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607화 (598/1,590)

# 607

회귀자 사용설명서 607화

천사 만들기(1)

성검의 주인을 찾는 일이 무척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예상하던 것만큼 빠르지는 않았지만 베니고어 넷이 마비될 정도로 열렬한 호응이 있었으니 오죽할까.

처리 과정에서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 역시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교황청에서 내놓은 시련을 통과한 이들이 성검이 꽂힌 장소로 시험대를 옮기기 위해 전 각지에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루라도 더 빨리 선택받은 용사를 찾아내기 위해 대륙 전체에 퍼져 있는 그리폰들이 매일 같이 하늘을 날아다녔다.

물론 대륙인들에게 약속했던 것처럼 이 모든 과정은 여신의 거울을 통해 전 대륙으로 퍼져 나갔다.

집계된 시청률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역대급. 내가 봐도 재미있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대륙 전체에 관심이 쏠리는 것을 증명하듯 밤낮 가리지 않고 시행되는 시험이 수도에 명물로 자리 잡을 정도였다.

여신의 거울이나 손거울로는 만족하지 못한 것인지 여러 도시에서 갤러리들이 모여들어 기묘한 집단을 형성했다.

그 갤러리들은 여신의 손거울을 통해 다시 한번 실황중계를 시작했다.

각각의 방송에 모여든 인원들이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며 의견을 주고받는 것은 으레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주목해야 할 루키들이 누구다.’, ‘어떤 지방에 괜찮은 녀석이 있더라.’, ‘북에서 내려온 검사 한 녀석의 기세가 요즘 심상치 않더라.’, ‘어떤 놈이 강하다더라.’, ‘사전시험부터 지켜보던 녀석이 하나 있었는데 성검의 주인이 될 자격이 충분하더라…….’ 등등 여러 여론이 형성됐고 급기야는 작은 팬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신의 거울로는 이 여세를 몰아 특집 방송을 편성, ‘선택받은 용사는 누구?’ 따위의 말을 지껄이며 루키에 대한 인터뷰와 정보들을 쏟아냈다.

가슴 아픈 과거를 드러낸 전직 소작농 현직 검사 지망생 소년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인터뷰.

모두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었고 확고한 목표와 신념을 가진 녀석들 역시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당연히 나 역시 1픽으로 낙점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고, 이들은 특혜 아닌 특혜 받아 더 많은 미디어에 노출되고 있는 상태였다.

이 기묘한 상황에서 가장 득을 봤던 것은 역시나 이쪽. 물론 경제적인 이득이 아니다.

대륙 각지에 숨어 있었던 원석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내가 대륙을 관리하고 있다고 한들 눈에 보이지 않는 원석들을 찾을 수는 없지 않은가.

솔직히 내가 예상했던 상황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 커다란 이벤트는 전혀 다른 쪽으로 내게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테이밍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던 산골 마을 양치기 소녀도 있었고, 마검사 정진호처럼 마법과 검 둘 모두에 재능을 드러낸 소년 역시 존재했다.

당연하지만 김현성 역시 이런 원석들의 등장에 기꺼워하는 반응이었다.

1회 차 에서도 발굴할 수 없었던 인재들이 간혹 튀어나니, 즐겁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몇몇은 본인이 직접 영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할 정도였다.

이런 인재들은 아쉽게도 최종 시험에서 떨어지기는 했지만, 눈이 옹이구멍일 리가 없는 대형 길드나 국가들이 인재들에게 접선을 시도했고, 루키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죽하면 분기마다 전 대륙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시행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까.

‘지구에 있는 콘텐츠가 괜히 먹히는 게 아니야.’

이유가 있으니까 먹히는 거다.

딱 그 짝이라고 생각했다.

루키들은 계약을 받아들이고 길드는 인재들에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써먹을 수 있는 전투원을 공짜로 키우고 있는 상황.

그 와중에 합동 훈련소에서 도착한 병력이 각 현장에 배치됐고 곧바로 수성 훈련을 시작했다.

김현성과 조혜진이 일을 똑바로 처리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훈련이 잘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때 최근 유지했던 컨셉을 버리고, 아주 오랜만에 김현성에게 포근한 미소를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 이후에는 다시금 떨어져 서로의 업무에 집중하는 나날.

베니고어의 일이 여전히 불안했지만, 조혜진의 조율에 힘입어 5현장의 복구 작업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체류하는 우리 3인의 연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써먹을 수 있겠는데…….”

시험관 안에서 눈을 감고 있는 전혀 새로운 생명체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한소라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대단하시네요, 확실히…….”

‘사실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야.’

한소라가 보기에는 확실히 놀랄 만하겠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래, 내가 그렇게까지 멍청하지는 않지.’

[라무스 터커의 연금학 개론–영웅 등급 -연금술사 전용]

[대 연금술사 라무스 터커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표적인 연금술사 중 한 명입니다.

공화국의 군부 연금술사로 소속되어 생체 연성과 물약 연성 분야의 1인자로 그 명성을 날렸지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숙청당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애초에 이걸로 연금술 입문을 시작했는데…… 이 정도도 못하면 안 돼…….’

기본기를 생체 연성으로 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당시에는 물약 연성 분야에 조금 더 집중해 시간을 투자하기는 했지만, 이기영이라는 캐릭터가 조금 더 균형적으로 성장했다면 이쪽 분야의 권위자가 되어 있었어도 이상하지 않다.

생체연금 소환이라는 독자적인 직업까지 만들지 않았던가.

그동안 키메라를 건드릴 수 없는 이유였던 흑마법 지식의 부재 역시 벨리알의 선물로 완벽하게 해결이 끝난 상황이다.

마치 퍼즐을 맞추거나 레고를 만드는 것처럼 뚝딱 성공해 버렸을 때는 나 자신도 입을 벌리며 내 손을 바라보게 될 정도였다.

대륙에서의 키메라는 마수의 합성, 혹은 재배열과 창조를 기본으로 한다.

넓게는 몬스터의 팔다리 같은 신체 일부분을 떼어내고 다시 합체시키는 작업, 세밀하게는 세포를 이식하거나 마수의 장기, 혹은 코어가 되는 촉매들을 이식시키는 작업이다.

기본적인 작업은 크게 어렵지 않다. 사자의 머리를 떼어내 염소의 머리 옆에 가져다 붙이는 장난감 만들기와 다름이 없다는 거다.

물론 이후에 녀석이 살아 있을까에 대한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

혹시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부작용을 가지게 되어 있다.

일부는 포악해지기도 하고, 일부는 기력을 잃기도 한다.

비틀비틀거리다 며칠 만에 급사하거나 컨트롤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연금술만으로는 이런 현상을 겪고 있는 키메라들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

이게 생체 연금술이 실패한 이유이기도 하고…….

“흑마법으로 컨트롤하신 건가요?”

“네, 비슷합니다.”

“몸에 좋지 않으실 텐데…….”

“소라 씨도 가능하지 않습니까? 가능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네, 물론 아예 불가능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키메라는 통제하는 것보다 만드는 게 더 힘이 드니까요. 등급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통제하기 힘들고…….”

“그거야 흑마법사의 입장에서나 그렇죠. 저 같은 경우는 반대가 더 쉽게 느껴집니다.”

“첫 시도에 바로 이 정도의 키메라를 조합해 내시고 곧바로 컨트롤하시다니 재능이 부럽네요.”

“사실 전설 등급 정도는 나와줘야 돼요.”

“…….”

“당연히 전설 등급 정도는 나와줘야 합니다. 들어간 촉매가 어느 정도인지 아마 상상도 하실 수 없을걸요. 물론 베이스가 되는 몬스터의 질이 저질이기는 했지만,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고급 촉매가 들어갔다고요. 전설 등급의 촉매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게 들어갔습니다. 물론 너무 생각 없이 조합하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연결점이 있는 몬스터들을 조합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배열이 망가지면 그만큼 확률이 줄어들니 효과는 있을 것 같아요.”

“흐음…….”

“그럼 이건 얼마나 만드시려고요?”

“글쎄요. 꾸준히 쉬지 않고 만들려고요. 일단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으니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건 지금부터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거 정말 괜찮은 건가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니까…… 그게 부길드마스터의 위치상 키메라를 사용하는 건…… 조금…… 눈에 띄지 않을까 싶어서…….”

“이게 어딜 봐서 그런 종류의 키메라처럼 보이세요.”

눈을 씻고 쳐다봐도 흉악한 모습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다.

기본적인 형태는 우리가 이야기로만 전해져 들어왔던 천사의 모습.

살라트의 가죽과 피부를 이식했고 그 위에 다시 한번 피부를 덮었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조류형 몬스터들의 날개를 8장이나 달았으니 이론적이라면 날 수도 있다.

심지어 날개 근육까지 손을 따로 보고 하얀색으로 변환까지 끝냈으니 어떻게 봐도 천사로 보이지 않는가.

외모 자체는 제법 이질적이기는 했지만 바질리스크의 시신경을 집어넣었고, 최대한 신성하게 보이게 커스터마이징 했다.

천사가 인간과 같아서야 되겠는가. 오히려 이질적이지 않다면 더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저 초안을 짜는 데 들어간 비용 자체는 가히 천문학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

하지만 충분히 그 값어치를 한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마비, 석화 속성을 갖춘 눈을 가지고 있고, 비둘기들에게 직접 대항할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있어 공중전이 가능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빛까지 뿜을 수 있다는 것.

“심지어 빛까지 뿜을 수 있다니까요. 이거 보세요.”

“…….”

“저거 진짜로 찾기 힘들었다니까요.”

실제로도 무척 찾기 힘들었다.

몸을 스스로 밝힐 수 있는 몬스터는 적어도 내 기억에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뒤져보니까 나오기는 나오더라.

“남쪽으로 쭈욱 내려가다 보면 바다에 사는 어류 몬스터가 몇 종 있는데 그중 한 놈이 빛으로 인간이나 다른 몬스터들을 유인한다고 하더라고요. 아귀가 가지고 있는 등불처럼요. 그 기관을 촉매화시켜서 이식에 성공했다는 것 아닙니까.”

‘저게 가장 시간이 오래 걸렸지.’

“커다란 효과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은근슬쩍 매혹 효과도 붙어 있었고요. 마력에 저항이 없는 이들은 아마 빛을 바라보는 순간 홀리지 않을까 싶은데…… 물론 전체적으로 살짝 인위적인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뭐 이 부분도 보완할 테니 나쁘지 않을 겁니다. 그냥 다시 한번 물어보는 건데…… 저거 정말로 키메라 같은 거로 보여요?”

“아…… 물론…… 물론 그렇지는 않죠. 네, 천사…… 누가 봐도 천사네요.”

“천사처럼 보이죠?”

“네.”

“한 6기 정도는 조금 더 힘을 줘서 만들 생각입니다. 특징도 살릴 수 있을 만큼 살리면 좋고요. 제가 모두를 컨트롤하는 것보다는 대장기가 컨트롤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겁니다.”

“아…….”

“666이라는 숫자가 요즘 눈에 밟히던데…… 그 정도까지는 무리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숫자는 맞춰보고 싶네요. 일단 바로 한 기 더 제작할 생각인데 열심히 봐두세요. 같이 만들면 좋을 것 같으니까.”

“네? 같이요?”

“네, 한소라 교육생은 우등생이지 않았습니까. 연금술도 성적 우수자였으니까 금방 이해할 수 있으실 겁니다, 분명히요.”

무조건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정하얀에게 눌려 살며 기를 펴지 못하고 있지만 엄연히 탑 티어 마법사 중 하나다.

일반적인 마법사였다면 한계가 있었겠지만, 흑마법사라는 직업이 그녀와 상승 작용을 일으킨 케이스였다.

연금술을 미리 알려줘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이 연구실을 빠져나가는 것은 고사하고 작은 취미 생활도 즐길 수 없었을 것이다.

본인은 곧바로 불안한 표정이 되기는 했지만…….

“뭐 별일 없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 정하얀 님은 괜찮으실까요?”

“별문제 없을 거예요. 이제 하얀이랑 친한 것 아니었어요? 뭐 그렇게 걱정하고 그러십니까.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일이나 하세요. 아 그리고 인원들 추려서 보내 드릴 테니 후학 양성도 부탁드립니다.”

“…….”

“흑마법이니 뭐니 그런 말 하지 말고 조금 다크 히어로 같은 느낌 팍팍 뿌려서 대충 이빨 털면 될 겁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상투적인 대사 있잖아요. 우리는 교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어둠의 사제들입니다, 이런 거. 어둠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자들만이 어둠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름을 버린 이들입니다. 이해되죠?”

“그건 그런데…….”

“네?”

“키메라 만들기는 정하얀 님이랑…… 세 명이 같이 하면 안 될까요?”

절박한 표정에 두려워하는 것 같은 얼굴,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얘가 뭘 두려워하는지 알 것 같았지만…….

‘걔는 따로 할 일 있는데…….’

고급 인력을 3명이나 같은 곳에 투입하는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특히나 우리 대마법사 같은 경우에는 더욱더 말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쾅쾅 문들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란 한소라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내게서 거리를 벌리는 것은 순식간이었지만, 그녀의 용건은 한소라가 아니다.

“생각하시는 그런 거 아니에요. 생각하시는 그런 게…….”

“…….”

“오, 오, 오빠. 오늘 테이머, 알프스 시험 치는 날이에요. 지금 시작할 것 같아요!”

정하얀 역시 최근에 하고 있는 방송에 빠져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