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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631화 (622/1,590)

# 631

회귀자 사용설명서 631화

여왕의 무덤(1)

‘확실히 조금 어긋나 있는 것 같은 느낌이기는 했지.’

던전 공략에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공략 자체는 성공적으로 끝내기는 했지만, 그 과정이 형편없었던 것이 문제.

그동안 라파엘의 공략 영상에 거슬리는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전까지는 적어도 평점 5점 만점에 3.8점 정도는 줄 수 있을 정도였다.

전교 1등 성적표를 가지고 온 아들내미를 보는 심정으로 녀석을 응원해 왔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녀석이 살짝 미끄러졌던 게 바로 앞선 던전이었다.

사실 그 이전에도 문제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뭔가 아슬아슬해 보이는 부분이 있었지만, 결과가 좋으니 딱히 다른 말할 필요가 없었다.

스스로 극복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수라면 실수라일 것이다. 계속 눈에 거슬렸던 부분이 터지고 만 것이다.

형편없는 내용에, 우리 애 멘탈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지 고민해 볼 정도였다.

항상 전교 1등 성적표를 받아오던 놈이 휘청거리는 상황이었으니,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당연하다.

물론 난이도가 있는 던전이기는 했다.

전설 등급의 던전, 검은 심장의 난파선.

공략하기 까다로운 스타일이라고 하는 게 맞으리라.

거대한 배가 주 무대라는 것도 그랬고, 머메이드 같은 생소한 몬스터와 보스 몬스터였던 해적 선장 같은 놈도 상대하기 까다로워 보였으니까.

던전의 일부 지형은 물속에 잠기거나 산소가 희박하다는 기믹을 가지고 있었고, 철퍽거리는 바닥은 제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라파엘을 필두로 한 파티원들이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가 공략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보스전에서 대부분의 파티원이 리타이어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낙제점에 가까웠다.

평균 스펙 자체가 뛰어났기 때문에 공략에 성공한 것뿐이라는 거다.

‘엉망진창이었지.’

파티원 개개인이 특색이나 특성, 개성이 뛰어나다 보니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있는 것, 무엇보다 라파엘, 그 자신이 구심점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이 너무 떨어지기도 하고….’

여러모로 다듬을 곳이 많이 있었다. 별것 아니기는 했지만, 오늘 이기영이 함께 던전으로 나선 이유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었다.

“오셨군요.”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려요, 위원장님.”

“오랜만에 뵙는 것 같네요.”

슬쩍 고개를 돌리자 라파엘의 파티원들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사실 생소한 얼굴들은 아니다.

지난번에도 이 멤버와 함께 간단한 던전에 들어갔다 오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비밀리에 지원해 주고 있었던 인물들이 아니었던가.

전 대륙에 퍼져 있었던 1회 차의 영웅 중에서도 쓸 만한 녀석들을 추려 라파엘과 연결해 주었다.

의도적으로 엮어준 녀석도 있었고, 자연스럽게 엮어준 녀석도 있었다.

영웅 등급의 레이드 몬스터 사냥을 나갈 때, 우연히 만나게 된 사제와의 만남은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완성도 있다고 평가하는 이야기 중에 하나.

슬쩍 옆을 바라보니 라파엘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 한 명이 시야에 비친다.

대륙 1차 전쟁이 끝난 직후 기적의 사제라고 불리게 되는 마리엔.

유럽 쪽에서 소환된 모험가였고, 일반인으로서 위험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던 이들 중 하나였다.

사람들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작은 마을에 자리 잡은 이후,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적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 이후에는 전투 사제로 지원해 전쟁터를 전전하게 되지만 그건 1회 차의 이야기다.

아, 참고로 그녀는 가면쓰레기에게 비참하게 죽었다.

2회 차에서 그녀는 자신이 자리 잡은 마을을 잃지 않았다.

대신 아주 우연히,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언데드들이 그녀의 마을을 들이닥쳤고, 그녀의 각성이 조금 더 앞당겨졌다.

마을이 완전히 휩쓸려 나갈 뻔하기는 했지만, 우연히 각성에 성공한 그녀는 언데드들을 완벽하게 막아냈고, 이후 자신의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다 라파엘을 만나게 된다.

이제 막 모험을 떠나는 용사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동료로서는 제격이 아닌가.

‘쟤도 좀 괜찮았지.’

두 번째 녀석도 마음에 든다.

사냥개 이주혁.

이름에서 보이다시피 한국인.

굳이 분류하자면 우리 팀의 김창렬과 비슷한 포지션을 맡은 녀석이었다.

1회 차의 김현성도 인정할 만한 독기를 가지고 있었고, 천사와의 전쟁 때 녀석들의 날개를 입으로 물어뜯은 일화는 무척 유명했다.

이후 전쟁터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연합군 수뇌부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지만, 이것 역시 1회차의 이야기.

2회차에서는 용병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라파엘의 동료로서 시작하게 됐다.

거친 용병 생활로 얻은 경험치가 사라지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내 걱정을 날려 버리듯 가장 괜찮은 포텐셜을 보여주고 있는 녀석.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성격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만들어진 성격이었던 것이다.

라파엘에게 묘한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점마저 무척 훌륭하지 않은가.

참고로 녀석 또한 가면쓰레기의 손에 죽었다. 녀석의 별명답게 짐승들에게 뜯어 먹히는 최후를 맞이했다고 알려져 있다.

당연하지만 이 둘 말고도 괜찮은 놈들이 몰려 있다.

유망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마법사로서 전쟁의 한 축을 담당하던 녀석이었지만, 가면쓰레기 진청의 꾐에 넘어가, 배신자로 낙인 찍혀 목숨을 잃게 되는 비극의 마도사.

마찬가지로 이름을 떨치던 모험가 중 하나였지만 가면쓰레기가 자행한 단체 생매장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버린 궁수.

녀석의 옆에 자리해 있는 암살자 역시 같은 날 생매장 당해 수많은 포로와 최후를 함께했다.

또 마찬가지로 가면쓰레기와의 전쟁에서 패해 꼭두각시가 되어 전쟁터를 돌아다니게 되었다고 전해지는 공화국의 기사.

‘얘는 진짜 가슴 아프더라.’

동료들까지 본인의 손으로 죽였다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기억하는 게 맞다면 아마 그랬을 것이다.

아무래도 세기말 세계관이었던 만큼 모두의 끝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한때 모두가 이름을 날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가면쓰레기 진청이 아직까지 살아 있었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자랑스러운 용사 파티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뿔뿔이 흩어지거나 녀석의 더러운 술수에 당했을 게 분명하겠지.

‘확실히 그 새끼가 난 놈이기는 했어.’

김현성에게 들은 것만 떠올려 봐도 괜스레 내 손이 떨려올 정도였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조혜진 역시 가면쓰레기의 손에 목숨을 잃지 않았던가.

이미 끝난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이런 일을 잊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아무튼 자신의 파티와 함께 있는 라파엘의 모습은 괜스레 훈훈하게 보일 정도.

만난 지 그리 오래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우정을 나누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붙임성이 좋은 녀석인 만큼 자연스럽게 중심에 자리 잡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보호자 겸 파티원의 위치에 있는 나 역시 자리를 옮기기 시작한 것은 당연지사.

대놓고 주도하기보다는 일단 지켜보는 게 나은 선택이리라.

‘사실 보호자라는 말도 민망하기는 해.’

단언하건대 나는 라파엘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 반대라면 모를까.

둠기화를 한 상태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현재의 폼으로는 보호받는 포지션에 있다고 하는 것이 옳다.

파티 내의 위치도 전력분석관이나 감독 같은 포지션, 필드에서 직접 뛰는 감독의 지휘를 받으면 어떤 느낌일지 알려주는 것이 목표였다.

이를테면….

‘경험을 시켜주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파란의 파티에 녹아들어 있는 경험치를 가장 재빠르게 전해줄 방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내 머릿속에 다 들어가 있다니까.’

가지고 있는 것에 일부만이라도 파티원들의 몸에 집어넣어야 했고, 라파엘의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했다.

김현성이 오더를 하지 못해서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실제로 파란 파티 초기에는 김현성이 직접 파티를 이끌었지 않았던가.

물론 나를 신뢰하고, 내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하여 지휘권을 넘기기는 했지만, 김현성은 전술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심지어 차희라 역시 마찬가지다.

미치기 직전까지는 본인이 직접 붉은 용병을 이끌었고 카스가노 유노도 직접 병력을 이끈다.

어떻게 보면 필수 덕목이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아니다.

알고 있는 만큼 움직일 수 있고 경험한 만큼 움직일 수 있다.

대륙에서 칼밥 먹는 사람이라면 내 말에 반박할 수 없으리라.

라파엘 파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 그리고 경험.

‘형이 이쪽으로는 좀 알아주잖아.’

새로운 세계를 경험시켜 줄 준비가 되어 있다.

일선에서 벗어난 지 시간이 좀 흐르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음의 눈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으니까.

시작해도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곧바로 입을 여는 라파엘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

“오늘 공략할 던전은 전설 등급의 던전, 여왕의 무덤입니다.”

‘그래, 그래.’

“전설 등급의 던전이 그렇듯 자세한 정보가 공개되어 있지는 않지만, 시작 지점이 여왕의 무덤 안일 것이라고 추측되고, 지하 내부에서 소규모, 혹은 대규모 전투까지 진행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진형은… 던전 내부로 진입하고 첫 전투 이후에 한 번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럼 지금 곧바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따라 조금 더 진지하네요.”

“이유야 뻔하지, 뭐.”

“쓸데없는 잡담은… 자제해 주세요.”

“네, 네. 알겠습니다, 용사님.”

‘얘네 진짜 분위기 나쁘지 않네.’

놀리기 위한 게 아니라 긴장을 풀어주려고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라파엘이 리더 포지션이기는 하지만….’

경험은 제일 적으니까.

이쪽의 개인 호위로 함께 자리한 조혜진 역시 나와 비슷한 반응.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좋은 파티라고 생각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파티 그 자체의 벨런스도 나쁘지 않다.

후위가 조오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건 라파엘이 보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던가.

확실히….

‘잘 짜기는 했어.’

자신이 가장 활약할 수 있는 파티를 구성했다는 게 느껴졌다.

단언컨대 녀석이 없다면 이 파티는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부족한 후위의 화력을 메워주면서도 전위와 후위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파란의 파티와는 또 다른 매력. 완성도로 따지면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잠깐 놀기는 괜찮은 파티 같아 보인다.

파티원들의 세부적인 스텟과 능력, 개인 성향, 아이템을 마음의 눈으로 한 번 훑어본 이후에는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물론 최대한 힘든 표정으로 조혜진을 바라보는 것 역시 동시에 이루어졌다.

무거운 짐을 너무 오랜 시간 들고 있었는지 벌써부터 다리가 아파온다.

조금 미안하기는 했지만 힘들다는 듯이 헉헉거리자, ‘저 새끼 또 저 지랄’이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 쏟아져 왔다.

나도 모르게 머리가 아프다는 듯 표정을 찡긋거리자, 그제야 다가오는 조혜진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들고 있는 것 주세요.”

“아닙니다. 괜찮아요, 혜진 씨. 혼자 들고 갈 수 있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넘기세요. 이 정도는 들어줄 수 있으니까. 어차피 공략에도 참가 안 하는데, 가방 하나 들고 있는 것 정도는 문제없습니다.”

“괜찮다니까요.”

“들어달라고 저 쳐다본 거 맞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꼭 그런 건 아니었는데….”

“빨리 넘겨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이제야 조금 홀가분해지는 어깨. 타이밍 좋게 던전에 도착했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곧바로 진입하겠습니다.”

[전설 등급 던전 여왕의 무덤에 입장하셨습니다. 인원 [9 / 10]을 확인했습니다.]

제법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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