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6
회귀자 사용설명서 626화
대륙의 진짜 어둠(2)
“부길드마스터? 정신이 드십니까? 부길드… 마스터?”
“왜… 징그럽게 손을 잡고 있습니까?”
“누가… 누가 당신 손을….”
“저 안 죽었습니다… 진정 좀 해요.”
“…….”
“가만 보자… 혜진 씨, 지금 울어요?”
“장난치지… 장난치지 마세요. 지금 그런 장난을 치고 싶습니까?”
“아니, 누가 장난치고 있다고 그러세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건데.”
“저번에도… 그런 식으로 놀리지 않았습니까… 저 안 울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진짜 장난치려고 마음먹었으면 이 정도로 안 끝내지.’
아마 방금 나왔던 대사를 지껄이지 않았을까.
네가 뭘 안다고 떠들어.
‘키이야….’
그의 긍지를 더럽히지 마.
‘키야… 혜진아, 시바… 혜진아아아아… 진짜 네가 나를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야.’
저도 모르게 웃음을, 아니, 눈물이 튀어나올 뻔한 명장면이었다.
가만히 누워 있던 내 얼굴이 다 붉어질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단언컨대 이번 기획에서 가장 킬링 포인트가 되는 장면이리라. 물론 가장 커다란 위기를 안겨준 장면이기도 했고….
조혜진과 아름다운 우정을 쌓고 있다는 생각은 훨씬 오래전부터 해왔지만, 우리 우정이 완벽하게 완성됐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조혜진을 무대로 끌어들인 건 조금 미안하다.
하지만 예상하던 그대로의 결과에 절로 포근한 미소가 지어진다.
이런 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리얼함.
사실상 조혜진이 살린 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러게 지가 어쩔 건데? 라파엘 별것도 아닌 게… 어디서 철벽을 깔아?’
함락시키기 어려운 성벽이라고 생각해 만발의 준비를 해놨건만 준비한 것의 반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함락.
울음을 터뜨리며 형이라고 부르는 놈의 목소리를 떠올리자 너무 많은 것을 준비한 내가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빛기연 카드는 괜히 준비해 달라고 했네.’
이지혜에게 새 취미가 생긴 거냐고, 만약 그런 거라면 자기 요정도 준비하겠다고 한 소리 들었는데….
‘뭐 아무렴 어때. 결과만 좋으면 된 거지.’
그야말로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괴로워하고 있지 않을까.
마지막에 보여줬던 반응을 보면 가까운 시일 내에 석고대죄해 오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물론 자신이 악마계약자 라인이었다는 사실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비벼올 것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기왕이면 안 밝히는 게 좋지.’
본래 마음의 짐이 많이 남아 있는 사람일수록 컨트롤하기 쉬워지는 법이니까.
나를 반병신으로 만드는 데 한 손을 거들었다는 사실이 평생 녀석을 찌르는 죄책감으로 남아 있게 되지 않을까.
내 입장에서는 굳이 그 감정을 해소시켜 줄 필요가 없다.
혹시나 놈이 고백할 낌새가 보이면 곧바로 자리를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우리 사랑스러운 회귀자와는 경우가 달랐으니까.
좋은 결과에 실실 미소가 지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푸흣… 푸흐허하하하헤헷.’
이제야 정리가 끝난 것 같은 느낌.
마음 같아서는 축배라도 들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눈앞에 있는 내 소중한 친구가 그걸 허락해 줄 것 같지 않았다.
‘얘 얼굴 보니까 참 좋네, 훈훈하니. 고맙다, 혜진아. 진짜, 네 공이 컸어. 바쁜 일만 마무리되면… 진짜 조혜진 아바타 한 번 더 해줄게. 너도 이제 보상받을 때 됐잖아.’
“뭘 그렇게 기분 나쁘게 웃고 계시는 겁니까.”
“그냥 아무것도 아닙니다.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을 뿐이에요. 저도 사람인데… 그런 거에 기뻐할 수도 있죠.”
“기억은… 괜찮으신 겁니까?”
“네, 깜깜한 느낌은 없어요. 전부 기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제가 쓰러지기 전의 장면도요. 제가 깨어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닙니다. 3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부길드마스터가 생각하는 그런 상황은 오지 않았어요.”
“라파엘은….”
“죄송합니다.”
‘아니야,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어. 우리 혜진이 책임감 하나는 기가 막혀 가지고…. 약속을 어기게 된 게 그렇게 미안했어? 근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 그렇지?’
“알아버렸군요.”
“입 밖으로 내뱉지 않겠다는 확언은 받아 냈습니다. 성검에 맹세할 정도였으니 부길드마스터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네?”
“언제까지 숨기실 겁니까?”
“그거 이미 끝난 이야기 아니었어요?”
“이야기를 자기 마음대로 끝내지 마세요. 저는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만약 부길드마스터에게 심각한 일이 생기면 곧바로 길드마스터께 보고 드리겠다고요.”
“아, 그랬었나요. 기억이 잘….”
“사람 간 떨어지게 만드는 쓰레기 같은 장난치지 마세요. 저 지금 진지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혜진아….’
“심각한 일이 생기지는 않았으니까… 알리지 않으시겠군요.”
“아니요, 이번 건 충분히 심각한 일입니다.”
“아니에요. 심각한 일은 아니에요. 조금 머리가 아팠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지만, 곧바로 몸을 털고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몸에도 이상 없고 머리통에도 이상이 없어요. 최근에 너무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 있어서 조금 기력이 쇠약해진 것뿐입니다. 오히려 차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죠. 증상을 겪고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이상이 없지 않습니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
‘거짓말은 아니지.’
“피로 회복 포션 한 병이면 전부 해결될 거라니까요?”
“그 피로 회복 포션을 달고 사시는 분이 말은 참 많으시네요. 아무튼, 저는 진지하게 말씀드린 겁니다. 딱 이번까지입니다.”
“네?”
“딱 이번에만 눈 감아드리는 겁니다.”
‘그래야지.’
“단언하건대 다음에도 이런 일이 생긴다면 곧바로 길드에 알릴 겁니다. 저도… 저도 더 이상은 부길드마스터를 지켜볼 자신이 없어요. 제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만약 제가 없는 곳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셨습니까? 만약에 적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 지금 같은 상황이 벌어졌으면 어쩔 뻔했어요? 만약에… 만약에….”
그럴 일은 없다. 조혜진이 이곳으로 도착할 시간 정도는 완벽하게 계산하고 있었고, 혹시 생길 수 있는 변수도 전부 계산해 놓은 상태였다.
별일 없을 거라고 반박하고 싶기는 했지만, 일단은 조혜진의 말을 들어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면 되는 문제니까.
혹시라도 정말로 위쪽에서 나를 호출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베니고어 쪽도 아무 이상 없으니 이 순간을 즐기는 게 가장 옳은 행동이다.
“아무리 리안 씨가 붙어 있다고는 해도… 이건 너무 위험해요. 지구에서도 이런 상황이면 위험하다 활동하는 것을 만류했을 겁니다. 하물며 대륙은 두말할 것도 없어요. 그리폰을 타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연금실험을 하는 중이었다면… 잘못하면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블랙아웃 되는 걸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부길드마스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큼, 잔소리는 이쯤 합시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 누구보다 자기 몸 잘 챙기는 게 바로 접니다.”
“후우… 그건 알지만… 어떻게… 5현장 연구에 차도는 있는 겁니까? 당신 머리에 도움이 되는 게 맞아요? 계속 지켜봐도 되는 겁니까?”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걱정 좀 하지 마세요. 저 같은 사람 걱정해 봤자, 다 혜진 씨 손해예요.”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누군 좋아서 걱정하는 줄 압니까. 아무튼… 오늘 하루는 같이 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데이트 신청 아니죠?”
“미친 새끼.”
“욕하지는 마요.”
“욕 나올 만한 말을 하지 마세요. 그리고 오늘 스케줄도 전부 취소했으니 그렇게 알아두시고요. 그럼 저는 길드마스터에게 연락 좀 하고 오겠습니다.”
“…….”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오늘 복귀하기 힘들 것 같다고 말씀드리는 것뿐이니까.”
“네, 혹시 쓸데없는 걱정 하고 있으면 조만간 뵈러 간다고 말씀 좀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조혜진이 방 밖으로 나간 이후에는 주먹을 꽉 쥐며 다시 한번 작은 승리를 자축했다.
오늘 스케줄이 전부 취소됐다는 건 조금 아쉬웠지만 나도 쉴 시간이 필요하긴 했다.
특히나 오늘같이 성과를 얻은 날에는 조금 더 쉬고 싶기도 하고….
조혜진과 파티라도 즐기면서 적당히 하루를 보내는 게 가장 베스트이지 않을까.
‘라파엘한테도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다른 의미로 멘탈이 조금 망가진 것 같기는 했지만, 초조해할 필요가 없다.
이미 요리가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조금 다독이고. 마, 나는 괜찮다고 한 번 해주고. 마,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주면서 용기 내라고 한마디 하면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조혜진에게 녀석이 뭘 하고 있는지 물어보지 못했다.
‘이불이라도 뒤집어쓰고 있으려나.’
그럴 확률이 가장 높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여신의 손거울을 집어 들었지만… 거울에는 녀석이 비치지 않는다.
‘개인 연무장? 벌써 극복한 거야? 우리 용사님? 악마 놈들 처단하기로 한 거지? 역시 우리 회색빛의 용사는 다르다니까.’
내 생각보다 멘탈이 강한 아이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손가락을 놀렸지만 역시나 보이지 않는다.
도서관이나 개인정원, 식당, 그 어디에서도 녀석의 모습을 찾을 수 없는 것이 문제.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은근슬쩍 불안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야 여기서 낄낄거리고 있을 뿐이었지만 녀석에게는 지금까지 자신이 믿어온 모든 것이 부정된 사건이 아니었던가.
‘아냐… 아무리 그래도 그건 오바야.’
자신의 죗값도 치르지 않을 정도로 무책임한 녀석으로 키운 기억은 없다.
혹시나 조혜진이 나 대신 스케줄을 지시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었을 때, 타이밍 좋게 그녀가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허락은 받았습니다. 부길드마스터 말처럼 뭔가를 걱정하고 있는 것 같으셔서 조만간 뵙겠다는 말씀도 전해 드렸고요. 편하실 때 들러달라고… 그리고 건강 꼭 챙기시라고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잘됐네요. 그나저나 혜진 씨.”
“네?”
“라파엘 어디 있어요?”
“제가 말씀 못 드렸군요. 본인이 직접 훈련을 하고 싶다고 요청해 와서… 아마 지금쯤 린델로 향하고 있을 겁니다.”
“린델이라면….”
“네, 길드마스터께서 시간을 내주기로 하셨습니다.”
“현성 씨가 스케줄이 되요?”
‘뭐야… 너, 이 새끼 김현성한테 말하려고 그러는 건 아니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초조함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바로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비밀을 발설하지 않겠다고 성검에 맹세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쪽의 비밀을 까발리러 돌진했다기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물론 그 이유야 너도나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인 거고.
‘아프니까 청춘이다.’
무언가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