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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616화 (607/1,590)

# 616

회귀자 사용설명서 616화

부정적인 여론(2)

‘이게 반대할 껀덕지가 있는 건가.’

뭐만 하려고 하면 반대하고 나서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성검에게 선택받은 용사가 아니던가.

베니고어 공인 ‘우리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인선이다. 지금까지 일어난 여러 가지 일을 떠올려보면 그러려니 싶기도 했지만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언론에 나갈 인터뷰를 마친 것은 물론 이미 바젤교황과의 삼자대면까지 마친 시점. 공식적인 발표 역시 여신의 거울을 통해 방영됐다.

파란 길드원들이 전부 다 모인 것이 딱 이때였을 것이다. 길드 일에 파묻혀 있었던 선희영과 황정연도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었고 김현성과 김창렬도 마찬가지.

방송이 끝나 할 일이 없어진 박덕구와 김예리, 안기모 혁명 삼 남매도 교황청 안에서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엘레나와 유아영도 정신이 없는 와중에 시간을 냈고 덕분에 잠깐이나마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었다. 딱 라파엘을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에 들여 내 옆에 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하기 전까지 만 말이다.

‘…….’

괜스레 무거워지는 분위기에는 어안이 벙벙할 지경, 특히나 눈치 빠른 돼지가 이상할 정도로 이쪽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나는 반대요. 형님이 뭐라고 말하든 나는 무조건 반대요.”

“…….”

“무조건 반대라니까. 물론 형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는 하지만 혹시 모를 상황이라는 게 있는 거 아니요. 베니고어 님의 선택을 받은 용사라고 한들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거요. 저번에 현장에서 터진 일도 있고 하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나쁘지 않은 시점이라니까.”

“…….”

“물론 그 라파엘인가 나바엘인가 뭔가 하는 놈이 나쁘다는 건 아니요. 함께 싸워야 할 사람인 것도 맞고 도움을 줘야 한다는 거에 대해서 반목하는 것도 아니지만…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해서 우리가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게 뭐가 있다고… 형님 옆에 들일 때는 들이더라도 조금 시간을 두는 게 좋은 선택일 것 같다니까.”

“…….”

“이게 다 형님을 위해서요.”

“덕구 씨 말이 맞습니다. 그렇게 급하게 일을 진행시킬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항상 이상한 주제로 대립해왔던 김현성과 박덕구가 힘을 합쳐올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김현성 얘는 왜 이래? 도대체.’

그 누구보다도 선택받은 용사를 간절히 바라왔던 것 치고는 상당히 경계하는 것 같았다. 무슨 좋지 않은 느낌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성검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굳이 다른 이유를 꼽자면….

‘연방 때를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고.’

외부인의 이간질로 인해 시작돼 길드를 탈퇴하니 마니 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던가.

모르긴 몰라도 그 사건 같은 상황을 경계하고 있을 수도 있다. 성검을 빼고 생각해 보면 라파엘은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이방인에 불과하니 말이다.

‘사실 얘네 말이 틀린 건 아니지….’

성검에게 선택받은 용사라는 것을 제외하면 라파엘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기본적인 호구조사를 하기야 했지만 심층적으로 파고들지는 않았고, 무엇보다 녀석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에 대해 판단하는 시간이 무척 짧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을 가장 가까운 곳에 두겠다고 말했으니, 김현성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불안해할 만했다.

물론 이런 이유들을 전부 종합해 봐도 녀석들이 오버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특히나 우리 못된 회귀자의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본인도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조혜진을 비서실장에 임명한다고 발언하지 않았던가. 예전에 내 입장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야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되기는 했지만… 당시에 조혜진은 갑작스럽게 굴러들어온 이방인이었고… 어떻게든 그녀가 실권을 잡는 것은 막을 수 있었지만 당시 내 기분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너는 그런 말 할 자격 없지.’

“다시 한번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최근 분위기가 그리 좋지 않은 것도 있고… 여러 가지로 중요한 시기니까요. 덕구 씨의 말대로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걱정하시는 건 이해가 가지만 괜찮을 겁니다. 결정적으로 시간을 별로 지체하고 싶지도 않고요.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 아닙니까. 육성계획은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는 게 맞아요. 제가 옆에서 도울 수 있다면 여러 가지로 시너지 효과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싸우는 방법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육체적인 성장 못지않게 정신적인 성장도 분명히 중요할 겁니다.”

“그러니까 그 옆에서 돕는다는 게 문제라는 거요. 이렇게까지 말하기는 싫지만 그 치가 악마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면 어떻게 하려고…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성검을 지배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쇼.”

‘기상천외라는 단어는 진짜 오랜만에 들어본다. 덕구야.’

“당분간 교황청에 맡기든 교국에 맡기든 상관없지만 뭐 데리고 다닌다는 건 조금 아니지 않나. 그냥 뭔가 구린 냄새가 난다니까. 이럴 때 내 감은 틀린 적이 없는 거 잘 알면서….”

‘그래. 네가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맡지. 나도 깜짝 놀랐다. 시바. 맡아야 할 상황에서나 그렇게 좀 맡아줘.’

최근 여러 가지 일로 위축되어 있는 김현성은 발언권을 박덕구에게 넘긴 것 같은 느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돼지가 대신해주고 있으니 굳이 앞 선에 나가 미움받고 원망받는 포지션에 자리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하지만 간간이 한 번씩 찔러 들어오는 공격은 확실히 날카롭다.

“튜터링을 진행한다고 했으니 파란 길드에 가입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기영 씨가 길드로 가끔 들러주시면 해결될 문제고요.”

여기서나 저기서나 박덕구는 탱커로 활용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김현성은 녀석을 활용하며 차곡차곡 딜을 쌓고 있었고….

“저도 반대 의견입니다.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는 이해가 가지만 조금 더 그 사람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파란 길드에 들이는 것도 사실 그다지 내키지는….”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파란의 보수 논객, 선희영 역시 입을 열었다.

이런 자리에서는 발언권이 없다시피 한 병아리 세 명은 그저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고… 황정연과 안기모도 한 발자국 뒤에서 지켜보자는 입장, 조혜진은 반대 입장에 서 있다.

내 생각보다 더 열을 올리는 모습이었지만 얘가 왜 이러는지는 당연히 이해가 간다.

빛기영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아닌가. 약점을 잡히거나, 새로운 사람이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거 파란 길드도 고이기는 고였네.’

심지어 엘레나도 외부인을 받아들이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 물론 나쁜 의미로 고인 것은 아니다. 우리들끼리 너무 똘똘 뭉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부인을 배척하게 된 것 같은 느낌.

앞서 말했지만 이런 분위기를 만든 데는 연방 이간질 사태가 한몫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테이머는 잘도 길드로 가입시켰네.’

가장 구석에 처박혀 강아지를 껴안은 채로 눈치를 보고 있는 테이머 알프스가 시야에 들어왔다. 본인이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자리라는 표정이 괜스레 눈에 띈다.

‘생각해 보면 쟤도 얼마 만에 들어온 길드원이야?’

아무리 소수정예를 지양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파란 길드 같은 경우에는 그 정도가 조금 심하다. 붉은 용병이나 검은 백조를 보라. 매년 마다 길드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확실히 파란과 차이가 있다.

‘희라 누나도 한번 보기는 봐야 되는데.’

잠깐 동안 다른 곳으로 생각이 넘어가기는 했지만 내 입장은 변함이 없다.

“다들 조금 날이 선 것 같은데… 별일 없을 겁니다. 라파엘은 경계해야 될 적이 아니라 동료예요. 현성 씨 같은 경우에는 튜터링도 맡게 될 텐데… 그런 식으로 경계하는 건 별로 이로울 게 없을 겁니다.”

“하지만….”

“물론 여러분들 말씀처럼 완전히 경계를 푸는 건 지양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판단하건대 이 정도의 거리감은 문제가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밀어내기보다는 받아들이는 게 좋을 거라는 거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기 새로 인연을 맺게 된 알프스 님이나 라파엘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이 말입니다.”

“…….”

“혜진 씨가 이틀에 한 번꼴로 제가 있는 곳으로 들러주시고 있고 박리안 님을 비롯한 분들도 매번 고생해 주시고 있습니다. 저도 약한 사람이 아니고…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건 조금….”

“아니, 뭔가 구린 냄새가 난다는 거 아니요….”

“그런 거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지.”

“뭔가 구리다니까… 정말로 뭔가 구리다 이 말이요. 내가 원래 사람을 잘 의심하는 성격은 아닌데…. 나바엘 그 양반은 얼굴을 보자마자 분위기가 뭔가 쎄… 했다니까.”

그 누구보다도 박덕구의 무논리에 대항하려고 했단 김현성도 고개를 끄덕여 오는 모습.

하지만 협상에 여지는 없다. 이미 결정을 내린 일이고 언제나 그렇듯 이기영은 양보하지 않는다. 만약 녀석이 내 눈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면 여러 가지로 상황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는 거다.

“저는 이미 결정을 내렸습니다. 회의를 하자는 게 아니라 결정된 사안을 말씀드리는 거고요.”

“…….”

“그렇게까지 말하면 뭐라고 할 말이 없기는 한데… 거 괜히 불안해서 그런 건데….”

“……”

“무엇보다 라파엘 님께서 직접 보호 관리 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애초에 용사의 선택을 고려해 주는 것도 선택받은 이를 위한 혜택이었고요.”

“그건 그렇기는 하지만….”

“…….”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가 해체된 이후, 제가 파란 길드로 복귀할 때 즈음에는 함께 이곳에서 활동할 수도 있으니….”

‘물론 그때까지 라파엘이 살아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좋은 환경에서 지낸 것 같지도 않은데…. 그 누구보다 혼란스럽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조금은 마음을 열어도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완전히 경계를 푼 것 같지는 않았다.

“일단 인사부터 나누세요. 이럴 게 아니라 저녁 식사에도 초대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오늘은 길드 모임. 외부인… 싫어.”

‘그렇게 따지면 나도 외부인이야. 김예리 너는 또 뭐가 문제야?’

이런 분위기를 환기시켜 주는 것은 역시나 안기모.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자 넉살 좋게 입을 열어오는 게 시야에 비쳤다.

“자자. 다들 진정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부 길드 마스터의 말이 아예 틀린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갑자기 선택받은 용사가 됐다고 하는데… 제가 만약 그 사람 입장에 있었다면….”

‘그래. 잘한다. 시바. 안기모.’

“정말로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 확인하면 되는 문제 아니겠습니까. 이유야 어찌 됐든 라파엘 님이 저희와 함께할 것이라는 건 변함이 없으니 일단 안면을 익혀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괜히 부 길드 마스터가 저희를 이곳으로 부르셨겠습니까.”

“기모 씨 말이 맞아요.”

‘너도 잘하고 있다. 정연아.’

“만약 파란 길드로 들어오지 않더라도 얼굴을 맞대고 지내야 한다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길드 마스터?”

여론이 이렇다 보니 김현성의 입장에서도 뭐라 막을 수가 없는 모양.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김예리가 짧게나마 혀를 찼다.

‘얘가 진짜 왜 이렇게 삐뚤어졌어?’

이제야 사춘기가 찾아온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 볼 정도였다.

아무튼 김현성의 긍정으로 녀석이 파란 길드 모임에 합류하게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 된 것 같은 분위기.

이쪽 역시 사람을 시켜 라파엘을 불러들였고 결국 녀석은 어색한 표정으로 이 자리에 함께 서 있을 수 있었다.

“라파엘이라고 합니다. 파란 길드 여러분들. 항상 만나 뵙고 싶었어요…. 그리고… 또… 그리고… 그리고….”

문제는 아직까지도 그렇게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는 것.

“기영이 형… 덕분에 이렇게 좋은 분들과 함께 자리하게 돼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이쪽을 스스럼없이 대하는 모습에는 분위기가 한 번 더 안 좋아진다.

“형… 저 실수한 건 아니죠?”

작은 목소리로 귓속말을 해왔지만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저 목소리를 캐치해 낼 수 없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특히나 표정이 안 좋았던 것은 우리 꼬맹이 김예리.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왠지 모르게 막스를 처음 봤을 때의 똘똘이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길드 초창기 멤버들의 표정도 그렇게 다르지는 않다.

‘얘네 진짜….’

그럴 리야 없겠지만….

‘뭐 혹시 우리 부 길드 마스터를 뺏겼다. 이런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

파티의 어머니를 빼앗긴 것 같은 분위기.

할 일이 있다며 집을 나간 어머니가 갑작스레 찾아와 ‘너희 동생이다. 인사해야지?’ 따위의 말을 지껄이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다.

물론 그것보다 더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테지만 한 5% 정도는 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쓸데없는 생각이기는 했지만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가는 추측이었다.

그중에서도 대놓고 녀석을 경계하는 것은 역시나 사랑스러운 회귀자. 김현성.

‘아… 우리 현성이… 눈치깐 것 같은데….’

그것 외에 다른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은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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