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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637화 (628/1,590)

# 637

회귀자 사용설명서 637화

일주일(2)

‘누가 요리한 거지.’

“왜 이렇게 살살 녹는 거야.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

그 말 그대로였다. 한입 더 먹고 싶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

애초에 이걸 다 먹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코끝을 찌르는 향긋한 냄새에 낚여 손대기는 했다만, 이걸 전부 해치운다는 건 현재 이 상황을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것과 진배없다.

물론 배가 고프기는 하다. 아무리 내 입이 짧다고는 하지만 던전에 들어온 뒤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으니까.

심지어 예상했던 것보다 던전의 넓었기 때문에 공략 마지막에 와서는 풀죽 같은 것밖에 먹지 못했다.

‘이런 건 또 어디 숨겨놓은 거야?’

처음부터 계획적이었다고 해야 설명이 된다. 예상은 했지만, 호화로운 만찬을 보자 더욱더 내 생각에 확신하게 된다.

‘가방 적재 용량에 한계가 있을 텐데, 지들 먹을 건 있나 몰라.’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될 정도의 만찬, 물론 만찬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소박했지만 던전 안에서 이 정도면 감지덕지다.

초창기 파란 길드가 던전을 다닐 때보다 퀄리티가 좋지 않은가.

안타까운 것은 이 모든 음식을 버려야 한다는 것.

이기영은 최대한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걸 표현해야만 했다. 그래야 이 새끼를 설득할 여지가 있을 테니까.

처음부터 이러는 이유가 뭐냐고 열변을 토하는 것보다 일단은 입을 꾹 닫고 있는 게 효과가 더 좋게 느껴질 것이다.

상대방을 먼저 초조하게 만드는 것은 협상에서 꼭 필요한 자세가 아니었던가.

때마침 인기척이 느껴졌다. 커다란 방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일지는 안 봐도 뻔했다.

“들어갈게요, 형.”

“…….”

“식사는 좀 하셨나요.”

“…….”

아무 말 없이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 팔을 휘두르자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먹기 좋은 음식들이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녀석이 입술을 꽉 깨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네가 준 음식은 절대로 입에 대지 않을 거라는 눈빛을 한 번 쏘아 보내는 적대적인 반응을 보여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굳은 라파엘의 얼굴을 보니, 이 정도로 냉담한 반응을 보일지는 몰랐던 모양.

시간이 지나면 조금 풀어질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상처받은 이기영의 마음을 풀기 힘들다는 건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입에 잘 맞지 않으셨던 모양이네요.”

‘아냐, 입에는 잘 맞았어. 정말로 잘 맞았다고. 솔직히 전부 다 먹고 싶었는데… 자존심 때문에 못 먹은 거야.’

“다, 다시 가져올게요. 아니면 따로 먹고 싶은 게 있으세요?”

‘거울연어.’

“거울연어도 가지고 왔는데. 그걸로 준비해 드릴까요?”

‘그건 또 언제 챙겨왔어? 아니야, 그런데 지금은 필요 없어.’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이 와인잔을 집어 던지자 가만히 서서 그걸 또 맞고 있는 놈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좋아하는 와인이었는데.’

다른 건 몰라도 저건 조금 아깝다. 역시 던지지 말걸.

졸지에 와인을 뒤집어쓴 라파엘은 다소 당황한 표정, 하지만 딱히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쓴웃음을 지으며 직접 땅바닥에 떨어진 접시들을 줍는 모습은 가관.

“밟으면 다쳐요.”

그렇게 말하는 녀석의 뒷모습이 굉장히 씁쓸해 보였지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형이 절 어떻게 생각하시든 상관없어요.”

“…….”

“몸은 조금 어떠세요, 괜찮으신 거죠?”

“…….”

“많이 놀라셨겠지만….”

“나가.”

“…….”

더 이상 다른 말이 필요 없다.

한숨을 크게 쉰 녀석의 쓸쓸한 뒷모습이 다시 한번 눈에 들어왔지만 역시나 눈길 하나 주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일단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옳다고 느껴진다.

내일이나 내일 모래 즈음에 슬그머니 이야기를 꺼내보는 게 좋지 않을까.

물론 말이 통할지는 미지수이지만 그걸 위한 빌드업이 아니던가.

나는 여기에 비록 갇혀 있지만, 주도권은 내가 쥐고 있다는 걸 상기시켜 줘야만 했다.

깽판 부리는 거 말고는 하는 게 없어 보이겠지만, 이 빌드업은 중요하다.

‘설득할 수 있어.’

‘사랑했다, 라파엘’을 시전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현재 상황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내 손으로 키운 이들을 쉽게 떠나보낼 수 있을까.

평범한 녀석들이었다면 어서 김현성이 달려 들어와 뚝배기를 깨주기를 기다렸겠지만, 용사 파티는 가능성이 보이는 녀석들뿐이다.

1회 차 영웅들도 그랬고, 라파엘은 더욱더 그렇다.

8장의 날개를 개화한 녀석을 그냥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기에는… 투자한 시간이 너무나도 아깝다.

‘시간은 충분해.’

충분하고도 넘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자살 희망자들이 불구덩이로 투신하는 걸 막아야만 했다.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걸어 나가는 게 새 시대의 트랜드가 아니었던가.

물론 녀석을 설득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바로 바깥 상황이다.

김현성을 비롯한 이들이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가 중요했다.

일단 최선은….

‘현성이 혼자만 알고 있는 게 제일 좋지.’

대륙 전체가 이 사건을 아는 것만큼 최악의 상황은 없지 않을까.

기도회니 뭐니, 구출이니 뭐니, 지금까지 잘 진행해 오던 과업을 올 스탑 하고 싶지는 않다.

정하얀이나 차희라가 걱정되는 건 당연한 거고….

언론이야 눈치 빠른 이지혜가 잘 통제해 주겠지만, 여러 방향으로 생각해 봐도….

‘일을 크게 벌이면 안 돼.’

이번만큼은 소소하게 처리하는 게 좋다. ‘그런 일이 있었어?’ 싶을 정도로 소소하게 말이다.

바깥을 살펴보고 싶지만, 여신의 손거울이 손에 없다. 심지어 연금 키트나 촉매도 없어서 뭘 만들 수도 없는 상황이다.

물론 해결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게 될까 싶기도 했지만, 가능하리라고 믿는다.

‘베니고어 님, 바깥 상황 좀 보고 싶은데… 조금만 보여주실 수 있죠?’

“…….”

‘베니고어 님? 사랑스러운 이기영 신도가 직접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뭐 하시길래 이렇게 답장이 늦으십니까.’

“…….”

‘베니고어 님.’

[일반 등급의 강제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이… 이기영 신도! 나의 사랑스러운 이기영 신도! 나, 나 불렀어? (0/1)]

‘바깥 상황을 조금 살펴보고 싶은데… 베니고어 님의 손거울이 없어서 말입니다.’

[아, 으응… 무슨 말 하는지 알 것 같네. 그… 지금 다른 인간들이 뭐 하고 있는지 궁금한 거지? (0/1)]

‘이해가 빨라서 좋네요.’

[그런데 이기영 신도… 있잖아, 나도 이기영 신도가 원하는 걸 꼭 들어주고 싶은데… 지금 상황이 그렇게 좋지는 않아서… 이기영 신도도 잘 알고 있잖아. 나 지금 위에서 찍혀서 보호 감찰 중인 거…. (0/1)]

‘…….’

[내 소중한 이기영 신도를 돕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있잖아, 여신이 필멸자들의 세상에 너무 심하게 관여하면 위쪽에서 안 좋게 볼 확률이 높거든… 몇몇 아예 금지된 것들도 있고…. (0/1)]

‘애초에 소원을 빌고, 기도를 드린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지 않을 건 알고 있습니다. 최대한 관찰자의 포지션을 취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작은 부탁을 드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그래도…. (0/1)]

‘막말로 제가 여기서 꺼내달라고 한 건 아니잖아요. 지금 제가 안고 있는 이 문제를 수습해 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작은 부탁입니다, 아주 작은 부탁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이기영 신도. 악마들을 믿으면… 이게 전부 루시퍼 때문…. (0/1)]

‘그래서 지금 이게 제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애초에 일이 누구 때문에 이 지경이 됐는데….’

[……. (0/1)]

‘아, 빨리 보여줘요. 시간 없으니까. 지금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봐야 한다고요.’

[내, 내가 보여줄 수가 없어서 그래. 이기영 신도가 원하는 걸 들어주려면 망원경을 내리는 수밖에 없는데… 인, 인간에게 위쪽의 물건을 내리는 건 불법이라고. 차라리 내가 이야기해 주는 게 좋지 않을까? (0/1)]

어?

[역시 그건 조금… 그, 그렇지. 그래도 망원경을… 인간에게 내리는 건 안 되는데…. 물론 이기영 신도는 평범한 인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필멸자의 육신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같은 법을 적용하고 있단 말이야. (0/1)]

‘내리는 게 아니죠. 빌려주는 겁니다.’

[……. (0/1)]

‘망원경이라고 하는구나…. 하하하하,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베니고어 님. 내리는 게 아니라 빌려주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빌리는 거예요. 일이 끝난 이후에는 전부 돌려 드릴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간도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니까… 아니면 설마 그게 아까운 거예요? 혹시나 베니고어 님 상황이 안 좋아질까 매일같이 재판을 준비하던 소중한 신도를 이대로 버리는 건 아닐 거라고 믿습니다.’

[내가 이기영 신도를 버릴 리가 있었어? 으응, 절대로 안 버리지. 하지만…, (0/1)]

‘아니, 좀 빌려줘요. 이것도 못 들어주면서 무슨…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는 거잖아.’

[조금만 기다려 주면… 아주 작은 트집 잡히는 것도 조심하고 있는 상황이라…. (0/1)]

‘…….’

[……. (0/1)]

‘아니, 그럼 빌려주지 마세요. 진짜, 여신이 쩨쩨하게, 진짜….’

[어? (0/1)]

‘진짜 내가 또 서로 깔끔하게 제 갈 길 가자는 이야기를 꺼내야겠어요?’

[어? 어? (0/1)]

‘나도 나대로 열심히 살아볼 테니까. 베니고어 님도 베니고어 님 나름대로 열심히 해보라고… 이렇게까지 이야기해야겠느냐고요. ‘재판이고 나발이고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증인석에서도 안 설 거예요’라고 말해야 돼요? 아! 그럼 나도 곤란해지는 거 아니냐고? 내가 왜 곤란해집니까. 저 원하는 분들 많아요. 많으니까, 나도 내일 내가 알아서 하면 되겠네. 와, 내가 너무 큰 실수를 했네. 내가 너무 무리한 부탁을 드렸어. 이 미천한 필멸자가 주제도 모르고 베니고어 님을 불편하게 했나 보네.’

[그…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0/1)]

‘살짝 빌려주고 돌려주면 되는 건데…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누구는 누가 싼 똥 청소하고 치우느라 힘들어 뒈지게 생겼는데. 그것도 안 빌려줘? 자기는 그렇게 버리지 말라고 퀘스트까지 내려놓고서는 막상 신도가 곤란한 상황에 빠지니 이런 식으로 손절하는 거예요? 제가 그 망원경인지 뭔지가 정말로 탐나서 이러는 줄 알아요? 나도 베니고어 님이 원하는 거 전부 다 들어줬잖아요. 하기 싫은 거 전부 다 했잖아요. 인정해요, 안 해요? 인정해요, 안 해요? 인정해요, 안 해요?’

[아, 아니…. (0/1)]

‘대륙도 구하지 마! 대륙도 구하지 말라고! 내가 정말 망원경이 가지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진, 진정해… 이기영 신도… 진정…. (0/1)]

‘대륙이 위험하잖아!!’

눈앞에 놓인 테이블을 뒤집어 버리며 혼신의 외침을 내뱉자 무척 당황한 것처럼 보인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전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미천한 필멸자인 이기영 역시 대충은 이곳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안다.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행동은 완전히 금지되어 있지만, 단순히 상황을 살펴보는 것 정도는 가능하리라.

망원경을 잠깐 빌리는 것 정도는 당연히 가능하다.

물론 감찰 중인 만큼 여러모로 논란이 될 여지가 있지만 눈과 귀가 막힌 상태로 계속해서 지낼 자신이 없다.

당연하지만 베니고어의 입장에서는 이쪽을 그저 내칠 수가 없다. 분명히 답은 정해져 있다.

한바탕 폭풍이 몰아친 장내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미소를 띄우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그럼 잠깐만… 꼭 돌려줘야 돼? 만약에 불시에 검문이 들어오고 그러면… 정말로 큰일 나. 조사 들어오고 망원경 빼돌린 거 알면 정말로 뒤집힐 거라구…. 나, 나는 이기영 신도 믿어. 이기영 신도도 나 믿지? (0/1)]

‘우리는 운명 공동체잖아요. 제가 베니고어 님을 믿지 않으면 누가 베니고어 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으응, 그렇지, 우리는 운명공동체니까. 나… 나 안 버릴 거지?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나중에 버림받는 건 아닌 거지? (0/1)]

‘절대로 안 버립니다. 요즘도 시간 날 때마다 재판 준비하고 있으니까. 베니고어 님도 잘 견뎌내세요. 버티고 잡아떼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거 항상 기억하시고요.’

[나… 나 힘낼게, 이기영 신도. 이기영 신도를 위해서라도 버틸 거야. 그러니까 이기영 신도도 힘내야 돼. 우리 같이 여기서도 저기서도 힘내자. 우리는… 우리는 운명공동체니까. (0/1)]

‘물론입니다.’

[마음의 눈에 엘룬의 망원경이 깃듭니다.]

[마음의 눈의 등급을 신화 등급으로 상향 조정합니다.]

어째서 엘룬의 망원경을 가지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베니고어… 와, 얘도 진짜 만만치 않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감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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