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565화 (556/1,590)

# 565

회귀자 사용설명서 565화

1년 이후의 대륙(3)

“찾았다는 게 정말입니까?”

-네, 박덕구 님과 안기모 님께서는 현재 제53 건설 현장에서 몬스터 웨이브에 맞서고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물론 정확한 사실 여부는 파악해 봐야겠지만, 베니고어 넷에서 해당 지역에 있는 작업원 한 명이 수성전 실황을 방송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필요하시면 곧바로 영상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아, 네. 지금 곧바로 보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맞는지 아닌지도 확인해 봐야 하니… 그보다 어째서 거기에 있는 겁니까?”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확인된 것이 없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쪽 건설 현장 책임자는….”

-왕국 연합 쪽으로 확인됩니다. 책임자는… 웨스턴시티 길드에 마이클 웨인으로 자세한 사항은….

“아아, 이제야 기억이 나네요. 그 사람… 곧바로 건설 현장 책임자한테 전언 날려주시고요. 제가 찾는다고… 아니, 차라리 여신의 손거울 하나 전해주세요. 아무래도 또 어디로 튈지 모르니… 직접 연락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네, 그렇게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발견한 직원한테는 꼭 인센티브 전해주시고요. 누가 발견했다고요?”

-저… 그게 익명입니다.

“음, 어쩔 수 없겠네요. 그렇게 찾아도 안 보이더니 여기로 올라오고 있기는 한 모양이군요.”

-네, 부길… 아니, 위원장님.

“부길드마스터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김미영 팀장님. 그보다… 요즘 그쪽은 조금 어떻습니까?”

-딱히 특이 사항은 없습니다. 선희영 님과 황정연 님께서 워낙 길드를 잘 이끌어주고 계셔서… 익숙하지 않은 업무일 텐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아! 이상희 님께서도 업무를 함께 부담해 주고 계십니다. 슬슬 일선으로 나오시는 것도 생각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아, 이상희 님… 조금 의외이기는 하네요.”

-파란에 대한 지분이나 소유권을 따로 주장하지는 않을 거라고 하시더군요. 아무래도 본인이 다시 일선에 나서는 게 두 분께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파란 길드의 소유권과 운영권은 어디까지나 길드마스터와 부길드마스터가 함께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계시다고, 계속해서 거듭 언급하셨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

-만약 부길드마스터가 불편하시다면 따로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요.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작은 도움도 필요한 시점인데, 굳이 견제할 이유가 없죠. 그 사람이 그렇게 욕심부릴 사람도 아니고. 제법 오랫동안 길드 운영했으니, 생각보다 더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리고… 또 물어보려고 했던 게… 아, 현성 씨한테는 연락이 없는 겁니까?”

-아직 그곳에 계신 것 같습니다. 따로 연락해 오지도 않으셨고요. 아마 기존에 생각하셨던 것보다 성장이 더디신 것 같아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나오실 것 같다고 조혜진 님께서 전해주셨습니다. 추가로 엘레나 님과 유아영 님께서도 예정대로 왕국에서 올라오시는 중입니다만….

“오랜만이겠군요.”

-네, 디아루기아 님께서도 슬슬 레어에 들러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디아루리아 님께서 깨어날 때가 되었다고….

“직접 연락하면 되는데….”

-기기를 사용하기 어렵다고 하시더군요. 영 손에 맞지 않는다고….

“…….”

-아무튼, 이전에 말씀해 주신 것들을 포함해 전부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부탁드립니다, 김미영 팀장님. 그리고 영상 말고 채널을 직접 보내주세요. 직접 시청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지금 바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아니, 이 새끼는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의자에 앉아 팔걸이를 툭툭 두드렸다.

김미영 팀장이 연결한 영상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괜스레 주변을 둘러보자, 책상 한구석에 자리 잡은 거울이 시야에 비쳤다.

눈에 보인 것은 항상 봐오던 얼굴, 1년 전이나 별다를 것 없는 얼굴이었다.

파란 길드 휘장 대신 보호 관리 위원회의 배지가 달려 있는 걸 제외하면 말이다.

아니, 사실 조금 살이 빠진 것 같기도 하다. 1년 동안 식사를 거른 횟수가 꽤 많았으니까.

그래도 살이 조금 붙어 있던 이전이 더 나았던 것 같다. 다크서클이 괜히 눈에 띈다.

1년이다.

딱 1년이 흘렀다.

개인이 극적으로 변하기에는 조금 짧은 시간이었지만, 세상이 이만큼 변한 걸 보면 그렇게 짧은 시간도 아닌 듯 느껴진다.

불과 1년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변화가 있지 않았던가.

이 세계 스마트폰으로 불리는 여신의 손거울이 제대로 자리 잡았고, 지구에서 넘어온 모험가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기술에 적응했다.

대륙인들이야 조금 혼란스러워했지만, 그들 역시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녹아들었다.

여신의 손거울이 막 출시됐던 당시 예의 바른 말투와 서로를 존중하던 글을 쓰고, 댓글을 달던 대륙인들이, 어느새 급식체와 패드립을 장착한 상황.

[캐슬락의 금지옥엽: 아이디미정 님. 그런 식으로 말씀하지 마시죠. 이곳은 신성한 공간입니다.]

라고 말했던 유저가 정확히 1년 뒤.

[캐슬락의 금지옥엽: 그딴 글 싸지르면 지가 뭐라도 된 줄 알고요? 어머니는 안녕하시지?]

라는 글을 싸지르게 됐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조금 과장된 예시이기는 했지만, 이 예시가 무색할 정도로 대륙인들은 익명성의 공간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건전한 베니고어 넷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됐지만, 굳이 이쪽에서 제어할 필요는 없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이니, 무슨 말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이쪽에서 환영하고 싶어진다.

수많은 데이터를 분류하는 게 힘들지만, 반동분자를 색출할 방법으로 이것만 한 방법이 없지 않은가.

물론, 변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는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고, 고대하고 고대했던 북부 전진기지의 공사 역시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

가장 전방에 위치한 성벽과 탑은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고, 그 외 지역도 작업 속도가 나쁘지 않았다.

외곽일수록 속도가 느렸지만, 그 역시 평소보다는 빠르다는 내부 평가를 받고 있었다.

파란 길드를 탈퇴하면서까지 일에 집중한 보람이 생겼을 정도, 이렇게까지 세상이 변하다 보니 궁금증이 이는 것은 당연했다.

‘얘들은 얼마나 변했지?’

그래도 지속해서 연락하던 몇몇과 다르게 박덕구, 안기모는 연락할 수 없었던 인원 중 하나였다.

연락 좀 하라고 출시한 여신의 손거울을 개무시한 채 지들끼리 여기저기 싸돌아다녔고, 변장까지 했는지 수소문에도 걸려들지 않았다.

사람이 별로 없는 장소에서 던전 탐험을 했는지, 아니면 귀인을 만나 기연을 얻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정말로 뒈졌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거다.

둘이 함께 갔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5개월이 지나고, 9개월이 지나니 점점 더 불안해지기 시작.

어떻게든 찾으려던 놈들이 전진기지 공사판에서 놀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니, 지들이 거기서 왜 일을 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행보. 원래 이상한 놈들이었지만, 더욱더 이상하게 비쳤다.

‘최북단까지 올라오는 도중에 여행 경비가 떨어져서 오가지도 못하는 상황에 맞닥뜨려서 돈을 벌고 있었던 건 아닐 테고….’

그건 아닐 거다.

‘주변에 그럴듯한 몬스터도 안 보이고, 그렇다고 연락하기 쪽팔려서 거기서 임금 받아먹으면서 일한 건 아닐 거 아니야.’

이 돼지가 아무리 멍청해도 그렇게 바보 같을 리는 없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본인이 직접 체험하고 싶어서 거기에 틀어박히지 않았을까 싶다.

원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녀석이었으니, 그런 시답잖은 이유로 일하고 있었다, 생각해도 무리가 아니리라.

얼마 지나지 않아 김미영 팀장이 말한 방송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아이디미정: 저게 어떻게 박덕구랑 안기모임? ㅋㅋㅋㅋㅋ]

[흙수저: 나도 아닌 것 같은데… 지금 이 타이밍에 저 둘이 저기에 왜 있겠음.]

[아이디미정: 천연사러버, 걔도 대충 떡밥 하나 던져보고 아니다 싶으니까 나간 거겠지, 뭐. 인증은 개뿔… 지금 보니까 인증 글도 삭제됐던데 ㅋㅋㅋㅋㅋ 천연사러버 뭔가 찔리는 게 있나 봄 ㅋㅋㅋㅋ]

[린델마을주민: ㄴㄴㄴ 휘장은 진짜였음. 내부적으로 무슨 문제가 생기겼나 봄. 원래 파란 길드, 그런 거에 민감하니까. 그리고 저 사람들은 아무리 봐도 박덕구랑 안기모임. 지금 보니까 알겠음. 멀찍이서 한 번 본 적 있는데, 딱 저런 모습이었던 거 같음.]

[아이디미정: 뇌피셜 또 나오죠. ㅋㅋㅋㅋㅋ]

[린델마을주민: 넌 도대체 뭐가 문제임.]

‘역시 훈훈하네.’

오늘도 활기찬 베니고어 넷의 모습이 다소 재미있게 느껴졌다.

누군가 떡밥을 뿌리고 사라졌는데, 채팅창은 기다 아니다로 논쟁 아닌 논쟁을 벌이고 있는 상태.

이게 도대체 뭐고, 왜 이런 것으로 논쟁을 벌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토론에 임하는 이들은 굉장히 진지하다.

저들이 박덕구와 안기모가 아닌 이유에 관한 몇 가지 증거를 내놓는 이들부터, 단순히 분탕을 치기 위해서 논쟁에 참전한 분탕러까지.

심지어 현 상황에 방송을 켠 BJ를 욕하는 글도 많이 보인다. 그리고 그에 반박하는 이들의 개싸움.

오랜만에 보는 베니고어 넷의 발가벗겨진 모습은 여전히 다양한 인간군상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그들의 토론 결과는 상관없다. 전장에서 몬스터들과 싸우고 있는 남자 둘을 판단하는 건 오로지 내 몫이었으니까.

사실 확인하려고 까치 눈을 뜰 필요도 없다.

‘맞네.’

멀찍이서 봐도 저 둘이 박덕구와 안기모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처음 보거나 얼마 보지 않은 이들은 눈치채기 힘들겠지만, 함께한 시간이 긴 만큼 사소한 동작에서도 녀석들의 모습이 보인다.

덩치도 그렇고, 키도 그렇고 누가 봐도 박덕구와 안기모다.

‘박덕구, 이 새끼는 무슨 성장촉진제를 먹었나. 키가 더 큰 것 같은데.’

위로도 살짝 올라가고 옆으로도 살짝 늘어났다. 심지어 얼굴에는 턱수염을 잔뜩 기른 모습, 안기모는 예전과 그리 다르지 않다.

게다가 근접전에 굉장히 여유가 생겼다는 게 느껴졌다.

본래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이전과는 비교하는 게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로 세련된 느낌, 딱 그런 표현이 어울리는 움직임이었다.

‘정말로 최상급 전사라고 해도 믿겠는데….’

박덕구는 또 어떠한가.

‘진짜로 성장했네, 진짜로.’

정확한 스텟 상승 수치는 직접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지만, 부족했던 스텟들도 조금씩 올라간 것 같았다.

본인의 단단함을 잘 이용해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모습.

둘 다 힘들이지 않고 적당히 싸우고 있는데도 이 정도라면, 정말로 힘을 냈을 때는 꽤 위협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교국 8좌 정도는 되겠네.’

김현성과 정하얀, 차희라 같은 규격 외의 괴물이 넘쳐나서 그렇지, 교국 8좌가 그렇게 약한 카드는 아니다.

여럿이 뭉치면 준신화 정도까지는 뚫어낼 수 있으니까.

안기모는 물론이거니와 박덕구까지 그 정도 수준에 올랏다는 것에는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박덕구, 얘는 어떻게 성장한 거지?’

신체 능력이 얼마나 올라갔는지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극적으로 스탯이 성장한 것 같은 느낌보다는, 조금 더 영악해진 듯한 느낌이다.

고급 마력 운용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니 섬세하게 마력을 다루는 것은 물론, 본인의 몸을 컨트롤하는 법을 배웠으리라.

불필요한 동작이 없어지고, 동작이 한층 더 간결해졌다.

힘을 주는 방법을 알고, 막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겨우 1년 만에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얼굴을 뒤덮고 있는 수염도 그렇고….

[린델마을주민: 진짜로 박덕구 맞는 것 같음. 저 정도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진짜 장난 아니네. 안기모야 원래 붉은 용병에서 날리던 사람이어서 어느 정도는 예상했는데… 박덕구는 진짜 놀라움.]

[아이디미정: 원래부터 파란 길드는 전부 재능 많은 사람만 모여 있었음. 김현성이 애초에 그런 사람들만 모으기도 했고… 파티원으로 가입하기가 얼마나 빡센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오지. 만약에 저게 박덕구면 그동안은 본인이 그렇게 노력하지 않았던 게 분명함.]

[린델마을주민: 무슨 소리. 박덕구는 훈련 벌레로 린델 내에서도 유명함. 새벽부터 일어나서 검 휘두르고 훈련받는 게 일과인데 본인이 노력을 안 한다니. 이상한 소리 할 거면 그냥 입 다물고 있으셈. 김양 님. 저 사람 차단 안 돼요?]

압도적인 활약을 보이면 보일수록 몬스터의 숫자는 점점 더 줄어가고 채팅창은 더욱더 활발해진다.

내가 보기에도 제법 멋있게 느껴졌으니 이걸 보고 있는 다른 이들은 얼마나 흥분하겠는가.

다소 과격한 표현이 나오기도 했고, 몬스터한테 당하는 걸 기다리고 있는 놈들도 있었지만, 결국에 제53구역 건설 현장의 병력은 많은 숫자의 몬스터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사실 저 몬스터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는 대충 예상이 되었지만, 일단 그건 가슴 속에 묻어두기로 하자.

주변 병력이 박덕구와 안기모에게 인사하며 예의를 표하는 장면까지 보고 있던 순간이었다.

손거울이 잠깐 떨리기 시작한 것.

“아.”

정하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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