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9
회귀자 사용설명서 549화
튜토리얼을 시작합니다(3)
“좋은 이름이네.”
“…….”
“…….”
“아무튼, 기왕이면 서쪽으로 이동하는 게 좋을 거다. 그쪽에 생존자들 몇 명이 모여 있다고 들었으니까. 여기 분위기가 조금 뒤숭숭해서 걔네가 너를 받아줄지, 받아주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거기 가만히 처박혀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어차피 곧 식량도 떨어질 테니까.”
“…….”
“안 돼. 안 데려갈 거라니까. 우리 둘이 먹기에도 빠듯해. 그리고 난, 너 말고 다른 새끼까지 챙길 여력 없다.”
“…….”
“어차피 쓸모없는 놈이야. 지금까지 도망만 친 놈을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 받아들여?”
“…….”
“후우….”
“…….”
“현성아.”
“네?”
“우리랑 같이 가고 싶어?”
“…….”
일단은 입술을 꽉 깨물 수밖에 없었다. 조금은 의외의 제안이 뒤따라왔던 탓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벽 너머에 있는 저들을 믿을 수 있겠냐는 것. 기본적으로 나쁜 사람으로 여겨졌지만, 커다란 악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나가려면 지금이 기회야.’
용기를 낸다면, 딱 한 발자국만 앞으로 더 걷는다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
하지만 믿을 수가 없다. 당장 자신의 식량을 가지고 갔던 사람이 아니던가.
어쩌면 바깥으로 끌어낸 이후에 가지고 있는 걸 전부 뺏을 생각일지도 모른다.
빵 한 덩이를 주고 검 한 자루를 준 것도 모두 안심시켜서 나오게 하기 위한 작전일 것이다.
저 사람들은 아직 자신이 식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몬스터들과 싸우던 사람이라고 했다. 분명히 검을 휘두르거나 사람을 죽이는 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좋은 사람들이면 어떡하지?’
식량을 빼앗아 가기는 했지만 검을 쥐여주지 않았던가. 심지어 식량을 다 빼앗지도 않았다.
나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특이한 사람이라고 하는 게 어울린다. 옆에 있는 동료 역시 왠지 모르게 자신에게 호의적인 것 같았고….
‘몇 가지만 물어보는 거야.’
몇 가지만 물어보자. 그리고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되면 그때 밖으로 나가자.
“여기에… 도착해서, 사람… 죽여 봤어요?”
“갑자기 그건 왜 물어?”
“그, 그냥요.”
“그래서, 죽여 봤으면 거기에서 안 튀어나오고 계속 박혀 있기라도 하게? 애초에 내가 너를 해코지할 생각이었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죽여봤다고 말했을 것 같아. 아니면 그런 적 없다고 이야기할 것 같아?”
“그, 그래도… 이건 중요한 문제니까요.”
“본의는 아니었지만, 서넛 정도는 죽인 것 같은데…. 어제 처음 죽였지 아마…. 우리 동생은 그게 그렇게 마음에 걸리셨나 봐.”
“…….”
“너도 똑같은 새끼야, 현성아.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이라는 거, 들어는 봤어? 여기 오는 길에 최근에 생긴 것 같은 시체들을 몇몇 봤는데. 그놈들 비명, 못 들었다고 이야기해 보지그래. 변명의 여지가 있어?”
“그건….”
“분명히 들렸을 거라고 생각되는 데…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애써 외면하고 있었겠지, 뭐.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명을 무시하고 도와달라는 사람들의 외침도 조용히 외면하고, 너는 그렇게 살아남은 거야. 너라고 여기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랑 다를 것 같아?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네가 더 쓰레기 같은 놈이야. 그렇게 자기 합리화하는 새끼들. 도망치고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놈들. 네가 제일 비겁하고 못난 놈이라고…. 내 말 알아들어?”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그게…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그런 뜻이 아니라….”
“괜히 기분만 잡쳤네. 제기랄. 우린 간다, 새끼야. 거기서 백 년 만년 처박혀 있어봐라. 그리고 몇 가지만 충고할게, 동생.”
“…….”
“정말로 뒈지기 싫으면 바깥으로 튀어나와서 몬스터들이나 때려잡아. 튜토리얼 던전이 끝난 이후에는 뭐가 나타날지 모르니까. 그다음 던전, 그다음 장소에서 지금과 같은 쉼터가 있을 거로 생각하지 마. 살아남으려면 뭐라도 휘둘러야 돼. 그게 여기 법칙이야. 초보자 사냥터가 열려 있을 때 사냥을 하라는 소리다. 뭐, 그럼…. 다음에 볼 수 있으면 보자. 아마 그럴 일 없을 테지만. 준 건 잘 먹는다, 새끼야.”
“아… 아! 저… 저기 형! 형!”
뒤늦게 이름을 불러봤지만 들려오는 목소리는 없다. 괜스레 손바닥으로 바닥을 쾅 하고 내려칠 수밖에 없었다.
‘제길, 제기일…’
이곳을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물론 저들이 안전한 사람인지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마지막 기회였다.
아니,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 밖으로 나간다면 그 사람들을 따라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서둘러 몸을 일으켜 좁은 공간으로 몸을 집어넣으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무섭다.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자신조차 믿을 수가 없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조금 전 쓸데없는 질문을 던진 것 역시 그렇다. 어쩌면 그저 이유가 필요한 게 아니었을까. 밖으로 나가지 않을 이유가 필요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상한 질문을 한 게 아닐까. 그 사람의 말이 맞다.
자신 역시 똑같기는 마찬가지다. 직접 손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을 뿐, 나 역시 괴물에 가까웠다.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외면하고 무시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소리를 숨어서 들었고 쓸데없는 자기 합리화를 하며 도움을 요청한 여성의 부탁을 거절했다.
어쩌면 지금 식량이 이것밖에 남지 않은 것 역시 벌일지도 모른다. 나 자신만 생각했기 때문에 신이 벌을 내린 걸지도 모른다.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식량이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걸 그랬다.
“흑… 흐윽… 엄마….”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어쩌다가 이렇게 이 장소에 계속 처박혀 있게 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발목을 붙잡았던 남자를 도와줬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아니, 처음에 가방을 함께 집은 여자에게 가방을 양보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 자리에 남아 다른 사람들과 마지막까지 끝까지 싸웠다면 많은 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도움을 요청한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뛰쳐나갔었다면 이렇게까지 자괴감을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끄윽….”
‘무기는 던져줄게, 동생. 이런 말 하면 조금 그렇지만 정 힘들면 그걸로 자살해도 돼. 그런 사람도 꽤 되니까.’
아까 들었던 목소리를 떠올리고 무심코 옆쪽을 바라보자 시야에 비친 것은 작은 단검.
어두운 공간에 얼굴이 비칠 리가 없었지만, 단검에 비친 얼굴은 기괴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사람의 말처럼 어쩌면 죽는 게 마음이 편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죄책감을 지니고 살지 않아도 될 테니까.
허겁지겁 단검을 집어 들고 천천히 목을 향해 겨눈다. 찌르면 모든 게 끝난다. 조금만 힘을 주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모든 고통에서 해방될 것이다.
날카로운 단검의 끝을 목 끝에 가져다 대자 따끔한 느낌과 함께 핏물이 목을 타고 흘러내린다. 손은 덜덜덜 떨리고 숨은 점점 가빠진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단검을 끝까지 밀어 넣는 게 쉽지 않다. 오히려….
“끄윽, 엄마아….”
무섭다.
이대로 죽는 게 무섭다. 이런 장소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것이 무섭다.
결국에는 단검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이후에 고개를 숙여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죽지도 못하는 병신 같은 새끼. 구질구질하게 살아보겠다고 끝까지 버티는 새끼, 쓰레기 새끼. 병신 새끼, 구더기 같은 놈, 인간 쓰레기 새끼.
“꺼윽… 흐윽….”
반대편에서 다시금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
“…….”
“형? 형이에요? 형 맞죠?”
“에엑….”
“형! 저, 저 나갈게요. 나갈래요. 형이랑 같이 갈 거예요. 지금 나갈게요. 제가 아까 잘못했어요. 저도 데리고 나가주세요.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
“키에에에에에에엑!”
“아… 아아아아….”
“키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아아아아악! 살, 살려줘요. 살려주세요. 누, 누가 제발 살려주세요. 살려….”
“키에엑!”
“살려줘요. 꺼윽… 살려주세요. 누가 제발….”
밑을 막아둔 돌덩어리들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진다. 어째서 갑자기 녀석이 이쪽을 찾을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아까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 그럼…. 다음에 볼 수 있으면 보자. 아마 그럴 일 없을 테지만.’
어쩌면 그 사람이 집어넣은 걸지도 모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이 지금 이 상황을 초래한 걸지도 모른다.
최대한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좁은 입구를 잡동사니들로 막아보고 있었지만, 약해질 대로 약해진 육체는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살려주세요. 살려… 형,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살려주세요. 식량도 전부 다 드릴게요. 어엉… 형! 혀엉!”
누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한단 말인가. 이곳에는 이미 아무도 없다. 자신조차 타인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는데 누가 자신을 도와줄 수 있단 말인가.
결국에는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방벽이 뚫리고, 좁은 틈을 기어들어 오는 몬스터들이 눈에 들어왔다.
황급히 시선을 돌린 곳에 자리한 것은 식량 대신에 받은 검.
‘죽여야 해.’
“키에에에에에엑!”
“죽어! 죽, 죽어!”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다.
좁은 틈을 통과하는 아귀의 머리통을 단순히 칼로 짓이길 뿐이었으니까.
푸욱 푸욱 하는 기분 나쁜 감촉이 계속해서 들려온다. 하지만 검을 내려찍는 것을 멈출 수 있을 리가 없다.
죽어 있는지, 살아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벅차다.
“꺼윽… 흐윽… 죽어! 죽어어!! 괴물 새끼. 괴물 새끼!!”
“에에엑….”
“허억… 하아… 하아….”
머리가 완전히 부서진 이후에야 커다랗게 쉬어보는 숨. 선택의 여지는 없다. 지금은 무조건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한 놈이 이 보금자리를 발견했다면 다음 놈 역시 이곳을 발견한 걸지도 모른다.
만약 정말로 아까 그 사람이 이 아귀를 이곳으로 밀어 넣은 것이라 이렇게 밀폐된 공간에 있는 건 약이 아니라 독이다.
생명체를 처음 죽였다는 이질적인 감상에 빠지기도 전에 다시 한번 몸을 눕혀 좁은 공간으로 밀어 넣는다.
완전히 움직임을 멈춘 몬스터의 채취와 혈향이 계속해서 코끝에 감돈다.
혹시라도 움직이지 않을까 싶어 단검을 꽉 쥔 채로 계속해서 몸을 옮긴다.
“혼자 힘으로 살아남아야 돼.”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된다.’
“내가 이기적인 게 아니야.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야. 지금까지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렇기 때문에… 서 있을 수 있는 거야. 형, 아니, 그 사람도 그래서… 남아 있었던 거야.”
도움을 요청해도 도와줄 사람은 없다. 자신 역시 그렇게 하지 않았던가. 아무런 조건 없는 호의는 없다.
만약에 방금 그 사람을 따라 나갔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죽었을 것이다.
일부러 몬스터를 여기로 밀어 넣을 정도라면 그러고도 남는 사람일 것이다.
물론 원망하지 않는다. 자신이 바보처럼 속아 넘어갔을 뿐이었으니까.
“허억… 허억….”
그 말이 맞다.
하지만 좁은 틈을 빠져나간 이후,
눈앞에 보인 화살표를 본 순간 괜스레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살아서 보자. 같이할 마음 있으면 찾아오고.
라고 쓰인 글씨와 화살표. 벽면에 쓰여 있는 그 글씨 밑에는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빵 반 덩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잠깐 멍하니 그곳에 시선을 고정하게 된다. 괜스레 손안에 잡힌 검을 꽉 움켜쥐고서 말이다.
“살아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