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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560화 (551/1,590)

# 560

회귀자 사용설명서 560화

우리 하얀이가 달라졌어요(4)

“정하얀 님 말씀이신가요.”

“네.”

“요즘 매우 조용히 지내시고 계시죠. 친절해지기도 하셨고요. 매번 챙겨주시기도 하시고… 그래도 예전 일 때문에 조금 무섭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그런 조짐은 없으셨어요. 그… 이상하게 눈빛이 변하시거나 그러지 않으세요. 참을성이 높아지신 건지 아니면 뭔가 깨달으신 건지 모르겠지만요.”

“확실히 조용해진 것 같기는 했습니다만….”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아! 네.”

“이랬다 저랬다 해서 죄송하지만… 굳이 전출 보내주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요. 저도 여기에 있는 게 편하기도 하고…. 지금은 린델에서 지내는 게 좋거든요.”

“무슨 말씀하시는지 알겠습니다, 소라 씨.”

‘애초에 전출 보낼 생각은 없었지만….’

본인의 입으로 이렇게 이야기해 주면 오히려 더 반갑다. 물론 이 대화의 목적은 그녀의 전출 문제가 아니다.

‘얘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 달라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최근 정하얀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함인 게 당연했다.

여러 가지 대외적인 활동을 진행하는 와중에 생긴 문제였지만, 이걸 가만히 두고 볼 수 있을 리 없다.

북부에 전진기지를 배치하는 것과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를 두어 전반적인 전쟁 준비를 하는 것.

둘 다 중요한 문제였지만, 인류가 보유한 비밀병기의 성장 역시 중요했다.

한소라는 정하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정하얀은 한소라를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로 여기고 있다.

무슨 사건이 터질 때마다 옆에 두고 기용했으니 인간관계가 한정적인 정하얀은 그녀에게 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리라.

아마 정하얀에게 있어 한소라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이로 꼽히지 않을까.

물론 당한 게 있는 한소라야, 정하얀을 두려워했지만 지금 보여주는 액션이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거울 호수로 떠났을 때까지만 해도 낌새가 있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것마저 전부 사라져 버렸다.

‘이건 확실히 변한 게 맞네.’

그만큼 정하얀이 변했다는 방증이리라.

‘생각해 보면 이상하기는 해.’

납치 사건 이후로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던 건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모르는 척했던 건지는 나도 판단할 수 없었지만, 정하얀이 이전과는 180도 달라졌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마탑 문제도 그래.’

내가 조금 강하게 권유하기는 했지만, 평소의 정하얀이었다면 절대로 순순히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 멀지는 않지만, 온종일 떨어져 있어야 하는 마탑에 처박힌다는 것은 그녀에게 견딜 수 없는 이야기였을 테니까.

일주일에 한 번 함께 외출을 나간다지만, 겨우 그걸로 만족할 리가 없지 않은가.

물론 참고 있다는 액션을 보여줄 때도 잦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정하얀이 가장 싫어한다고 말할 수 있는 희라 누나와 만날 때 역시 생떼를 부리지 않는다.

입술을 꽉 깨물고 손을 부들부들 떨며 바라보기는 하지만, 다른 헛짓거리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했다.

일하러 나가거나 홀로 외출할 때도 예전처럼 따라온다고 억지를 부리지 않았고, 다른 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역시 바라만 볼 뿐 접근하지 않는다.

심지어 대륙 관리 위원회의 문제 역시 그렇다. 길드를 임시 탈퇴하고 북부로 향하다니.

정하얀의 입장에서 이것보다 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어디 있을까.

단순히 참을성이 늘어났다고 하기에는 폭발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제 폭발하면 안 된다고 느끼는 거일 수도….’

본인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결과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굳이 원인을 찾을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납치 자작극이 그녀의 행동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 하나였으니까.

애초에 이런 상황을 노리기는 했다. 돌발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정하얀이라니, 이것보다 매력적인 옵션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전의 자작극이 정하얀의 행동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제한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다시 한번 머리를 꽉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부길드마스터?”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요즘은 뭐 특이사항이랄 게….”

“네, 그런 건 없으세요. 생각처럼 공부가 잘되지 않는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으시기는 한데… 다른 문제는 전혀 없으세요. 잠깐 부르셔서 뵈러 갈 때도 책을 끼고 있으신 것만 빼면요.”

“으음….”

“그리고….”

“네.”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네.”

“조금 힘들어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

“아니, 힘들어하신다기보다는 재미없어 하시는 것 같다는 게 올바른 표현일 것 같아요.”

“재미없어해요? 마탑이 수준이 그만큼 낮은가?”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마법 자체에 커다란 흥미를 느끼시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그냥 어쩔 수 없이 공부하신다는 느낌이라… 사실 정말로 마법을 공부하고 즐기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 같지만… 최근 들어서는 더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아무리 봐도 억지로 의자에 앉아 계시는 것 같아서….”

“그럴 리가 없는데….”

‘우리 얘가 공부하는 걸 싫어한다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네.”

“그렇군요. 일단 감사합니다.”

“…….”

“…….”

‘정하얀이 마법을 재미없다고 느끼고 있다고?’

“저… 부길드마스터.”

“네.”

“바쁘시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그… 정하얀 님을 자주 찾아주셨으면….”

“네, 무슨 말씀하시는지 잘 알겠습니다.”

“그, 그럼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네, 며칠 뒤에 다시 한번 부를 테니 멀리 나가는 임무는 최대한 지양해 주세요.”

“네.”

‘걔가 왜 마법을 재미없다고 느껴? 우리 얘가 얼마나 공부를 좋아하는데….’

한소라가 밖으로 나가고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책상에서 몸을 뗄 수가 없었다.

‘그렇지는 않을 텐데? 정말로 그런 건가?’

1회 차 정하얀의 모습을 계속 지켜본 건 아니었지만, 정하얀이 마법을 재미없다고 느끼는 건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마법은 그녀에게 삶의 목적이자 돌파구였고 치료제였다.

받은 스트레스를 마법 서적을 탐독하는 것으로 풀었고, 심심하거나 외로움을 느낄 때도 마법에 의지했다.

그녀가 힘들 때 말을 걸어주고 위로해 주며 함께 웃어주는 친구.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마력과 마법은 그녀에게 있어 유일한 친구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 그녀가….

“아….”

‘이거….’

머리를 굴리다 문뜩 무언가 깨달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은 1회 차가 아니지.’

정하얀은 외롭지도 않고, 마법을 유일한 친구라고 느끼지도 않는다.

‘오히려.’

수단으로 느끼고 있지 않을까.

1회 차의 정하얀은 튜토리얼이 끝난 후부터 계속 마탑에 틀어박혀 있었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탑의 꼭대기 위에서만 시간을 보냈다는 거다.

마법의 영감들이 부둥부둥 옹야옹야 했을 테지만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을 리가 없다.

아마 그런 정하얀에게 마법과 마력은 친구 같은 걸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본래 가지고 있는 재능이 시너지를 일으킨 것은 물론, 본인도 그만큼 열정적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너무 달라졌지.’

내 존재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다.

1회 차 정하얀의 목적이 마법이었다면 2회 차 정하얀의 목적은 이기영이다.

1회 차 정하얀은 마법을 목적으로 생각했지만, 2회 차 정하얀은 마법을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1회 차 정하얀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마법을 찾았고 2회 차 정하얀은 나를 찾는다.

1회 차와는 다르게 그녀가 마법을 재미없고, 지루하게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수단과 목적이 너무 확실하게 달라져 버렸으니까.

‘그럼 필연적으로 1회 차보다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건가?’

그렇지는 않다. 지금 정하얀이 이룩한 걸 생각해 보면 여전히 그녀는 마법과 마력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쪽에서만 사랑을 보내고 있다는 게 문제지만….’

괜스레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결론에 도달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현재의 방법으로는 정하얀을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없다. 계속해서 성장하라고 외친다고 한들,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각성 키워드를 제시해야 했고, 이전처럼 행동해야 했다.

물론 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정하얀의 성장 분기점에서 일어난 일들만 떠올려 봐도 그녀가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

현재, 2회 차의 정하얀을 성장시킨 키워드는 수련이 아니라 분노였고, 질투였으며, 마이너스한 감정이었다.

차희라에 대한 분노, 가면쓰레기 진청을 향한 분노, 연방을 향한 분노, 악마들을 향한 분노, 분기점이 있을 때마다 그녀는 성장했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간단히 말해 사고를 칠 때마다 몇 계단을 한 번에 껑충 뛰어넘었다는 거다. 당연히 그녀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납치 사건으로 기가 죽은 정하얀 스스로가 자신이 가진 마이너스한 감정을 절제하고 있으니 원활한 성장이 진행될 리 없지 않은가.

‘왜 우리 애, 기를 죽이고 그래요.’

그동안 정하얀의 목줄을 채우려고 안간힘을 썼고, 결국 그 목줄을 채우는 데 성공했지만, 목줄을 찬 순간 정하얀은 사냥개가 아닌 애완견이 되어버렸다.

분노하고 발전해 연적들과 불안 요소를 쓸어버리려는 생각은, 타협하고 참고 견디는 생각으로 전환됐다.

‘이걸 시바… 어떻게 해야 돼.’

“제기랄….”

‘목줄을 다시 푸는 게 맞나?’

“얼마나 고생했는데….”

‘정하얀을 완전히 배제하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나?’

“김현성 공인 오피셜이 떴는데… 가능할 리가 없지, 시바.”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거지.’

“나도 잘 모르겠다, 진짜.”

‘하얀이한테도 이게 더 좋을 수도 있을 텐데….’

단순히 개인적은 욕심의 문제가 아니다. 정하얀은 명백히 온순해지고 있었다.

한소라 와도 항상 붙어 다니며 사회성을 기르고 있었고, 조금씩 조금씩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당장은 무리겠지만, 이곳으로 소환된 이후 마모된 인간성을 조금씩 되찾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것도 딱 그런 거였고….

애초에 정하얀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에 대한 죄책감도 조금은 느끼고 있었으니까. 정말로 조금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지금에 와서 다시 한번 폭탄을 투하하기에는 여러모로 걸리는 게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

조금 약해도 안정적인 정하얀이냐, 아니면 약 빤 것처럼 강해도 통제가 어려운 정하얀이냐.

안경 쓴 오빠와 어둠의 힘을 다루는 오빠, 그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었던 정하얀의 심정이 이해된다.

이 경우에는 답이 정해져 있는 게 문제였지만….

정확히 한 달 후, 결국에는 조심스럽게 한마디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떨어져서 지내자.”

“네? 네?”

“조금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서….”

정하얀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목소리였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었다.

물론 한소라에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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