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5
회귀자 사용설명서 635화
너희 김현성 레이드팟 아니지?(2)
자식에게 배신당한 부모의 심정이 이러할까.
올라갈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종목이 상장폐지가 됐다는 소식을 접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장내가 무척 혼란스러웠지만 내 속만큼 혼란스러울까.
여러 가지로 똥줄이 탈 수밖에 없었다.
‘이거 수습 가능한 거지?’
완전히 떡락해 버린 코인을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 없다. 언제까지 존버해야 하는 건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사실 나 자신이 위험한 상황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목에 날붙이가 맞닿아 있기는 했지만, 라파엘이 내 몸에 해를 끼치려는 게 아니라는 건 대충 알 수 있었으니까.
나에게 죄송하다고 말한 것도 그랬고, 묘하게 이쪽을 배려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혹여 다리가 풀려서 쓰러지지 않을까 몸으로 나를 지탱하는 게 느껴진다.
납치범이 인질을 배려하고 있다는 사실이 웃기기는 했지만, 애초 녀석이 노리는 것은 이쪽이 아니다.
최소한 라파엘은 나를 적대시하고 있지 않다.
우리가 함께했던 그 시간들, 그 추억들, 그 따뜻했던 나날들.
‘시바….’
최소한 그건 거짓이 아니었다.
녀석이 적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김현성.
어째서 녀석이 김현성을 적대시하는지는 조금 더 알아봐야겠지만, 묘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이 오해를 풀 수 있다면 녀석을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다시 한번 우리의 소중했던 추억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내 주식… 소중한 내 추억.’
곧바로 터질 것만 같은 폭탄이 되어버린 장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아연실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조혜진.
그녀 역시 나와 별다를 바 없어 보였다.
현재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얘랑 제법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저런 얼굴은 처음 본다.
‘아니지.’
정확히 말하면 처음 보는 것은 아니지.
그녀가 천인공노할 가면쓰레기에게 죽었을 때도 저런 표정을 지었으니까.
김현성을 대신해 희생했을 때에도 저런 얼굴을 하지 않았던가.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만, 마음을 굳게 먹었다는 것은 같다.
말이 잘 나오지 않는지 입을 뻐끔거리는 모습.
이내 천천히 입을 여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계속해서 들고 있던 창을 땅바닥에 천천히 내리고 두 팔을 위쪽으로 든 채로 말이다.
“부길드마스터를 놓아주세요. 인질이 필요하신 거라면 저로도 충분할 겁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무기를 버리면 어떻게 해.’
심지어 창을 발로 툭 밀어 자신과 떨어뜨리는 모습.
전투 의지가 없다는 걸 표현하는 것 같았지만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라파엘이 이곳에 있는 이들에게 따로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인받은 상황이었지만 그 말이 구라일지 누가 알겠는가.
‘얘가 너랑 나 둘 다 죽일지 어떻게 알고. 왜 이렇게 사람이 의심이 없어.’
“아니요, 제게 필요한 것은 당신이 아니라 이 사람입니다. 조혜진, 당신은 인질로서의 가치가 없어요. 두 번 말하지 않겠습니다. 어서 돌아가서 제 말을 전하세요.”
“원하는 게 있으시다면….”
“원하는 건 이미 한참 전에 말씀드렸습니다. 더 이상 제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세요.”
“하지만….”
“제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목 근처에 서늘한 게 닿는 감각은 반갑지 않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떻게든 이 사태를 진정시켜야 한다는 것.
“이러실 필요….”
하지만 목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는다.
‘개 시바….’
조혜진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날붙이가 연약한 피부를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너, 진짜 왜 그래. 형 목에 상처 남기려고?’
박리안은 아직까지 바닥에 얼굴을 맞닿은 채 제압당해 있었고, 어느새 다가온 사냥개 이주혁이 그녀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댔다.
얼굴에는 분하다는 표정이 한껏 드러나 있었지만, 그녀 역시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무엇보다 8개의 날개를 펼치고 있는 라파엘은….
‘강해.’
아마 완전히 성검의 선택을 받았다고 말해도 상관없으리라.
단순히 스펙상으로는 조혜진보다 강하다.
물론 경험의 차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차이가 녀석의 발목을 잡겠지만, 준신화 등급에 근접할 정도의 힘을 이어받은 녀석은 강했다.
파티원들과 함께 박리안, 조혜진을 상대한다고 가정했을 시, 승산은 저쪽에 있다는 거다.
조혜진도 그걸 알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나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을 수도 있겠지.
‘정말로 해를 끼칠 생각은 없어. 무언가 원하는 게 있는 거야.’
라고.
조혜진의 머리가 팽팽히 돌아가는 것이 보였지만, 마음 급한 라파엘이 이 사태를 가만히 지켜볼 리 만무하다.
뭐라도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살짝 표정을 찡그리자, 곧바로 반응하는 녀석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혀, 형.”
무척 당황하는 모습, 납치범이 보여줄 수 있는 얼굴이 아니다.
잠깐 긴가민가했지만 역시나 라파엘은 나를 걱정하고 있다.
‘그래, 우리 추억 아직 잊지 않았잖아, 그렇지?’
“형! 괜찮아요? 형! 어, 어!”
온몸에 힘을 다 빼고 연기에 몸을 싣는다. 혼을 담아 최대한 머리가 아프다는 모션을 취하자, 곧바로 조혜진이 입을 열어오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어, 어… 아….”
“부길드마스터를 내려놓으세요. 스트레스를 받으시면 발작을….”
“어? 어, 아….”
“어서 빨리 내려….”
“가, 가까이 오지 마! 제길! 가까이 오지 말라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터져 깜짝 놀랐는지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중.
이 타이밍에 발작을 일으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조혜진의 말에 나를 바닥에 내려놓아야 할지, 아니면 계속해서 꽉 붙들고 있어야 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빼앗기기 싫은 것처럼 이쪽을 꽉 껴안는 것이 느껴졌다.
눈에는 얼핏 광기마저 느껴져 실수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되는 상황.
“빨리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초조해 보이기는 박리안과 조혜진 역시 마찬가지.
이런 극한 상황에 터진 갑작스러운 발작이 연기라는 걸 알 법도 하건만, 그녀에게 그 정도의 눈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 와중에 라파엘의 가까이 오지 말라는 말에 반응한 그녀도 참 그녀답지 않은가.
“빨리 내려놓으세요! 편하게 숨을 쉴 수 있게….”
“가까이, 가까이 오지 말라고! 내가,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다고.”
“당신….”
“지금 빨리 가세요. 지금 빨리 가라고. 빨리 가서, 김현성한테 전해. 아까 내가 말한 대로… 똑바로 전하라고. 당신이 할 일은 그거야. 그게 형을 위한 길이니까. 내가 한 말 만 전해. 형은 내가 지킬 거야. 내가 지킬 거라고.”
“…….”
“빨리… 빨리!”
‘역효과, 시바, 역효과.’
더 이상 라파엘을 자극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조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통스러워하는 내 얼굴을 두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입술을 꽉 깨문 모습은 가관.
“약속은 지킬 거라고 믿겠습니다.”
그 뒤로 조혜진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곧바로 달려 나가는 모습을 확인했는지, 라파엘이 나를 든 채로 몸을 돌렸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시야가 변하는 게 느껴졌지만 뭐라고 반응할 수 있을 리 없다.
일단은 계속해서 고통스럽다는 모션을 취하자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 것이 들려왔다.
“형… 형….”
“…….”
“형… 괜찮으시죠? 괜찮으신 거 맞죠? 그렇죠?”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문을 여는 소리가 몇 번이나 들린 후 등 뒤로 푹신푹신한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마 침대 비슷한 곳에 나를 내려놓은 것이 아닐까.
“괜찮으신 거죠? 괜찮으실 거예요. 제가… 제가 치료해 드릴 수 있어요.”
“아, 하아, 하아….”
“제가 해결해 드릴 수 있어요.”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며 괴롭다는 듯이, 아파 뒈지겠다는 듯이 눈을 치켜뜨자 황급히 외투를 벗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최대한 숨을 편하게 쉴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조혜진의 말을 기억하는 것이 분명하리라.
그제야 힐끔거리며 이 방을 둘러 볼 수 있었다.
무척이나 넓은 방 안, 이 던전에 이런 곳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지금 있는 위치가 어떤 곳인지는 대충 감이 잡힌다.
여왕의 무덤이라는 던전 이름이 말해주는 것처럼 여왕이 사용하던 방은 아닐까.
계속해서 잠만 자고 있었던 이 던전의 던전 보스가 이 방을 사용했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넓고 고급지다는 느낌이다.
그 와중에 계속해서 숨을 헐떡이자 라파엘이 발을 동동 굴렀다.
당연하지만 창백해진 안색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다급해 보인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모습.
때마침 기적의 사제가 등장한 게 놈에게는 다행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형은, 형은 괜찮은 건가요? 형은….”
“잠깐 살펴볼게요, 잠깐만.”
“어떻게 하지. 어떻게… 어떻게 하면 좋지? 빨리 봐주세요. 빨리….”
“일, 일단 진정하세요. 저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일시적인 발작이라고 했으니 아마 가라앉으실 거예요. 분명히….”
“하아, 하아, 허억….”
당연하지만 제대로 된 원인을 찾지 못하자, 그녀 역시 당황하고 있다.
계속해서 신성력을 밀어 넣고는 있었지만, 차도가 있을 리 있겠는가.
수면 마법을 사용해야 한다. 아니면 수면제 비슷한 뭐라도 먹여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는 가운데 이쪽 역시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이후 일어날 상황에 관한 이야기였다.
‘시바, 이거 어떻게 하지. 이거 큰일 나는 거 아닌가. 진짜 어떻게 하지.’
기왕이면 이대로 린델로 데려다줬으면 좋겠다.
형이 너무 괴로워하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그렇게 쉽게 될 것 같지 않다는 게 문제.
이미 마음을 굳게 먹은 것처럼 보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라파엘은 현재 양보할 생각이 없다. 아까 전 조혜진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말했던 시점에 이미 답은 나왔다.
도대체 어째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해를 끼치려 한다기보다는 보호하려는 것 같지 않은가.
물론 누구에게서 나를 보호하려고 하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전까지 있었던 행동으로 유추해 보면….
‘도대체 왜….’
김현성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일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꼬였는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오해를 풀 시간은 있어.’
김현성이 이곳에 도착하는 것은 정확히 일주일 후니까.
성검 용사 파티에게는 재정비하고 지금까지 소모한 체력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녀석들을 말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리라.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녀석들을 살릴 기회.
때마침 마법사마저 이쪽에 들어왔다.
계속해서 진정되지 않자 마지막 수단인 수면 마법이라도 걸려고 하는 것이 분명하다.
머리를 쥐어뜯는 내 양팔을 꽉 잡은 라파엘과 계속해서 신성력을 쏟아내고 있는 기적의 사제 마리엔, 그리고 허겁지겁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는 마법사까지.
정말로 잠에 빠지면 안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숨을 천천히 고르자, 곧바로 주문을 캔슬하는 것이 느껴졌다.
인위적으로 재우는 것보다는 편하게 쉴 수 있게 해주는 게 좋을 거라고 판단한 거겠지.
연신 ‘엿 됐다’라는 생각을 곱씹으면서도 걱정된 것은 역시나 우리 사랑스러운 회귀자.
‘얘, 어떻게 하지?’
당연하지만 하얀이 역시 신경 쓰인다.
물론 조혜진의 성격상 길드원들이 모르게 일을 처리할 것 같기는 했지만, 일주일 후에 혼자 이곳으로 도착할 김현성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가 없다.
‘아니야.’
라파엘이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건 조혜진이 대충 알고 있을 테니까… 그것까지 전한다고 가정하면….
‘그렇게 화나지는 않았을 거야. 그렇지? 내 생각이 맞지?’
최대한 이성적으로 이 상황을 풀어나가려 할 것이다.
분명히… 분명히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