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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661화 (652/1,590)

# 661

회귀자 사용설명서 661화

승리할 확률(3)

나 역시 마법사를 베이스로 시작한 만큼 마법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알고 있다.

어제 식사시간에 김현성이 말한 게 어느 정도로 어려운 일인지도 알고 있고….

단언컨대 정하얀이 이룩한 업적은 이미 인간의 것이라고 하기에 무리가 있다.

1회 차 정하얀은 이미 신의 영역에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만큼 1회차 그녀의 위용은 내 입을 벌리게 했다.

2회차 정하얀이 대량 살상 마법에 더 조예가 깊다는 점에서 그나마 희망을 품을 수 있었으나 모든 면에서 뒤떨어진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어째서 김현성이 회귀 시작부터 정하얀에게 목을 맸는지, 비틀비틀거리며 쓰러질 것만 같았던 1회 차 인류가 어떻게 가면쓰레기의 손에서 버틸 수 있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진청이 그 귀찮은 짓을 해가면서까지 정하얀을 제거한 이유 역시 뻔할 뻔 자.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는 것 외에는 정하얀을 제어할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아마 인류가 급격하게 밀리기 시작한 것 역시 정하얀의 죽음 이후일 거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이해도 간다. 마법을 수단으로 생각하면서도 대륙 제1의 마법사가 된 사람이 아니었던가.

모든 마법사가 그녀를 경외했고 학자들과 마도사, 연금술사 가릴 것 없이 그녀의 마법 매커니즘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

취미와 좋아하는 것, 유일한 친구가 마법이었을 때의 정하얀이 어느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애초에 한계를 두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행동이었라고 단언할 수 있다.

가면쓰레기라는 불순물이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정하얀은 조금 더 높게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취미가 이기영이기 때문에 만든 스토킹 마법들은 마음의 눈이 아니면 확인할 수 없을 정도.

다른 마법사는 물론이거니와 김현성조차 그녀의 마법을 감지하지 못했다.

솔직히 내가 정하얀의 마법들을 전부 다 파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주변에 아네모네의 눈은 없지만 정하얀이 자체 망원경 마법이라도 개발해 이곳을 바라보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무섭기는 하네.’

불안한 마음에 정하얀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좁은 방 안에 처박혀 몰두하는 모습이 보였다.

제대로 씻지도 않은 몰골, 클린 마법으로 몸을 한 번 훑으면 끝나는 그 일련의 과정조차 내팽개친 모습은 어찌 보면 정하얀답다.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죽, 죽, 죽일 거야.

‘…….’

-박, 박, 박미진. 꼭 죽여야지, 꼭, 꼭, 꼭, 죽여야지. 얘는 죽여야 돼, 응.

쉴 새 없이 펜을 휘갈기는 모습은 영화 속에서나 보던 천재 수학자의 모과 흡사하다.

무슨 마법을 연구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녀가 성장하는 건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마력도 올랐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마력 스탯이 상향됐다는 건 놀라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제 막 출발선에 선 거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복잡한 심경에 한숨을 내쉬었을 때 나를 빤히 바라보던 이지혜가 말을 이어왔다.

“역시 튀는 게 정답이겠죠?”

“아냐, 누나, 25% 정도는 된다고 말했잖아.”

“저는 그 정도 확률 가지고는 배팅 안 해요. 물론 최선을 다하는 척은 하겠지만 언제든지 탈출 작전에 손을 올릴 준비가 되어 있다고요. 저 그래서 하는 말인데 한 명만 더 데려갈게요. 아무리 생각해도 10명은 너무 적어.”

“그럼 그렇게 해. 솔직히 여유가 없기는 한데… 한 명 정도야 뭐 괜찮겠지.”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네요.”

“그래서 시뮬레이션은 해봤어?”

“아, 네, 우리 막 아들이랑 같이 해봤어요. 정하얀이 서부 솔지르 구릉지를 바닷물로 가득 채우려면 스탯이 얼마나 더 상승해야 하는가. 현재 마력 스탯으로는 어느 정도까지 채워 넣을 수 있는가. 이거 맞죠?”

“결과 나왔어?”

이지혜가 들고 있던 여신의 거울을 슬쩍 비췄다.

[34.3%]

“이런 작전은 없던 거로 아는데… 구릉지에서 해적 놀이라도 하려는 건 아닐 테고… 혹시 나 모르게 노아의 방주 2호기 만들려는 건 아니죠?”

“그냥 하얀이가 어느 정도까지 왔는지 판단하려는 척도야.”

“여기에 100% 꽉 채워야 이야기가 되는 거면 너무 모자란데요? 스탯을 두 배 이상 키우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거 아니에요?”

“두 배 이상은 아니야. 기본적으로 10대가 넘어가는 스탯은 하나하나 올라갈 때마다 가산점이 붙으니까. 그래도 저걸 전부 다 채우려면 최소 20 이상은 올려야 하네. 지력 스탯까지 같이 상승한다는 걸 감안해도… 만약 최소 스탯을 전부 채운다고 하더라도 가능할지 모르겠고….”

“가능한 거 맞아요?”

“글쎄.”

‘솔직히 불가능할 것 같아.’

“차라리 1차전을 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성장을 기다릴 거라면 더 멀리 봐야 한다는 거죠. 오빠 악마들한테 붙잡혀 갔을 때 생각나죠? 그때도 폭발적으로 성장했었잖아요? 순간 이동 마법도 그때 나온 거고. 인류의 반 정도는 1차전 때 희생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넘겨주고 안쪽에 최대한 틀어박혀서 힘을 키우는 건 어때요? 36일, 아니, 이제 35일이죠? 35일 안에는 불가능할 테니까. 최대한 버티고 버티면 그래도 몇 달은 끌 수 있지 않으려나. 중간에 오빠가 한 번 납치당해 주면, 혹시 알아요? 행성이라도 소환해서 비둘기들 대가리에 꽂아줄지.”

“그것도 생각은 해보고 있는데… 단순히 하얀이만 문제가 아니라서 그렇지.”

“모든 고통과 고뇌 속에서 벗어나는 건 어때요? 그냥 노아의 방주 타자.”

“누나가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나도 생각하고 있어. 다만 이 35일을 어떻게 써먹을 수 있는지만 보려고 그래. 공식 발표는….”

“최대한 늦추고 있어요. 36일 이후에 대륙에 위기가 닥쳐온다고 하면 혼란스러울 게 뻔하니까. 언론도 오랜만에 입 닫게 하고 있고… 어제 회의실에 있었던 다른 애들 역시 마찬가지예요. 제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입 꾹 닫고 있더라고요. 참 좋은 일이죠.”

“스케줄은 잡았지?”

“아니요. 그쪽에서 전부 거절했어요. 굳이 오실 필요 없고 부르면 본인들이 직접 찾아오겠다고 하네요. 저도 어느 정도 수습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부 지역의 지도자들 생각은 다른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불안한 애들 목록은 만들어놨으니까 정 필요하다 싶으면 오빠가 달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끄응….”

“어제 또 나온 이야기 없어요?”

“누나한테 말해준 게 전부야. 누나가 혜진이랑 따로 쇼핑한다고 나간 이후에는 와인 한잔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서 처박혀서 작업하고 매뉴얼 가다듬고… 일밖에 안 했어. 솔직히 좀 충격 먹은 상태라 뭐 다른 거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누가 보면 제가 좋아서 나간 줄 알겠네요. 두 분이서 중요한 이야기 좀 나누라고 억지로 자리 피해 드린 거예요. 혜진 씨도 많이 아쉬워하더라고요. 본인 딴에는 기회 한 번 잡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기회? 기회는… 무슨….”

“그래도 귀엽잖아요. 희망이 없는 줄도 모르고… 제가 이야기했었나요? 사과받는 사람이 오히려 더 고개 숙이면서 죄송하다고 하는데 얼마나 속이 터지던지… 저는 그거 보고 느꼈어요. 아, 조혜진, 이 언니는 진짜 안 되겠구나. 그래서 말인데… 어떻게 진짜로 하긴 할 거예요?”

“일 전부 수습되면 한번 해볼라고… 김현성, 걔 꼬시기 쉬워. 지금은 좀 사연이 있어서 애가 까칠해진 거고, 일 끝나고 정상으로 돌아오면 별거 아닐 거야. 조혜진 아바타 등판시키고 진심으로 달리면 하룻밤이면 끝나.”

“장담하는데 안 끝나요. 내가 튜토리얼 던전에서 걔 꼬시려고 얼마나 공을 들였었는데… 그 새끼 고자라고요.”

“내기할까?”

“조혜진이랑 김현성이랑 맺어주는 거로? 해요, 해보면 되겠네. 대신 나는 내가 이기면 요정놀이 하는 거로 할래. 오빠가 이기연 해요. 제가 이지후 할 테니까. 오빠가 뭘 걸든 나는 상관없음.”

“후회하지 마.”

“오빠나 후회하지 마요.”

‘뭐야, 얘는 뭘 믿고 이렇게 자신만만해?’

“…….”

이지혜치고는 너무나도 과감하게 배팅을 하는 모습에 신경 쓰인 것이 당연했다.

물론 이쪽이 패배할 거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저 쓸데없는 자신감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린다.

이미 내던져 놓은 말을 이미 물릴 수는 없는 시점, 여기서 꼬리를 내린다면 이지혜가 이쪽을 비웃을 게 틀림없다.

‘아, 이거 왜 이렇게 한 발자국 물러나고 싶지.’

조혜진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이대로 물러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일단은 미적지근하게 넘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식으로 말을 돌리는 게 좋을까 하며 괜스레 창밖을 바라보자 다행히 이지혜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아마 얘도 질러놓고 후회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건데요?”

“뻔하지, 뭐.”

전부 알고 있으면서 물어본 것이다.

“하얀이 말고도 문제가 있으니까.”

“아, 그렇네요. 그게 있었네요.”

정하얀 말고도 이쪽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지 않았던가.

“벨런스 맞추러 가는 거네요.”

“맞아.”

솔직히 될지, 안 될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일단은 비벼볼 구석이 한 곳밖에 없다.

그나마 후보를 꼽는다면 김현성 역시 그녀를 상정하고 있지 않을까.

저쪽의 전술핵을 막아줄 억제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인재 중 하나, 라파엘이 움직이지 못하는 현시점에 공식적으로 세계관 2인자를 차지하는 인물.

1회 차에 행방불명되어 행방이 묘연해진 인물이었다.

1회 차에서 어째서 그녀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그녀가 가진 개인적인 문제가 원인이 됐거나, 가면쓰레기의 함정에 걸려들었겠지 싶었다.

꽤 오랜만에 오는 느낌, 이지혜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전진기지에 임시로 세워진 커다란 성이 시야에 들어왔다.

‘누나도 참 누나야.’

전진기지에 임시 길드 하우스를 세운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로 규모가 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누가 저걸 보고 임시 막사라고 생각할까. 임시로 지어진 붉은 용병의 거처는 마치 작은 왕국의 왕성처럼 보였다.

“붉은 용병에 오신 것을 환영입니다. 오랜만이로군요, 위원장님.”

“아, 그러니까… 네, 최영기 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많이 달라지셨군요.”

“그때 이후로 시간이 조금 많이 지났으니까요. 이지혜 님도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에요, 영기 씨. 승진하셨다는 소리 들었는데 이렇게 마중 나오게 해서 죄송하네요.”

“차희라 님이 직접 모시고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위원장님께서 오랜만에 찾아주신다고 하시니 기뻐하시는 것 같더군요.”

“저는 별로 반가워하지 않으시나 봐요.”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붉은 용병은 언제나 손님들을 환영합니다. 그게 이지혜 님 같은 분들이라면 더더욱이요.”

“스카웃 제의인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검은 백조 길드마스터에게 미움받기는 싫습니다. 이럴 게 아니라 들어가시죠, 위원장님.”

“마중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히려 제가 더 영광입니다. 이기영 님을 모실 수 있다는 건 붉은 용병 내에서도 몇 안 되는 이들에게만 내려지는 영광스러운 책무이니까요.”

‘뭐야, 그건….’

“머무시는 동안 시킬 일이나 불편하신 점 있으시면 언제든지 저를 통해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아… 네.”

‘확실히 붉은 용병은 붉은 용병이네.’

오랜만에 들어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눈으로 보이는 광경들이 새삼스레 새롭게 느껴진다.

파란이 아무리 떡상했다고 하더라고 역시 린델 전통의 강호는 붉은 용병이라는 느낌이다.

단위로 다르고 규모 자체도 다르다.

잘 훈련된 전위들이 도열한 모습이나, 남녀 가릴 것 없이 서로 몸을 부딪치며 싸우는 광경은 거친 용병들의 집합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정점에 서 있는 것이 우리 누나.

집무실이 아닌 자기 방으로 안내하는 걸 보니 왠지 모르게 두 번째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앞을 지키고 있는 용병 두 명이 꾸벅 인사한 이후에 열리는 커다란 방문.

사자 같은 붉은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인류의 두 번째 억제기 후보는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너 잘해?”

재미있는 장난을 치는 것을 보니 차희라 역시 그때 그 날을 떠올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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