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575화 (566/1,590)

# 575

회귀자 사용설명서 575화

반동분자(1)

“죄송, 죄송합니다. 여기까지… 행차하게 하다니….”

“굳이 경비대장님께서 죄송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시위대는 저희 쪽에서 수습할 테니 강제진압 명령 멈추세요. 최소 병력만 남기고 나머지 인원들 역시 전부 대기 조치합니다.”

“명,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추가로 사제들 곧바로 투입해서 부상자 치료 부탁드리겠습니다. 벽처럼 쌓인 마차들도 치워주시고요. 후우….”

“죄송합니다.”

“아니요. 계속 죄송할 필요 없습니다. 경비대장님은 명령만 잘 듣고 매뉴얼대로 처리한 게 전부일 테니, 뭐…. 정말로 죄송할 일이 없는지 있는지는 이후에 확인해 보면 될 테고… 그보다 미하일 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위원장님께서 들어오셨을 때 전갈을 넣었습니다. 아마 곧 나오실 겁니다.”

‘이 개새끼, 진짜.’

환호성 소리를 뒤로하고,. 청사의 착륙장으로 내려오자 경비대장이 곧바로 이쪽을 반겼다.

무척이나 떠는 모습은 가관, 갑작스럽게 일이 커졌으니 저렇게 떠는 것도 이해는 간다.

불법 시위가 일어났고, 책임자 입장에서 진압을 하기는 해야겠고….

위에서도 진압 명령이 내려오니 여러 가지로 정신이 없지 않았을까.

나였어도 멘탈이 반쯤 나갔을 게 분명했다.

혹시라도 처벌을 받거나 꾸지람을 받을까 싶어 눈치를 보는 모습은 꽤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모양새.

정말로 이 일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조사해 봐야겠지만, 개인적으로 판단하건대 저 자식과 커다란 연결점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최근에 이곳에 많은 일이 일어났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네.”

“시위도 그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고요.”

“저, 저는 그런 일은 자세히는…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정말로 그렇길 빌겠습니다. 일단 제가 말씀드린 것 처리하세요.”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위원장님.”

사실 메인은 눈앞에 있는 경비대장이 아니라 배신자 미하일이 아닌가.

‘이 개새끼가 마중도 안 나와?’

분명히 보고를 받았을 텐데도 나오지 않은 걸 뭐라고 생각해야 될지 모르겠다.

괜스레 먼 곳을 바라보자 시위대가 한 곳에 모여 통제에 따르는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아마 높으신 분들의 대화가 시작될 테니 잠자코 기다려 보자는 여론이 형성된 모양이다.

물론 바크 세르게이와 아르기르모, 예트니코바가 내 모습을 봤을 테니 그들의 입김이 들어간 결과겠지.

마음 같아서는 곧바로 박덕구 이 새끼를 만나 뒤통수라도 한 대 치고 싶었지만, 시위대의 중심에 있는 녀석에게 친한 척 다가가기도 쉽지가 않았다.

아마 일이 대충 수습되면 먼저 찾아오지 않을까.

그렇게 약 3분 정도를 기다리자 한 인형이 시야에 비치기 시작했다.

젊어 보이는 여성, 본 적은 없었지만 이름이 뭔지는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나탈리….’

“처음 뵙겠습니다, 위원장 님. 그리고…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미하일 님의 아내 되는 사람입니다.”

“뭐, 이것저것 자기소개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보다… 미하일 님은 어디 가시고….”

“미하일 님께서는 지금 위원장님을 맞을 준비 중이십니다. 이렇게까지 급하게 찾으실 줄은 몰랐다고….”

“…….”

“…….”

“뭐라고 변명할지 기대되네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굳이 여러 가지 준비할 필요 없을 텐데, 아무튼 들어나 봅시다. 저도 궁금하기도 하니… 이렇게까지 개판이 됐는데 변명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제가 섭섭했을 겁니다. 앞장서세요.”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아니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멈추십시오.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시면 베겠습니다.”

직접 모시겠다는 말에 베겠다고 대답한 것은 내가 아니다. 곧바로 옆쪽으로 붙는 믿음직한 우리 존재, 쌍검의 박리안.

‘열일 하네… 열일 해.’

미하일과 나탈리에게는 전투 능력이 없다.

이 청사 안의 다른 이들이 박리안 이상의 전투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목적이 목적인 만큼 최소한의 경호 조치는 필요하다고 여긴 모양이다.

이런 것 필요 없다고 외치고 싶기도 했지만,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이런 포지션을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전하다고 외친 이후에 뒈질 위기에 처하는 것은 너무나도 흔한 클리셰가 아닌가.

당연히 이쪽은 그런 종류의 클리셰의 희생양이 될 생각은 없다.

‘안전이 최고여….’

박리안 역시 그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모양.

몇 미터 이상은 붙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 후에야 마음을 놓은 듯한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덕분에 제법 요상한 그림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데는 커다란 지장이 없다.

친위대 중 한 명은 나탈리의 뒤를 조용히 따라가고 있는 형국이었는데… 아마….

‘위협이겠지, 뭐.’

혹시라도 다른 짓거리를 할 시에는 곧바로 조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닌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나와는 반대로 괜스레 딱딱하게 굳은 나탈리의 얼굴이 눈에 보였다.

“앞장서셔도 됩니다.”

“네, 그, 그럼 편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언제 한번 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뵙게 되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좋은 일로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지금 알고 계시고, 예상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전부 설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미하일 님께서? 아니면 당신이? 참… 재미있더군요. 며칠 사이에 여기서 일어난 일들이 당황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어요. 제가 분명히 따로 불러 말씀드렸는데도 불구하고 일이 이 지경까지… 오게 한 건지…. 물론 어쩔 수 없는 변수가 있었다고는 하나, 일만 제대로 수습하셨어도 여기까지 오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

“지원 자금을 뒤로 빼돌린 것도 용서할 수 없지만, 그것보다 더 용서가 안 되는 건 당신네들의 무능이에요, 무능.”

“그건….”

“북부 전체에 퍼져 있는 전진기지들이 털면 먼지 하나 안 나올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털면 먼지 하나 안 나오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다. 중앙에서도 그건 전부 알고 있어요. 어떻게 모든 인간이 깨끗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아무리 관리한다고 한들, 권력을 얻은 이들이 부패하는 걸 전부 막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다만 당신네들은 정도가 너무 심했고, 수습하는 과정도 형편없었어요. 가지고 있는 걸 숨기느라 은폐하는 데 바빴지. 그 힘을 다른 곳에 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쯤 되면 일부러 저를 여기로 부르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했다는 거 아닙니까.”

“무언가 오해를 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이기영 위원장님. 일단은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제가 언제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고 했습니까…. 이야기 정도는 들어주려고 여기까지 온 건데… 박리안 씨.”

“네, 부길드마… 아니, 위원장님.”

“4구역과 6구역에서 온 병력 동원해서 청사 안에 있는 인원들 전부 제압하라고 전달해 주세요. 너무 소란스러워지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제가 지나간 이후에 작업해 주시면 됩니다.”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아, 그리고… 두 명 정도 먼저 뽑아서 미하일 님 좀 회의실로 데리고 오세요. 도통 나오실 생각을 하지 않으니 제가 직접 모셔야 할 것 같아서….”

“뜻에 따르겠습니다.”

“고마워요.”

“일일이 표현해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위원장님.”

‘뭐라고 하려나… 진짜로 궁금하네.’

창백하게 굳은 얼굴을 보니 내가 다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다.

‘이래서 사람은 죄를 짓고 살면 안 돼….’

마음속에 켕기는 게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저런 표정을 짓게 마련이다. 이제야 조금 상황 파악이 됐는지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도 보인다.

‘이 여자도 참 성향이랑 기벽은 좋은데 말이야.’

어쩌다가 이런 일에 연루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간에 그렇게 계속해서 청사를 나아갔다.

가는 길에 여신의 손거울이 울려 이지혜인지 확인해 봤지만, 조혜진이라는 이름 석 자가 떡하니 박혀 있어서 가볍게 무시했다.

마지막 통화가 도발 아닌 도발로 끝났으니 보나 마나 쓸데없는 이야기이지 않을까.

그렇게 나탈리와 함께 자리한 곳은 커다란 회의실.

무척 긴장한 표정의 미하일이 눈에 띄어왔다.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 우리가 먼저 도착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건 기우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누가 봐도 창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녀석을 보니 괜스레 우리가 함께 나눈 추억들이 떠오른다.

‘시바… 우리 즐거웠잖아.’

간만에 마음이 맞는 친구가 결국 나를 배신하고 말았다는 생각이 갑자기 훅하고 치고 올라온다.

“오랜만입니다, 위원장님.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면목 없습니다.”

“다들 그렇게 말하더군요. 중앙 정부에 너무 오랫동안 틀어박혀 있었던 모양입니다. 거참…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미하일 님. 신뢰의 대가가 이런 식으로 되돌아오니 속이 쓰립니다, 속이 쓰려.”

“저… 잠, 잠깐 차를 준비하러….”

“움직이지 마십시오.”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막지 않으셔도 돼요, 박리안 님. 안 그래도 입이 심심했는데… 잘됐네요.”

불안한 얼굴로 회의실로 빠져나가는 나탈리를 힐끗 바라보자 친위대 중 한 명이 그녀를 따라나섰다.

그리고 그 뒷모습을 불안한 얼굴로 바라보는 미하일의 얼굴 역시 눈에 띈다.

시선을 돌리다 잠깐 눈을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러 가지로 조사해 봤습니다. 물론 당신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었습니다만, 절차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무척 재미있더군요. 흥미롭기도 했고요. 지원 자금이 연합 쪽으로 계속 새어나가고 있던데… 뭐 빚이라도 지셨는지, 아니면 처해 먹을 수 있을 때 해 먹자는 심정이었는지, 제 알 바 아니지만 속된 말로 X나게 해 드셨더라고요.”

“…….”

“덕분에 제법 고생했었습니다. 이 정도 자금을 뒤로 빼돌리고, 세탁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역시 시발,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이라니까. 부패의 상징인 사람한테 청렴결백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 말이 되나 몰라.”

“…….”

“할 말이 없으신 것도 이해는 됩니다. 그래도 준비한 게 있다고 하니 한번 들어나 봅시다. 결과야 달라지지 않겠지만, 어떻게 발버둥 치는지는 보고 싶은데….”

“오해이십니다.”

“그런 말 말고 뭔가 체계적인 변명 없어요? 없으면 제가 질문 좀 합시다. 그 돈 다 어디로 갔어요?”

“…….”

“연합 쪽으로 흘러갔다는 건 알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 이상한 점이 많더라고….”

“…….”

미하일이 막 뜸을 들이고 있을 때였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려온 것.

찻잔과 다과상을 들고 온 미하일의 와이프가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건네왔다.

친위대 한 명이 계속 붙어 있었기에 무슨 장난을 칠 시간이 있었을까 생각했지만, 습관적으로 마음의 눈을 켜 안에 든 내용물을 확인했다.

‘하… 씨바.’

“아,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가네요.”

[무색무취의 독이든 차-전설 등급]

[일반적은 방법으로는 구별할 수 없는 엘더 아라크네의 독이든 차.]

“이 반동분자 새끼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옆쪽 벽면이 터져 나오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