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7
회귀자 사용설명서 547화
튜토리얼을 시작합니다(1)
[튜토리얼을 시작합니다.]
“어… 어?”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다.
“어? 여기가 어디야…. 뭐야?”
전혀 생소한 공간이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어두컴컴한 건축물에 안이다.
괴기스러운 문양과 이해할 수 없는 글자들로 꽉 차 있는 내부,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봤지만, 함께 끌려온 이들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
그 말 그대로 비현실적인 공간이라고 표현하는 게 알맞으리라.
어째서 내가 이곳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학교 과제를 하던 중, 이상한 메시지를 받았고 거기에 응했다. 기억나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여, 여기가 어디죠?”
“저한테 묻지 마세요. 저, 저도 잘 몰라요.”
“거, 거기 다른 사람들도 있나요? 이곳은 도대체… 그리고 검이랑 무기들은 왜 여기에 있는 거죠?”
“그걸 알면 우리가 이러고 있겠어요? 다들 똑같은 상황인 것 같은데 뭐 기억나는 거 없나요?”
“저기요! 거기 누구 있나요? 저기요!”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 자신뿐만이 아니다.
장내를 꽉 채운 사람들 역시 자신들이 자리하고 있는 이 생소한 장소에 대해 알 수 없는 공포심을 느끼고 있었다.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어디에선가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는 것. 마치 머릿속을 울리는 느낌에 머리를 꽉 부여잡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납치당한 건지, 아니면 어떤 실험에 참여하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장소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이해할 수 없는 목소리는 이곳에서 생존해야 한다고, 튜토리얼 던전을 이겨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식수와 식량,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할 물품, 무기의 등급이나 특성, 직업과 몬스터 그리고 상태창까지.
마치 온라인 게임의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설명. 혹시 어쩌면….
‘꿈이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어쩌면 정말로 조금 생생한 꿈을 꾸고 있을 수도 있다.
“살려주세요!”
“제, 제발 꺼내주세요. 제발….”
“장난치지 말고 빨리 문 안 열어? 당신들 전부 고소할 거야! 고소할 거라고! 빨리 문 열어!”
“엉… 엉…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요….”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무기 들어! 밖에서 나오는 소리 안 들려? 무기 들라고!”
“당신이 들어요! 빨리 방패라도 들어요, 빨리요!”
“뭐 하는 거야! 지금! 이상한 분위기 조장하지 말고 빨리 이 거지 같은 장난 안 끝내?”
“장난이긴 뭐가 장난이야! 다들 눈앞에 떠 있는 상태창 못 봤어? 빨리 무기 들라고! 어이 거기 아재! 이게 장난으로 보이쇼?”
“…….”
“…….”
“…….”
“여러분, 지금 이 상황을 부정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단은 앞서 닥친 일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밖에서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이게 현실이든 몰래카메라든 아니면 꿈이든 간에 뭔가 해야 합니다. 모두 무기를 드세요. 일단은 저항해야 합니다.”
“이딴 장난질 그만하라고!”
“장난이 아닙니다. 저도 이런 장난 하고 싶지도 않고, 차라리 장난이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모두 일단 무기를 들어주세요. 만약에 장난이라면 그때 다시 대처해도 됩니다.”
하지만 꿈이라기에는 너무 현실적이었다. 등에 닿은 벽의 감촉이나 사람들의 목소리, 아니, 이미 꿈이든 현실이든 상관없다.
냉정하게 다른 이들을 다독이고 있는 남자의 말이 맞다.
현재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이든 간에 일단을 무기를 들어야 한다. 뭐가 됐든 간에 자신을 보호할 수단을 챙겨가야 한다.
쭈뼛쭈뼛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을 때 어디에선가 날아 들어온 물건이 보였다. 커다란 원형 나무 방패. 이윽고 목소리 역시 귓가로 내리꽂혔다.
“아, 거기 잘생기신 분. 이거 받으세요. 방패가 도움이 될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 그… 그러니까, 형.”
“뭐, 감사할 필요 없습니다. 제 것도 아닌데. 거기 여성분도 이리로 와서 방패 가져가세요. 장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싸울 준비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친절한 사람이야.’
기다란 창을 들고, 덩치가 큰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
아까 전 다른 이들을 다독였던 사람은 어느덧 무리의 중심이 돼 여러 가지를 지시하고 있었다.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밖에서 계속 불길한 짐승 소리가 들려왔지만, 병장기를 든 성인 남녀가 함께 맞서려고 하고 있다.
모두가 힘을 모은다면 어쩌면 정말로 짐승들에게 대항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방패 든 사람들은 앞에서요. 창 쥐고 있는 사람들이 뒤를 봐줄 테니까. 덮쳐올 짐승 몇 마리 정도는 쉽게 막을 수 있을 겁니다.”
“네, 네!”
“다른 건 생각하지 마시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만 생각합시다. 자 앞에 가서 서세요. 거기 당신 빨리 앞으로 나가요. 아니면 방패 다른 사람한테 넘기시던가.”
“아니, 방패는….”
“쓰지도 않을 물건을 뭐하러 가지고 있습니까. 앞에 가서 서세요. 자자, 당신도. 거기 빨리 앞에 가서 몸 대.”
방패를 든 모든 이들이 앞으로 나가길 꺼리고 있다. 물론 당연한 반응이리라.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을 얻었다고 한들, 누가 다른 사람들을 대신에 앞에 서고 싶겠는가.
자신 역시 마찬가지. 뒤에서 누군가가 툭 하고 밀지만 않았다면 인파의 가운데에서 서성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잠시 후 스타트 포인트가 개방됩니다. 5, 4, 3, 2, 1.]
[스타트 포인트를 개방합니다. 여러분의 무운을 빕니다.]
석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꺄아아아아악!”
뭐라고 정체를 설명할 수 없는 괴물들이 기괴한 몰골을 한 채로 인간들에게 달려들고 있다.
“어? 어… 어?”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얼굴에 피가 튄다. 사고가 정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정상적인 판단을 내릴 수도 없고 생각을 할 수도 없다.
다리가 풀리며 몸이 철푸덕 바닥에 널브러졌고, 입에서는 꺽 꺽 하는 소리가 튀어나온다.
아비규환이며 지옥도.
이름 모를 괴물에게 붙잡혀 산채로 먹히고 있는 이들을 보고 있는 상황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장내, 아까까지만 해도 싸우자고 서로를 다독이던 사람들은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거나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죽을 거야…. 전부, 전부 죽을 거야. 엄마… 엄마….’
“살려줘! 여기 좀 도와주세요! 여기 좀!!”
“뛰어!”
“어? 어? 어?”
“망할 돼지 새끼야! 뛰라고! 내 말 안 들려?!”
“꺄아아아아악!”
“살려줘, 살려줘!!”
“도망쳐! 제기랄… 도망치라고!!”
‘여기서 빠져나가야 돼.’
그래야 살 수 있다. 정신없이 허겁지겁 몸을 일으키는 와중에 눈에 띈 것은 식수와 식량이 들어 있는 가방.
“형, 형씨! 어디로!”
“물 챙겨!”
저 멀리서 들려온 것 같은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가방을 움켜쥐는 순간, 반대쪽에서도 가방을 움켜쥔 손이 보인다.
울먹이는 여자의 얼굴이 보여서 순간적으로 갈등했지만, 서로 힘을 주는 와중에 여자가 땅바닥으로 엎어지기 시작.
“죄, 죄송합니….”
사과를 끝마치기도 전에 몇 마리의 괴물이 그녀의 목을 물어뜯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아… 아아….”
“살… 살려….”
“아아아아악!!! 아… 죄… 죄송, 죄송해요. 죄송해요.”
순간적으로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몸은 저도 모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커다란 출구를 통해 도망치는 사람들이 보여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발이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입술을 꽉 깨물고 방패를 마구잡이로 흔들며 인파들을 밀어내자 공간이 보이는 것 같다.
‘빠져… 빠져나가야 돼. 여기 있으면 죽을 거야.’
괴물 한 마리에 덮쳐지고 있던 남자가 자신이 있는 쪽으로 넘어지려는 것이 보여 발악하듯 비명을 지르며 방패를 휘두른다.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 제발… 제발 여기로 오지 마!!’
퍼억 하는 소리와 한 몸처럼 붙어 있던 남자와 괴물이 분리되며, 넘어지는 것이 언뜻 보였지만, 옆을 돌아볼 여유는 없다.
들려오는 목소리로 남자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유추할 수 있을 뿐이었다.
“워… 뒈질 뻔했네, 시바.”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멈출 수 있을 리 만무.
최대한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고는 있었지만, 아직도 출구는 저 멀리 있다.
쓰러진 누군가가 도와달라며 발목을 부여잡는 것이 느껴졌지만.
“도와….”
“이거 놔! 이… 이거 놔!!”
“제발….”
“이거 놔아!!!”
허겁지겁 발목을 붙잡은 손을 쳐내고 다시금 발걸음을 옮긴다.
사방팔방에서 비명이 들려오고 괴물들의 목소리와 함께 살려달라는 외침이 울려 퍼진다.
‘제발… 제발….’
출구까지는 바로 앞. 꾸역꾸역 출구를 빠져나가려는 인파들 사이로 방패로 몸을 딱 붙인 채로 몸을 욱여넣는다.
몸에 밀려 넘어지는 이들이 보이기는 했지만, 뒤를 돌아볼 여유는 없다.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먼저였으니까.
괴물 한 마리가 방패에 달라붙어 와 손에 든 방패까지 손에 놓고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 이후, 시야에 비친 것은 앞이 탁 트인 동공.
어둡기는 했지만, 길들이 보인다.
괴물 몇 마리가 달려와서 몸을 잔뜩 움츠렸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는 다시금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허겁지겁 뛰어가는 와중에 눈에 보인 것은 제발 버리지 말라고 손을 뻗는 이들. 제발 구해달라고 같이 있어 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구해… 줘.”
“죄… 송합니다.”
“돌아와! 돌아와! 이 개새끼들아!”
“죄… 죄송합니다. 흐윽… 죄송해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눈물이 계속해서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호흡은 가빠지고 머리는 어지럽다. 몸에 묻은 혈액 때문인지 계속해서 피 냄새가 코끝에 남는다.
“허억… 허억….”
어디로 달려가는지도 알 수 없다. 최대한 저곳에서 멀어져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없었으니까.
이곳이 어딘지,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전한 장소를 찾기 전까지 몸을 쉴 수 있을 리 만무.
폐가 터지라 뜀박질을 하는 와중에도 멀지 않은 곳에서는 비명이 들려온다.
‘멀어져야 돼.’
이곳에서 멀어져야 한다.
‘괴물들이 없는 곳으로 가야 돼.’
그래야 살 수 있다.
얼마나 달려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야에 비친 것은 작은 틈. 몇 사람이 겨우 몸을 욱여넣을 수 있는 작은 틈이다.
허겁지겁 몸을 눕혀 작은 틈으로 비집고 들어간 이후에 안에 놓여 있던 잡동사니들과 커다란 돌들로 입구를 막는다.
그제야 허물어지듯 자리에 주저앉을 수 있었다.
‘꿈이 아니야… 꿈이….’
“아니야….”
온몸이 긁힌 상처들이 방금 일어난 일이 꿈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살았다는 걸 인지한 이후에야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와 꽂힌다.
가방을 놓치고 넘어진 여자, 발목을 붙잡은 남자, 죽어가든 사람들과 살려달라고 외치는 목소리들.
여러 가지 생각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들어왔을 때,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벽 한쪽 구석에서 구역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웨에에에에엑!”
“우욱… 우웨에엑! 흐으윽… 끄윽….”
“엄마… 엄마아… 끄윽… 흑….”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미안해요. 흐윽, 엄마, 엄마아…. 제발 누가 도와줘요. 제발 누가 여기서 꺼내주세요….”
당연하지만 아무런 대답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