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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546화 (537/1,590)

# 546

회귀자 사용설명서 546화

고백(3)

“저는… 저는 회귀자입니다.”

“…….”

‘얘는 왜 이렇게 손을 떨고 그래. 수전증 같은 건 없었는데.’

계속해서 느끼고 있었지만, 불안해하는 얼굴이었다. 마치 판결을 기다리는 죄인의 표정이 이러할까.

지금 자신이 제대로 된 선택을 한 건지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 않을까. 녀석의 말을 들은 직후 나는 약 10여 분이 넘는 시간 동안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는 행동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그만큼 김현성은 더욱더 초조해했다.

어차피 녀석의 고백을 받아들이는 건 확정된 이야기였지만, 기왕이면 조금 더 뜸을 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저는 회귀자입니다.’

크으.

‘저는 회귀자입니다.’

어우야.

다시 들어도 듣기 좋은 달달한 목소리. 저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던가.

우리 사랑스러운 회귀자에게 보내는 소심한 복수였다.

물론 곧바로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이런 형태로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더 극적이라고 판단한 이유가 가장 컸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심한 복수가 달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무 죄 없는 사람을 괴롭히거나 매도하는 생소한 취미를 가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다 될 정도. 점점 더 안 좋아지는 표정을 볼수록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아, 그러셨군요. 회귀자셨군요. 어쩐지 여러모로 이상한 점이 많았습니다, 하하하. 그럼 지금부터 모든 일이 잘 풀리겠군요. 대단합니다. 역시 현성 씨예요’라는 반응을 기대한 건 아니었겠지만, 녀석에게도 지금 내가 보여주는 반응은 상상하던 반응 중 최악의 반응이었던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 가까이에 다가오려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 너무 놀란 것 같다고 생각해 어떻게든 수습해야겠다고 생각한 거겠지.

‘사실은 농담입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고민하지 않았을까.

계속해서 곰곰이 녀석이 회귀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와중에 이쪽으로 다가온 김현성이 살짝 내 어깨를 붙잡기 시작.

한 번 골려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어깨에 올려진 손을 탁 하고 쳐내자 짧은 탄식이 들려왔다.

김현성의 반응을 지켜보기 위해 눈알을 돌려 얼굴을 확인하자 시야에 비친 것은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표정.

‘시발… 이거 더 이상 놀리면 진짜 안 되겠다.’

모든 걸 잃은 것 같은 얼굴, 무의식 세계에서 녀석의 얼굴보다 더욱더 푸르죽죽하다.

분명히 한순간 동공이 죽은 걸 목격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목이라도 매달 것 같은 얼굴이라 말하는 게 맞으리라.

‘무슨 장난도 못 치겠네.’

다시금 무의식 세계로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저 뒷문을 향해 도망치기 전에 급하게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아, 죄송합니다. 조금 깜짝 놀라서.”

“아니요. 저… 저야말로… 저야… 네… 저야… 말로….”

잠깐 정하얀으로 변한 것 같은 말투,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와 겁먹은 듯한 얼굴.

지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를 거다. 반사적으로 입을 열고는 있지만 이미 혼이 나가 있다.

물론 녀석이 다시금 정신을 차린 것은 순식간, 멘탈 측면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성장한 김현성은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듯 급하게 말을 이었다.

“믿으실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당황스럽고 많이 놀라셨을 겁니다. 하지만 제 모든 걸 걸고 말씀드리건대 결코 처음부터 기영 씨를 속일 의도는 없었습니다. 매번 말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힘드실 거로 생각했었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니다, 현성아. 내가 왜 불쾌하겠어. 기분 좋아. 표정 풀어라.’

“…….”

“정말… 정말입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네, 네. 전부 대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전부요.”

“만약 정말로 현성 씨가 이 전에 이 세상을 겪어본 게 맞다면….”

“네.”

“혹시 이 전에도 저와 현성 씨가 함께 행동했던 겁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기영 씨는 1회 차에서….”

“그렇다면… 혹시 튜토리얼 던전에서… 제게 접근하신 이유가 따로….”

“아니요!!!”

나도 깜짝 놀랄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 단언컨대 김현성 인생 최대의 목소리라고 말할 수 있다.

김현성 본인도 자기 목소리에 놀란 얼굴이었지만 일단은 변명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내가 걱정하는 부분이 뭔지 눈치챘을 테니 급하게 말을 잇는 게 당연하겠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목적이 있어서 접근한 게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우연히.”

‘그래, 그렇지. 너 그때 하얀이 찾으러 왔었잖아.’

“정말로 우연히 만났습니다. 이전 회차에서는 기영 씨와 접점이라고 할 게 없었습니다. 기영 씨와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제 목숨을 걸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다수의 문장을 말하는 데 2초도 걸리지 않았다는 것에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일단은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녀석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의도적으로 김현성에게 접근했다는 걸 숨기고 하고 싶어 하는 만큼, 녀석도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걸 바라지 않을 거다.

1회 차에 어떤 접점이 있어 2회 차에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건 아무리 이유가 있다고 한들, 그렇게 반길 상황은 아니다. 서로 신뢰하고 있다면 더욱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을 마치고 의문이 풀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아직도 김현성은 긴장해 있다.

“믿겠습니다.”

“네?”

“믿을 수 있습니다.”

“정말로….”

“네, 허투루 이런 말씀을 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숨기고 계셨다면 나름의 이유가 있으셨던 거로 생각하겠습니다. 물론 조금 놀라고 섭섭하기는 했습니다만, 아니, 조금이라고 하기에는 제가 너무 못난 모습을 보여드렸군요. 하지만 진심입니다. 저는 현성 씨를 신뢰하고 있어요.”

‘아이고, 우리 현성이 감동했네. 현성아, 왜 이렇게 감동했어.’

“어째서 기영 씨는… 그렇게 쉽게… 수긍하실 수 있으신 겁니까.”

‘쉽지는 않았지. 현성아. 쿨타임 조금 길었잖아.’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으시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믿는다고 항상 말씀드리기도 했고요. 아무튼, 이제야 조금 의문이 풀리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처음 봤을 때는 특히 신기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전부 다 이유가 있었군요. 설명이 되지 않은 몇 가지 행동들도요. 갑자기 예리를 데리고 오거나 혜진 씨를 영입하려고 했던 것 역시.”

“네, 혜진 씨와는 이전에 함께 했던 적이 있습니다. 예리도 마찬가지고요.”

“튜토리얼 던전에서 만난 건 정말로 우연이었군요.”

“네, 사실은 하얀 씨를 찾으려고 했습니다만… 기영 씨와 덕구 씨가 거기에 계실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이전에는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 더욱더요.”

“저희는….”

“정확히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이전에는 튜토리얼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했거나 아예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셨을 겁니다. 어쩌면 던전에서 죽었을 수도 있고요. 어, 어쩌면 제가 버렸던 사람 중에 하, 하나였을지도 모릅니다.”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네?”

“튜토리얼 던전에서 맨 처음 몬스터들이 들이닥쳤을 때.”

“네.”

“제 목숨을 현성 씨가 구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아….”

“아마 그때 현성 씨가 아니었다면 덕구와 저 모두 그곳에서 죽었을 확률이 높을 겁니다. 아까 말씀하신 대로 현성 씨가 튜토리얼 던전에서 도망 다녔다면 제 목숨을 구해주시지 못하셨겠죠. 항상 감사하고 있었지만, 조금 더 감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목숨은….”

“네.”

“현성 씨가 구해주신 목숨이로군요.”

“아….”

‘이 새끼 제대로 감동했다. 이거 조금만 더 하면 울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 대사였지만, 이 몇십 분 동안 생과 사를 오갔던 녀석에게는 다른 의미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지금에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습기는 하지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요,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할 일이 더 많을 겁니다. 그,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이전에….”

“죄책감 느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만약 1회차에서 현성 씨가 저를 내버려 두고 도망갔다고 한들, 그건 현성 씨 잘못이 아니에요. 저 역시 튜토리얼 던전에서 많은 이들의 죽음을 바라본 건 똑같습니다. 몬스터에게 잡아먹히고 있는 사람들을 외면했었고, 살기 위해 도망쳤습니다. 절대로 비난받을 일이 아니에요.”

“…….”

“만약 그게 계속해서 마음에 걸리신다면….”

“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도 우습지만… 당시에 현성 씨가 저를 버리고 가신 걸 용서해 드리겠습니다.”

‘내가 너의 죄를 사하노라.’

“기영 씨….”

‘얘, 진짜 울겠다.’

누가 이놈을 처음 만났을 때의 얼음덩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어떻게 봐도 흐물흐물 녹아버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 감동의 바다에 빠져 더 이상 헤어나오지 못하기 전에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 봐야겠다.

“그래서. 어째서 이걸 말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계속… 계속 마음에 걸렸던 일이었으니까요. 물론 이유가 없는 건 아니지만 들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커다란 짐이기도 했고요. 지금은 짐을 조금 내려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

“조금은 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밤새도록 깨어 있겠군요.”

“하루 안에 끝날 이야기가 아니니…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천천히 말씀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는 시간이 많으니까요. 종종 이런 시간을 보낼 때마다 궁금하시거나 제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자그마치 몇십 년인데… 그걸 어떻게 하루 만에 다 끝내겠니.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돼.’

“일단은 아까 못 드린 이야기부터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차라도 한잔 마시면서요.”

“…….”

그렇게 녀석은 천천히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내 시점으로 본 1회 차의 이야기가 아닌 김현성의 시점으로 본 1회 차의 이야기였다.

녀석은 담담한 표정을 짓기도 했고,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기도 했다.

내가 상상한 것보다 더 많은 일을 겪은 모양, 요점만 전부 이야기하면 좋겠다 싶었지만, 그렇지도 않다.

마치 말문이 트인 것처럼 기억하고 있는 모든 걸 쏟아내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에게 있어서 치부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들까지 전부.

전부 말이다.

나는 담담하게 녀석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질문할 타이밍도 아니었고 말을 끊지도 않았다.

녀석은 말을 잇는 도중 턱을 덜덜 떨기도 했고, 목이 메어 제대로 말을 내뱉지 못하기도 했다.

기본 골조는 아까와 다르지 않았다. 또 내가 알고 있는 부분과도 크게 다른 부분은 없었다.

전체적인 흐름에 이상은 없다는 걸 알고서는 주먹을 꽉 쥘 수밖에 없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녀석의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다.

튜토리얼 던전에서 사람들을 버리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모험가로 활동하게 된 이야기, 파란에 들어가게 된 이야기.

모든 게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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