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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630화 (621/1,590)

# 630

회귀자 사용설명서 630화

대륙의 진짜 어둠(6)

라파엘은 확실히 달라졌다.

혹시라도 녀석의 다짐이 작심삼일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미친 듯이 훈련에 열중하는 모습은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주고 있었다.

성장 속도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

‘얘, 이거 너무 빠르게 강해지고 있는 거 아니야?’

예상한 것보다 성장하는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물론 라파엘이 한창 강해질 시기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믿을 수 없는 성장 속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차희라마저 혀를 찼을까.

눈이 높은 김현성에게는 아직도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아 보였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녀석의 스타일이 순수한 검사와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라파엘은 김현성처럼 검술의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다.

물론 다른 삼류 검사들이 이 말을 들었다면 스스로 혀를 깨물고 거울호수로 뛰어들었겠지만, 어떻게 봐도 탑 클래스로 보기에는 아쉬운 것이 현실이었다.

회색빛의 성검에게서 받은 거대한 마력을 바탕으로 근거리, 중장거리 가리지 않는 하이브리드, 굳이 표현하자면 마검사나, 성기사 같은 포지션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물론 녀석이 운용하는 것은 회색빛의 검에게 부여받은 마력이었으니, 마검사라 부르기에는 애매했지만 활용 범위가 넓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심지어 최근 고급 마력 운용 지식을 깨달은 이후에는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강해져야 하는지에 대해 결론을 내린 상황.

장점을 극대화하기로, 고급 마력 운용 지식에 조금 더 투자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밸런스 있게 성장하는 것도 중요한 게 아닌가 걱정이 들었지만, 일단은 속성으로 강해진 후, 부족한 부분을 챙기겠다는 심산으로 보였다.

그 결과 내구 스탯은 전위라기에는 민망한 수준이었지만….

‘회색빛으로 내구력을 올리면 돼. 부족한 체력도 채워줄 수 있고, 아쉬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런 선택이 틀린 것 같지는 않아. 지금은 곧바로 사용할 전력이 필요한 거니까.’

차희라의 코멘트는 나쁘지 않았다.

박연주 역시 마찬가지였고.

‘제가 상대하기 까다로운 스타일이 될 것 같네요.’

암살자인 그녀가 가장 까다로워하는 상대가 전사나, 성기사 같은 타입이기는 했으나, 저 정도로 평가하는 것은 라파엘이 강해질 거라고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만약 라파엘이 평범한 전위로 성장하는 정도였다면 굳이 저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어가니 갑작스럽게 떡상하는 라파엘 코인에 미소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성장 속도가 전성기의 정하얀보다 더 빠르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녀석을 조금 놓아버리고 다른 일에 집중하려고 했건만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이 문제.

자기 자식이 전교 1등을 하는 것으로 모자라, 천재라고 치켜세워지는 상황에서 어떤 부모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잘 다니고 있던 직장을 그만두면서 자식 뒷바라지를 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생각해 보면 스스로의 행동이 그리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당분간은 여기 집중 좀 하고 싶다고요? 천사들은 어쩌려고요?”

“완전히 손 놓지는 않을 거야. 지금도 한소라랑 하얀이가… 잘해주고 있고, 남은 네임드 천사도 제작에 들어간 지 오래됐어. 물량을 전부 다 채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비슷하게 맞출 수는 있을걸.”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뭐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거 보니까. 정말 확신하는가 보네요. 요정도 필요 없는 거 맞죠, 오빠?”

“지금 당장은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아쉽게 됐네요.”

“…….”

“…….”

“뭐가.”

“그냥 아쉽게 됐다고요. 조금 색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한 거 있죠. 요즘 피차 스트레스도 많이 쌓인 상황이잖아요. 너무 바쁘기도 하고, 서로 역할을 바꿔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아요? 원래 이런 색다른 시도들이 긴 연애 생활을 버텨내게 하는 조미료가 되는 거잖아요. 아, 오빠한테 벌써 질렸다는 건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말아요. 그냥 내가 해보고 싶어서 그래, 내가 해보고 싶다고….”

‘누나, 왜 그래… 눈이 무서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한 번 바뀌면 최소 사흘이고, 지금은 그럴 시간도 없어. 걸리는 것도 많고….”

“그럼 일단은 킵 해놓을게요. 언젠가는 쓸 일이 있겠죠, 뭐.”

“…….”

“아! 그러고 보니 전술 라파엘은 어땠어요? 시험 삼아 한번 해본다고 하지 않았어요?”

“글쎄….”

애초에 테스트서버 돌리듯, 훈련 상황에서 시도해 본 것뿐이었지만, 사실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정작 라파엘은 무척 놀란 표정을 보이며 흥분한 모습이었지만, 자꾸 전술 김현성과 비교하게 되는 것이 문제였다.

‘형은 좀 어떠셨나요? 저는 완벽한 것 같았는데, 괜찮으셨나요?’

‘네, 저도…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대단해요. 형은 진짜… 대단해요.’

‘라파엘 님도, 네….’

그렇게 이야기는 했지만, 만족스러울 리가 없지 않은가.

전술 김현성과의 차이점은 일일이 열거하는 게 입 아플 정도였다.

스텟이 내려간 걸 감안하고서라도 단점이 무척 많다.

이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부족한 경험을 메울 수가 없는 것이다.

엔진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 외 모든 것에 문제가 있었다.

핸들은 뻑뻑했고 연비도 좋지 않다.

과속방지턱을 밟을 때마다 덜컹덜컹거리는 느낌이었고, 기어변환 속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앞으로 쭉 밀고 나가는 힘 정도만이 칭찬해 줄 만한 요소이리라.

‘힘으로만 밀어붙이려고 하니 효율이 나올 리가 있나.’

만약 라파엘을 공화국 전쟁 때의 김현성 포지션으로 꽂아 넣는다면 10분도 안 돼서 탈진해 풀썩 쓰러지지 않을까.

오히려 이쪽을 휘두르려고 했던 김현성과는 근본부터가 다르다.

더 많은 경험시켜 줘야 했고 부족한 부분을 아이템으로 챙겨줘야 했다.

내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는 걸 깨달았는지, 이지혜가 조용히 입을 여는 게 시야에 비쳤다.

“별로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표정이네요.”

“응, 사실 현시점에서 걔를 평가한다는 게 조금 그렇기는 한데. 지령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너무 늦어. 다른 문제들은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고. 잘 성장하고 있기는 한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써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니까. 현성이한테도 말하기는 했는데, 뚜렷한 해결책은 없는 것 같더라고. 훈련 강도를 높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나 봐.”

“뭐, 벌써부터 초조해할 필요 있나요? 이제 막 탄력이 붙은 애한테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것도 안 좋아요. 그래서 괜찮은 던전 구해달라고 한 거 아니에요?”

“꼭 그런 방향으로 써먹지 않더라도 경험은 필요하니까. 준비는 됐어?”

“되고 말고요. 매물로 나와 있는 던전 몇 개는 추려봤어요. 아마 충분히 만족하지 않을까 싶은데….”

“고생했어, 누나. 라파엘한테도 목록 추려서 보내놨지?”

“오빠 말대로 며칠 전에 보내놓기는 했는데… 혹시 전부 다 맡기는 거예요?”

“그래야 공부가 되겠지. 걔를 평범한 루키들이랑 똑같이 취급해 주는 건 무리가 있으니까….”

“흐음….”

“다른 루키들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걔네가 부사관 과정을 밟고 있다면 얘는 장교 과정을 밟고 있는 거라고. 그냥 장교도 아니라 사관학교 출신의 장교. 북서 지역을 책임져야 한다니까. 내가 괜히 얘를 데리고 있는 줄 알아? 던전 인선부터 공략까지 전부 다 맡겨야 해. 실패할 때 실패하더라도 부딪치기는 해봐야지.”

“뭐, 틀린 말은 아니네요.”

“자기중심의 파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자기가 직접 깨달아야 해. 지금까지 배운 걸 머릿속에 잘 집어넣고 있으면 실패하는 경우는 없을걸.”

“뭐, 그건 맞는 말이네요. 저야 이런 종류의 현장을 뛰어본 적이 없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실무도 본인이 직접 부딪쳐 봐야 하는 건 마찬가지니까. 언제까지 보모 짓을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첫 던전부터 영웅 던전으로 들어가는 건 확실히 이례적인 일이지만….”

“아마 무난할 거야.”

장담하건대 무난하게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녀석의 스펙이라면 영웅 등급 던전 정도는 클리어해 줘야 한다.

여신의 손거울이 울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약 200여 개 정도가 쌓인 정하얀의 메시지를 애써 무시한 채 시선을 돌리자 눈에 보인 것은 라파엘이 보낸 메시지.

[형, 인선 뽑아봤어요. 준비도 끝났고요. 빠르게 다녀올게요. 공략 영상이나 일지는 다녀온 이후에 보내 드릴게요. 아래 파일에 대충 정리해 놨으니 확인 한번 해주세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몸조심하셔야 해요, 꼭이요. 최대한 빨리 올게요.]

짧고 굵다. 심지어 행동력도 빠르다.

‘애, 이거 괜찮으려나.’

영웅 등급의 던전은 혼자 보내는 게 좋은 것 같아 전부 다 알아서 해보라고 하기는 했지만… 막상 보호자가 없다고 생각하자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인선도 나쁘지 않고 스펙만 봐도 영웅 등급 정도는 금방 클리어할 거라는 판단이 서지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게 던전 공략이 아니었던가.

운이 없으면 파티가 전멸하고 옥이야 금이야 키운 내 자식이 던전 미아가 될 수도 있다.

이지혜가 옆에서 별일 없을 거라고 말했지만 투자한 게 많은 만큼 괜스레 불안해졌다.

그 불안감이 가신 것은 정확히 사흘 뒤.

내 쓸데없는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듯 녀석은 훌륭히 던전 하나를 클리어하는 데 성공했다.

“무난했네요. 확실히 선택받은 용사는 선택받은 용사인가 봐요.”

“그러게.”

확인한 공략 영상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 정도.

처음 합을 맞춰본 파티원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던전 보스를 처리하는 과정까지 완벽했다.

물론 위기가 아예 없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착실히 대처하는 모습을 보니 메뉴얼을 숙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 이주일, 한 달, 두 달.

내 일과는 간단했고, 라파엘의 일과도 간단했다.

성장 속도에 탄력이라도 붙었다는 듯이 끊임없이 던전을 클리어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나름의 인맥도 구축하는 것처럼 보였다.

좋은 파트너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해, 나와 김현성이 비밀리에 지원하고 있었던 1회 차의 전쟁 영웅 몇몇을 라파엘과 만나도록 유도했고, 그렇게 성검 용사 파티가 완성됐다.

완전히 애송이 티를 벗고 한 사람의 모험가라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녀석이 던전이나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전선으로 갈 때마다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 또한 내게는 훈훈한 이야기.

그즈음에 라파엘이 인선에 내가 필요하다는 말을 전해왔고 나는 당연히 녀석의 제안에 응했다.

물론 김현성의 반대가 있기는 했지만, 조혜진과 박리안까지 대동한다는 조건으로 무난히 던전행 티켓을 따올 수 있었다.

‘왠지 불안합니다. 느낌이 좋지 않아요. 저도 함께 가야겠습니다.’

그렇게 말했던 김현성의 불안감과는 다르게 아주 무난하게 던전행이 마무리 지어졌다.

그런 식으로 몇 번을 더 다녀온 이후에는 별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김현성은 뭔가 찝찝한 게 있는 모양.

김현성이 캐치한 걸 내가 캐치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라파엘을 조금 더 바라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눈에 걸리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나를 바라보는 눈에는 호의가 가득했고, 말도 착실하게 잘 듣는 우등생의 이미지였다.

애초에 형형 거리며 눈물을 터뜨리던 녀석을 의심할 필요가 무어 있겠는가.

시험 삼아 머리를 한 번 부여잡았을 때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내 손을 잡고 베니고어에게 진심 어린 기도를 드렸을 정도다.

더러운 악마 계약자들은 모두 떨쳐 낸 것처럼 보였으니, 다른 사고가 생길 리 만무했다.

“준비는 조금 어떻습니까?”

“다 됐어요, 형. 인선도 전부 다 짜놨고요. 오늘도 조혜진 님, 박리안 님이 같이 가시는 건가요?”

“아마 함께 갈 것 같네요. 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번처럼 지켜보는 게 대부분일 겁니다. 공략 자체에는 참가하지 않으니까요. 물론 어쩔 수 없이 신경이 쓰일 수는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파란 길드마스터가 허락해 주지 않으셨겠죠.”

“하하….”

“그래도 형과 같이 가는 던전행이 제게 더 도움이 되고 있으니까요.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어요. 그럼 출발해도 될까요?”

“네.”

‘이 새끼 오늘따라 기합 들어가 있네.’

평소답지 않게 잔뜩 긴장한 얼굴, 최근 던전행의 평가가 그리 좋지 않다는 걸 생각해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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