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6
회귀자 사용설명서 656화
회의(2)
내가 다 눈치가 보일 정도였다. 숨 쉬는 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는 장내.
흘러내리는 땀도 닦지 못하고 있는 놈들이 대다수. ‘이 장소가 이렇게 더운 곳이었나’라는 생각이 들어와 꽂힌다. 분명히 온도 조절 마법도 유지되고 있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이기영 위원장님 입장하셨습니다”라는 소리가 들려 온 직후. 심지어 이쪽의 등장을 고하는 이의 목소리도 덜덜 떨려오고 있었다.
짝짝짝짝!
박수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손바닥이 터져라 박수 치는 이들이 시야에 비친다.
필사적으로 양 손바닥을 두들기는 모습은 경쟁이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 심지어 기립까지 하고 있으니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
모두가 대륙의 주요 권력자들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라.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광경이 아닌가
하나같이 공포에 질린 얼굴들이 눈에 띈다.
물론 모두가 공포에 질린 것은 아니다. 교국 지도자 자리에 앉아 있는 오스칼이나 교황청의 인사들, 캐슬락 의원, 카트린 의원, 엘리제 의원과도 같은 이들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얼굴이다.
우리 이기영 명예추기경님은 이전부터 응당 저런 대접을 받았어야 했다는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짝짝짝짝짝!
자리에 앉기 전까지는 박수 소리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멈춰, 이 새끼들아. 멈추라고.’
이지혜 역시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얘는 기분 좋은가 보네.’
오히려 현재의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름이라도 돋는지 옆에서 흠칫흠칫 몸을 떨고 있다. 이지혜가 머릿속으로 그리던 광경이 이런 게 아니었을까.
본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게 뻔했다.
어째서 이런 분위기가 형성됐는지는 궁금하지 않은 모양, 아니, 원인을 찾을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지금은 쏟아지는 박수세례를 즐기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뭐. 아니면 이미 원인이 뭔지 알고 있던가.
나 역시 알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이 상황을 만든 게 누군지 정확히 보인다.
‘시바, 무슨 짓을 했길래 이래.’
이쪽과 정치적으로 조금이라도 대립한 적이 있던 인원 모두 김현성의 눈치를 보고 있었으니까.
“귀빈분들께서는 자리에… 네,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커다란 박수 소리가 그친 것은 바로 그때, 회의실이 다시 한번 침묵에 휩싸였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 상황에 당황스러웠지만, 어째서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는지 알 것 같다.
아마 내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회의에 늦어서….”
“콜록, 콜록.”
“…….”
“…….”
“콜록, 죄송… 죄송합니다. 죄송, 콜록, 스읍.”
왠지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느낌이다.
‘누가 감히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내가 마음의 눈으로 보니 네 머릿속에 마구니가 들었구나. 어서 빨리 전술 김현성을 들라 하라!’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내뱉을 분위기가 아니다.
사레라도 들렸는지 몸을 움찔거리는 녀석이 애처롭다. 기침을 멈출 수 없는지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는 모습은 가관.
도대체 뭐라고 말했길래 이런 분위기가 형성됐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쟤, 나름대로 권위 있는 모험가였는데…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와서 나름대로 프라이드도 가지고 있었고… 얼굴이 붉어진 게 불쌍해 보이잖아.
아니나 다를까 김현성이 녀석을 바라본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괜스레 헛기침하자 조금 멀리 떨어져 앉아 있던 김현성이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흑화한 것은 아닌지 걱정했지만, 당연히 나를 바라보는 눈에 적개심이나 나쁜 같은 감정은 없다.
반가워하는 것 같기도 했고 걱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하겠지.
김현성이 볼 때는, 내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지친 몸을 이끌고 이곳에 온 것처럼 보일 테니까.
다시 한번 대륙을 위해 노력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얼굴에 얼핏 묻어나오는 씁쓸한 감정이 뭘 의미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괜찮다는 듯, 별일 없었다는 듯 고개를 숙이자 그제야 안심하는 듯한 모습.
녀석 역시 고개를 끄덕여 왔다. 자기가 전부 알아서 해주겠다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아예 없지는 않다.
사실 나도 이 상황이 마음에 든다. 편하게 회의를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 스트레스가 덜했으니까. 하지만 너무 단단한 것은….
‘부러지게 마련인데….’
조금 강하게 나가는 것과 아예 강압적으로 쥐어짜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김현성의 이미지 추락도 추락일뿐더러, 이 새끼들이 반발심에 바깥 놈의 편을 들거나 제3의 선택지에 주사위를 던질지 누가 알겠는가.
물론 이런 분위기에서 그런 미친 짓을 할 놈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본래 어느 집단이든 또라이 한 명쯤은 있게 마련이다.
‘현성아, 마음은 고마워. 고마운데….’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얘들 쥐어 패기라도 한 거야? 아니면 숨도 못 쉬게 살기라도 뿌렸어?’
내가 도착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테니 아마 그 직후 분위기가 바뀌지 않았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이런 분위기였을 수도 있고….
이 어색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나마 합리적인 선택은 배드캅과 굿캅을 나누는 것.
녀석이 회초리를 들면 이쪽은 위로를 해주는 포지션으로 가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슬그머니 회의 진행자를 바라보며 손바닥을 내보이자 녀석이 천천히 입을 여는 게 시야에 비쳤다.
“대…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의 이기영 위원장님께서… 네, 그….”
‘쟤는 왜 또 말을 못 해?’
답답한 마음에 곧바로 단상 위로 튀어 나가자.
“그… 발표를, 아니, 설명회, 아니, 의제를… 발표… 시작… 하겠….”
어정쩡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수를 한 번 짝 치며 미소를 띠자 조금은 분위기가 환기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의 이기영입니다. 제때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오랜 시간 여러분들을 기다리게 한 점 역시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분이 궁금해하시는 현 상황에 관한 브리핑과 이후에 일어날 여러 가지 일 및 작전에 관해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만….”
“…….”
“평소답지 않게 분위기가 조금 딱딱하군요. 물론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여러분이 뭘 걱정하시는지 예상이 갑니다만… 아주 조금은 긴장을 푸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딱딱한 분위기에서는 머리도 잘 돌아가지 않는 법이니… 아직 일이 터진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
“네, 아직 대륙이 완전히 그들의 손아귀에 넘어간 것은 아니니까요.”
이쪽이 분위기를 환기하려 한다는 걸 아는지 몇몇이 안심했다는 듯이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아직도 그 압박감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물론 이 정도의 분위기도 괜찮다. 적어도 아까 같은 분위기보다는 낫지 않은가.
입을 털기에 딱 적당한 분위기, 중간에 태클을 걸거나 질문세례를 하는 이도 없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아직도 김현성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데, 그 누가 그런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
“36일.”
“…….”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에서는 예언의 시기가 오기 전까지, 정확히 36일이 남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침묵이 깨진 것 같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웅성거리는 소리는 인사들이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려줬다.
그래 봤자 탄성이나 탄식이 들려오는 정도였지만, 쥐죽은 듯이 조용하던 장내를 일깨우는 데는 충분한 발언이었다.
‘겨우 36일.’
겨우 36일이다.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질적인 빛이 베니고어의 예언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고 예상하거나, 확실하다고 결론을 내린 사람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시간이 촉박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갑작스럽지만 대륙 보호 관리법에 따라 지금 이 시점부터 전 대륙을 전시 상태로 선포하도록 하려고 합니다. 이에 전 대륙의 모든 무력 집단과 국가는 관리 위원회에 임시 편입되며, 제1 작전권 역시 보호 관리 위원회가 주관하게 될 것입니다. 조직 체계 역시 전시 체제로 개편되며 이전에 브리핑을 드렸던 그대로, 전쟁이 끝나고 대륙이 안정을 찾게 될 때까지 위와 같은 형태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여기가 문제인데.’
반발을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너무 갑작스럽지 않으냐. 겨우 36일 남은 이 시점에서 메인 작전권을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가 가져가는 것은 무리수라고 생각한다. 충분한 훈련과 협의가 있어야 한다. 준비하는 기간이 너무 부족했고,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는 만큼 넙죽 작전권을 넘기기에는 무리가 있다. 작전 본부를 단일화할 필요성은 이해하지만, 본부를 지역별로 잘라 여러 개의 작전 사령부를 두는 게 더 합리적이다. 급하게 새로운 방법을 갑작스럽게 도입하는 것은 병사들의 혼란만 초래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 시비를 걸어오지 않을까.
물론 받아칠 말도 준비되어 있다.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가 출범할 당시에도 많이 부딪쳤던 왕국연합의 인사 한 명, 보수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녀석’ 바스티안.
사실 나쁜 녀석은 아니다. 간혹 부딪치기는 했지만 그나마 생각이 트인 녀석이었고, 실제로 마지막에 와서는 이쪽에게 힘을 보탠 녀석이기도 했으니까.
무엇보다 문무를 겸비하고 있어 상당히 쓸 만하다고 생각한 녀석 중 하나였다. 물론 제거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녀석이기도 했다.
바스티안의 존재는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가 완전한 독재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증거였고, 폭주하는 이쪽의 브레이크를 걸어줄 억제기이기도 했으니까.
나 역시 녀석 때문에 깨달은 게 많다. 적당한 타협점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더 좋은 결론을 만들어가기도 했고….
이를테면 필요 억제기로 분류한 녀석 중 하나였다는 거다. 이지혜가 반박 자료를 준비한 것 역시 녀석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당연히 녀석이 뭔가 말을 내뱉을 거라 생각해 이지혜를 바라보자 이지혜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자료 화면을 띄울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것이 문제.
‘뭐야.’
이윽고 쏟아질 목소리들을 기다려 봤지만, 그 누구도 의문을 표하는 이가 없다.
왕국의 정통성이니, 뭐 자주권을 넘길 수는 없다느니 하던 녀석들 역시 마찬가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은 거짓말 같다.
뭐라도 말해보라는 듯 녀석들을 바라보자….
‘뭐야, 너. 그러면 안 되지. 뭐라도 말해줘야지.’
슬그머니 내 시선을 피하는 게 눈에 보인다.
‘자주권이고 뭐고 하더니, 왜 그렇게 시선을 피하고 그래. 우리 자주 부딪치기는 했지만… 내가 당신을 그렇게 싫어하는 건 아니었는데…. 이런 거에 반발했다고 안 건드린다니까. 원래 당신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기도 하고… 당신이 반발해 줘야 이쪽에서 준비한 자료들을 보여주지. 물론 너무 시비 거는 건 좀 거슬리기는 하는데… 우리 좋았잖아, 그렇지 않아?’
하지만 여전히 이쪽의 시선을 피한다. 할 말이 없다는 듯 눈을 감고 마른침을 삼키고 있는 꼴은 가관.
모두가 예스 할 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던 바스티안 역시 긴장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다른 질문 없으십니까?”
침묵에 빠진 장내는 당황스러울 정도, 조금 의아해하는 내 얼굴을 확인했는지 사회자가 급하게 말을 이었다.
“다른 의견이 없으시다면 본 의제를 곧바로 투표하도록….”
투표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생각보다 더 황당한 상황에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각자 고개를 처박은 채로 손거울을 누르고만 있다. 커다란 여신의 거울이 비친 결과는 무려 만장일치.
‘뭐야, 시바. 뭔데….’
“만장일치로 첫 번째 의제가 가결되었음을 선언하겠습니다. 이에 현시점부터 대륙의 모든 무력 집단과 국가를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에 편입, 전시 상태에 진입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짝짝짝짝짝짝!
박수 소리에 내 귀가 다 아프다.
‘아니, 시바….’
혹시나 역사가 이기영을 독재자로 기억하지는 않을지….
쓸데없는 걱정이 드는 것이 당연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