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3
회귀자 사용설명서 673화
한소라 데뷔(3)
‘잘 지낼 리가 없잖아.’
내가 다 불안해질 정도의 모습이었다. 그만큼 정하얀의 상태는 불안정해 보였다.
그나마 극대노 상태에 진입하지는 않았지만, 한소라 전출의 영향을 받은 것만은 확실했다.
멍하니 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가관, 가만히 있다가도 흘러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지 꾸역꾸역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저… 정하얀 님, 그러니까….’
‘보, 보, 보기 싫어. 한소라 얼굴 보기 싫어! 진짜… 싫다구… 사라져, 사라지라구.’
‘그… 럼 가볼게요. 얼마 걸리지 않을 거래요. 잠깐… 그 관리 위원회 쪽에서 할 일이 있어서.’
‘소라 때문이야. 소라 때문이라구!! 내 앞에 나타나지 마!’
‘최대한 빨리 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잘 지내세요.’
그런 대화를 나눴던 게 불과 며칠 전이다.
정하얀 본인은 자각하지 못한 것 같았지만 이미 한소라는 정하얀 속에 꽤나 많이 틀어박혔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1년 동안 함께 살았으니, 그렇지 않은 게 이상하리라.
정하얀이 가장 무서워하는 감정은 상실감이다.
그녀는 가족들과 함께 지냈던 때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고, 또 그 상실감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
당장 한소라가 사라졌다고 극대노 상태로 진입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하얀은 한소라의 빈자리를 조금씩 조금씩 자각하고 있었다.
1일 차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거로 기억한다.
오히려 한소라 싫다는 소리를 혼잣말로 중얼거리기도 했고, 다시는 한소라를 보지 않을 것 같은 태도를 보이며 마법 공부에 열중했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그 1일 차에도 약간의 성취를 얻었다.
2일 차 역시 마찬가지, 차희라와의 모의전에서 진 게 분했는지 함께 전술을 짜준 한소라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며 그녀에게 욕을 퍼부었다.
물론 욕이라고 하기에는 귀여운 단어의 나열이었지만, 그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 한소라가 지내던 방으로 들어가 앙증맞은 손으로 화풀이했을 정도였다.
심지어 3일 차에도 계속 즐겁게 지냈다.
온종일 나와 시간을 보낸 게 효과가 있었던지, 5일 차까지는 즐거워하며 3일째의 추억을 곱씹기도 했다.
문제는 내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한 6일 차부터, 소리 없이 다가온 후폭풍이 정하얀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여전히 평범한 일상을 지내고 있기는 했다.
마법 공부나, 작업 같은 경우에는 본래 정하얀의 개인 시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이외의 시간이 문제.
항상 맛있는 식사를 만들어주던 한소라가 없다는 사실을 갑작스레 깨달은 이후가 문제였다.
‘어….’
하는 소리를 내고는 식탁을 멍하니 바라보던 정하얀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문제가 되는 건 식사시간뿐만이 아니었다.
한소라 자체가 정하얀의 개인비서, 아니, 보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니 생활과 관계된 모든 것에서 한소라를 떠올리기 시작한 듯했다.
최고의 셰프가 요리한 음식을 한소라가 만들어준 이기영 캐릭터 도시락보다 맛없다는 이유로 바닥에 던져 버릴 정도였다.
‘근데 그건 집어 던질 만했어. 캐릭터의 퀄리티가 달랐지.’
정하얀은 다시 만들어달라고 요리사들에게 요청을 넣었고, 그들은 그날 55개의 캐릭터 도시락을 선보였지만 모든 작품이 한소라의 작품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확실히 한소라가 재능이 있기는 있었던 모양이다.
웨딩 잡지를 읽거나 계획을 세울 때 역시 마찬가지, 압권은 역시 7일째였다.
‘오빠랑 결혼하면 신혼여행은 여기로 갈 거야. 저번에 거기보다 여기가 더 좋은 것 같아. 여기 진짜 예, 예쁘대. 오빠도 좋아할걸. 그, 그렇지? 여, 여, 여기 어때, 소라야?’
그렇게 혼잣말을 해버린 것이다.
습관처럼 중얼거린 이후에 주변을 둘러보던 정하얀의 눈빛은 솔직히 조금 초조해 보였다.
사라진 한소라를 찾거나 훔쳐보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결국에는 은근슬쩍 여신의 손거울을 드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멍하니 벽을 바라보다가 [소라야, 미안해]라는 메시지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모습에는 내 가슴이 다 아팠다.
그나마 그녀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접근하는 빈도를 높여준 덕분이었다.
연락할 때만큼은 한소라를 완전히 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만큼 이쪽에 메시지를 더 많이 보내게 됐다.
억제기가 사라지자 슬슬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에는 의도적으로 정하얀의 연락에 답장하지도 않았다.
할 일이 있다고 둘러댔고, 결과적으로는 정하얀은 쌍방향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빠도 없는데, 한소라도 없다.
체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소라야, 언제 돌아와?]라는 메시지의 전송 버튼까지 눌러 버렸다.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정하얀 나름의 자존심이었지만 한소라가 답장을 보낼 리 없다.
정하얀은 그날 여신의 손거울을 집어 던지며 한소라에게 욕을 퍼부었다.
정하얀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ㄱr끔 눈물을 흘리고는 했다.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다는 것 역시 당연한 이야기, 애초에 힘들지 않을 리가 없다.
하루에도 감정이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고, 즐겁다가 슬퍼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미 정신적으로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전보다도 더 불안해지는 모습.
재미있는 것은 정하얀 혼자만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웃긴 일이지만 현재 상태만 보면 정하얀보다 한소라의 표정이 더욱더 불안해 보인다.
물론 준신화 등급의 던전, 외톨이 대마법사의 거처에 홀로 향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하면 저런 표정을 지을 만도 했다.
하지만 표정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한소라 역시 며칠 전부터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뭐, 크게 변한 것은 아니다. 그냥 정하얀이 뭘 하고 있는지, 현재 상태가 어떤지, 조용히 잘 지내는지 물어보는 것이 전부였지만, 한소라는 갑작스럽게 손에 들어온 자유를 전혀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커다란 폭탄을 들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기폭 장치가 눈앞에 있는 것과 눈앞에 없는 것 중 어떤 게 더 불안한지 묻는다면 누구나 다 후자를 고를 거다.
현재 한소라가 처한 상황이 그런 상황이었다. 정하얀의 품에서는 벗어났지만, 아직도 그녀는 폭탄을 들고 있다.
그나마 이전에는 본인이 억제할 수 있었지만, 몸이 멀어진 지금에서는 그것조차 불가능하다.
당장 나 역시도 망원경이 없다면 그녀처럼 초조해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기폭 장치에 손을 대고 있는 건지 아니면 떼고 있는 건지 누구보다 궁금해할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하얀의 상태에 대해 묻는 것이 한소라의 일상. 본인도 자신의 역할을 잘 알기에 보여줄 수 있는 반응이리라.
괜스레 침을 삼키며 한소라가 말을 이었다.
-선희영 님은 항상 차분하신 것 같네요. 오랜만에 보니 반갑기도 하고… 네, 좋았어요.
[일반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요. (0/1)]
[한소라에게 일반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퀘스트 클리어 보상을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플레이어 한소라는 보상을 받으실 수 없습니다.]
-마음이 편… 해지더라고요. 이것저것 많이 챙겨주셔서…. 힘들지는 않아 하시던가요? 아, 모두 함께 다 모이기로 했었는데… 그건 언제가 좋을까요? 역시 정하얀 님의 일이 해결되고 나면 모이는 걸까요?
‘진짜 긴장했나 보네.’
쓸데없는 말이 길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온몸이 조금씩 땀으로 젖어가는 게 보일 정도였다.
-정하얀 님은… 오늘 식사는 하신 건가요?
[오늘은 안 한 것 같은데… 평소에는 잘 먹고 있는 것 같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조금 불안정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생활은 하고 있으니까요. (0/1)]
-제대로 씻고 계신지도 궁금한데….
[하얀이, 어린애 아닙니다. 그 정도는 혼자서도 해요. (0/1)]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간혹 한 번 집중하시면 주위에 아무런 신경 쓰지 않으시잖아요. 얼마 전까지는 계속 공부만 하셨다고… 부길드마스터가 말씀해 주셨잖아요.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0/1)]
-그래도…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요.
[너무 걱정 안 해도 돼요. 어차피 지금부터 보러 갈 건데, 뭘 그렇게…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오시면 되잖아요. (0/1)]
-…….
-…….
-괜, 괜찮겠죠?
[아마 괜찮을 겁니다. 제가 지시한 대로 잘 움직여 주시면 돼요. (0/1)]
정말로 괜찮냐고,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냐고 묻는 것 같은 한소라의 표정이 시야에 비쳤지만. 당당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너, 안 다칠 거야. 기껏해야 자갈 세례가 전부라고.’
정하얀은 한소라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물론 정말 상황이 막장으로 치달으면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정하얀은 이미 한소라를 자기 사람이라는 카테고리 안으로 집어넣지 않았는가.
한차례 설명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한소라는 여전히 불안해하는 얼굴이었다.
그리폰에서 내린 한소라가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당연하지만 얼굴에는 긴장감과 걱정이 감돈다.
한참이나 문에 서성거리고 있는 모습은 가관, 뭐라고 한마디 더 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을 때, 한소라가 문을 두드렸다.
-정… 하얀 님… 저 왔어요.
-…….
-정하얀 님? 저 왔어요.
-…….
-정하얀 님!
-소, 소라 왔어?
-네, 저 왔어요.
-왜, 왜, 왜 왔어?
-잠깐… 정리할 게… 있어서요.
-들어와.
끼이이익.
문소리가 왠지 모르게 불길하게 들려오는 것은 기분 탓일까.
한소라가 겁을 집어먹은 얼굴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디뎠다. 아마 정하얀의 상태가 어떨지 걱정되지 않을까.
나 역시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서웠지만, 다행히 최악의 반응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정하얀의 반응이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굉장히 안심한 듯한 느낌이었다. 곧바로 표정이 밝아지는 것이 시야에 비쳤으니까.
굳이 튀어나가 마중 나가지 않은 것은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으리라.
‘쟤, 대외적으로는 화난 상태였지.’
이미 한번 한소라를 탓하기로 마음먹었고, 그 무엇보다 한소라가 자신의 메시지를 무시했다는 것에 화내고 있는 상태였다.
한소라는 응당 정식으로 사과해야 했고, 정하얀의 소중함에 대해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나를 대할 때의 태도와 어쩌면 이렇게 다를까 싶었지만 아마 비슷한 양상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둘의 관계에서는 정하얀이 갑이었으니까.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지만, 엄마나 누나 같은 느낌.
항상 옆에서 자신을 챙겨주고 도와주고,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그 자리에 있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소라는 정하얀의 거처로 들어오자마자 습관처럼 이것저것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정하얀이 어지럽혀놓은 것들이었다.
-식, 식사하셨어요?
-아… 아니.
그런 대화를 나눈 후, 한소라는 곧바로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슬그머니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 밖을 서성거리고 있는 정하얀은 무척 안심한 듯한 느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보인다.
‘이제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구나.’
라거나.
‘드디어 끝났네. 소라도 돌아왔나 봐. 사과하면 꼭 받아줘야지.’
혹은.
‘문자 무시한 건 용서해 줘야겠다. 오늘부터 여기 있는 거네.’
같은 생각 말이다.
-식, 식사 드셔야죠.
-…….
아무 말 없이 턱 하니 자리에 앉는 모습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들어서 있었다.
아직은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슬쩍 입꼬리가 올라가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요리가 나온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테이블을 꽉 채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 마치 파티라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는 어머니의 맛을 맛본 사람처럼 아주 기분 좋은 표정이다.
어쩌면 이걸로 사과하려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것 같다.
정하얀은 이미 한소라를 용서했다. 물론 한소라가 중죄를 저지르기는 했지만 이제 충분히 용서해 줄 시간이 됐다.
정하얀의 표정이 구겨진 것은 한소라가 입을 연 직후였다.
-정하얀 님, 그러니까….
-…….
-마지막… 인사 드리러 왔어요.
항상 그렇듯, 나 역시 정하얀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