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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539화 (530/1,590)

# 539

회귀자 사용설명서 539화

김현성 대 박덕구(1)

얼핏 보면 조금 억울해 보이는 표정이기도 했다. 마치 ‘왜 나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그야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밥을 먹고 뒤처리까지 끝낸 엘레나와 한소라도 이미 몇 차례 손맛을 본 상황이다.

잠깐 휴식을 취할 겸 돛 위에서 내려온 김창렬마저 10분 만에 손맛을 느끼고 다시금 위로 올라갔다.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홀연히 모습을 감춘 김창렬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김현성의 동공이 흔들리는 걸 분명히 봤다.

어째서 자신에게만 아무런 입질이 오지 않는지 의아해하고 있는 거겠지. 박덕구를 포함한 주변 분위기 역시 녀석의 씁쓸함에 일조했을 거다.

“크으, 손맛 한번 죽인다니까! 나도 낚시 꽤나 해봤지만, 이렇게 손맛 좋은 낚시는 이번이 처음이요. 진짜로 물고기가 걸린 것도 아닌데, 거, 무는 맛이 짭쪼름하다니까!”

특히나 박덕구의 설레발이 녀석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고 있음이 틀림없으리라.

“다들 느껴봐서 알겠지만, 거짓말이 아니라니까!”

가슴 아프게도 김현성은 아직 느껴보지 못했다.

“어이쿠! 이거 한 번 더 온 것 같은데! 왔드아! 히트다! 히트!”

그 와중에도 한 놈 더 미끼를 물으셨단다.

“이 맛에 낚시 하는 거 아니겠냐니까!”

“생각보다 재미있네요.”

“희영 누님도 온 것 같은데! 한번 들어보쇼!”

“앗!”

“저도 왔어요!”

“달달하구만, 이번에도 대물인 것 같다니까!”

‘그만해, 이 새끼야….’

즐거운 건 이해할 수 있었지만,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매번 완벽한 모습을 보여줬던 김현성이 침묵하고 있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귀엽게 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가 행복 회로를 돌리는 와중에 녀석만 조용한 게 역시나 마음에 걸린다.

그나마 김현성의 심정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지, 조혜진이 다가가 이것저것 챙겨주기는 했지만, 여전히 성과는 없는 상태다.

몇 시간째 지속된 침묵은 김현성의 정신력마저 갉아먹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에는 슬그머니 포인트를 이동시키는 모습, 본인에게만 아직 입질이 없는 게 자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시금 경건한 마음으로 낚싯대를 던져봤지만, 상황은 달라지는 게 없다.

“현성이 형씨만 아직 못 낚아 본 거구만.”

“…….”

“거, 너무 조급해하지 마쇼. 원래 선천적으로 어복이 없는 사람들도 있답디다. 아마도 그런 경우 일 거요.”

“알겠습니다.”

“혹시 모르지. 엄청난 대어를 낚을 수도 있을지도… 그래도 오늘의 우승자는 낚시왕 강덕구가 될 거라니까. 신화 등급의 아이템 한 정 더 낚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옳지! 또 왔다!”

“…….”

이제는 억울하다 못해 분하다는 얼굴, 김현성에게 저런 면이 있었나 싶었다.

투어 가이드 박덕구의 지시에 따라 얌전하게 여행을 다니던 녀석도 의외이기는 했지만, 지금 보여주는 모습 역시 의외였다.

계속해서 아이템들을 낚아 올리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고민하기도 한다.

고집과 자존심은 있는지 강덕구에게 다가가 팁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아직도 무슨 성격인지 잘 모르겠다.’

승부욕이 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이런 걸 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인 것 같았다.

김현성의 눈이 커다랗게 변한 것은 그로부터 약 1시간이 지난 시점, 긴가민가하던 녀석이 다급하게 사방을 둘러보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기영 씨!”

왜 나를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다급한 목소리로 어떻게든 해달라는 듯한 필사적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일단 들어 올려요!”

무척이나 기뻐 보이는 모습은 가관. 낚싯대는 부러질 것처럼 휘었건만,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녀석을 붙들고 있다.

‘하하’ 하고 어린애처럼 웃는 것을 보면 박덕구가 이전에 말한 손맛을 느끼고 있는 게 틀림없으리라.

다른 사람들의 실적에 관심 없는 척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힐끔힐끔 쳐다본 짬밥이 있었는지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익숙하게 낚싯대를 요리조리 놀린다.

애초 몸을 사용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다지 힘들어하지도 않은 것 같다.

무척 오랜 시간을 아이템과 씨름했던 나와는 다르게 단기간 안에 녀석을 들어 올릴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쉽게 올리는 것 같은데….’

혹여나 전설 등급이나 영웅 등급 같은 피라미가 나오지는 않을까 걱정된 것은 당연했다.

때마침 할 일이 없어진 길드원들의 시선도 집중된 만큼 기왕이면 괜찮은 걸 건져 올려줬으면 좋겠다.

마침내 사냥감을 들어 올린 김현성의 얼굴은 다소 구겨진 표정.

“힘쓴 것치고는 너무 작은 거 아니요?”

박덕구의 이죽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능력치를 확인한 이후에는 입이 찢어지라 귀에 걸리는 게 눈에 보였다.

낚싯바늘에 걸려 있었던 것은 작은 반지.

거대했던 롱기누스의 창이나 다른 이들이 끌어 올린 무구와 비교해 너무 볼품없는 것이 아닌지 걱정했겠지만, 신화 등급의 반지라는 사실을 확인한 이후에는 세상이라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하는 얼굴이다.

심지어 주먹을 꽉 쥐는 것을 보니 본인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아이템을 뽑은 모양. 나 역시 괜스레 설레기 시작했다.

‘쓸 만한 아이템인가 보네.’

1회 차를 겪은 김현성이 쓸 만하다고 생각하는 아이템이라면 공략에 확실하게 도움이 되는 종류의 기능을 갖추고 있을 확률이 높다.

“결정된 것 같군요. 이걸로 가져가면 될 겁니다. 주인도 정해진 것 같고요.”

심지어 확언을 해오기까지. 사실상 이번 이벤트는 끝난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며 반지를 바라보자 자세한 기능이 눈에 들어왔다.

[브리이취의 정화 반지.]

[오래된 여신 브리이취가 자신의 연인을 위해 자신의 심장을 꺼내 만든 반지입니다.

신화 등급 디버프와 신화 등급 저주를 착용 즉시 해제합니다. 반지를 착용하고 있는 도중에는 신화 등급 디버프와 신화 등급 저주에 면역 상태가 됩니다. 처음 착용하는 상대에게 귀속됩니다.]

“아….”

‘좋기는 좋은데….’

뭐라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아무래도 저런 종류의 아이템보다는 크고 아름다운 롱기누스의 창이 더 끌리는 법 아니겠는가.

하지만 김현성의 판단이 그렇다면 겸허히 받아들일 수도 있다.

‘바깥 신인가 뭔가 하는 놈이 저주나 디버프 같은 거라도 뿌리나 본데….’

만약 그렇다면 확실히 엄지를 추켜올릴 만한 픽, 공격력은 보장되어 있으니 이런 종류의 아이템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반지를 들고 천천히 다가오는 녀석을 보자 이 새끼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와… 이 미친 새끼….’

“아마 기영 씨 몸에 있는 저주 역시 곧바로 해주할 수 있을 겁니다.”

‘김현성, 이 새끼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 진짜, 시바… 이 새끼 진짜 제정신 아니다.’

녀석이 아무리 신화 등급의 무구, 듀렌달의 소유자라고는 하지만, 신화 등급 아이템을 한 정 더 얻는 건 두 번 다시 없을 이벤트요, 커다란 메리트다.

혹시나 바깥 신이 디버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딴 게 아니다.

심지어 귀속 아이템이란다. 애초 후위로 분류되는 내가 이런 아이템이 필요할 리 만무하다.

정말로 순수하게, 이거라면 벨리알의 저주를 해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으리라.

‘김현성, 너 이 새끼….’

베니고어 여신의 등장으로 이미 한물간 떡밥이 되어버린 벨리알의 저주에 아직도 집착하는 모습에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민망하다.

‘이걸 진짜 뭐라고 해야 하냐, 진짜.’

나를 걱정하고 있다는 건 확실히 기뻤지만, 1회차를 개판으로 만든 새끼를 막아내지 못하면 대륙에 있는 모든 애새끼가 뒈질 거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렇게 자신 있어?’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물어볼 수도 없다.

김현성이 강한 것도 사실이었고, 아직 성장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것도 부정할 순 없었지만, 위협이 최소 현신 벨리알이라고 가정하면 아무래도 부족하다.

지금은 특수 상황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저딴 반지보다는 즉시 전력이 될 수 있는 아이템을 픽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미 녀석의 발언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해진 상황, 주치의나 다름없는 선희영이나 엘레나는 당연히 크게 기뻐했고, 정하얀조차 방방 뛰고 있다.

주박이나 다름없었던 벨리알의 저주를 해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점이 있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냐, 시바. 그거 개쓰레기 아이템이야. 착용한 사람만 쓸 수 있는 아이템이래. 나 역병군주로 전직하면 애초에 디버프랑 저주 같은 건 잘 안 들어와, 애들아. 앞에서 싸울 일도 없고.’

라거나.

‘김현성, 너 이 새끼. 진짜로 자신 있어서 이러는 거 맞지? 확실한 거지? 너 지금 이길 자신이랑 플랜은 있고, 생각해서 이러고 있는 거지? 이 새끼야?’

라고 말하고 싶다.

“거, 걱, 걱정거리가 하나 사라지겠네요.”

“확실히… 물론 지금은 잠잠해졌다고는 하지만 언제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만큼 해결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는군요.”

‘응, 그거 아니야.’

당연하지만, 입을 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딱 한 가지 아이템을 가져가야 한다면 차라리 다른 아이템이 더 나을 겁니다. 애초에 저주는 이제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요.”

“하지만.”

“베니고어 님이 계신 만큼 여러모로 괜찮을 겁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어쩌면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일 수도….”

“아니요. 그 힘을 컨트롤하려고 하시면 안 됩니다, 기영 씨. 당장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런 종류의 힘은 스스로를 갉아먹을 뿐입니다. 오히려 몸을 더 위험하게 할 뿐이에요. 그러니 아이템을 받으세요.”

‘지랄하지 마, 이 새끼야….’

여기서 어떤 아이템을 가져가느냐에 따라 공략 난이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도저히 빠져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독 안에 든 쥐가 된 느낌에 필사적으로 주변을 둘러봤지만, 모두가 저 아이템을 받기를 원하는 분위기였다.

오히려 박덕구와 눈이 마주쳐 황급히 눈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가 미쳐서 선동이라도 한다면 이 자리에서, 저 아이템을 착용한 이후 귀환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슬금슬금 입을 움직이려 턱을 푸는 녀석을 보니 불안감이 목 끝까지 차고 올라왔다. 녀석의 입이 열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거, 형님 말이 맞을 수도 있다니까.”

‘뭐야.’

“물론 모두가 형님을 걱정하는 건 알고 있다니까. 나 역시 형님이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요. 기왕이면 반지를 받아줬으면 좋겠고, 현성이 형씨나 누님처럼 안심하고 싶은 건 같은 마음이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 같소. 형님 말처럼 지금 당장은 베니고어 님이 있어서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형님이 괜찮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이 새끼….’

“형님이 할 수 있다고 하면 할 수 있는 거요. 버틸 수 있다면 버틸 수 있는 거고. 그 누구보다 그 상태로 변환했을 때의 위험성을 제일 잘 아는 게 바로 형님이요. 만약 정말로 자신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면 형님, 본인이 먼저 정화의 반지를 요구했겠지.”

‘덕구야, 씨바… 덕구야아….’

서당개 3년이면 풍년을 읊는다고. 잠깐 마주친 그 순간 내 눈을 보고 시그널을 받은 것이 분명하리라.

‘이야아아아!!! 덕구야….’

오늘만큼 이 새끼가 믿음직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이 정도면 됐냐는 듯이 슬쩍 윙크를 해오는 모습에는 박수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반지보다는 형님이 낚은 저 둠기노스인지, 뭔지 하는 창을 가지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니까!”

‘아냐, 시바. 그것도 아니야.’

“창이요! 무조건 창이요!!!”

미간이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제발 닥쳐, 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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