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4
회귀자 사용설명서 634화
너희 김현성 레이드팟 아니지?(1)
과장해서 아무렇게나 던지는 말이 아니다.
단언하건대 이 파티로 김현성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어디 급이 높은 악마와 계약하지 않는 한,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아니지. 겨우 계약한다고 되겠어?’
계약할 악마가 대륙에 자리 잡고 있지 않은 한은 효율이 나오지 않을 것이 분명하리라.
용사 파티를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현재의 김현성은 강하다.
1년 전만 해도 사천왕 최약체 도노반을 반으로 갈라 버리지 않았던가.
이쪽에 연락 한 통도 없이, 정말 연락 한 통도 없이 수련에 매진한 녀석이 지금은 얼마나 강해져 있을지 제대로 상상하기 힘들었다.
솔직히 나 역시 최근 진심이 된 김현성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보이는 스텟으로만 대충 예상할 뿐이었지만 김현성의 무력을 단순한 스텟창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 아닌가.
아마 내가 상정하는 범위보다 더 무력이 오르지 않았을까.
정말로 마음을 독하게 먹고 바깥 신과 녀석을 따르는 비둘기들과의 결전을 준비했다고 생각해 보면, 적어도 신화 등급에 가까운 화력을 낸다고 하는 것이 옳다.
일단 파티원 대부분이 김현성의 움직임을 눈으로 제대로 좇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
후위 같은 경우에는 그림자조차도 제대로 볼 수 없다.
사제인 마리엔의 경우에는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른 채 숨을 거둘 가능성이 컸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목이, 서 있는 자신의 몸을 발견하고 나서야 비로소 본인이 죽었다는 걸 인지할 수 있지 않을까.
궁수나 암살자 역시 마찬가지다. 애초에 민첩을 주 무기로 싸울 수 있는 놈들이 아니었던가.
싸움 자체가 성립하지 않고, 파티의 탱커 라인을 맡은 기사 역시 김현성에게서 파티원들을 지켜줄 수 있을 만한 민첩함과 시야가 없다.
그나마 발끝이라도 따라갈 수 있는 게 라파엘과 사냥개.
어디까지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있고 검을 맞대는 것 정도가 가능하다는 거지, 싸움을 이끌어나갈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희망이 있다고,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고 싶었지만, 이 경우에는 팩트를 선물해 주는 것이 옳다.
하지만 녀석들에게는 충격이 꽤나 컸던 모양.
‘분위기가 별로 안 좋네.’
한참 의기양양했던 시기였던 만큼, 현실을 마주하자 기가 죽은 것 같았다.
‘그래도 어쩌겠어. 그게 현실인데….’
꿀 같은 휴식시간이 끝난 이후에 원정에서도 이 분위기가 그대로 전달되었기 때문에, 약간 걱정되었지만, 공략을 진행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오히려 독기가 오른 듯 더욱더 열심히 하는 모습에 약간은 감동했을 정도였다.
내가 감동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 옛날 열심히 노력하던 박덕구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 얘들아. 열심히 해줘야지. 내가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데… 겨우 그 정도로 멘탈이 나가고 그래. 너네는 아직 더 클 가능성이 있어요. 한 10년 정도 엄청 열심히 하다 보면 그래도 가능할 거야. 그러니까 힘내세요, 힘.’
나 역시 본격적으로 녀석들을 케어하는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으리라.
이미 한 번 교정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스텟의 성장 가능성에 따라 효율이 좋은 스텟에 투자하라고 조언해 준다든지, 가능성이 보이는 능력에 대해 조언해 준다든지, 아니면 보완해야 할 아이템에 대해 서술해 주는 종류의 지원이었다.
계속해서 던전 내부에 있는 상황이었지만, 공략이 끝난 이후에 아이템을 교체하는 녀석들도 있었고, 또 휴식시간 중간중간, 수련에 힘을 쏟고 있는 녀석들도 있었다.
던전의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가능한 일이었다. 행군 시간은 길었고 전투 후에 쉬는 일도 잦았다. 오죽했으면 식량이 떨어지는 상황을 걱정했을까.
하지만 무덤의 내부로 진입하면 진입할수록 점점 더 보스 몬스터가 보이는 곳에 닿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실제로 앞서 정찰을 나갔었던 궁수가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전해왔고, 그 결과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었다.
“형.”
“네?”
“…….”
“…….”
“아무것도 아니에요.”
뭔가 할 말이 있는지 라파엘이 자꾸 괜스레 말을 걸며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 던전행으로 한 계단 더 성큼 성장한 모습이었다.
시간이 조금씩 조금씩 지나고 밤을 지새우는 일이 많아질수록 둘만의 자리를 만들려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결정적인 말을 해오지는 않았다.
그사이에 던전 보스를 마주칠 수 있었고 그 이름에서 보이듯 녀석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상했었던 것처럼 여왕 타입.
-감히 나의 영역에 침범하다니!
상투적인 대사를 날리며 원정대를 위협해 오는 모습에 오금이 저리기는 했지만, 그동안의 원정으로 경험치를 쌓아 올린 녀석들은, 굳이 내 오더가 없이도 제법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누군가 완벽하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젓겠지만, 적어도 얘네들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 중에서는 최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호흡도 잘 맞았고, 개인적으로도 작은 성장을 이루어 냈다.
상정하던 결과 중 최선의 결과가 아닐까.
콰아아아아앙!
“후위, 후위 완벽하게 보호해 주세요. 후위를 보호해야 합니다.”
“…….”
“기사님은 전위를 봐주지 않으셔도 돼요. 어떻게든 마리엔 님에게 꽉 달라 붙어주세요, 꼭.”
“…….”
“모습을 놓쳤다고 당황하실 필요 없습니다. 최대한 뭉쳐서 막으면 됩니다. 최대한 뭉쳐서. 마법사님은 보호 마법 상시 대기해 주시고… 시야에서 놓쳤다고 생각하는 즉시 보호 마법 외워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당할 겁니다.”
-허락받지 못한 인간들아. 나를 잠에서 깨운 죄를 톡톡히 물을 것이니.
거대한 검을 든 여왕이 빠르게 몸을 옮기자, 즉시 보호 마법을 외우는 마법사.
콰드드드득!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커다란 충격이 있을 리 만무했다.
사냥개 이주혁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왕을 뒤를 쫓으며 계속해서 견제하고 있었고 궁수와 암살자는 그런 사냥개를 돕고 있다.
기사는 사제와 마법사에게 절대로 떨어지지 않았고, 라파엘은 이런 이들을 잇는 다리가 되어 전체적인 상황을 조율하고 있는 상황.
너무 지지부진하게 움직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현재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포지션을 잡고 있다는 것에는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못하리라.
조혜진도 유기적인 팀플레이에 조금은 놀랍다는 듯이 입을 벌리고 있지 않은가.
아직 패턴을 다 파악하지도 못했으니, 두고 보자는 심산이 아니다.
이 파티는 이런 종류의 진형이 가장 알맞다고 판단을 내렸다.
이 던전을 공략하고 경험하고, 새로운 아이템을 얻고, 훈련하는 동안, 이 게 맞다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완벽하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라파엘의 결정이었으니 뭐라고 하기에도 조금 애매했다.
무엇보다 지금보다 더 발전할 것이라는 걸 생각하면 틀림없이 나쁜 선택은 아니다.
라파엘 자신이 가장 잘 싸울 수 있는 위치를 본인이 직접 찾은 셈이었으니까.
세세한 부분을 조정해 주는 것 같아 간단히 지시사항을 열거하자. 확실히 점점 더 모양새를 갖추어가는 것이 보인다.
‘이 코인 된다! 무조건 된다고!’
1회 차의 영웅들과 성검 용사의 만남. 하나의 파티로 점점 자리 잡고 있는 녀석들을 보는 건 정말로 기쁜 일이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던 것은 바로 그때.
‘설마….’
검을 들고 설치는 여왕의 모습에서 언뜻언뜻 김현성의 모습이 비쳤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니지, 이 새끼들아?’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저 파티의 모습이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김현성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검을 든 여왕을 상대로 연습이라도 하는 것처럼 김현성과의 전투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새끼들이 며칠 전에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 부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들이 김현성을 상대하는 모습이 머릿속으로 천천히 그려진다.
사제에게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기사, 모습이 사라진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반드시 보호 마법을 외우고 있는 마법사, 끈질기게 뒤를 따라붙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어떻게든 방해하려는 사냥개, 생매장 듀오의 독이나 허를 찌르는 화살, 그리고 파티를 조율하며 어떻게든 결정타를 먹이려 전황을 살피고 있는 라파엘까지.
‘설마… 아니겠지? 너희 시바, 김현성 레이드 팟 아니지?’
생각해 보면 아까 전 발언 역시 무척이나 신경 쓰이지 않는가.
당연히 장난삼아 물어본 것에 불과하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의미심장한 부분이 많다.
‘아니야, 시바. 그럴 리가 없어. 소중하게 키운 내 자식들이 그럴 리가 없다고.’
무척 가라앉은 파티의 분위기도 다시금 재조명된다.
그리고 목숨을 건 결사단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던 녀석들의 얼굴도, 심지어 이쪽과 시간을 만들려고 했던 라파엘 역시 신경 쓰인다.
‘우리 애들이 그럴 리가 없다니까.’
이미 의심이 점점 차오르고 있었지만 애써 이 의심을 누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확실한 정황과 증거가 없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나를 다독이는 이유는 이 코인이 떡락할 리가 없다는 자기세뇌였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럴 리가… 우리 라파엘 장군님이….’
시바, 진짜 이거 망하는 거 아니야? 얘네들 싹 다 치워 버려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우리 애들을 치우려고 하고 그래요?’
점점 어지러워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이대로 이 코인을 놓아버리기에는 투자한 것이 너무나도 많았던 탓이다.
‘그래, 아직 결정된 것도 아닌데. 뭐… 내가 너무 과민반응한 거겠지. 너희 김현성 레이드 팟 아니니까. 아닐 거야. 설마 그럴 리가 없어. 응, 아니야.’
김현성의 고백을 받았던 그 순간부터 자식 키우는 마음가짐으로 지원을 쏟아낸 우리 1회차의 영웅들.
물론 녀석들은 일부였지만 쓸 만한 놈들이 많은 만큼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파엘이….’
성검 코인을 끝가지 붙들고 있었던 이유.
제대로 키워보자고 다짐했고, 실제로도 그래왔던 만큼 가슴이 저릿저릿하다.
고액 과외도 붙여주지 않았던가.
녀석의 교육을 위해 희라 누나에게 로비하며 아양을 떨었던 나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아니야.’
라파엘이 내게 보내는 미소와 눈물은 거짓을 읽은 적이 없다. 애초에 이쪽을 적대시할 거였다면 기회는 많았을 것이다.
‘우리 현성이가 뭘 잘못했다고 얘네가 이러겠어.’
때마침 라파엘이 던전 보스에게 일격을 날리는 모습이 전해져 온다.
내가 이 정도로 성장했다고, 이제부터 효도하겠다고, 이제는 고생 끝이라고, 우리 힘든 시절 전부 끝났다고 외치는 것만 같은 효자의 눈빛.
녀석의 눈빛을 본 순간 저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였다.
쓸데없는 오해는 이 시점에서 끝.
“형.”
나를 부르는 목소리와 함께 기분 좋게 뛰어오는 녀석을 맞으려 함박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걸어 나가자 입술을 꽉 깨문 라파엘의 얼굴이 눈에 보였다.
“죄….”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박리안이 쌍칼을 휘둘러 놈의 목을 노리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송해요, 형.”
‘죽이면 안 돼, 시바.’
뭔가 좋지 않은 기운을 감지한 것은 박수를 보낼 만했지만, 이야기도 듣지 않고 곧바로 죽일 것처럼 검을 날리는 모습은 가관.
그만큼 라파엘이 만만치 않게 성장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박리안의 표정에는 여유가 없고, 라파엘의 표정은 여유롭다.
목이 달아날 것 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놈의 표정은 무척이나 여유롭다.
저번 박리안과 부딪쳤을 때 분명히 땅바닥에 처박혔던 것은 라파엘이었지만, 이번에 바닥에 처박혀 있는 것은 박리안.
콰드드득!
‘내가 쌍검 찍지 말라고 했지.’
심지어 놈의 옆에서 창을 날려오는 조혜진의 공격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창이 녀석의 목에 닿기 직전, 움직임을 멈춘 채 나를 바라보는 조혜진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내 목에 성검을 겨누고 있는 라파엘.
녀석은 8장의 회색 날개를 활짝 편 채로.
멍한 표정의 조혜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두 분 다 죽이지 않겠습니다.”
“당신….”
“김현성을 불러오세요. 정확히 일주일 후에. ‘혼자 이곳으로 오지 않는다면 이 사람을 죽일 겁니다’라고 전해주시면 됩니다.”
“…….”
“일주일 후에, 혼자, 이곳으로 와야 합니다. 제 말 똑똑히 전해주세요. 조혜진 님.”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은 장내.
‘너, 왜 시바… 자살하려고 그래, 이 새끼야….’
성검 코인 떡락이 확정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