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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652화 (643/1,590)

# 652

회귀자 사용설명서 652화

대륙을 구하고 있는 영웅(1)

사실 뭐 엄청난 메시지를 보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의문의 여인, 미진이라는 마법사가 있고, 이기영이 그녀를 무척이나 신뢰한다는 뉘앙스의 메시지를 보낸 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효과는 굉장할 거라고 단언할 수 있다.

여신의 손거울을 빤히 바라보는 정하얀의 얼굴에 호기심이 들어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잠시 멍한 표정을 유지한 채 한 참이나 눈을 비비며 여신의 손거울을 바라보는 모습은 가관, 아직 어떤 상황인지 파악 못 한 것 같았다.

지금 자신이 어떤 메시지를 본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으리라.

김현성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노을과 우정이라면 정하얀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질투와 분노.

물론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착실히 성장하고는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게 착실한 성장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 아니었던가.

나태한 정하얀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스팀팩을 투여해야만 했다. 그 스팀팩이 정체불명의 천재 마법사 미진이.

‘이건 먹힐 거야.’

먹힐 수밖에 없다.

물론 정하얀이 너무 갑작스럽게 터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기는 했지만, 이번에야말로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려 1년을 버티지 않았던가.

그녀의 곁에 한소라가 있다면, 이전처럼 순수를 증명하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확률이 크다.

일단 질러놓기는 했지만 마른침이 넘어간 것은 당연지사.

정하연의 얼굴이 창백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

짧은 목소리와 함께 천천히 표정이 굳어간다.

-어? 어?

해킹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변명이 거짓말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해도 황당한 발언이었으니까.

-누, 누, 누구야? 미진이가 누구지? 미진이가 누구야? 누군데… 누구냐고.

의문을 표하는 것이 첫 번째.

이윽고 손톱을 뜯는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아마도 저게 두 번째 단계일 것이다.

참기 힘들었는지 다급하게 여신의 손거울을 두드리며 내게 연락을 취하고 있었지만, 이쪽의 손거울은 이미 통화중이 걸린 지 오래.

현재 고객님께서 통화 중이오니 어쩌고 하는 목소리를 들은 정하얀이 뿌드득 뿌드득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이 망원경에 비쳤다.

이런 모습이 무척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기대에 부응하듯 정하얀은 천천히 이전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평화로웠던 얼굴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변화하는 분위기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까지 와 버린 것 같았다.

-누군데… 누구야? 누구냐고. 누구, 누구지? 미진이가 뭐야? 뭐지? 미진이? 미, 미, 미진이?

너무 당연한 소리겠지만 정하얀에게 프라이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내게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걸 그 누구보다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

당장 마탑에 살았던 1년 동안만 해도 마탑 할배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본인의 위대함을 그 누구보다도 잘 깨닫지 않았던가.

대륙 제1의 마법사는 정하얀이고, 오직 자신만이 텔레포트 마법을,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화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차희라와 본인의 경계선을 정확히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차희라가 강하기는 하지만….

전위로서 차희라보다 강한 김현성이 있으니까. 어쩌면 김현성과 내가 붙어 있을수록 정하얀은 미소 지었을지도 모르겠다.

동물의 세계 같은 시선으로 바로 본다면 김현성이 차희라의 포지션을 갉아먹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을 테니까.

본인의 포지션은 굉장히 공고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게 뻔하다.

마법사는 오직 정하얀뿐.

나는 이미 내 영역을 구축해 놨어. 반지도 받았고, 거칠 게 없지. 1년이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이제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이야.

요즘은 오빠가 바쁘니까 다른 얘들이랑도 어울리지 않네. 이제는 정하얀 세상이야.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난다 긴다 하는 마법사들의 수준이라고 해도 어차피 본인이 보기에는 원시적인 마법을 사용하는 원시인들로 보일 테고, 마법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이기영이 자신을 의지하고 있으니 절대로 버려지는 일은 없다고 안심하고 있었겠지.

오빠는 유능한 사람을 좋아하니까.

물론 이 모든 게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 나눌 수 있는 감정들을 전부 배제한 이후에 나온 판단이겠지만. 나름대로 영악한 정하얀은 이런 것까지 가정하고 있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방금 받은 메시지는 그녀의 프라이드에 상처를 남기게 한 발언이 아닐까.

머리를 벅벅 긁은 이후에는 어디론가 곧바로 연락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아이고, 이거 우리 정하얀 님 아니십니까.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연락을… 영광입니다, 하하하.

-미진이가 누, 누, 누, 누구야… 미진이, 거기 있어요?

-네? 그게… 무슨….

-미진이가 누구냐고요. 미진이가… 누, 누구냐고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일, 일단 진정하시고….

-거기 있어요? 거, 거, 거기 있는 거야? 마탑에 있는 거냐고, 마탑이냐구!!

-아, 네. 일단 저, 그… 미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마법사가 마탑 커뮤니티에 등록되어 있는지 한번 확인을….

-미진이, 미, 미진이 데려와. 미진이 당장 데려!!!

씨익, 씨익.

마탑 직원에게 화내는 모습을 보면 이미 중노 상태에 들어간 것 같았다. 심지어 대노로 들어가기 일보 직전이라고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린델 내에서 미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법사가 차례대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때, 그녀의 대노를 막은 것은 생명수당이 포함된 연봉을 받고 있는 우리 한소라.

-무슨 일이세요? 정하얀 님? 무슨….

-끄으윽, 미진이가 누군데에… 미, 미, 미진이가….

당연하지만 정하얀보다 더 창백해진 얼굴이 눈에 띈다.

두 눈에는 필사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초식동물의 생존본능이 깃든다.

아까까지만 해도 환하게 미소 짓고 있던 정하얀이 갑작스레 울상을 짓고 있으니, 어찌 일반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자신이 모르는 사건이 터졌고 지금 그 일이 터지기 직전이라는 걸 이해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다.

공포에 물든 눈동자에서 재빠르게 회전하는 머리가 눈에 보인다.

꾹꾹 손거울을 누르자 허겁지겁 뒤로 돌아 메시지를 확인하는 한소라가 시야에 비쳤다.

[미진이 같은 사람 없음, 하얀이가 훈련이 필요한 듯해서 등장시킨 가상의 라이벌.]

-이, 이, 개새끼. 이 쓰레기 같은 새끼.

작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 전부 듣고 있어, 소라야.’

아마 듣고 있어도 반응이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이, 이, 흐윽, 이 개새끼가… 진짜, 흐으윽, 이 새끼 진짜… 이 나쁜 새끼, 흐으윽….

아마 본인에게 뭘 기대하고 있는지 곧바로 깨닫지 않았을까. 한소라야말로 영특함과 학습의 아이콘이 아니었던가.

-더 이상 뭘 어쩌라고… 더 이상… 나보고 뭘 어쩌라고… 왜 자꾸 나한테… 이런 짐을….

왠지 김현성의 입으로 들었던 것만 같은 대사가 들려온다.

이상하게도 위쪽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었지만 신세계의 빛 이기영은 아무런 보상 없이 이런 위험한 임무를 덜컥 맡기지 않는다.

[이번 일 좋게 끝나면 정말로 100% 전출.]

한소라가 입을 꽉 깨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상황보고 이적도 가능. 사실 이적은 힘들 것 같은데, 전출은 진짜 확정하는 거로 하자. 그동안 고생 많았고, 소라 씨도 이제 빛 볼 때 됐잖아. 딱 이번 일만 하는 거로. 이번까지만 하고 깨끗하게 손 털자.]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게 시야에 비친다. 침을 꿀꺽 삼키는 얼굴에는 오만 가지 감정이 전부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속으로는 엄청난 내적갈등을 하고 있지 않을까.

-무… 슨 일이신데요?

끄윽 끄윽 거리며 손을 내미는 정하얀의 메시지를 본 이후에는 더욱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가장 쉽게 이 사태를 해결할 방안이 눈앞에 있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조금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정말로 해킹당한 것 같다고 잡아떼는 것이 분노한 정하얀을 가장 쉽게 다스릴 방법이다.

‘아, 이거 정말로 해킹당하신 거 같은데요?’

개소리를 필사적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면 당장에는 정하얀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다.

의구심이 가기는 하지만 한소라가 어떻게 입을 터느냐에 따라 정하얀도 수긍할 수 있고.

아마 이런 패턴이 지금까지 한소라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한소라의 눈은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했다.

눈앞에 있는 달콤한 과실을 보고 참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계속해서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벼랑 끝에서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게 눈에 보인다.

나 역시 조금은 긴장한 모습으로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시점.

-미, 미, 미진이가… 미진이가 누군지 알아?

수차례 침을 삼킨 한소라가 입을 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아, 그… 그러니까… 저….

-끄으윽, 누군지 알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한소라를 조용히 바라보는 정하얀의 모습에는 솔직히 오금이 저린다.

한 발자국 떨어진 입장에서도 이 정도일진대 현재 한소라가 받고 있을 압박감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하기 힘들다.

힘겹게 힘겹게 입을 떼는 모습에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주고 싶다.

‘할 수 있다, 소라야. 네가 세상을 구하는 거야.’

-그러니까….

‘할 수 있어. 공포심을 극복해야 해. 너 이제 하얀이랑 친하잖아. 그렇지?

-네, 들어본 것 같아요. 그… 박미진이라고.

-정, 정, 정말?

-네, 아, 그… 정확히 지역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최근에… 네, 폭발적인 성장을 하면서 여기저기에서 유명해진 마법사가… 네, 있다고 들었거든요. 아마 그 사람이 아닐까 싶은데… 어느 순간부터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관련 자료도 모두 삭제되는 바람에… 어디서 뭐 하고 있나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건 아마도… 네, 그거겠네요.

-…….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에서 따로 관리하는 인재풀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기밀로 관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아마 그거 비슷한 것 같아요. 부길드마스터를 비롯해서 몇 명밖에 알지 못하는… 네, 비밀리에 키워지고 있는 무력 집단이요.

물론 그런 건 없지만 한소라가 기가 막히게 입을 열어주는 걸 보니 괜스레 뿌듯해진다.

생각해 보면 쟤도 나나 지혜과가 아니었던가.

중간에 좀 호된 꼴을 당해서 많이 무너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혓바닥을 보니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끄윽, 끄으으윽….

-안… 심하셔도 돼요. 그러니까 옛날에 한번 본 적 있는 것 같았는데… 부길드마스터가 좋아할 스타일은 아니니까. 이, 이것 보세요. 문자 내용도 그냥 응원하는 것뿐이잖아요. 정하얀 님한테 보낸 따뜻한 메시지와는 차이가 있죠. 그냥 마법사로서… 인간적으로 기대고 있다는 표현을 하신 것 같네요. 혹시나 정하얀 님께서 상처받으실까 무서워서 그냥 둘러대신 것 같고… 별거 아니니까, 크게 신경 쓰실 정도는 아니에요.

-끄으윽….

-그렇지만 이, 이렇게 신뢰하실 정도면 확실히 대단하기는 하네요. 소문이 사라지기 전에도 엄청 수준 높은 마법을 구사하는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정하얀… 정하얀… 정하….

‘할 수 있어, 소라야. 지지 마. 공포와 싸워야 돼.’

-정하얀… 님….

‘할 수 있어! 시바!’

-그러니까….

‘힘내라, 소라야!’

-정하얀 님이랑 비교하는 말이 세간에서… 자주 들려올… 정도로요. 아마 그래서 이기영 님께서도…그렇게 박미진이라는 사람을 신뢰하시는 거겠죠? 하… 하하….

순간적이기는 했지만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

‘시바, 진짜 말했어. 진짜 말했다고.’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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