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9
회귀자 사용설명서 609화
천사 만들기(3)
보통은 주식 좀 하신다는 분들은 한 곳에 투자금을 몰빵하지 않는다.
굳이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여러 곳에 분산 투자를 하는 것이 그나마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행동이라는 건 기본적인 상식이다.
이 경우에 내가 투자한 것은 시간과 돈이었다.
사실 재화가 떨어져 나가는 건 아깝지 않다.
아니, 솔직히 조금은 아까웠지만, 시간만큼 아까운 것은 아니다.
이미 가만히 있어도 돈이 굴러 들어오는 시스템을 마련해 놓기도 했고, 어느 시점부터는 길드나 개인이 가지고 있는 돈에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은 다르다.
내 몸은 딱 하나였고 밀린 일은 많았다. 오죽했으면 옛날 파란 길드가 성장했을 때보다 최근이 더 바쁘다는 생각을 했을까.
김현성이 모든 일감을 이쪽에 몰아줬을 때보다 정신이 없다.
그때와는 다르게 맡은 일은 딱 3개뿐이었지만, 그 중요성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이쪽이 투자한 세 개의 일 중 적어도 하나는 잘 풀리고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성검코인은 존버 중이고 베니고어 코인 역시 휴지 조각이 되기 일보 직전이기는 했지만, 그나마 키메라는 잘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이 키메라 코인 하나가 성검코인과 베니고어 코인에서 일어난 손실을 메워줄 수 있느냐는 것.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그렇게 일이 잘 풀릴 리가 없지 않은가.
애초에 키메라 코인은 리스크가 적은 종목이었다.
떡상했을 때의 이득 역시 두 종목에 비해 적다.
한 가지 종목이 잘 풀리고 있다는 사실에는 그나마 고개를 끄덕여 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는 거다.
‘두 종목이 떡락하면…….’
게임은 거기서 끝이다.
두 종목에서 일어난 손실을 이 키메라 하나로 메우려면 적어도 천사 6,000기에 호문클루스 3기 정도는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당연하지만 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 없다.
당장 666기를 만드는 데 들어간 시간과 비용만 해도 어마어마한 수준이었으니까.
심지어 호문클루스는 아직 단서조차도 찾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역시나 믿음으로 버텨내는 것.
‘떡상할 거야. 떡상할 거라고…….’
존버밖에는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가끔 교황청을 들르기는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었고 성검은 여전히 반응하지 않고 있었다.
‘아직 두 달도 안 지났으니까…… 이런 기세면 무조건 떡상 각이지.’
수작업으로 천사를 찍어내는 데 집중해야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자꾸만 다른 일 쪽에도 시선을 돌리게 된다.
‘시바, 더 이상 생각해서 뭘 하겠어. 작업이나 집중하자.’
애써 고개를 저으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려고 했던 바로 그때였다.
“저…….”
한소라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굳이 따로 작업실을 쓰게 해달라고 말하기까지 했으면서 언제 또 여기에 들어와 있었는지 모르겠다.
궁금한 듯이 이쪽을 힐끔 힐끔 바라보는 얼굴은 가관.
물론 어째서 이쪽을 찾아온 것인지는 대충 예상이 간다.
‘지가 안 궁금하고 배기겠어?’
한소라는 교육생 때부터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강한 학생이 아니었던가.
오늘은 네임드 개체를 만들 거라고 미리 말해놓은 상황이다.
작업을 하다 보니 배움에 대한 열정이 스멀스멀 올라온 것이 분명하리라.
‘스타일이 유사하니까 배울 게 더 많겠지.’
파란 길드 안에서 나와 가장 스타일이 비슷한 파티원.
차이점이 있다면 나는 베이스를 연금술사로 잡았고, 그녀는 베이스를 흑마법사로 잡았다는 것뿐이다.
연금술에 대한 이해도도 웬만한 연금술사 뺨치는 수준이었고, 심지어 흑마법까지 가미된 작업이었으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수강료라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기분 좋게 입을 열었다.
“뭐가 궁금한가요, 한소라 교육생?”
“아뇨…… 그냥 도와드릴 일이 없나 해서요…… 오늘 그…… 네임드 개체를 만드신다고 하셔서…….”
“진행 중이기는 한데…… 소라 씨는 잘되고 있어요?”
“일단은 최선을 다하고는 있어요. 한번 봐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같이 가보시겠어요?”
“아니요. 그럴 것까지도 없어요. 제가 지시한 대로만 해주시면 별문제는 없을 겁니다. 일단은 작업 진행 계속해 주세요. 그리고 오신 김에 조금 있다가 저 좀 거들어주시고요. 아무래도 이건 손이 많이 가서…….”
“네, 물론이죠.”
민망해하고 있는 것 같으니 슬쩍 운을 띄워주자.
딱히 숨길 필요도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아무래도 개성을 부여하려다 보니 조금은 힘든 부분이 많은 것 같더군요.”
“네?”
“네임드 개체 말입니다.”
“아…… 네.”
“…….”
“…….”
“정확히 어떤 부분이…… 어렵고 힘드신 건가요?”
“베이스가 되는 신체에 조미료를 뿌려주는 과정 말입니다. 저희 모험가들의 방식으로 생각하면…… 특성이나 고유 능력을 만들어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네요.”
“아…….”
“사실 기본적인 개체에도 특성이 들어가 있기는 해요. 아직 정확한 네이밍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단단한 피부라든지, 매혹의 빛이라든지, 마비의 눈이라든지…… 굳이 등급으로 표현하자면 영웅 등급 근처의 특성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개체마다 차이점은 있지만, 특성효율이 낮아서…… 질이 좋은 개체는 전설 등급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별 효과가 없는 게 사실이고요. 기본 개체는 그냥 신체 능력과 마력에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편할 것 같습니다.”
“이해했어요, 부길드마스터.”
“네임드로 만들어질 6개체는 기본 개체가 가지고 있는 것 외에 다른 특성을 부여해 주는 게 관건이라고…… 아! 조금 더 가까이 와서 봐도 됩니다. 아니, 이럴 게 아니라 아예 지금부터 같이 만들어봅시다. 저도 막 준비가 끝났으니…….”
“네, 그전에 질문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혹시 어떤 종류의 개성을 부여해 주시려고 하시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건지…… 물어보고 싶어요.”
당연히 대답해 줄 수 있다.
“일단은 직접 공략한 던전들이나 직접 겪어본 레이드 몬스터를 베이스로 잡아보려고 생각했습니다.”
“…….”
“여러 가지 측면에서 봐도 가장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쪽 촉매를 다루는 게 익숙하니까요.”
“공략한 던전이라고 말씀하시면 희귀 등급의 던전들 같은 경우도 포함되는 건가요?”
“네.”
“촉매의 질 같은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시는지 궁금한데…… 대안이 있나요?”
확실하게 배워가겠다는 느낌. 질문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걱정하고 있는 부분이기는 합니다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요. 조금 더 귀찮은 부분이야 있겠지만 감수하고 있는 부분이고…… 고급 촉매와 저급 촉매를 섞어 쓰는 건 흔하게 있는 일이니까요. 이를테면 이런 재료 아이템은 단독으로 사용하기 쉽지 않거든요.”
슬쩍 준비된 연금 재료를 꺼내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세계수의 잎?”
“네, 세계수의 잎입니다. 사실 이 재료는 고급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사용하는 용도가 정해져 있는 물건입니다. 다루기도 쉽지가 않아서 키메라를 만드는 곳에 단독으로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고요. 말인즉슨 사용하기 위해서라면 어차피…….”
“성질 변환을 시켜야 하는 물건이라는 말씀이시네요.”
“정답. 성질 변환은 연금술의 기본이니까요. 물론 이 정도 되는 물건이면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기는 하지만…… 직업 보정이라는 게 좋은 이유가 뭐 있겠습니까.”
무려 준신화 등급의 직업, 빛의 연금술사가 가지고 있는 기본 직업 보정이다.
정확한 수치가 나와 있지는 않지만, 대성공 확률 200% 따위의 부가 효과가 붙어 있지 않을까.
계속해서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는 게 좋을까 싶어 곧바로 정제기에 자제를 넣은 후 마법진을 활성화하자 맹렬히 움직이는 연금 키트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한소라도 조금은 놀랐다는 듯이 바라보는 중이고…….
아마 알아도 본인은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전설 등급의 연금술사 보정을 받아도 불가능하다.
직업 자체가 다른 그녀가 넘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래도 쓸모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보네.’
좋은 자세가 아닌가. 아마 본인 역시 나름대로 접목할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세계수의 잎을 베이스로 하는 네임드 개체를…….”
“아뇨. 아까 말씀드렸잖습니까. 정확히 말하면 베이스가 되는 촉매는 이거예요.”
“아…….”
“세계수의 잎과 이걸 합칠 거고…… 이후에는 완성된 촉매를 키워 코어 핵에 맞출 겁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제가 처음 대륙에 넘어와서 공략한 던전의 몬스터들이 식물의 모습을 베이스로 하고 있었거든요. 네, 식물형이요. 세계수의 잎과는 그나마 궁합이 좋을 겁니다.”
“아…… 던전 일지에서 읽은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분명히…….”
푸쉬시시시식…….
‘아, 시바…… 폼 안 나게 실패했네.’
정제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나 보다. 하지만 그다지 당황하지는 않았다. 자주 있는 일이었으니까.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슬쩍 몸을 돌려 다시 한번 비율을 맞추고 키트를 돌리자 환한 빛을 뿜어내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물과 기름처럼 융합하지 않을 것 같았던 두 가지 촉매가 서로 뒤엉키는 모습은 대충 봐도 아름다워 보인다.
마법진에서는 계속해서 불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
조금은 집중해야 한다는 걸 한소라도 알고 있는지 조용히 이쪽을 바라봤다.
이윽고 액체처럼 공중을 유영하는 녀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도와드려도…….”
“네, 도와주세요. 혼자 하기 빡세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다음 단계는 짧은 시간 안에 액체를 큐브 조각 모양으로 굳히는 과정.
곧바로 액체를 틀에 넣고 온갖 연금 시약들을 투여하자, 치이이이익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완전히 굳어버리기 전에는 준비된 마법진을 큐브조각 겉면에 새기고 다시 한번 마력을 집어넣는다.
‘괜찮은데.’
진행 상황이 나쁘지 않다.
품질도 좋게 나온 것 같았고 어디 흠잡을 때가 없다.
“부길드마스터…….”
“코어가 되는 핵에 조각을 끼워 맞추면 됩니다. 계산하기로는 아마 될 것 같기는 한데……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주의해야죠.”
코어가 되는 핵 역시 조각 조각이 모여 한 모양을 이루고 있다.
가운데 티가 날 정도로 비어 있는 공간은 지금 내가 집게로 붙잡고 있는 조각이 들어갈 공간, 조금은 긴장되는 것이 당연하리라.
기껏 완성했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오류로 실험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건 싫었으니까.
“준비된 마법진에 마력 좀 넣어줘요.”
“네, 부길드마스터.”
마법진으로 이루어진 시험관으로 천천히 다가가 조각을 집어넣자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딱 맞게 하나가 된 핵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잠깐 녹색 빛이 서린 것 같은 느낌. 입꼬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코어에 맞는 신체도 준비해야 하고 다른 오류가 확실히 없는지 살펴봐야 했으니까.
심지어 생각만큼의 출력을 보여줄 거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기분이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와아아아아…….”
한소라도 넋 놓고 녀석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첫 번째 네임드 개체.
내가 대륙에 들어온 이후, 처음 공략한 던전.
아직도 그곳에서 동료들과 함께 우정을 나누며 공략에 임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생각나기 시작했다.
빛의 연금술사가 직접 만든 첫 번째, 네임드 천사.
1호기.
버전, 공포의 정원이 완성을 눈앞에 둔 순간이었다.
‘이 기세를 몰아서 성검 코인도 떡상 가나.’
일단 다음 모델 하나를 더 만들 때까지 지켜보도록 하자.
조금 더 존버해도 성검코인은 떡락하지 않는다.
‘일단 이것부터 마무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