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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541화 (532/1,590)

# 541

회귀자 사용설명서 541화

진심 어린 사과(1)

콰아아아아아앙!!!

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배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게 느껴졌다. 마치 폭발 소리 같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어느 쪽이냐고 묻냐면 당연히 안심되는 쪽.

배와 함께 위로 튀어 오른 물이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했고, 난간을 꽉 붙잡은 길드원들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공간에 몇 시간 동안이나 있었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뭔가 상황을 정리하기도 전에 들려오는 것은 길드 유일의 해적 꿈나무, 안기모의 구역질 소리.

“우웨에에에에엑!”

‘저 양반도 진짜 못 써먹겠네….’

“우웨에에에에에에엑!”

정말로 리얼한 사운드였다. 한 건 터뜨릴 것 같더니, 결국 이 깨끗한 호수에 분비물을 투척해 버린다.

무척 괴로워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그런 녀석조차 무사귀환 한 것에 대한 기쁨은 숨길 수 없었나 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뭐.’

사실 선희영 사건을 제외하면 크게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모두가 무사귀환 한 것을 나름대로 자축하고 싶다.

무려 신화 등급의 던전을 클리어한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생각해 보면 거기까지 닿은 것 자체가 신화 등급의 퀘스트였지.’

박덕구가 우연히 가져온 배를 타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파도의 웜홀에 빨려 들어간 그 순간 전멸, 순식간에 차원의 바다 밑바닥에 처박혀 영영 떠돌아다니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공간을 헤치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신화 등급의 업적을 달성했다고 하기에 충분하다는 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몇 시간 전에 봤던 그 아름다운 광경이 시야에 비치기 시작했다.

“다행히 무사히 돌아온 것 같군요.”

입을 열어온 것은 길드 내 권력 순위 삼인자로 분류할 수 있는 유니콘 조혜진.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유지한 채로 이쪽을 바라봤다.

“혹시 몸에 조금 이상은 없으십니까? 부길드마스터?”

“네, 뭐. 괜찮습니다. 다른 길드원들도 상태를 한 번씩 체크해 주셨으면 합니다. 혹여라도 이상이 있는 길드원 같은 경우에는 꼭 따로 이야기해 주시고요. 특히 희영 씨 같은 경우에는 꼭 따로 휴식을 취하라 말씀해 주시고 따로 사람을 붙여주시고… 다른 이상이 없나 확인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아마도….”

“뭔가 부작용이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그 이후로는 계속 멍한 상태이기도 했고….”

“조치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부길드마스터.”

“…….”

“…….”

‘얘, 뭐 할 말이라도 있나 보네.’

사라지지 않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걸 보면 딱 사이즈가 나온다. 그러고 보니 둘이 한잔한 지도 시간이 제법 지난 것 같다.

그래도 친구라고 제법 많은 시간을 보낸 만큼 이제는 얘가 무슨 말을 해올지 대충 예상이 간다.

“왜요, 술이라도 사려고?”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뭔데요?”

“길드마스터한테 이야기 좀 잘 해줬으면 좋겠어서… 생각보다 많이 충격받으신 것 같습니다.”

‘응, 아니야. 걔는 조금 더 충격받아도 돼.’

슬쩍 눈알을 돌려 김현성을 바라보자 확실히 충격받은 듯한 모습이 눈에 띄기는 한다.

어깨가 축 내려간 모습, 이쪽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길드원들에게 지시 사항을 전달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버림받은 강아지 같은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본인이 뿌린 씨앗은 본인이 거둬야 하는 법이고, 자신의 실수는 자신이 수습해야 하는 법이다.

‘신뢰가 깨진 상황으로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겠네.’

던전에서는 툭 하고 던진 말이었지만, 아마 가슴속에 비수가 꽂힌 것처럼 받아들이지 않을까.

사랑스러운 회귀자와 이쪽 사이는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끈끈한 신뢰로 묶인 상태였으니까.

물론 우리가 서로 신뢰하는 사이라고 공인증서를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왜 서로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느끼는 게 있지 않은가.

김현성도 나를 신뢰하기 때문에 굳이 내 다른 행동에 터치하지 않았던 거였고,

나 역시 김현성을 믿는다는 모션을 취해줬기 때문에 녀석의 행동에 대해 별말을 하지 않았던 거였다.

심지어 무의식 꿈 사건으로 인해 그 감정은 더욱더 배가 된 상황이었고….

왜 진작 이 카드를 써먹지 않았을까 싶다.

‘너는 왜 나를 못 믿어?’

마법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완벽한 카드. ‘너는 내가 왜 화났는지 모르겠어?’와 종류는 다르지만, 추구하는 것은 같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녀석의 내면이 꽤 흔들리고 있지 않을까.

‘정말로 내가 이기영을 신뢰하고 있지 못한 걸까.’

라거나.

‘왜 믿음을 보여주지 못했던 걸까. 기영 씨는 나를 이토록 믿어줬는데.’

라거나.

‘어떻게든 수습하고 사과해야 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뻔했다.

심지어 ‘어째서 가뒀는지 알겠네.’라는 혼잣말에 크리티컬 대미지를 입은 만큼 이 모든 오해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마 오늘이나 내일 안에 말을 걸어오거나 따로 자리를 만들기 위해 빌드업을 해올 것이다.

조혜진의 말처럼 굳이 내가 녀석을 풀어줄 필요는 없다.

원래 이런 종류의 싸움에서는 먼저 다가가는 놈이 패배자가 되게 마련.

이미 김현성은 패배한 것 같은 냄새를 풍겼지만, 조금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삐진 척하는 게 맞다.

‘가방 컬렉션 하나 더 늘어나겠네.’

김현성의 말처럼, 왠지 모르게 비어 있던 장식장 한 곳이 신경 쓰였는데, 드디어 채울 때가 온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사람이 말하는데.”

“아뇨. 뭐, 그냥 여러 가지로… 현성 씨와의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그렇게 심란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굳이 제가 할 말은 없지만… 큼, 아무튼 간에 가져오신 아이템은 마음에 드시는 겁니까.”

“아 네.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사실 그렇게 만족스러운 건 아니지만, 최악도 아니고 차악도 아닌 그 정도… 그러고 보니까 너한테는 조금 미안하기는 하다.”

“갑자기 왜 반말을 하십니까. 뭐, 저는 굳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롱기누스의 창을 가져온다고 한들, 제가 제대로 다루지도 못했을 텐데요. 솔직히 말은 안 했지만 저도 조금 섭섭하기는 했습니다. 대놓고 쓸 사람이 없을 것 같다는 표정으로 고민하던 걸 보니까 심사가 뒤틀리기도 했고…. 그래도 제법 높이 올라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만족스럽지 못하신 것 같더군요.”

“아니,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 정도가 아니긴 무슨… 어차피 제가 사용해 봤자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빤히 보였단 이 말입니다. 물론 마음에 담아두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어차피 가져와 봤자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여드렸을 테니까요.”

“혹시 삐졌어요?”

“삐지긴 누가 삐졌….”

“삐진 거 맞는데, 뭐.”

“안 삐졌습니다. 그런 거로 삐질 사람도 아니고… 길드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그 정도는.”

“에이… 삐진 것 같은데.”

“안 삐졌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삐진 것 맞잖아요. 너 삐졌잖아.”

“아니! 안 삐졌다니까! 이 사람이 지금!”

“삐졌….”

“아니, 진짜 안 삐졌다니까!”

억울했는지 조혜진이 정말로 커다란 소리로 외치는 바람에, 순식간에 시선이 집중된다.

웃으면서 조혜진을 놀리는 나와 내게 말을 놓으며 서슴없이 대하는 그녀의 모습이 제법 의외였던 모양이다. 생각해 보니까….

‘다른 애들은 나랑 얘랑 친한 거 잘 모르나?’

길드 내에서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그녀를 반쯤 경계하고 있는 정하얀 정도다.

그래도 제법 붙어 다녔는데, 업무적으로만 만났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밥도 묵고! 마! 술도 묵고! 마! 게임도 하고! 마! 사우나도 가고! 하며 간혹 싸돌아다니기는 했지만….

‘확실히 안 어울리기는 하지.’

내가 파란 길드원이었어도 업무적인 일이 있어서 함께 나가는 거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나 나나 길드의 바깥 일과 안 일을 겸행하는 케이스였으니까.

심지어 특별한 경우나 기분 날 때가 아니면 서로 존대를 하다 보니 더 눈치채기 힘들었던 것 같았다.

조혜진도 자기의 목소리가 살짝 컸다는 걸 인지했는지,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을 바라보는 중.

안기모나 유아영은 입까지 벌린 채로 눈을 커다랗게 치켜뜨고 있다. 다른 애들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고. 김현성은….

깜짝 놀란 표정 반, 심기가 불편하다는 표정 반이 섞인 표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현성이가 시바… 질투도 하네. 혜진아, 너 가능성 있겠다.’

본인이 본인 감정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혜진과 내가 가까워 보이니 잠깐이나마 불편한 감정을 느낀 것 같았다.

눈치 없는 조혜진은 괜스레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도 모르게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이 나왔다.

“혜진아. 내가 웬만하면 헛물 안 켜는데 너 가능성 있겠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최근까지만 해도 정말로 가능성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더니 넘어오고 있는 것 같은데… 혹시 최근에 뭐 심경의 변화를 팍팍 줄 만한….”

“그런 거 없었습니다.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고, 그때 이후로는 따로 말을 건 적도 없었어요.”

“혹시 모르니까 버렸던 그 꿈. 잠깐이나마 다시 생각해 봅시다.”

“됐어요.”

“왠지 모르게 질투하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

“누가….”

“현성 씨요.”

“정말입니까?”

“확실합니다.”

“뭐… 이제는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은근히 설레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닙니다.”

“아니, 조금 솔직해져 봅시다, 우리. 솔직히 설레잖아요.”

“아니라니까요.”

“설레잖아요.”

“아니, 진짜. 아니라니까!”

장난스럽게 어깨를 툭툭 치자 부들부들 떨어댄다. 분을 참는 모습이 확실히 재미있다.

“뭐 설레든, 안 설레든 간에 한 발자국 전진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니까요. 내가 또 사람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본다는 거 아닙니까. 아, 그때 질투심 유발 작전 이런 것도 좀 해볼 걸 그랬네.”

“그런 말 좀….”

“뭐 애초에 놓은 것 같지도 않았지만… 지금 당장은 할 일에 집중하더라도 희망의 끈 하나 정도는 붙잡아 놓는 게 좋지 않습니까.”

“…….”

아니나 다를까 은근슬쩍 희망을 품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치기 시작, 이윽고 찾아온 김예리로 인해 조혜진의 얼굴이 환해진다.

“혜진 언니.”

“응?”

“현성이 오빠가. 말할 게 좀 있다고 빨리 와보래.”

“어… 정말?”

‘내가 뭐라고 말했니, 혜진아. 허겁지겁 뛰어가는 꼴 좀 봐라…. 키야, 관심이 없기는 개뿔.’

“그리고 아저씨.”

“왜?”

“내일 오빠가 시간 좀 내줄 수 있냐고 물어보고 오라는데. 여러 가지로 할 이야기가 있다고.”

“무슨 이야기?”

“중요한 이야기.”

“무슨 중요한 이야기?”

“나도 잘 몰라. 업무 볼 게 있는 것 같아서… 음, 그래서 부른 것 같아.”

“음….”

“그럼 난 전했으니까 바로 뒷정리하러 갈게.”

“어, 수고해라.”

“응, 아저씨도.”

관심 없다는 듯이 슬쩍 전방을 바라보자 김현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조혜진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왜 갑자기 보자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뻔하지 않은가.

던전에서 있었던 일도 사과하고 싶고, 본인이 회귀자라는 사실을 슬슬 알려야 할 테니 빌드업에 들어가는 중일 것이다.

사실은 조금 오래전부터 각을 재고 있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내가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준 게 유효했었나 보다.

던전에서 바깥 세계의 신을 봤으니 더 끌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했을 거고… 살짝 미소를 짓고 있는 조혜진만큼이나 입꼬리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혜진아, 시바. 드디어 둘 다 행복해질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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