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2
회귀자 사용설명서 602화
베니고어 넷(3)
-대륙의 선택받은 용사가 성스러운 검을 그 손에 쥐고 거짓된 천사를 연기하는 악마들의 어둠에 대항할 것입니다. 노을빛의 검을 휘두르는 영웅의 왼편에 서, 인류를 어둠에서 구하는 것에 이바지할 것입니다. 가장 순수한 영혼을 가진 연금술사의 적을 해치우는 검이 될 것입니다. 타락한 어둠에 대항하는 한 줄기 거대한 빛이 될 것입니다.
-…….
-이는 빛의 선물이요, 거짓된 이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 여러분들의 희망입니다. 이 검은 오랫동안 대륙에 남아 대륙을 지키고 수호하는 검으로써, 수 세기 이후에도 대륙을 보호하며 대륙과 운명을 함께할 것입니다.
-…….
-베니고어의 이름 아래 싸우는 빛의 아들딸들이여. 이 부족한 여신은 그대들이 회색빛의 검이 주는 시험을 이겨낼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시련과 어둠에도 굴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베니고어시여.
-그대에게는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바젤 교황.
-어찌 이 아둔한 필멸자에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부디 이 순수한 영혼을….
-아아아아….
-…….
-…….
-아, 네. 지금까지 오늘 아침에 일어난 일을 다시 보고 오셨습니다. 아직까지 교황청에서는 공식적인 성명이 발표되지 않고 있는데요. 뭔가 새로 들어온 소식이 있습니까? 김성경 기자?
-네, 현재 현장에 나와 있는 채널 베니고어에 김성경 기자입니다. 아쉽게도 아직 공식 성명이 발표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많은 대륙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여러 가지 소문들이 확산되고 있는데요. 이에 일부 교황청 관계자들은 이기영 명예추기경님께서 강림 후유증에 벗어나는 즉시 성명이 있을 것이라 전해왔습니다.
-예언과 성검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라고 봐도 되는 겁니까.
-네, 추가로 이 성검의 주인을 어떤 식으로 선택할지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성검이 주는 시련이 어느 정도인지, 또 다른 조건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격렬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다면 언제 즈음에 논의가 끝날 것인지에 대해서도….
-네,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현재 회색빛의 성검이 떨어진 위치에도 교황청의 신성기사단이 엄밀히 통제하고 있습니다.
‘아… 이거 도대체 몇 번이나 똑같은 장면을 보여 주는 거야.’
하지만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지구에서도 비슷하지 않았던가.
방송사에서 보여줄 것이 없어, 보여준 부분을 또 보여주고 또 보여주는 일은 으레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교황청에서 새로운 소식이 들리면 이제 그걸로 또 한두 시간을 우려먹을 게 너무나도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뗄 수 없게 된다.
거대한 빛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는 회색빛의 검. 살면서 이렇게까지 장엄한 광경을 본 적이 있었던가.
모든 사제가 동시에 신성력을 뿜어대고 있다.
마침내 회색빛의 검이 대지에 자리 잡았을 때의 모습은 더욱더 장관이라 할 수 있으리라.
교황청의 인사들이 모두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있지 않은가.
누가 보면 정지화면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 한가운데서 정신을 잃은 채로 바젤 교황에게 부축받고 있는 명예추기경의 모습은 마치 신화 속의 한 장면이 아닐까 의심하게 될 정도였다.
베니고어 넷만 해도 폭발적이라는 반응이라는 표현이 무색해질 정도로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이 경우에는 더하겠지.’
본인이 선택받은 용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습관적으로 여신의 손거울을 꺼내 들자 역시나 이미 불타고 있는 게시판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 명예추기경님은 괜찮으실지 모르겠네. (댓글: 23)]
[작성자: 천연사러버]
[제목: 교황청 실황 방송 불판 (댓글: 5,023)]
[작성자: 린델마을주민]
[제목: 베니고어 예언, 해석해 봅니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도 대략 유추해 볼 수 있음 (댓글: 443)]
[작성자: 꽃님이]
[제목: 친구가 기억상실증에 걸렸습니다. 알리지 말라고 하는데… 저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댓글: 122)]
[작성자: ㅍr랑색이 좋아]
거의 모든 게시판이 오늘 일어난 사건으로 도배된 상황이다.
그 와중에도 베스트 게시물에 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억상실증 썰이 괜스레 신경 쓰여 기계처럼 손가락을 놀렸다.
[제목: 친구가 기억상실증에 걸렸습니다. 알리지 말라고 하는데… 저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댓글: 122)]
[작성자: ㅍr랑색이 좋아]
[친구가 기억상실증에 걸렸습니다. 초창기 때부터 같은 파티에 들어가 동고동락하던 동료였는데, 며칠 전에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27군단이 대륙에 침공했을 때 생긴 후유증이라고 하는데,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는 온종일 눈물만 나오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네요.
마음 같아서는 파티원들한테 알려서, 다 함께 해결할 방법이 없는지 알아보고 싶은데… 이 친구가 폐가 되기 싫다고 알리지 말라고 합니다.
본인이 혼자 감당해 낼 수 있다고 하면서요… 답답하기는 하지만, 일단은… 알겠다고는 했는데 계속해서 정신을 잃는 일이 잦아져 신경이 쓰입니다.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후략]
[아이디미정: 뭘 어떻게 함? 자기 혼자 치매 걸려서 뒈지고 싶다는데, 그럴 때는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답임.]
[천연사러버: 위에 분탕종자 또 왔네. 저런 놈 댓글은 무시하시는 게 속 편하실 듯요, 작성자님. 일단 힘내시라는 말을 먼저 드리고 싶네요. 안 그래도 침공 후유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런 분 중에 한 분이라고 하니 무척 가슴 아파지네요. 제가 뭐라고 말씀드리기는 애매한 입장이지만… 일단은 친구분의 의견을 존중해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가장 힘드신 분이 친구분이실 거예요 …… 후략]
[아이디미정: 어쩌면 주작일 수도 있음. 요즘에 자기 정신적으로 아프다고 말하면서 대륙연금 받는 놈들이 좀 많음? 그리고 천연사러버는 매일 반말하더니 꼭 이런 글에서만 위로하는 척, 가식 오짐.]
[린델마을주민: 대륙연금 받고 싶으면 공개적으로 알리지 왜 혼자서 숨기고 끙끙 앓고 있겠음. 내 주변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는데… 솔직히 있을 법한 일임.]
[흙수저: 이야기 자체가 주작인 것 같은데… 군단침공 후유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는 한데. 내가 알기로 기억상실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없음. 그냥 추천받고 싶어서 관심병 걸린 환자가 주작으로 쓴 것 같은데.]
[ㅍr랑색이 좋아: 저도 차라리 주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디미정: 비추나 드셈.]
[ㅍr랑색이 좋아: 정말 주작 아닙니다. 진지합니다.]
‘아이디미정, 얘는 여기서도 어그로 끌고 있네.’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곧바로 뒤로 가기에 손을 가져다 댄다.
지금 중요한 건 이름 모를 모험가의 가슴 아픈 사연이 아니었으니까.
[제목: 아무래도 내가 선택받은 용사인 것 같음… (댓글: 423)]
[작성자: 엮은이김경식]
[그 말 그대로임. 어젯밤에 꿈에 베니고어 님이 나왔는데… 꿈이 조금 특이했음. 직접 다가오셔서 천천히 검을 내려주셨는데, 온몸이 신성해지는 기운이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어디에 사는 누구라고는 정확히 말은 못 하는데 아무튼 내가 신성계열이거든… 그렇게 꿈에서 깨어나서 보니까 신성력 스탯이 무려 5포인트나 올라가 있더라. 이 정도면 선택받은 용사 각 인정? 오늘 곧바로 짐 챙겨서 검 뽑으러 간다. 3일 후에 성지순례 하는 게시물이 될 예정.]
[흙수저: 이거 진짜 되면 대박이겠다… 미리 성지순례 합니다.]
[붉은용병취준생: 무슨 말도 안 되는 똥 글에 왜 이렇게 리플이 많이 달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들어가서 취업준비나 하세요.]
[아이디미정: 정말로 회색빛의 성검을 일반인들한테 공개할 것 같음? 그거야말로 더 말도 안 되는 소리임. 아마 이기영 명예추기경이랑 교황청의 높으신 분들, 또 대륙 보호관리 위원회에 높으신 분들끼리 후보들 물색하고 있을걸. 말로만 선택받았다 하는 거임. 분명히 회의 끝나면 ‘용사가 뽑혔습니다.’ 하면서 언론플레이 할 게 뻔함.]
[천연사러버: 뭐 알지도 못하는 놈이 여기서 뇌피셜로만 떠드는 거 보니까 웃겨서 어이가 없네. 아마 일반부터 공개할 거임. 물론 자격심사 정도는 하겠지만, 전 대륙인 대상이라고 들었음.]
[린델마을주민: 파란 길드 직원님… 정말이에요?]
[천연사러버: 자세한 건 못 말해줌. 그리고 파란 길드 직원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걸립니다.]
[아이디미정: 자격심사가 뭔데? 결국, 지들끼리 해 처먹겠다는 거 아님?]
[천연사러버: 베니고어 님이 하는 말씀은 똥으로 듣나. 회색빛의 검이 내려준 시련이라는 말 기억 안 나는 건 아니지? 일반인들 같은 경우에는 검에 손대는 순간 마력탈진 되면서 영혼 나감.]
[아이디미정: 또 지가 그걸 봤단다. ㅋㅋㅋㅋㅋ 이번에도 인증하는 척하고 글삭튀하려고?]
[역천사홍보위원회장: 천연사러버 님 말이 맞아요. 교단 내 성기사가 자기도 모르게 손 뻗었다가 신성력 다 빨리고 기절했다고 하더군요. 용사를 어떤 식으로 발견해야 하는지 그것 때문에 지금도 말 많아요. 뭣 모르고 일반인이 잡으면 그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데… 이걸 자유롭게 공개하기는 아무래도 조금 힘들겠죠….]
[아이디미정: 그걸 네가 어떻게 앎. 이 방에는 능력자 아닌 사람들이 없나 봐. 뭐, 다 지들이 보고 지들 말이 맞다고 하는데, 어이없네.]
[천연사러버 님이 역천사홍보위원회장 님을 차단하셨습니다.]
[역천사홍보위원회장: ??]
[흙수저: 차단 잘못 누르신 것 같은데… 아이디미정 님 차단하시려다가 손 미끄러지신 듯하네요.]
[천연사러버: ^^;;]
‘이 사람들은 평범하게 댓글이 끝난 적이 없네. 맨날 저렇게 서로 으르렁거리고….’
어디 사는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쯤은 실제로 얼굴을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주의 깊게 읽었던 것은 역시나 천연사러버의 댓글.
곧바로 글이 삭제되기는 했지만, 분명히 파란 길드의 휘장과 사원증을 인증하지 않았던가.
물론 그게 진짜라는 확증은 없지만, 적어도 아이디미정이 한 말보다는 확률이 높다고 느껴졌다.
‘확실히….’
베니고어 님께서 실제로 시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니, 일반적인 각오로는 집어 드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실제로 성기사가 검을 집어 들다 혼절할 정도라면 평범한 시험이 아닐 확률이 높다.
역시나 댓글 창에서는 이 건에 대해 양쪽으로 나뉘어 갑론을박을 벌이는 중이다.
한순간에 물타기가 완료되어 주제가 변질되는 흐름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당초에 글을 올린 엮은이김경식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토론의 현장이라 할 수 있으리라.
심지어 아직까지 댓글이 올라오는 도중이다.
[아이디미정: 애초에 성검을 집었다고 혼절하는 게 말이 되나? 님들 논리대로면 저건 성검이 아니라 마검이라고 불러야 하는 물건임. 치명적인 부작용을 떠안고 있다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베니고어 님이 미쳤다고 저런 걸 내림? 안 그럼?]
[린델마을주민: 말이 안 되지는 않지. 애초에 베니고어 님께서 가장 강조하신 게 자격 아니었나. 그럼 저 검을 그냥 동네마을주민한테 줘야 됌?? 악마에 대항하려는 검에게 선택받는 사람이니 적어도 이 정도 기운은 아무렇지도 않아야 하는 게 맞지 않음?]
[아이디미정: 또 뇌피셜이죠? 말에 반박하려면 좀 제대로 된 증거 좀 들고 와주세요.]
[린델마을주민: 만약에 정말로 선택받은 용사가 나온다면 검을 집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거임. 분명히. 나는 무서워서 시험 못 해볼 듯. 궁금하면 아이디미정이 직접 인증해 보면 되겠네.]
‘나도 한번 가볼까?’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혹시 아는가. 정말로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일지.
‘가긴 어딜 가…. 당장 5현장 작업하느라 바쁜데.’
박 씨 아저씨, 아니, 박덕구 아저씨한테 연락하면 자세하게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역시나 무서움이 더 크다.
괜스레 침을 삼키며 다시 한번 여신의 손거울을 바라봤을 때였다.
-네, 김성경 기자입니다. 몰려드는 인파로 주변이 점점 혼잡스러워 지고 있는 가운데, 교황청 대변인이 공식발표를 위해 몸을 움직이고 있는데요. 아… 네. 제이나 대주교님께서 직접, 직접 나와주셨습니다.
드디어 윗분들의 입장이 정리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