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1
회귀자 사용설명서 611화
성검 코인(3)
[베니고어님의 시험, 일시적 중단. 성검의 주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교국일보 김성경 기자.]
[예언의 해석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깊어지고 있어. -딴지 일보 박단지 기자.]
[제이나 대주교 대변인, 시험은 계속될 것, 성검의 상태에 대해서는 현재 파악 중에 있어… 최대한 빠르게 시험을 속행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과 노력을 …후략 -교황청 일보]
[북부, 소년병 가레스, 몸에는 커다란 이상이 없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 시험을 거친 용사 지망생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고 있는 증상은 무엇일까. 어째서 그들은 이러한 증상들을 호소하고 있나. -딴지 일보 박단지 기자.]
[바젤 교황, 깨끗하지 못한 자들이 성검에 손을 댄 것이 문제임이 분명, 오늘 내로 소년병 가레스를 소환, 이단심문관들에게 심문을 맡길 예정. -교국일보 김성경 기자.]
[소년병 가레스, 전쟁 중 저질렀던 잔악한 행동이 밝혀져 파문. 순진한 모습으로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소년병 가레스의 두 얼굴 이란? -용병 길드]
[성검이 소년병 가레스를 부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용사지망생들에 대한 엄격한 심사를 필요로 할 때. -교국일보 김성경 기자.]
책상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신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괜스레 입안이 쓰다.
‘시바….’
“…….”
‘떡상 각 잡히고 있는 거 아니었냐고….’
“후우….”
사고가 터져도 이렇게 터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5현장에서 시행되는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올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물론 한소라가 남아 일반 개체를 만들고 있지만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가던 작업에 제동이 걸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차라리 성검 코인을 손절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 아닌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해 볼 정도였다.
‘그렇게 쉽게 손절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 시바.’
물론 그저 한번 해본 상상에 불과했다.
성검을 아예 써먹지 않는다는 건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시험 자체가 일시중지 됐다는 것.
녀석이 뿜어내고 있는 반발력 덕분에 시험 자체를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언론과 교황청을 비롯한 갤러리들도 갑작스러운 성검의 이상 신호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으니 충분히 당황할 만했다.
내 입장에서도 똥줄이 탈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이 새끼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도대체 뭐가 문제야. 주인 찾아 준다는 데… 어우….’
용사 후보자들의 대부분은 순진한 놈들을 잡기는 했지만, 성격이 조금 꼬인 녀석들을 아예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녀석의 입맛이 까다롭지 않을 거라는 내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타입별로 종류별로 네가 원하는 음식을 먹으라고 뷔페를 차려줬지만, 아예 손을 대지를 안고 강짜를 부리니 속이 편할 리가 있겠는가.
갑작스러운 떡락에 욕설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씨바, 진짜….”
“왜요? 마음에 안 들어요? 역시 언론 통제 들어가는 게 좋겠죠?”
고요한 목소리에 대답한 것은 현장을 관리하고 있던 이지혜였다.
“아니,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어. 흘러가는 분위기도 나쁘지 않고 나름대로 자정 작용이 되는 것 같으니까. 베니고어 넷 반응도 크게 나쁘지는 않고….”
“갑자기 사고가 터져서 깜짝 놀랐네요, 진짜. 그냥 가레스 얘도 희생양으로 몰아세우고 치우는 게 좋으려나.”
“아냐, 누나. 걔도 잘 키우면 쓸 만할 것 같은데… 버리기 조금 그렇지. 전력 하나가 아까운 상황인데… 전쟁터에서 저질렀던 잘못 회개했다고 방송 한 번 때려주고 눈물 한 번 흘리게 해줘. 당분간 자숙하겠다고 입장 발표한 다음에 복귀하는 것도 도와주고… 댓글 좀 관리해 주면 식는 거 금방이라는 거 알잖아.”
“뭐… 그렇기는 하지만… 그나저나 얘도 참 운 없네요. 당시에 전쟁터에서 잔악하지 않았던 사람이 어디 있었다고… 엉뚱한 거로 몰리네요. 오히려 어쩔 수 없이 전쟁터로 몰린 불쌍한 애 같은데… 순식간에 이단으로 몰리게 생긴 거 아니에요?”
“누나 말이 맞아. 저래 보여도 독실한 신자니까 케어할 수 있을 때 케어하는 게 좋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이기영 명예추기경으로 해놨다며. 나중에 한 번 만나서 사진 한 번 찍고 언론에 뿌려서 여론 진정시키는 게 좋겠네. 상황은 조금 괜찮지?”
“나름 잘 정리되고 있기도 해요. 솔직히 오빠가 이렇게 곧바로 달려올 정도의 사건은 아닌 것 같은데… 저 검에 문제 생긴 거 맞죠?”
“응, 아무래도 한번 봐야 할 것 같은데….”
“네, 네. 어련하시겠어요.”
“누나 정말 선택받은 용사 해볼 생각 없어?”
“생각 없습니다. 저는 뒤에서 꿀이나 빨려고요. 부작용에 있을지 모르는 물건에 뭣 하러 손을 대요? 오빠도 그냥 하는 소리잖아요? 진짜로 제가 저 검 들고 나가면 좋겠어요?”
미안하지만 그냥 하는 소리가 맞다. 저 검은 쓸 수 있는 사람을 위해 가져온 검이지 손에 들고 있는 장식품이 아니다.
“거 봐요. 표정 보니까 딱 답이 나오는구만… 아 그리고 바젤 교황님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으니까. 일 끝나면 같이 차나 한잔 마셔요. 바쁘다는 건 알지만, 슬슬 관리할 때 됐잖아요. 지난번에 왔을 때 오빠가 그냥 와서 이쪽 분위기 완전 개판이었다고요. 그 영감이 오빠 좋아하는 거 알면서….”
“안 그래도 그러려고 하기는 했는데….”
“그러니까 실천 좀 하라고요. 누구는 안 바빠서 인맥 관리에 집중하는 줄 아나. 조금 귀찮겠지만 이게 전부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행동 아니겠어요?”
이지혜의 말이 백번은 옳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을 정도면 바쁘다는 건 알지만… 뭐 더 이상 잔소리해 봤자 뭐가 달라지겠어요. 그쪽 작업은 잘되고 있는 것 맞죠?”
“뭐 크게 나쁘지는 않아. 어느 정도냐를 묻는다면 제법 순조로운 편이고… 최소한 여기보다는 상황이 훨씬 좋은 편이지. 일단 가봐야겠네. 오늘 안에 바젤 교황이랑 수다까지 떨려면 시간이 좀 빠듯할 것 같은데….”
“그럴 줄 알고 미리 준비해 놨답니다.”
“고마워, 누나.”
얘 없었으면 진짜 어쩔 뻔했냐.
저도 모르게 그런 종류의 생각을 하게 된다.
디테일한 것 하나하나까지 챙겨주는 섬세함과 세심함.
괜히 아무 능력도 없는 몸으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굳이 이쪽에서 먼저 부탁하지 않아도 미리미리 필요한 것들이 준비되어 있으니 오죽할까.
심지어 본인이 맡은 일을 하는 와중에도 이쪽에 신경을 쓸 정도였으니… 그 수완이 엄청나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확실하게 통제된 주변 풍경의 모습은 가관, 성검이 뿜어내는 반발력에 여기저기가 부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인명 피해가 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만약 더 커다란 사건이 터진 상황이었다면, 정말로 가레스라도 희생양으로 삼아 새로운 진실을 만들어 버릴 뻔했다.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피해 규모가 조금 크죠?”
“응,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신기하네.”
“왠지 모르게 이런 사고가 한 번쯤은 터질 것 같았어요. 방어 마법을 설치해 놓은 게 이거예요. 소년병이 안 죽은 게 신기할 지경 아니에요? 등을 부딪쳐서 다행이지 머리부터 박혔으면 그 시점에서 즉사했을 걸요. 우리 입장에서는 운이 좋았다는 데 맞아요. 아무리 저라고 해도 억지로 끌려온 소년병 하나 쓰레기 만들어서 매장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너, 아까는 뭐… 몰아세우고 치워버리자며.’
“방어 마법이 있는 것치고는 정말로….”
“네, 완전히 박살 났죠.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주기적으로 발광한다니까요.”
‘…….’
“정말로 정상인 거 맞나 몰라. 불량 같은 걸 받아온 건 아닐 테고….”
‘나도 그런 거 아닌가 싶다. 시바….’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지금부터 한번 알아봐야지. 그래서… 지금은 잠잠해졌다는 거지?”
“네, 일단은 잠잠해졌어요. 정확히 오빠가 온 이후로요. 그 전까지는 지속해서 성질부리기에 여념이 없었고요. 할 말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혹시 모르니까 사제들이라도 준비해 줄까….”
“괜찮을 것 같은데….”
“오빠가 괜찮다면 뭐 상관없지만… 혹시 잘못 튕겨 나가서 뒤통수 깨져도 저는 책임 못 져요.”
불안한 면이 없지 않아 있기는 했지만 커다란 문제는 생기지 않으리라.
‘이 새끼, 시위하는 것 같은데.’
딱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그랬으니까.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는 게 분명했다.
현재 자신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대놓고 엿 먹어보라고 행동한 것만 같은 느낌.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건이 맨 처음에 일어났을 때 왠지 모르게 이쪽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고….
무엇보다 이지혜가 말한 지랄발광이 내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멈춘 것을 보면 분명히 뭔가 있을 거라고 여겨졌다.
‘그래, 시바, 원하는 게 뭐야. 내가 다 들어줄게. 아예 풋내기는 별로야? 조금 기본기는 갖추고 있는 사람이 좋은 거야? 그동안 너무 뉴비들만 밀어 넣어서 그게 불만인 거야?’
숙련된 모험가는 다루기 힘들지만, 녀석이 호응해 준다면 충분히 합의해 줄 마음이 있다.
‘아니면 인성이 썩은 친구를 더 좋아하는 건가? 그건 아니지?’
평범한 이들을 타락시키는 것을 더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착각에 불과했던 것일까.
다루기 조금 힘들기는 하겠지만 어느 정도라면 용인해 줄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 정신 차리자. 이대로 떡락하면 너한테도 안 좋고 나한테도 안 좋아. 루시퍼한테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닐 거 아니야. 아니, 돌아갈 때는 돌아가더라도 활약은 한 번 하고 가야 하잖아. 안 그런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까다로워….’
우웅.
“저거 검 떨린 거 맞죠?”
이지혜의 말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우우웅.
아니, 미세하게 떨린 것은 아니다. 무척 힘차게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칠 정도였다.
‘뭐야, 너 왜 그래. 시바, 표현을 좀 해봐.’
조금씩 조금씩 발걸음을 가까이할수록 진동이 심해지는 듯한 느낌.
일단은 고개가 끄덕여졌다.
적어도 내게 반응하고 있다는 건 아직까지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걸 말해주는 지표였으니까.
‘그래, 그래, 그동안 힘들었지?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형한테 전부 말해봐. 전부 들어줄 테니까.’
우우우우웅.
‘자격 조건이 뭔지 운이라도 한번 띄워봐 힌트를 제대로 주던가. 가레스는 좀 그랬어?’
우웅.
‘아니면 그냥 이런 상황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거야?’
우우우우웅.
‘좋은 주인 구해주겠다고 이러는 건데, 왜 그래? 너무 예민해지지 말자, 친구야. 이게 다 너를 위해서 하는 거니까. 너무 그렇게 사람 가리는 것도 안 좋아요. 고기만 먹으면서 살 수 있어? 가끔은 채소도 먹고 응? 물도 먹고 하는 거지. 정말로 원하는 사람이 없으면 적당히 합의해도 상관없는 거 아니야. 합의하자. 현실이랑 타협 좀 하고 살자고, 우리.’
라고 속으로 지껄이던 바로 그때였다.
“뭐야… 씨바. 너 왜 그래.”
심지어 손도 대지 않은 상황. 스스로 드륵 드륵 거리는 소리를 내며 뽑히고 있는 성검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
“…….”
‘나오지 마, 이 새끼야. 나오지 말라고. 왜 갑자기 네가 뽑히고 그래.’
“뭐예요. 저거… 지금 혼자 뽑히고 있는 것 같은데….”
멀찍이서 들려오는 이지혜의 목소리에는 대답해 줄 여유가 없었다.
눈앞에 있는 급한 일부터 처리해야 했으니까.
곧바로 몸을 움직인 것은 당연지사.
튀어나오려는 녀석을 다시 집어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들어가. 다시 들어가, 이 새끼야. 다시 들어가라고, 씨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