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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550화 (541/1,590)

# 550

회귀자 사용설명서 550화

튜토리얼을 시작합니다(4)

“상태창”

[이름-김현성]

[칭호-없습니다. 조금 더 노력하셔야겠네요.]

[나이-22]

[성향-겁 많은 몽상가]

[직업-전사–일반 등급]

[능력치]

[근력-11]

[민첩-25]

[체력-13]

[지력-10]

[내구-19]

[행운-15]

[마력-03]

[장비]

[공짜로 줘도 안 쓸 싸구려 철검-일반 등급]

[공짜로 줘도 안 쓸 싸구려 단검-일반 등급]

“전직했구나. 정말이었어.”

단검을 허리춤에 동여매고 검 한 자루를 어깨에 기댄 채로 털썩 주저앉자 그동안의 피곤함이 전부 가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여전히 몸은 힘들다. 마치 칼날 위에 선 것 같은 감각. 땀과 피로 젖은 축축한 옷은 괜스레 짜증을 불러올 정도였다.

스리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괴물 한 마리를 처리하기는 했지만, 주변에 다른 괴물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이후 목을 축이자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한 번 더 전직하려면 몇 마리나 잡아야 하는 거지?’

확실히는 모른다. 주어진 정보가 무척 적었으니까. 하지만 몇 마리 사냥하는 정도는 무리가 없을 거다. 지금까지도 그렇지 않았던가.

이미 누군가가 닦아놓은 길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형과 동료들이 지나간 길이다.

있는 몬스터들이라고 해봐야 무리에서 떨어진 몇 마리 정도가 끝이었다. 안정적으로 사냥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게 당연했다.

물론 정면으로 녀석들과 부딪치는 건 쉽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강한 몬스터가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마음속에 있는 공포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몇 번의 전투를 치러왔지만, 아직도 검을 휘두르고 그들과 마주하는 것은 무섭다.

이빨과 손톱은 날카로웠고 무엇보다 숫자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하면 감당하기 힘들다.

기습을 당하거나 먼저 공격당하면 그 자리에서 아웃. 욱신거리는 왼팔을 붙잡아봤지만 이미 생긴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검이 아니었으면 당했을 거야.’

갑자기 덮쳐온 녀석과 뒤엉켜 넘어지고 심지어 검까지 놓쳐버렸었다. 허리춤에 있던 단검이 아니었다면 이미 목을 물어 뜯겼으리라.

상태창에서는 쓰레기 같은 무기라고 평가했지만, 가진 게 없는 지금으로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었다.

형과 동료들이 무기를 얼마나 가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시 한번 스타트 지점으로 돌아갈 수 없는 지금은 빵 몇 덩이, 식수와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처음에는 식량을 빼앗겼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면 충분히 할 만한 거래였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그쪽에서 나를 배려해 주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배가 고픈 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지금 이 시점에서 굶어 죽는 사람은 없다. 반면에 몬스터에게 습격당해 죽은 사람들은 수십 수백이 넘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겠는가. 배고픔은 견딜 수 있지만, 무기가 없다면 살아남을 수도 없고 미래를 준비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형이 한 말처럼 만약 이 던전 이후에 무언가가 더 있다면 최대한 레벨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만 다음번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

헝겊으로 철검에 묻어 있는 피를 살살 닦아내다 보니 어느덧 20분 정도가 지난 듯했다.

이제는 다시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금 몸을 일으켰지만, 정확히 어디로 향해야 하는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벽에 그어져 있는 화살표를 발견할 수 없었던 게 딱 이쯤.

지금까지 계속 그려져 있던 화살표가 없는 것을 보면 여기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리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전투가 일어난 것 같은 흔적이 보였으니까.

몬스터와 싸운 건지 아니면 다른 집단과 싸움이 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방향을 표시할 여유가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잊어버렸을 수도 있고.

‘다시 한번 천천히 살펴보는 게 좋을까?’

하지만 그 선택지는 곧바로 아웃, 여기서 더 시간을 잡아먹는다면 형과 동료들을 따라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차라리 그냥 사냥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 그렇게 막 발걸음을 옮겼을 때였다.

“키에에에엑….”

하는 소리와 함께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들려온 것.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저도 모르게 호흡이 거칠어진다.

싸울 수 있는 지식이 있다고 한들, 몸을 움직이는 건 나 자신.

갑작스럽게 뻣뻣해지는 몸이 원망스러웠지만 살아남으려면 검을 휘둘러야 한다.

형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여기에서는 무기를 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거라고.

숫자가 몇인지는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들리는 소리를 딱 하나.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걸어가자 네다리로 기어 다니는 놈의 모습을 금방 시야에 담을 수 있었다.

꿀꺽 하고 침을 삼키고 천천히 검을 집어 든다.

달려들어야 할지, 아니면 여기까지 오는 걸 기다려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지만, 기왕이면 안전하게 잡고 싶다. 정면으로 녀석을 마주하는 건 아직 무리다.

벽에 딱 달라붙어 녀석이 오기를 기다린다. 숨을 죽이고 길을 지나치려고 할 때, 머리에 칼을 꽂아 넣으면 된다.

머릿속으로 수백 번 상상해 보지만 막상 실전에 들어가면 다를 거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장면을 시뮬레이션할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레 옆쪽에서 둔탁한 충격이 느껴진 것은 바로 그때.

“아악!”

“키에에에에에엑!”

하는 비명과 함께 몸이 땅바닥으로 나 뒹군다.

“제길!”

기다리고 있던 놈이 아니라 새로운 놈.

땅바닥을 두어 번 구른 이후에는 다시 한번 자세를 고쳐 잡았지만, 기다리고 있던 한 놈이 침을 흘리며 게걸스럽게 달려들어 왔다.

‘운이 좋았어.’

운이 좋았다. 목을 노리고 들어온 게 아니라 대뜸 몸통박치기부터 해왔으니까.

다리를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았다. 뒤에서 달려들어 오고 있는 놈은 현재 정상이 아니다.

‘생각하면 돼. 생각하자, 생각해.’

머릿속으로 상상한다. 첫 번째 놈은 몸을 비틀어 흘려보낸 뒤에 다리를 다친 놈을 먼저 처리하자.

앞서 보낸 괴물이 자세를 고쳐 잡는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뒤에서 온 놈을 처리하면 된다.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니 미간에 검을 찔러 넣으면 그걸로 끝.

몇 초 되지 않는 찰나에 수만 가지 생각이 들어와 꽂히고 몸은 또 그걸 실행하기 위해 움직인다.

녀석이 점프를 해오는 타이밍에 몸을 비틀어 피하고.

“키에에에에에엑!”

뒤이어 달려들어 오던 놈에게 검을 찔러 넣는다.

푸욱.

정확히 머리를 관통한 칼날, 속으로 ‘좋았어’ 같은 소리를 되뇐 이후에 뒤를 돌아보자, 미끄러진 중심을 잡고 다시금 달려들어 오는 몬스터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검으로 내려쳐야 돼.’

황급히 검을 빼내려고 했을 때였다.

“어?!”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이 뭔가에 걸린 듯 빠지지 않았던 것.

“어… 어!”

힘을 조금 줘봤지만 마찬가지. 그 와중에도 녀석은 계속해서 이쪽을 향해 달려들어 오는 있었다.

당황한 찰나에 몬스터는 왼쪽 다리를 향해 달려들었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끔찍한 고통이 엄습했다.

“아아아아악!”

비명을 내지른 채로 허리춤에 있는 단검을 녀석의 머리통을 향해 쑤셔 넣으려고 했지만, 목을 비틀어대는 녀석 때문인지 조준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가까스로 단검을 어깨에 박아넣기는 했지만 겨우 그걸로 녀석을 멈출 수 있을 리 없다.

오히려 더 성이 난 것처럼 머리를 흔들어대는 바람에 다리가 떨어질 것처럼 아프다.

눈물이 왈칵 튀어나오고 머릿속으로는 별별 생각이 들었지만, 필사적으로 다시금 손을 뻗는다.

결국, 정확하게 머리통을 향해 단검을 휘두른 이후에야 녀석은 침묵했다.

“허억… 허억… 허억….”

‘죽을 뻔했다.’

매 전투가 위험했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죽을 뻔했다. 만약 계속해서 당황했더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죽어버렸으리라.

잠깐 동안 올라왔던 자신감이 급속도로 무너지는 게 느껴진다. 호흡은 계속해서 거칠어지고 점점 더 숨이 가빠진다.

“으… 으으으으윽….”

단검에 머리가 꽂힌 채로 죽은 몬스터의 입을 천천히 벌리자 정체를 알 수 없는 진득한 타액과 함께 피가 흘러나왔다.

완전히 뜯겨 나갔을 거라고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다리는 그나마 괜찮아 보인다.

어깻죽지에 단검을 꽂아 넣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랜 시간 인간들을 씹어 먹다 보니 이빨이 상했을 수도 있고.

천으로 다리를 꽉 동여맨 후 다시금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비명소리를 누군가 들었을 테니 어쩌면 이곳으로 누군가 올지도 모른다.

그게 몬스터건 사람이건 간에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최대한 조심해야 했다.

‘냉정하자, 냉정하자.’

속으로는 계속해서 같은 소리를 되뇌었지만, 몸은 자꾸만 덜덜 떨려온다. 무섭지 않을 리가 없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아서 잘 헤쳐왔던 거다. 의외의 상황은 언제든지 펼쳐질 수 있고, 모든 게 상상이나 생각했던 것처럼 되지는 않는다.

‘정말로 죽을 뻔했어. 진짜로… 이번에는 진짜로 죽을 뻔한 거야.’

턱 끝까지 올라온 죽음의 공포. 정신없었던 상황을 떠올리자 다시 한번 몸이 떨려왔다.

‘내… 검. 내 검….’

다리를 다쳐 중심을 잡을 수 없었던 괴물에게 다가갔다. 낑낑대며 팍팍 머리를 후려치자 그제야 검이 뽑혀 나왔다.

‘어디서 나온 거지?’

이런 놈이 어디서 튀어나왔을까.

‘다리는 어쩌다가 다친 거지?’

몬스터끼리는 서로를 공격하지 않는다. 높은 확률로 인간에게 당했을 것이다.

중간에 도망치거나 몸을 뒤로 빼지 않는 녀석일 테니, 사냥을 끝마쳤거나 쫓던 인간을 놓쳤을 가능성도 크다.

‘어느 쪽에서 온 거야?’

지나온 길은 거의 다 정리가 되어 있었다. 녀석이 튀어나왔던 장소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놈의 다리에 난 상처는 확실하게 검이나 창에 맞은 상처. 어쩌면….

“형이랑 동료들일지도 몰라.”

이 괴물 역시 무리에서 떨어진 녀석일 것이다.

“근처에서 전투를 벌인 흔적이 있었어.”

분명히 있었다. 무리와 떨어진 이 괴물과 싸웠다고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다.

‘화살표도 끊겼고.’

이 괴물은 다리를 다쳐 끝까지 추격하지 못한 녀석일 게 분명했다.

형과 동료들을 따라간 다른 괴물들과는 다르게 제대로 걷지 못해 뒤처졌고, 결국에는 이 근처를 서성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도와줘야 돼.’

도움을 받았으니 갚는다. 다리를 질끈 천으로 묶은 이후에는 엉기적엉기적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뛰기는 힘들지만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형과 동료들이 괴물들에게 쫓기는 상황이라면 작은 손이라도 필요할 것이 분명했다.

아마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 테니 처음에는 경계하겠지만, 김현성이라고 설명하면 안심할 것이다.

고통에 인상을 찌푸렸던 것도 잠시, 형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 괜스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물론 위기에서 형을 구해내는 게 먼저이겠지만 말이다.

흔적을 밟는 방법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벽에 난 상처나 발자국 같은 것 따위로 괴물들이 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조금 널찍한 동공에서 한 번 더 전투가 있었는지 괴물의 시체들이 시야에 비쳤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죽은 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은 것 같은 느낌, 아직 온기가 남아 있다.

걷기 힘들지만 조금 더 빠르게 발걸음을 옮긴다.

어느새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뛰고 있다.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덕분에 나올 수 있었다고 단검이랑 철검을 나누어 줘서 고마웠다고 그렇게 이야기 하고 싶다.

이름도 듣지 못했다.

함께 움직이는 동료도 보지 못했고.

나쁜 사람이라고 한 것도 사과하고 싶다.

“형… 형!”

하지만 이윽고 시야에 비친 장면에는.

튀어나오려던 목소리를 손으로 막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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