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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671화 (662/1,590)

# 671

회귀자 사용설명서 671화

한소라 데뷔(1)

가면쓰레기는….

‘도대체 진청은 희라 누나를 어떻게 감당한 거지?’

그따위 생각이 가장 먼저 들어와 꽂혔다. 최강의 인간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지 않은가.

‘아니지.’

우리 현성이도 차희라가 강하다는 걸 인정했지만, 이 정도까지 강하다고 묘사한 적은 없다.

계속해서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녀가 각성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1회 차에서는 이번과 같은 이벤트가 없었다.

차희라가 모든 걸 쏟아붓고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간이 없었다는 거다.

‘아니야, 그것도 아니지. 사대 천사라는 놈들이랑 붙어봤을 거 아냐.’

조금 고민하기는 했지만, 김현성은 모르고 있었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기 시작했다.

그녀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실종됐는지는 모르지만 조금만 생각해도 차희라를 붙잡아둘 만한 요소는 많았다.

그녀는 붉은 용병을 자신의 자식처럼 여기고 있었고, 실제로 아끼는 것들을 위해 나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굳이 차희라에게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것 역시, 그녀가 거절할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쪽은 차희라를 데려갈 생각이지만 그녀가 원하는 건 길드와 함께 죽는 거라는 걸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그녀가 아끼는 이들을 이용해 차희라를 꾀어내고 함정을 만들어 그녀를 고립시키지 않았을까.

김현성을 상대했을 때처럼 온갖 더러운 짓을 하며 천천히 그녀를 수면 아래로 끌어내렸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정확히 어떤 수단을 썼는지,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모든 게 의문에 싸여 있지만, 명확한 팩트는 인간쓰레기 진청이 그녀를 실종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

‘대단한 새끼, 빨리 퇴장시켜서 다행이야.’

녀석이 공화국의 세력과 바깥 신에게 손을 뻗었다면 나는 대륙이 승리할 확률을 40% 이상 내렸을지도 모른다.

잠깐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차희라의 모습은 믿기지 않았다.

거칠 것 없다는 듯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당연하지만 정하얀의 표정이 절망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승부는 이미 끝났다. 굳이 더 이상은 싸워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 누구보다 정하얀이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다.

하얀이 역시 경지에 오른 강자인 만큼 그녀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내구 스텟으로 만들어진 마법 저항력에 정하얀이 쏘아대는 마법이 먹히지도 않는다.

-끄윽… 오, 오지 마! 오지 마!

필사적으로 마법을 쏟아내고 있었지만 이미 앙꼬 없는 찐빵.

계속해서 지속된 전투에 바다 같았던 정하얀의 마력도 바닥을 내보이고 있었고 다른 것보다 멘탈이 많이 망가졌다.

모르긴 몰라도 ‘졌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순간 이동 주문도 외워지지 않는지, 차희라의 진군을 늦추는 데만 급급한데, 어떻게 그녀를 막을 수 있을까.

결국에는 밀도가 높은 보호 마법으로 몸을 둘둘 마는 모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

‘무승부.’

차희라의 특성은 시간이 지나면 끝나니까. 그때까지만 버티고 무승부 판정을 받으려는 게 아닐까.

지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은 이해되지만 저럴수록 본인이 더 비참해 보인다는 걸 왜 모를까.

“내려가요.”

“지, 지금 내려가도 되나요?”

“공화국 전쟁 때 썼던 포션 떨어뜨릴 겁니다. 조금 놔두면 잠잠해지겠죠.”

-끄으윽, 흐으윽….

콰아아아아아아앙!!

무기로 보호막을 두드릴 때마다 마력이 크게 흔들리는 거로 봐서는 얼마 버티지 못할 거다.

-흐어어어엉, 흐으윽, 흐어어어어엉….

‘왜 이렇게 서럽게 울어, 하얀아.’

-흐어어어어어어어엉… 싫어, 끄윽, 히끅, 흐어어어엉….

이미 전투를 포기했다. 싸울 의지도 없고,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 차희라가 잠잠히 그녀를 내려다본 것은 바로 그때.

‘정신이 돌아왔나?’

아니, 이전과 같다. 어째서 차희라가 얌전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정하얀에게 싸울 의지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 아닐까.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차희라는 정하얀에게 완전히 무관심해졌다.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이쪽을 올려다보는 것 같다.

조금 더 하늘 높이 날아가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 생각해 봤지만, 천천히 정상으로 되돌아오는 차희라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온·오프도 가능한 거야, 누나?’

-흐어어어어엉… 끄으윽, 어어어어엉… 히끅.

-후우….

-끄윽, 끄으으윽….

-수고했어, 세컨드.

곧바로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나는 차희라.

“소라 씨는 하얀이한테 먼저 가봐요.”

“네? 아… 네.”

“저도 잠깐 희라 누나랑 이야기 좀 하고 곧바로 합류할 테니까.”

“빨리… 오셔야 해요.”

“네.”

대답한 후 곧바로 몸을 옮겼다.

이미 정하얀과 멀찍이 떨어진 차희라에게 다가서자, 그녀가 이쪽을 빤히 바라봤다.

‘아직 완전히 정상으로 되돌아온 건 아닌가?’

괜히 눈치가 보였지만, 이상은 없다. 뭔가 입맛을 다시는 얼굴 같았지만, 전투가 끝난 후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것과 비슷한 상태이리라.

일대가 완전히 개박살이 났기 때문에 제대로 발 디딜 곳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저도 모르게 발을 헛디디자 한걸음 성큼 뛰어와 내 팔을 붙잡는 게 느껴졌다.

“대충은 계획대로 된 건가?”

“기분 어때, 누나?”

“참기 힘든데, 막 전투가 끝난 직후라.”

“아니, 그런 느낌이 아니라 감상을 묻는 거야.”

“당연한 결과라 커다란 감흥은 없지만,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를 묻는 거냐면 기분은 좋네. 지금 좀 힘든 상태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제어도 할 수 있게 된 것 같고… 예상했다니까.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난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지금보다도 더 강해질 수 있을까?”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이빨을 보이며 웃는 표정은 긍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보다 빨리 세컨드한테나 가봐. 즐거웠다고 꼭 전해주고.”

“누나는 안 가?”

“원인 제공자가 가서 뭐 하겠어? 오히려 속만 뒤집어 놓겠지, 뭐. 나는 내 나름대로 정리할 부분도 있고… 생각보다 더 많은 걸 얻어서 이 감각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거든….”

“몸 상태는 점검하고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당장 할 필요는 없고… 오늘 안에만 하면 되겠지, 뭐. 저녁에 길드로 찾아와, 자기.”

“…….”

“승자는 전리품을 갖는 게 상식이지, 그렇지 않아?”

‘아니야, 누나. 그런 상식 없어.’

마치 사자가 먹잇감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안 가면 안 되겠지?’

당연히 그런 선택지는 없다.

“준비 잘해서 오고. 아, 그리고 나한테 쓰려고 했던 향수? 아니, 야 한 냄새 포션 있지? 그거 전부 다 챙겨와.”

‘그건 왜.’

“먼저 갈게.”

“응, 축하해, 누나.”

“당연한 걸 가지고.”

주먹을 꽉 쥐고 자신을 내려다본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발걸음을 옮기는 모양새가 더 당당해진 것은 착각이 아닐 것이다.

그녀는 원하는 것을 얻었고, 아직 본인의 앞에 놓인 벽이 더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테니까.

벽을 깨고 난 뒤에 늘어져 있는 또 다른 벽을 바라보며 차희라는 즐거워하고 있었다.

아마 일반인들이라면 절망하지 않았을까.

또 저 벽을 어떻게 넘어야 하는지, 언제쯤 눈 앞에 있는 걸 모두 치워 버리고 멋진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을지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차희라에게는 눈 앞에 놓인 벽이 그 어떤 풍경보다도 멋진 풍경이다.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네.’

아마 1회차 정하얀도 차희라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눈 앞에 놓인 벽들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을 것이고, 아직 본인이 더 파고들 여지가 있다는 것에 기뻐했을 것이다.

물론 현재는 그렇지 않다. 정하얀에게 앞에 놓인 벽은 스트레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계속해서 우는 모습, 열심히 지은 집이 허물어져 버린 수달의 모습처럼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오열하고 있었다.

-흐어어어엉… 끄윽, 싫어어….

-정하얀 님… 그… 잘….

-어어어어어어엉… 히끅, 히끅.

정하얀 억제기, 한소라도 어떤 포지션을 잡아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어서 빨리 내가 돌아와 줬으면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니, 그녀도 패닉에 빠진 모양이다.

‘너무 상심한 것 같은데.’

아예 모든 걸 다 놔버린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의 반응이다. 심지어 위로하려는 한소라의 손을 쳐 내고 있다.

‘안 돼, 하얀아. 그러지 마.’

-이, 이, 이길 수 있을 거라며… 끄으윽… 흐윽….

-죄송….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말했었잖아…. 흐윽, 흐으윽, 소라가 그렇게 말했었잖아.

-죄송해요, 정하얀 님. 제가… 잘 몰라서… 죄송해요.

-끄윽, 끄으윽, 이길 수 있을 거라고 했으면서… 이길 수 있을 거라고 했으면서!!

한소라에게 화내고 있었지만, 아마도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가 아닐까.

땅바닥에 있는 자갈들을 한 움큼 쥐어 한소라에게 던지는 모습은 마치 떼를 쓰는 것만 같다.

남 탓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 같았지만, 여전히 한소라는 소중한 모양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미 다진 고기가 되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아마 정하얀으로서도 저게 최선이겠지.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너무… 네, 전술에 문제가 있어서… 제 잘 못인 것 같은데… 부길드마스터한테는 제가 잘 말씀드릴게요. 그러니까 너무, 너무, 실망하지는 마세요. 제 잘못이라고 말씀드릴 테니까.

-소라 잘못이야. 네, 네, 네 잘못이야!! 흐윽… 흐어어엉….

-…….

-한소라, 싫어. 한소라, 진짜 싫어. 끄윽… 끄윽….

-…해요.

-보, 보, 보기 싫어! 얼굴 보기 싫어! 끄윽….

이제는 육성으로 목소리가 들어올 정도의 거리.

내가 오는 모습을 확인했는지, 정하얀이 한소라를 밀치며 곧바로 내 품에 안겨들었다.

“소, 소라 때문이에요.”

절박한 표정.

흔들리는 눈.

“수고했어, 하얀아. 결과에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어차피 데이터 수집 차원에서 했던 모의전이었으니까. 하얀이가 지든, 이기든 별로 상관없어. 내가 하얀이가 싫어지는 것도 아니잖아. 많이 힘들 테니까. 집에 일찍 들어가서 쉬자.”

무한한 절망감을 느낀 것 같은 얼굴이다.

‘실망하지 마, 하얀아. 너도 충분히 넘을 수 있어. 분명히 넘을 수 있을 거야.’

그녀 역시 차희라처럼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한소라만 잘해준다면 말이다.

[일반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소라 씨 연기해 본 적 있어요? (0/1)]

[한소라에게 일반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퀘스트 클리어 보상을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플레이어 한소라는 보상을 받으실 수 없습니다.]

제발 이러지 말라는 한소라의 표정이 시야에 비쳤다.

‘너도 이제 연습생 생활 청산하고 데뷔해야지.’

한소라의 데뷔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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