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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679화 (670/1,590)

# 679

회귀자 사용설명서 679화

드래곤(4)

넓은 들판 위를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종족의 구분 없이 자연을 벗 삼아 즐겁게 노는 꼬마들의 모습이 어떤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정말로 즐겁다는 듯 꺄르르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밥을 먹는 모습에도 순수한 동심이 들어가 있었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야 할 대륙은 이래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 아이들은 응당 이런 미래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이런 미래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하는 것만 같다.

실제로 비슷한 나레이션도 나오고 있지 않은가.

-우리 아이들이 마음 놓고 지낼 수 있는 대륙, 우리의 손으로만 지킬 수 있습니다.

괜스레 클로즈업되는 디아루리아의 얼굴에 카메라로도 담을 수 없는 순수함이 자리한 것은 당연하다.

사실 깔끔한 모습도 아니다. 작정하고 메이크업을 하고 찍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예전의 잃어버린 동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꼬마의 웃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마땅히 전쟁터로 나가야 한다. 그게 옳다. 그런 생각이 들게 한다.

-대륙의 모든 이가 하나가 된다면 우리는 지킬 수 있습니다. 작은 촛불들이 모여 어둠을 밝히는 커다란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역시 압권은 이종족 아이들을 따뜻한 빛의 날개로 품어주는 빛기영. 내가 보기에도 성스러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품에 안기는 디아루리아와 막스, 그리고 이제는 이름도 까먹은 여러 꼬맹이까지 함께 빛의 날개에 안겨 있는 장면은 그 어떤 연출보다 더 효과가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화합, 사랑 그리고 평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가치입니다. 이 땅 위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는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부디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에 당신의 힘을 빌려주세요. 새로운 미래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손을 뻗어주세요.

“그리고.”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

로고가 나오면서 광고는 마무리.

다소 급하게 만들어, 효과가 있을까 염려되기는 했지만, 오히려 이런 엉성함이 좋다.

대놓고 노렸다기보다는 정말로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낸 것이었으니 말이다.

옆에서 함께 여신의 거울을 바라보던 디아루기아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어왔다.

“정말로… 효과가 있군요.”

“효과가 없을 리 있겠습니까. 우리 드래곤님들 사이에서 아직 성체가 되지 못한 드래곤은 지켜야 한다는 기본적인 가치가 남아 있다는데. 먹히고 말고요. 무조건 먹히는 게 맞습니다.”

“그것 역시 예전의 일이라고 들어서… 솔직히 확답을 드리기에는 조금… 불안했습니다만….”

“종족 불문 만국 공통이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순수한 어린아이를 싫어하는 이가 어디 있겠어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서 아이도 가지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마음이 움직이는 건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우리 디아루리아 얼굴 좀 보세요. 얼마나 순수합니까. 용들이 이걸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

“아마 세상이 달라졌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종족과 드래곤이 어울리는 광경 자체가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림은 아니니까요. 일부 우월주의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기본주적으로는 고개를 끄덕이겠죠. 세상이 달라졌구나. 정말로 화합의 때가 다가왔구나. 아마 확인하러 온 드래곤들도 있을 겁니다. 그만큼 믿을 수 없는 광경이잖아요.”

“네.”

“세상에 은둔한 드래곤이 표면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는 거로 모자라 세상에 녹아들고 있다니, 아마 우리를 찾아와 주신 드래곤 분들에게는 무척 감동적으로 비쳤을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계신 거고요.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건 우리 똘똘이의 순수한 모습이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네?”

“뭔가… 잘된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만…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왠지 모르게 아이들의 순수함을 이용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

“…….”

“그런 마음가짐으로 대륙을 지킬 수 있겠어요? 우리 똘똘이 얼굴을 보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건 모두 똘똘이를 위하는 길입니다.”

“그건 알고 있지만….”

“디아루리아는 방에 있죠?”

“네.”

“슬슬 일어나죠. 손님들 계속 기다리게 하기도 조금 그런데…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알았으면 미리미리 준비해 놓을 걸 그랬네요. 다섯이나 모일 줄 누가 알았겠어요. 게다가 그… 뭐라고요?”

“네, 제 기준으로도 고룡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한 분 와 계십니다. 저 역시 어렸을 때 한 번 스쳐 지나며 뵌 게 전부고요. 당연히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

“강하기도 하겠네요.”

“…….”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정도로 나이를 먹은 고룡이라면 가진바 무력도 상당하지 않을까?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겠지만 커다란 지역 하나를 단신으로 메워줄 수 있을 정도 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대천사 중 하나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할지도 모르지.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안 그래도 전력이 달린다고 생각하는 상황이었는데, 든든한 아군이 합류하기 직전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말이다.

절로 미소가 번졌지만 아직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광고 자체에 의구심을 느끼거나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본 것을 확인하려고 온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만남을 잘 마무리 지어야 했다.

물론 디아루기아와 사이좋은 모습을 연출하는 것도 당연한 거고… 기본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인상을 남겨야 한다.

저들은 인간에게 미비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제 모두 끝났다고 안심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아, 네, 먼저 들어가시죠.”

살짝 고개를 숙인 디아루기아가 곧장 응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 역시 곧바로 뒤를 따라가자 의자에 앉아 있는 다섯 명의 인형이 시야에 들어왔다.

노인이 한 명 그리고 디아루기아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연배가 있어 보이는 이가 대다수.

기본적으로 인간형이 실제 수명의 영향을 받는다는 걸 생각하면 아마 흰머리를 한 저 할머니가 디아루기아가 말한 고룡이 아닐까.

어떤 종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황금색 눈동자를 보니 어떤 색깔인지 대충 예상이 간다.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존경하는 대륙의 수호자들이시여.”

“…….”

“…….”

아주 잠깐의 침묵 이후 곧바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더 이상 대륙의 수호자가 아닐세. 그런 이야기를 듣기에는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더 이상 우리를 그렇게 칭하지 말게.”

“…….”

“…….”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인간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여러분들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대륙을 위해 헌신하신 걸 알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땅을 밟고 있을 수 있는 건 드래곤들의 노고와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찌 모른 척할 수 있단 말입니까.”

“…….”

“잊혀지고 있는 표현이라 한들, 여러분은 마땅히 대륙의 수호자로 불릴 자격이 있으십니다.”

“부끄럽군.”

“…….”

“부끄러워.”

혀를 차는 소리는 뭘 뜻하는 건지 모르겠다.

“대륙의 신들에게 선택받은 인간아, 네가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습니까, 제노지르아 님.”

“마르세린, 눈앞에 있는 이 신성한 인간에게 거짓은 없네. 빛을 향한 마음에 아주 조금의 거짓조차 느껴지지 않아.”

‘뭐야, 거짓말 탐지기 가지고 있었어?’

마음의 눈을 발동시켜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굳이 트집잡힐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제노지르아라는 드래곤을 바라보자, 미안하다는 얼굴로 나를 응시하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다소 안 좋은 반응을 보인 용은 마르세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커다란 소리를 내는 게 들려왔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대륙의 신에게 선택받은 인간이라고 한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노지르아 님. 수 세기 동안 나타났었던, 용사라고 불리는 이들도 결국에는 자신의 탐욕과 이해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지 않습니까. 그런 인간이 있을 리가 없….”

푸른 머리를 한 드래곤이 말을 멈춘 것은 내 눈을 바라본 직후였다.

‘저는 대륙을 위해서라면, 이 땅과 이곳에 살아가는 모든 이를 위해서라면 내 모든 걸 내던질 수도 있어요.’

“그런 인간이… 있을 리가… 없…습….”

‘제가 원하는 것은 권력이나 명예 그리고 물욕 따위가 아니에요. 제 안위를 지키고 싶어서도 아니고요. 애초에 그런 게 뭔지도 잘 모르죠. 다른 건 필요하지 않아요. 그냥 지키고 싶을 뿐이에요. 순수하게 이 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냥 지키고 싶을 뿐이에요. 저는 빛이랍니다.’

“없습니….”

‘사랑과 평화, 화합 그리고 미래. 그게 제가 원하는 전부인 걸요? 다른 건 잘 몰라요. 정말이라니까요? 기영이는 아무것도 몰라요.’

“있을 리가… 없는데.”

“내 눈이 틀린 게 아닌 모양이구나, 마르세린. 그렇지 않으냐. 속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겉으로만 보이는 게 있는 법이다. 그걸 느낀 게로구나. 어떻더냐.”

“송구합니다.”

“이 인간은 달라. 진심으로 대륙을 위하고 있으며 숨어버린 우리보다 더 수호자라는 이름에 걸맞은 이다. 네가 인간을 남편으로 뒀다고 했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만… 네 선택이 틀리지 않은 모양이다, 디아루기아.”

“감사합니다, 제노지르아 님.”

“이 인간이 너를 무척 사랑하고 있다는 것 역시 느껴지는구나. 좋은 짝을 얻었어. 아주… 아주 좋은 짝을.”

“…….”

“일단 사과부터 하고 싶네. 자네를 믿지 않았던 것과, 쓸데없는 시험을 한 것은 미안하게 생각하네….”

무슨 시험을 한 건지 도통 모르겠지만, 역시나 마음속에 있는 빛은 그 어떤 시험도 프리패스 하게 해주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행동이었다는 걸 이해해 주게나. 너무 오랜 시간을 상처받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해 줬으면….”

“무슨 상황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렇지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노지르아 님.”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일단 땡큐죠.’

“…….”

“…….”

그리고 찾아온 잠깐의 침묵, 정말로 미안했던 모양이다.

오히려 본인이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입꼬리를 올릴 수 있는 상황이 찾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상대방에게 빚을 지우고 시작할 수 있다는 건,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과 진배없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제노지르아가 곧바로 말을 이어왔다.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잠깐 긴장했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조금 의외의 발언이었다.

“괜찮다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도 되겠는가.”

“정확히 어떤….”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는지,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 어떻게 디아루기아가 이 인간을 짝으로 선택했는지, 듣고 싶네.”

‘뜬금없네.’

부드러운 미소, 확실히 종족 어른의 얼굴이라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주 어릴 때 디아루기아를 한 번 본 게 기억에 있는지 그녀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 마치 할머니가 손녀의 연애 스토리를 듣고 싶어 하는 것만 같다.

이건 조금 부끄럽지만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기왕이면 잘 보이는 게 좋으니 말이다.

“실은….”

“음.”

“실은 캐슬락이라는 도시의 인간들이 디아루기아의 딸을 납치한 적이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장내가 얼어붙은 것만 같다. 하지만 천천히 내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이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작은 바위 길드가 디아루리아를 볼모로 디아루기아를 협박하고 결국 디아루기아가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던 이야기였다.

그런 그녀를 내가 돌보며 결국 인연을 맺게 되었다는… 별것 아닌 이야기.

이전의 일을 떠올리자 괜스레 얼굴이 붉어진다. 당시에는 디아루리아의 아빠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 말이다.

말을 이으며 디아루기아를 바라보자 그녀 역시 조금 어색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사실 제가 디아루리아의 아버지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덜컥… 그렇게 되어버려서.”

“코가 꿰어버린 모양이구나, 하하하. 어지간히 이 남자가 욕심이 났던 게야. 내 말이 틀린 게냐, 디아루기아.”

“부… 끄럽습니다.”

“목숨을 구해준 이후에 덜컥 배우자로 선택당했으니 대륙 신들의 축복을 받은 인간이 조금은 억울할 만도… 할 것 같습니다, 제노지르아 님.”

“역시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냐, 마르세린.”

“네, 순수한 인간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디아루기아가 부럽기도 하군요.”

맨 처음에는 불안감을 가지기도 했지만, 장내의 분위기는 밝은 미래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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