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8
회귀자 사용설명서 628화
대륙의 진짜 어둠(4)
그곳은 창문 하나 없는 방이었다.
‘말도 안 돼….’
말 그대로, 그곳은 창문 하나 없는 방 안이었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방이 아닌가.
노을빛의 검사라는 녀석의 이명처럼 인공적인 빛으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은 이상하리만큼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기분 나쁜 분위기, 그래, 기분 나쁜 분위기다. 음습하고 답답하여 온몸이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구역질이 나는 실내는 머리를 핑하고 어지럽게 만들었다.
지금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게 현실이 맞는지 의심이 될 지경이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끊임없이 늘어져 있는 사치품들… 대륙의 모든 값비싼 것들을 모아놓은 것만 같아 보인다.
‘사용한 흔적이 없어.’
하지만 사용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인위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화려한 가운데 자리 잡은 형의 모습은 마치 화려한 새장 속에 갇힌 새 같아 보였다.
‘어째서… 어째서 잠금장치가 바깥에 있는 거지?’
바깥에서 방을 잠글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어째서… 창문이 없는 거야.’
답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않은가. 굳이 추측할 필요도 없다. 형은 이런 취급을 받고 있었다.
‘저 목걸이는 또 뭐야.’
위치 추적 기능이 있는 아티팩트? 저런 게 어째서 필요한 건데.
‘이런 곳에서… 이런 곳에서 살아왔던 거라고? 이런 곳에서 지냈다고?’
정확히 얼마나 이곳에서 지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장소에서 2주 이상을 지내면 정신에 이상이 생기고 말 것이다.
수많은 금은보화와 사치품에 둘러싸인다고 한들, 저 사람은 기뻐할 사람이 아니다.
참아야 한다고, 더 이상 이상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눈을 비집고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정상이 아니다. 이 장소는 비정상적인 곳이고 사라져야 할 곳이다.
당장에라도 검을 휘둘러 모든 걸 때려 부수고 싶은 심정에 저도 모르게 손이 덜덜덜 떨려오고 있었다.
‘파란 길드원들은 뭘 하고 있었던 거지? 조혜진. 그 여자는 이걸 알고 있었던 건가? 다른 길드원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정황상 감금당하고 있었다는 게 확실하지 않은가. 감시당하고, 억압당하고 있었다.
지난 시간 동안 이기영 명예추기경은 이런 생활을 혼자서 감당하고 있었다.
‘형을 그렇게 믿고 따르던 길드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가?’라는 의심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형과 사귀는 사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정하얀은 이 방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게 맞나? 어쩌면 그의 협력자일 수도 있다.
조혜진, 그 여자를 믿고 싶었지만, 저 새장은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믿지 말라고 말해오는 것만 같았다.
제일 가관인 것은 형의 반응이다.
“길드에서 마련해 준 거처였습니다.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아서… 오래 지내지는 못했지만요.”
“…….”
“제가 사용하기에는 너무 넓어서… 아무튼 여기서 이러지 말고 밖으로 나가는 게 좋겠습니다, 하하….”
‘자각하지 못하고 있어.’
무엇이 잘못된 건지,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건지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야.’
이런 걸 깨닫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남을 위하고… 무조건 희생하는 모습은 바보라고 부르기에 충분했지만… 결단코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다.
이미 한참 전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생각했어야 함이 옳다. 자신이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깨달았어야 함이 옳다.
어쩌면… 어쩌면 어떤 마법적인 방법으로 인해 세뇌된 것이 아닐까.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것 또한 그 부작용일 수도 있다.
그런 가능성을 떠올려 봤지만,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완벽한 세뇌 마법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다.
가능성이 작을뿐더러 김현성에게도 좋은 방법이 아닐 게 분명했다.
녀석은 형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 단순한 꼭두각시로 만들려는 게 아니다.
천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기영이라는 순백색 도화지를 더러운 색으로 물들이려 하고 있다.
‘가증스러운 개새끼.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개 같은 자식.’
“괜찮으신 겁니까? 라파엘 님? 지금….”
“괜찮아요, 형.”
“안색이 좋지 않은데, 무리하지 마시고 들어가 쉬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니에요. 같이, 같이 있을 거예요.”
“불편하시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아니에요.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전혀요.”
‘둘만 있게 하면 안 돼.’
“…….”
“…….”
“그럼 슬슬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기영 씨.”
“네.”
언제나 싸늘했던 눈빛은 어느새 친절함으로 무장되어 환한 웃음을 보내고 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김현성의 가식적인 모습은 가면을 썼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평소와 달랐다.
만약 저 악마가 형을 세뇌한 것이 아니라면, 어떤 마법이나 약물과도 같은 인위적인 방법의 세뇌가 아니라면, 아마 저런 방법들을 통해 이기영이라는 사람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한 것이 아닐까.
형의 자아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흔들고… 스스로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닐까.
종국에는 형을 파국으로 이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이쪽은 알 수 없는 음습하고 비열한 행위들이 있었을 것이다.
튜토리얼 던전의 공략 때부터 함께 했다는 걸 떠올려 보면 더욱더 그럴듯해진다.
극적인 상황에서는 강한 무력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충분하다.
계속해서 형이 자신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도했고, 결과적으로 완벽한 신임을 얻었다.
모든 게 녀석이 의도한 그대로 인 게 분명하리라.
어째서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는지 당황스러울 정도, 정황은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친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 많아.’
김현성의 지난 행적을 돌이켜 보면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지 않은가.
교국 혁명 때도… 라이오스 사태 때도… 심지어 악마 숭배자 이토 소우타 사건이 터졌을 때도….
‘녀석은 없었어.’
녀석은 뒤늦게 자리에 도착했다.
그 시간에 녀석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은폐되어 있다.
녀석이 정말 대륙을 손에 넣고 뒤흔들고 있는 악마가 맞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지만, 눈에 보이는 가장 확실한 정황을 보고 어떻게 이 일을 부정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어떻게… 해야….
‘형을 구할 수 있지?’
어떻게 해야 이 자의 손에서 형을 구해낼 수 있지?
지금 저 목을 치면 성공할 수 있을까. 내가 저자를 이길 수 있을까?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봤지만 어떻게 판단해도 불가능한 것투성이. 현재로서는 저 괴물을 이길 방법이 없다.
운이 좋아 녀석이 방심했다고 한들, 검을 휘두르기 전에 자신의 목이 먼저 달아날 것이다. 김현성은 지독하리만큼 강했으니까.
‘형을 설득하는 방법은….’
“이렇게까지 준비할 필요는 없었는데…. 감사합니다, 현성 씨.”
‘무리야.’
무척이나 환하게 웃고 있는 형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두 번째 방법 역시 무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무리라고….’
의심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눈빛이었고… 자신에게조차 보여주지 않은 웃음이었다.
김현성이라는 인간의 진실에 대해 말해주려고 한들 듣지 않을 확률이 높다.
네가 무언가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김현성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형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길드 직원분들께서 힘을 좀 써주신 것 같더군요.”
저 거짓된 모습으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속여왔을까.
“일단은 감사히 먹겠습니다. 라파엘 님도 드세요.”
“네, 형.”
커다란 테이블이 부족하게 보이는 호화로운 만찬.
‘더러운 자식.’
전 대륙에서 벌어들이는 수많은 재화로 호화로운 생활을 일삼고 있는 것은 형이 아니라 녀석이었다.
권력과 명예를 이용해 주변 사람들을 컨트롤하는 것은 형이 아니라 녀석이었다.
‘힘이 있었다면….’
싸울 수 있는 힘이 있었다면….
그런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에 들어와 꽂힌다.
‘힘을… 힘을 키워야 돼. 기다리다 보면 분명히 기회가 올 거야. 분명히 잡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언제까지 기다리란 말인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황은 안 좋아질 것이다.
형은 점점 어둠 속으로 굴러떨어질 것이고 놈의 영향력은 점점 커질 것이다.
‘도망쳐야 해. 이곳을 벗어나야 해.’
현재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가 한계였지만, 그마저도 쉽지가 않다.
“어떻게… 입맛에는 조금 맞으십니까, 라파엘 님?”
“네… 네, 형.”
저 사람이 나를 따라와 줄까. 아니, 내가 저 사람을 구할 자격이 있는 건가. 따지고 보면 자신이 가장 커다란 죄인이다.
“오늘도 훈련받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많이 힘드셨을 텐데… 잘 견뎌 주시는 것 같아 제가 다 기쁘더군요. 현성 씨도 마찬가지였고요. 괜히 하는 말입니다만, 두 분이서 조금은 사이좋게 지내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시간을 종종 가져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기왕이면 파란 길드원들도 전부 부르면 좋을 것 같고요.”
“…….”
“…….”
“무엇보다 라파엘 님께서 직접 길드로 와주시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일이 전부 끝난 이후에 길드로 돌아갈 때 함께 와주셨으면 했거든요. 그렇지 않습니까, 현성 씨?”
김현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바깥에서 쿵쿵 소리가 들려온 것은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그때.
“실례하겠습니다, 길드 마스터.”
“들어오세요.”
“검은 백조의 박연주 님께서 잠깐 논의할 사안이 있다고, 급하게 연락을 주셨습니다.”
“제가 오늘은….”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급한 일이라고 하셔서….”
“잠시 후에 연락을 드리겠다고 전해주세요.”
“괜찮습니다, 현성 씨. 처리하고 오셔도 됩니다.”
“후우….”
“얼마 걸리지 않을 거라고 하시는 거 보니 업무 확인차 연락을 주신 것 같은데, 그 정도라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다녀오셔도 됩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네,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
‘기회인가?’
이윽고 형과 둘만 남게 된 상황에 저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형이 녀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형….”
“네?”
“파란 길드마스터는 어떤 사람인가요?”
“네? 갑자기….”
“그냥 궁금해서요. 형이 저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는 저 사람을 잘 모르겠어서….”
“음, 글쎄요.”
“…….”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고, 겉모습과 속이 많이 다른 사람입니다.”
“…….”
“아마 라파엘 님도 가까이 지내시다 보면, 그냥 보이는 게 다가 아닌 사람이라는 걸 금방 깨달으실 겁니다. 강해 보이지만 의외로 약한 면도 있고요. 책임에 짓눌려 있는 사람이기도 해요. 시답지 않은 농담을 의외로 좋아하기도 합니다. 만나서 정말, 정말, 정말 다행이라고, 이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
“소중한 친구고요.”
“…….”
말로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다시 알려주는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