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8
회귀자 사용설명서 568화
1년 이후의 대륙(6)
최초의 파업은 이집트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나라의 왕이자 신으로 군림하고 있던 파라오를 대상으로 한 파업이었으며 시위였다.
제대로 된 임금이 지급되지 않자, 당시 피라미드를 만들었던 기술자와 노동자들이 정부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것이다.
심지어 피라미드 안을 점거하는 등, 현재 시위의 형태를 띤 움직임까지 벌어졌다고 하니 무척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인간에 대한 기본권들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던 상태에서 벌어진 시위가 아니었던가.
불과 몇십 년, 아니, 몇 년 전만 해도 최루탄과 꼬부기 물대포를 뿌리는 행태의 과격 진압이 있었으니 그때 그 시절에는 오죽할까.
스킬, 분노한 파라오의 일격이 피라미드 노동자 시위대의 뚝배기 위로 꽂힐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의외로 노동자들의 승리.
자신이 죽기 전까지는 꼭 피라미드를 완성해야 된다는 과업이 파라오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물론 다른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겠지만, 중간 관리자들과 윗대가리들 역시 공사가 지체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하나만은 분명했다.
‘임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으면 파라오의 무덤을 도굴하겠다.’ 같은 신성 모독성 발언을 하고서도 처벌을 받지 않고 임금을 받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대단하긴 해.’
당시 이집트에서 노동자들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아니면 기술자들이 부족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임이 분명했다.
‘이걸 여기에 대입시키는 건 조금 무리가 있지만….’
현재의 내 상황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무조건 전진기지를 완성해야 한다는 과업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무조건 완성해야 한다.
만약 내가 임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은 관리자의 입장이었다면, 억지로 쥐여줘서라도 공사판으로 떠밀었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거다.
‘그런데 씨바, 이 새끼들은 왜 이러는 거야?’
아무리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한들, 처우 개선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태업을 하기에는 각 구역의 대우가 너무 좋지 않은가.
보온 마법도 유지해 줘, 모험가급의 임금도 넣어줘, 보험도 돼, 다른 편의 사항을 모두 언급하기에는 입이 아플 정도다.
심지어 휴가도 쓸 수 있었고, 야근을 하는 경우에는 야근 수당도 넉넉히 넣어주고 있었다.
꿈의 직장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니, 노동자들 대부분이 이런 환경에 만족한 것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다.
심지어 사제들도 대기하고 있지 않던가.
만약 여신의 손거울이 아니었다면, 이 사업의 임금을 감당하지 못했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정신이 나간 건가.’
“아니면 내가 너무 편하게 해준 건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 같아서 괜히 씁쓸해지네.”
“아니요. 확실하게 효율이 나오기는 했어요. 성과금도 있으니까 안 나오는 게 이상한 상황이기는 하지만요. 애초에 이런 환경을 마련하지 못했다면, 아무리 채찍질해도 지금처럼 효율이 나오지는 않았을 걸요. 실제로도 겨우 1년 만에 여기까지 왔잖아요. 생각해 봐요. 겨우 1년이에요.”
“누나 말은….”
“네. 겨우 1년 만에 여기까지 왔는데 부작용이 없는 게 이상한 상황이라는 거죠. 애초 3년 계획이 발표됐을 때부터 어느 정도는 부작용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이런 형태로 나타나는 거고요. 일단 공사 초반에 오빠가 관리자들을 너무 쪼았던 게 첫 번째. 심지어 한 사람은 아예 쳐 내기까지 했으니 지레 겁을 먹는 게 당연한 거겠죠.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1년이면 사람 하나 고이는 데 충분한 시간이잖아요? 보고 체계에 허점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고 봐요.”
“흠….”
“애초에 오빠 사람들로만 구성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테지만….”
“그건 나도 어쩔 수 없었으니까…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인선을 전부 내 쪽으로 채우기에는 무리가 있거든. 관리 위원회가 전반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는 해도, 눈에 보이기에는 동등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니까. 내가 괜히 파란 길드를 탈퇴했겠어?”
“이해해요.”
“교국과 린델에서 가져가고 있는 지분이 가장 많은 건, 투자한 걸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지만 전 대륙이 하나가 되는 그림을 그려주기 위해서라도… 같은 과업을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줘야 돼. 공화국이나 연방, 이종족, 연합, 그것뿐이야? 각 교단도 조금씩 지분을 나눠줘야 하는데… 최대한 내 사람들로만 구성하려고 해도 여기저기에 구멍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니까. 솔직히 너무 급하기는 했어.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네.”
“뭐에 홀린 것 마냥 엄청나게 급했죠. 저도 열심히 해본다고 했는데… 단기간 내에 이 넓은 지역의 현장을 완벽하게 관리하는 건 무리였네요. 위원회의 구성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고요. 아쉽지만 어쩌겠어요. 급격한 성장 이후에는 항상 부작용이 따르는 법인데.”
전혀 다르지만, 왠지 모르게 정하얀을 생각나게 하는 마지막 대사였다.
‘그 대사는 왠지 불길하니까. 그만하자.’
씁쓸한 마음에 괜스레 이지혜를 바라봤다.
항상 보던 얼굴이었지만, 오늘따라 제법 뾰로통한 얼굴이 눈에 보였다.
단발머리에 작은 키, 얘는 첫 3개월 이후로 계속 붙어 있었기 때문에 뭐가 달라졌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예전 그대로 같았지만, 최근 스트레스를 받는지 조금은 초췌한 모습, 실제로 수면 시간도 나보다 적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전반적인 부분에 모두 다 그녀의 손이 들어가 있으니 오죽할까.
조금 쉬게 해주고 싶었지만, 이지혜가 휴식이라도 취하면 업무 전반이 마비되는 것같이 느껴졌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눈과 귀는 물론 손과 발의 역할까지 해주고 있으니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이후에 대응 방향은 있어?”
“고민 중이에요. 그냥 확 다 잘라 버리고 밀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은 사태 파악도 제대로 안 되어 있는 상태니까요. 5현장 쪽으로 감찰단을 보내기는 하겠지만, 글쎄요…. 효과가 그리 클지는 잘 모르겠고, 일단 그쪽의 진전이 느린 것은 확실하니 뭔가 있기는 할 걸요. 아마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될 거예요. 5구역은 우리 계획에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니까.”
“다른 쪽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거지?”
“네, 그만큼 천천히 한번 둘러봐야죠.”
“둘러보는 건 둘러보는 거지만…. 아무리 우리가 놓친 부분이 있었다고 해도 여기서 어떻게 더 처우 개선을 해달라는 건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되네, 진짜.”
“저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같은 조건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온다는 건 경영자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죠. 애초에 임금도 주지 말걸 그랬어. 강제 징집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래도 이야기가 나오고, 저래도 이야기가 나왔다면 그냥 돈이라도 아끼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요? 개똥밭을 굴러봐야 지금 있는 곳이 천국이라는 생각이 들지. 보온 마법부터 확 빼버릴까요?”
“아냐. 작업 속도에 차질 생기는 건 최대한 지양하고 싶거든… 그리고 강제로 징집했다면 반발이 너무 심했을 거야. 대외적인 이미지에도 문제가 생길 테고….”
“차라리 윗대가리 쪽에 문제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니까요. 아직은 인간을 믿고 싶다고요, 진짜.”
‘네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닌 것 같다만….’
나 역시 이지혜의 생각에는 어느 정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가능성은 세 개네요.”
“응.”
“첫 번째는 책임자 쪽에서 뭔가 문제가 있을 경우… 아니, 애초에 문제가 있기는 있네요. 보고를 안 하는 것 역시 문제라고 할 수 있으니까.”
“누나 말은 중간에서 해 처먹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잖아.”
“네, 정말로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을 경우요.”
“다른 건 몰라도 방산비리 하는 놈들은 전부 다 쓸어버려야 되는데.”
“그건 동의해요. 두 번째 가능성은 정말로 우리 노동자들이 배가 불렀을 경우고요. 제발 이건 아니었으면 좋겠다, 제에발.”
“…….”
“그것도 아니라면… 어딘가에 작전 세력이 있다던가.”
“작전 세력 쪽은 가능성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로그도 안 남았다며.”
“아직 찾지 못한 것뿐이지 가능성을 아주 버린 건 아니에요. 베니고어 넷에 로그가 남지 않았더라도, 서로 연락을 취할 방법은 극단적으로 적지만 없는 건 아니니까요. 우리가 적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 작전 세력의 존재 가능성을 버리기에는 조금 이르죠.”
“대안은?”
“일단 감찰단부터 기다려야죠. 조금 더 포괄적으로 바라볼 생각이에요. 계속해서 하는 말이지만… 거기에 있는 노동자들이 문제라고 생각하기는 정말 싫거든요. 인간혐오 걸릴 지경이라고요.”
‘누나가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오빠 보고 정말 나는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주변만 둘러봐도 상상 이상인 놈들이 많다니까요. 솔직히 첫 번째일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봐도 되니까….”
“5구역 책임자가 누구였지.”
“미하일이요.”
“아.”
‘미하일.’
연합 쪽 인선이 필요해 영입한 인물 중 하나였다.
연합 내에서도 유명한 온건파이기도 했고, 청렴결백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으며 이상론자이며 유명한 학자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쪽에서도 미하일의 영입에 꽤 많은 공을 들였다.
1번부터 10번 기지까지는 1선에서 바깥 놈들을 맞이해야 하는 만큼 특히나 더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1, 2, 3, 6, 7, 9, 10은 이기영이 픽한 인선.
10번 시드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이 덜한 4번 현장과 5번 현장, 9번 현장은 외부인을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
공화국에도 한 자리 넣어줬어야 했고, 연합에도 한 자리를 넣어줘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일을 해줄 인물이 필요했다.
미하일은 그 조건에 딱 들어맞는 이들 중 하나였다.
마지못해 받아들인다고 했을 때는 얼마나 안심했던가.
‘그 사람은 아닐 텐데….’
실제로 중간에 돈을 가로채 자기 욕심을 위해 사용할 사람은 아니다.
마음의 눈으로 직접 확인한 성향과 고유 기벽도 무난함 그 자체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연합 내에서도 청렴하기로 유명한 사람이고, 뒷조사도 이미 다 해보지 않았어요?”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오는 사람이기는 해.”
“어떻게 해볼까요? 조금 더 심층적으로 털어볼까요?”
“너무 힘쓰지는 마. 은근슬쩍 찔러주려고 해도 모두 다 거절한 사람인데. 일단은 작전 세력이 있는지부터 털어보자. 아, 그럴 게 아니라 한번 만나보는 게 좋겠네.”
“누구요, 미하일이요?”
“응, 이쪽으로 불러. 그 사이에 현장으로 사람들 좀 보내고.”
“괜찮겠네요.”
‘길드원들보다 이 사람을 먼저 만나게 생겼네.’
“지금 바로 그리폰 보내는 게 좋을까요?”
“응,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따로 추궁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지는 말자고. 여러 가지로 준비해 올 가능성도 있으니까.”
“네, 그렇게 할게요. 만나서 차나 한잔 마시자고 하죠. 뭐.”
“응, 그럼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야?”
“네.”
“그럼 저녁이나 같이 먹자, 누나.”
“바빠서 간단히 때우려고 했는데… 이러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죠. 이거 데이트 신청 맞죠? 오빠?”
“마음대로 생각해.”
이지혜의 말대로 그냥 밀어버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작업에 차질이 생기는 일은 최대한 지양해야 했다.
도대체 어떻게 관리하고 있길래 태업 이야기가 나오고, 심지어는 제대로 보고조차 되지 않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5구역이라….”
“신경 쓰여요?”
“당연하지.”
“너무 스트레스받지는 마요, 오빠.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범주 내에 있는 일이니까. 생각보다 별일 아닐 거예요.”
나 역시 기도하고 싶은 부분이다. 제발 별일 아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