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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645화 (636/1,590)

# 645

회귀자 사용설명서 645화

둠현성(1)

먼 거리에서 김현성이 보이고 있다.

이대로 들어가야 할지, 아니면 시간을 조금 들인 후 들어가야 할지, 제대로 판단이 서지 않았다.

혹시나 녀석에게 더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 걱정된 탓이다.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듯 자신의 몸을 천천히 둘러보는 녀석의 모습은 확실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루시퍼가 음흉한 미소를 띠며 박수 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심사가 뒤틀렸지만.

‘넌 진짜 내가 크게 한 방 먹인다. 시바, 두고 봐, 시발’

일단은 이 문제를 수습하는 게 먼저였다.

‘정신에 이상은 없는 건가? 합리적인 판단은 할 수 있는 건가?’

그 와중에 가장 신경 쓰였던 것은 현재 김현성의 정신 상태.

나 같은 경우에는 벨리알과 계약했더라도 그다지 다른 점을 느끼지는 못했다.

투명한 빛의 영혼은 마치 철벽과도 같아서 그 어떤 어둠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빛과 함께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다른 이들은 조금 다를 수밖에 없다.

당장 더러운 까마귀와 계약한 악마 계약자들만 봐도 영혼이 오염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페널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악마 소환사 그리고 악마 숭배자들 역시 마찬가지. 악하기에 악마와 계약한 것이 아니라 악마와 계약했기 때문에 악해진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김현성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을지 어떠한 것도 확신할 수 없다.

부정적인 감정이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상황이니,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지만 회귀자의 정신력과 영혼이 그렇게 약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보면 딱 잡아 말할 수는 없지만… 겉보기에는 이상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아아아아!”

고함과 함께 날개를 활짝 펴며 마지막 발악처럼 회색빛의 검을 휘두르는 라파엘.

그저 본인의 몸을 내려다볼 뿐, 라파엘 자신에게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김현성을 향해 도약하듯 뛰어드는 모습이었다.

공격이 먹힐 거라고 확신하는 얼굴, 나 역시 나쁘지 않은 움직임이라고 생각했다.

라파엘이 지척에 다가온 순간까지, 김현성은 반응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반대쪽 벽에 처박혀서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른 것은 라파엘이었다.

콰아아앙!

심지어 검을 휘두르지도 않았다. 몸에 손등을 가져다 댄 것만으로도 라파엘의 몸이 저 반대편 벽에 달라붙었다.

‘뭐야, 왜 이렇게 세졌어. 왜 이렇게 세진 거야? 시바, 방금 뭔데? 와, 시바 방금.’

김현성 역시 본인의 힘이 의아한지 자꾸만 몸을 내려다본다.

눈으로 보기에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상승한 스텟들이 보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심지어 일부는 보이지도 않는다. 마음의 눈으로도 전부 읽을 수 없을 정도의 상태창이 만들어진 것이다.

신화 등급의 직업 타락한 검.

직업명만이 선명하게 비쳐왔다.

“하하하….”

자조적인 웃음소리가 뭘 뜻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긍정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 하하.”

“제길!”

쿨럭 하는 소리와 함께 피를 토하는 라파엘이 다시 한번 몸을 날려봤지만 상대가 될 리 없다.

콰드드득!!

바닥에 쓸리는 소리와 함께 온몸으로 바닥을 청소해 주고 있다.

그걸로는 모자랐는지 라파엘의 등을 밟고 날개를 잡은 채로 힘을 주는 김현성.

기괴한 소리와 함께 날개가 그 자리에서 찢겨 나간다.

붉은 혈액이 공중으로 흩뿌려지는 가운데 서 있는 김현성의 모습이 멋있기는 했지만, 상황 자체는 굉장히 그로테스크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아아아아악!”

비명 소리가 들려왔지만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다.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왼쪽에 있는 날개를 잡은 채 발에 힘을 주자 라파엘의 몸이 땅바닥으로 처박혔다.

물론 잡고 있었던 날개가 뜯어졌다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아악!”

콰아아아아앙!!!

“아아… 악!”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아아….”

‘시바, 얘 조금 정신 이상해진 것 같은데. 정신 나간 거 아니지?’

빛을 등진 둠현성의 경천동지할 힘에 잠시나마 뽕이 차오르기는 했지만,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잔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최대한 전투 불능으로 만드는 것을 우선시하거나 비교적 깔끔히 죽이려고 하는 김현성의 모습은 이미 그 자리에 없다.

우려했던 그대로의 모습에 괜스레 허벅지를 툭툭 두드리게 된다.

‘미친 건 아닐거야, 미친 건….’

날개를 움직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지 자기 멋대로 움직이고 있는 날개는 괜스레 온몸의 털이 삐죽 서게 한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피로 흠뻑 젖어버렸다. 솔직 담백하게 말해서 정하얀의 전성기 때보다도 더 소름 끼치는 얼굴이다.

날개가 반쯤 뜯겨 나간 라파엘의 목을 잡고 위로 들어 올리는 모습은 어떻게 죽일까가 아니라 어떻게 더 고통스럽게 할지를 고민하는 듯한 모양새이지 않은가.

‘세긴 진짜 졸라 세다.’

아직도 라파엘의 몸에 많은 양의 회색빛이 남아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거의 신에 가까워졌다고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벨리알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위압감이 지금의 김현성에게도 느껴진다.

‘시바, 진짜 벨리알보다 센 거 아니야?’

과장된 표현이었지만, 서열 하위권의 군단장들은 무난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계속해서 이동하는 와중에 나를 부축하고 있는 박리안의 몸이 덜덜 떨려오는 게 느껴졌다.

지금까지는 잘 보이지 않았겠지만, 이제는 그녀의 눈에도 현재 김현성의 모습이 시야에 비치고 있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는 게 당연하다.

칠흑색의 날개를 단 이가 피를 흠뻑 뒤집어쓴 채 있는 모습을 보고 그 누가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게 본인이 소속되어 있는 길드의 길드마스터라면 더욱더 의아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윽고 김현성이 이쪽을 천천히 바라봤다. 라파엘을 잡은 손을 그대로 늘어뜨리고, 불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모습.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고 싶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역효과로 비친다는 걸 왜 모르는 걸까.

아니, 애초에 저 모습에 내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부정해야 하나? 그게 맞는 건가.’

“기영 씨….”

“…….”

“기영, 기영 씨.”

‘아이, 시바.’

“기영 씨….”

김현성이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날개를 살짝 펼친 채 땅을 박차고 느릿하게 날아오는 것 같은 모습을 취했지만, 녀석이 내게 닿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박리안이 덜덜 떨리는 얼굴과 눈으로 나를 지키기 위해 검을 빼 들었다는 것, 그녀는 지금의 김현성을 적으로 규정했다.

솔직히 비난하지도 못하겠다. 내가 그녀의 입장이었어도 비슷한 판단을 내렸을 테니까.

“도, 도망치세요, 부길드마스터. 도망치셔야 됩니다. 저건… 길드마스터가 아니에요, 괴물입니다.”

‘너가 보기에도 그렇게 느껴져? 우리 도망쳐야 되는 거야?’

“여기는 제가 맡, 맡겠습니다.”

‘아니야, 우리 도망칠 필요 없어. 그건 아닐 것 같은데… 근데 나도 조금 무섭기는 해. 그리고 애초에….’

도망칠 수도 없을걸.

방금 봤잖아.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다리도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박리안과 꽤나 오랜 시간을 함께했지만 저런 모습을 보는 건 나 역시 처음이다.

‘겁 먹었어.’

임무완수를 위해서라면 죽음조차 불사하는 그 박리안이 겁을 집어먹었다.

이외에 다른 말이 필요할까. 공포에 젖은 것으로도 모자라 숨을 쉬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리안 씨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떨어져. 부길드마스터에게 떨어… 떨어져, 이 더러운 악마….”

“훌륭합니다. 네, 그게 제가 당신에게 바라던 모습이에요. 지금의 판단은 조금 아쉽습니다만… 아무튼 고생하셨습니다.”

“가까이 다가오지 마…. 가까이….”

‘박리안한테도 손대는 건 아니지?’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살며시 그녀의 손을 잡아 검을 내려놓게 하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당연하지만 박리안은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이미 몸이 완전히 굳어버린 것이 분명하리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얼굴은 진짜 악마를 목도한 것 같다.

녀석이 나를 배려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 몸은 그렇게 떨려오지 않았다.

김현성은 내게 해를 끼칠 생각이 없다. 걱정과 근심 외에 다른 표정이 드러나 있지 않지 않은가.

오히려 본인이 더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 도망치고 싶은 감정을 억누르고 싶어 한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시바, 다행이다. 이건 진짜 다행이다.’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못하는 미친놈으로 각성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곧바로 허그라도 할 줄 알았건만 본인의 몸에 묻은 피가 신경 쓰이는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은 이전의 김현성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이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거지?’

처음 보는 김현성의 모습에 어떤 액션을 취하는 것이 정답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괴로운 척해야 하나?’

그건 논외.

‘아니면… 평소대로 맞이하는 게 좋을까.’

그것 역시 이상하지 않은가. 무려 악마와 계약한 김현성인데, 평소와 같은 상태로 맞이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얼굴에는 것은 걱정과 후회, 불안함과 정체 모를 공포밖에 보이지 않는다.

‘엿 같네, 진짜.’

모든 상황이 엿같이 돌아가고 있었다.

‘하, 진짜 짜증 나는데.’

뭐라고 말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자꾸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원인이 눈앞에 있는 김현성 때문이 아니다.

‘리바운드.’

망원경을 오랫동안 사용한 후유증이 이쪽을 덮치려고 하고 있다.

표정을 일그러뜨리지 않으려고, 녀석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일단은 평소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색하게 일그러진 표정밖에 보여줄 수가 없다.

저도 모르게 자꾸만 얼굴을 구기게 된다.

당장에라도 땅바닥을 구르고 싶은 고통을 참는 것이 어디 예삿일인가.

‘아이, 씨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어떻게. 루시퍼, 시바. 루시퍼, 시발.’

계속해서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을 때 들려온 녀석의 목소리.

“괜찮습니다, 이제. 전부 괜찮을 겁니다.”

‘뭐가 괜찮은데.’

녀석은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어왔다.

“이제 괜찮을 겁니다. 더 이상 힘든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게 무슨 뜻이야.’

“제가 잘못 생각했었습니다.”

“아, 윽….”

“더 이상 제 책임에 대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시바. 이 새끼 손절하려는 거 아니야?’

왠지 모르게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김현성이 대륙을 배재할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닐 거라고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언제나 그랬던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처음부터 들 필요가 없는 짐이었습니다.”

‘아냐, 들어야 해, 미친놈아. 들어야 한다고….’

“전부, 전부 끝났어요.”

‘아니야. 아직 안 끝났어, 미친놈아….’

김현성의 대륙 손절 선언이 귓가에 들려온 순간, 적대적인 얼굴로 놈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난 못 버려, 시바. 버릴 거면 너 혼자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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