이쪽의 보호에 집착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만약 이기영이라는 인간이 사라지거나 다친다면.

자신은 다시 한번 책임을 강요받아야 할 테니까.

김현성은 그게 무서운 게 틀림없으리라.

‘그렇긴 해도…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지, 시바.’

녀석에 대해 떠올리기가 무섭게 방문이 열리며 김현성이 들이닥쳤다.

옆에 정하얀이 함께 따라온 것을 보니 오늘도 산책 스케줄은 그곳으로 잡혀 있는 게 틀림없다.

문을 연 것은 김현성이었지만 몸을 던져온 것은 정하얀 쪽.

‘얘는 요즘 신났지.’

“오빠.”

“왔어?”

“네. 오, 오빠가 산, 산책가고 싶다고 해서요….”

“아, 응. 아무래도 여기만 있기 너무 불편해서.”

“불편해도 어, 어쩔 수 없어요. 아직 바깥이 어수선하니까요. 지금은 바깥에 안 나가는 게 좋아요. 건강을 위해서요….”

‘얘는 진짜 대리만족하는 것 같다, 진짜.’

“하얀 씨 말이 맞습니다. 기영 씨.”

‘너도 만족하고 있는 것 같고….’

“네….”

“마음 같아선 저도 활동하실 수 있게 돕고 싶지만,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습니다. 많이 고생한 만큼 이번 기회에 푹 쉬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혹시나 뭔가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 그러고 보니 최근 경매장에 샤넬리아 에르메스 시리즈가 등장했다더군요. 기뻐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길드 예산으로 사전 입찰을 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가방 그렇게 안 좋아한다니까.’

물론 있으면 좋기는 하다.

“장식장에 빈 공간이 조금 신경 쓰였었는데 채울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렇게 흐뭇하게 바라보지 마, 이 새끼야.’

모든 근심, 걱정을 날려 버린 싱글벙글한 표정. 이 방에 틀어박혀서 안전하게 있는 게 어지간히 기쁜 것 같았다.

“이거 제가 말이 조금 길었군요. 기다리고 계셨을 텐데…. 하얀 씨, 마법 준비해 주시겠습니까?”

“네.”

이윽고 천천히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는 정하얀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익숙하게 위치 추적 마법이 내재된 목걸이를 목에 걸자 다시 한번 김현성이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야간 산책 시간에는 목걸이를 목에 거는 게 룰 이었으니까.

정하얀이 주문을 완성한 이후, 마력이 터져 나왔고 곧이어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순식간에 변해 버렸다.

커다란 방에서 이동된 곳은 길이 잘 닦여 있는 울창한 숲, 길드에서 마련한 산책로다.

반경 50㎞ 안으로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장소.

김현성 오피셜로는 엘프의 숲에서 가장 깊은 이곳만이 악마들의 마력이 침입하지 못하는 장소란다.

그래서 산책로는 이곳밖에 활용하지 못한다는 설정이었지만, 애초에 어둠에 침식된 마력 따위가 대기를 돌아다니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나로서는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꼭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냐….’

산책로를 관리하는 것은 이기영 친위대 4번대.

혹시나 불편할까 봐 모습을 드러내진 않고 있었지만, 아마 김현성과는 유기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으리라.

나와 함께 외부에 나올 때면 녀석은 상시 전투 태세에 들어가 있었으니까.

겉으로는 그걸 표현하지 않고 있었지만, 항상 허리춤에 손이 가 있는 걸 보면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마치 둘만의 데이트인 것처럼 정하얀은 찰싹 옆쪽에 달라붙어 왔고 김현성 역시 반대편에 자리를 잡는다.

시원한 바람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속은 여전히 답답하다.

그동안 ‘너 좋을 대로 해봐라, 어디.’ 하고 지켜보고 있었지만, 이 새끼가 뭘 깨닫긴 깨달아야 했다.

일단은 위풍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현성 씨.”

“네?”

잠깐 침을 삼킨 이후에는 당당하게 담아뒀던 말을 내뱉는다.

“저 박리안 씨에게 전해 들으셨겠지만, 슬슬 활동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2주 동안이나 쉬었으니까요. 파손된 린델의 복구도 궁금하고,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가 제일 궁금합니다. 마력에 대해서 걱정하는 건 이해합니다만, 아마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을 겁니다. 급한 상황이라면 더욱더요.”

“안 됩니다.”

“네?”

“어떻게… 지금 상황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실 수 있으십니까. 어쩌다가 그들에게 그런 꼴을 당하게 된 건지 벌써 잊으셨습니까?”

“아니….”

“기영 씨도 조금 이기적으로 행동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타인보다는 자신을 먼저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번거롭고 복잡한 일은 제게 맡기시고 최대한 푹 쉬어주세요. 제가 전부 알아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그게… 그래도….”

“불가합니다.”

‘이 새끼, 진짜….’

“지금은 절대로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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