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2
회귀자 사용설명서 682화
준비하십시오(2)
[신성교국의 지도자 오스칼, ‘승리를 준비하십시오.’ 단호한 연설에 뜨거운 반응. - 교국신문 김성경 기자.]
[7일이 남은 시점에서 갑작스러운 발표, 대륙의 운명은 어디를 향해 흘러가는가. 카스가노 유노 공식입장표명 거부. - 실리아 주간일보 요네즈 켄지.]
[바젤교황, 결국은 베니고어 님의 예언대로… 모두가 성전에 참가해 마땅한 승리를 누릴 것. 하지만 노을빛의 검사 옆에서 함께 싸운다는 용사에 대해서는 묵묵부답. - 린스패치 강유미 기자.]
[대륙의 명운이 달린 이때, 파란 길드마스터는 가방 쇼핑 중? 한가로운 모습은 자신감의 표현인가 아니면 단순한 사치인가. 길드 자금을 횡령했다는 익명의 제보도……. - 린스패치 강유미 기자.]
[개인 안전 대책 공지 -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
[대륙 곳곳에 이상 징후. 멸망의 정황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어.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천사의 탈을 쓴 악마들이란 무엇인가. 그들의 전력과 대륙의 전력을 비교한다면 어떤가. - 칼럼니스트 박성경.]
[천재검사와 연금술사 오랜 흥행 끝에 드디어 막바지로…… 외전 연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어. - 린델 문화부 기자 강유미.]
[아직도 공식 석상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이기영 위원장,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에서 내놓은 영상 말고는 다른 대외활동이 전혀 없어… 건강 적신호 우려. - 교국일보 김성경 기자.]
“진짜 난리 났네.”
“…….”
“난리 났잖아.”
“어이! 김 양!”
“…….”
“김 양!”
“네, 아저씨. 저 여기 있어요.”
“훈련은 다 끝났고? 오늘도 손거울 보고 있네… 그거 너무 보면 눈 안 좋아진다니까 그러네.”
“시력 나빠져도 마력 넣으면 멀리 있는 곳까지 볼 수 있어요, 아저씨. 애초에 나빠질 일도 없고요.”
“거기 분위기 좀 어때.”
“그냥… 좋지는 않아요. 그렇게 나쁘지도 않고요. 자극적인 기사에 비해서 댓글도 클린하고 그래요. 최 씨 아저씨는 오늘 일 끝났어요?”
“뭐 그렇지. 사실 내가 할 일은 잔업 같은 것밖에 없어서. 다른 쪽도 분위기는 거진 마찬가지여.”
“매일 보지만 진짜 의외네요. 아저씨가 자진해서 남을 줄은 몰랐는데.”
“어차피 지원중대인데… 나보다는 김 양이 더 의외지. 내일 중앙으로 차출된다고 하지 않았었나? 우리 김 양도 진짜 성공했다니까.”
“저 원래 스텟 높다고 했잖아요.”
“그게 아니라 안 씨나 박 씨한테 불려가는 거 아니야? 나는 몰라도 김 양 정도면 파란에….”
“쉿!”
“큼….”
“몰라요, 그럴 수도 있고요.”
“정말로?”
“아니요. 솔직히 파란에 가입하는 건 오바인데… 그래도 박 씨 아저씨가 있으니까 인맥으로 어떻게 비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는 있어요. 아저씨한테도 틈틈이 연락한다면서요. 저도 그렇거든요. 중앙 지원중대로 불려 가는지 아니면 수성전 병력으로 편입되는지도 몰라요. 제 수준이면 수성전 병력 편입은 불가능한데… 혹시 아나요. 뒤에서 화살이라도 나를지.”
“병과도 안 쓰여 있고?”
“중앙으로 차출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안 적혀 있었단 말이에요. 아마 알릴 수 없는 거겠죠. 궁금해서 메시지 남겼는데.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하네요. 뭐, 별것 아닐 수도 있고… 아무튼 잘 지내세요. 최 씨 아저씨랑 저 사이에 이런 말 하는 게 낯부끄럽기는 하지만… 뭐 살아남으시고요.”
“나야 무슨 걱정이 있겠어? 위험하면 뒤로 빼면 되는 거고… 쯧. 나보다는 김 양이랑 박 씨, 안 씨가 걱정이지. 따로 배웅은 안 할 테니까 잘 다녀와. 열심히 싸워주고….”
“가는 건 내일이에요.”
“그럼 내일 다시….”
“굳이 나오실 필요 없어요. 일 끝나고 다시 만나게 되겠죠. 뭐, 박 씨 아저씨가 일 끝나면 맥주나 한잔하자고 했어요.”
“나야 좋지.”
고개를 끄덕이며 이빨을 보이는 최 씨 아저씨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여기서 또 만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생각보다 인연이 더 질긴 모양이다.
처음에는 꼴도 보기 싫었지만 계속 보다 보니 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저 아저씨는 잘 살아남으려나.’
사실 남 걱정할 처지는 아니다. 최 씨 아저씨의 말대로, 자신이 가장 치열한 격전지로 차출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박 씨 아저씨나 안 씨 아저씨 외에도 수많은 강자가 즐비한 본부가 가장 위험한 지역이 될 거라는 건 조금만 추리해 봐도 알 수 있다.
위치상으로도 커다란 빛을 바로 마주 보고 있었고, 무엇보다 이기영 명예추기경, 아니, 이기영 위원장과 파란 길드마스터가 주둔하고 있다고 알려진 지역이지 않은가.
북부에 자리 잡은 모든 전진기지를 잇는 만큼 가장 강한 전력이 상시 대기하고 있는 지역이다.
기득권으로 분류할 수 있는 강자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자신들이 앞장서겠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당연하지만 댓글 여론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물론 파란 길드마스터의 갑작스러운 기행이 논란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예언의 날이 6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상황에 누가 그런 걸 신경 쓰겠는가.
80억에서 100억을 사용했다거나, 길드 자금까지 횡령했다거나 하는 익명의 제보자 이야기도 금방 사그라들었다.
살아남은 떡밥은 천연사가 끝나간다는 것 정도가 전부, 물론 아직 책을 읽어보지 않은 자신이 신경 쓸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마 천연사러버 님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소식이 아닐까.
최 씨 아저씨가 떠난 자리에서 시선을 다시 손거울로 올리자, 역시나 활성화된 방이 시야에 들어왔다.
[제목: 예언의 날, 이제 6일밖에 안 남음.]
[린델마을주민: 생각보다 더 고요하고, 사람들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내가 다 당황스러운데… 옛날에 친구들이랑 농담 삼아 대륙이 망하기 일주일 전에 뭐 할 거냐. 나는 뭐 한다. 이런 생각 많이 했었는데 막상 터지니까 담담함. 뭣 때문에 이러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일상적인 생활 계속하게 되네. 동네도 걍 조용함. 뭐, 범죄 저지르는 사람도 없고, 미친 척하고 버킷리스트에 밑줄 긋는 인간들도 없음. 다들 괜찮은 거임?]
[훍수저: 대륙이 안 망할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인가 봄. 오스칼 님 말대로 질 거라는 가정 자체를 안 하는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대륙 망할 뻔한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잖아.]
[흙수저: 공화국이랑 교국이랑 전쟁 났을 때도 그랬고, 라이오스나 악마소환 사건 때도 전부 다 그런 식이었잖음. 맨 처음에 튜토리얼 던전 열렸을 때도 대륙 주민들끼리는 말 많았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도 어떻게 잘 풀릴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 나도 잘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고.]
[린델마을주민: 조용해도 너무 조용한 것 같아서….]
[아이디미정: 그럼 뭐 이리저리 불났다고 뛰어다니고, 종말론자들이나 미친놈들이 날뛰는 걸 바란 거임? 범죄자들이 신전에 불이라도 지를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린델마을주민: 그런 건 아닌데….]
[아이디미정: 오스칼이랑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가 정말로 일주일 전에 이 사실을 알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면 너무 멍청한 거임 ㅋㅋㅋㅋ 진짜.]
[흙수저: ?]
[아이디미정: 적어도 몇 달 전에는 이 사태를 파악하고 있을 거라고 봄. 민간인들이 최대한 받아들이기 편한 분위기를 조성해 놓고 터뜨린 거지. 공식발표만 어제 났을 뿐이지. 이미 모두 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잖음.]
[흙수저: 그렇기는 한데.]
[아이디미정: 여론은 물론이거니와 치안상태를 신경 안 썼을까. 종말이라고 떠들면서 미친 짓 하려는 놈들은 쥐도 새로 모르게 콰직 당했을걸? ㅋㅋㅋㅋㅋㅋㅋ 옆 동네 길드마스터 죽은 거 보면 모름? 부길드마스터가 직접 처리했다는 말을 누가 믿어? 지금 당장 전진기지나 주요전선만 봐. 바쁘게 뛰어다니는 놈들 하나 없음.]
[린델마을주민: 그러면 지금 분위기가 좀 어떤데?]
[아이디미정: 나는 전선에 없어서 모르지. 근데 그렇게 바쁘게 뛰어다니지 않는 이유가 뭐겠음? 벼락치기 하는 놈들이 아니라 이거야. 이미 준비는 옛날 옛적에 다 끝내놓고 시험 며칠 전에 컨디션 조절한다고 침대에 누워서 책장이나 넘기고 있는 수준이라니까. 병력배치도 이미 옛날 옛적에 끝냈고 보급은 물론이거니와 훈련도 끝남.]
[린델마을주민: 뇌피셜은 좀….]
[아이디미정: 킹리적 갓심이라고 불러주셈. 니들 입장에서 기분 좋을 만한 이야기는 이거임. 이미 대륙은 적이랑 싸울 준비를 마쳤음. 못 믿겠으면 천연사러버 불러보든가. 파란 직원이라며. 걔가 제일 잘 알고 있을걸.]
‘얘는 도대체 뭐야.’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야기였다.
조금 편안하다는 생각이야 하고 있었지만 이제야 아귀가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
억지스러운 부분이야 있지만 아이디미정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 분위기가 깔려 있는 것 역시 사실, 그 무엇보다 현장이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크게 나쁜 느낌은….
‘아니지.’
준비를 다 끝내놓고 있었다는 건 어떻게 생각해도 박수를 칠 만한 상황이지 않은가.
문제가 되는 부분은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가 시기를 숨겼다는 것밖에 없다.
테이블에 걸터앉아 손가락을 올리자 곧바로 새로운 글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천연사러버: 그럼 준비를 하지, 안 하겠음? 예언이야 이미 몇 년 전부터 있었던 이야기인데. 괜한 음모론 퍼뜨리지 마.]
[아이디미정: 내가 뭐 이상한 이야기 했나. 준비 잘했다고 한 것뿐인데 뭐… 그렇게까지 반응해? 타이밍이 공교롭다는 생각은 안 드시나 봄? ㅋㅋㅋㅋㅋ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모르는 척하지 말지.]
[천연사러버: 현장에 가본 적도 없고 손거울이나 두드리고 있는 사람이 뭘 알겠어요?]
[아이디미정: 뜨끔하니까 존댓말 쓰면서 선 긋기 나오시죠?]
[아이디미정: 교국 지도자 오스칼은 준비하라고 말했지만 이미 준비는 다 되어 있다니까. 그러니까 남은 기간은 그냥 개인적인 준비 하라는 걸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유언장을 쓰거나 가족들이랑 통화 한번 하라거나. 뭐 그런 거지.]
[아이디미정: 지금쯤 파란 길드도 업진살이나 뜯으면서 하하호호 마지막 회식이라도 하고 있을걸. 천연사러버만 봐도 손거울 두드릴 시간 있잖음. 지금 파란 상태도 그래. 거기도 이미 고일 대로 고여 가지고….]
[린델마을주민: 천연사러버 님, 진짜예요? 준비 다 끝난 거 맞아요?]
[천연사러버: 아니에요. 세세하게 잡을 부분이 얼마나 많은데. 자세한 건 기밀이라서 말씀 못 드리는데 아이디미정 말 믿지 마세요. 안 그래도 심정 복잡해 죽겠는데… 뭐 아는 척이야?]
[역천사홍보위원장: 아이디미정 님 말이 맞을 걸요? 제가 보증할게요.]
[천연사러버: 님이 뭐라고 보증을 해요?]
[역천사홍보위원장: 확실히 맞을 거예요.]
[천연사러버: 어….]
[흙수저: 천연사러버 님 차단 풀었음?]
[천연사러버: 아니요. 안 풀었는데… 제가 왜 차단을 풀어요?]
[역천사홍보위원장: 아직 퍼즐이 몇 조각 남아 있기는 하지만 준비는 끝났다고 표현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요.]
[천연사러버 님이 역천사홍보위원장 님을 차단하셨습니다.]
[역천사홍보위원장은 존재하지 않는 아이디입니다.]
“어….”
[천연사러버 님이 역천사홍보위원장 님을 차단하셨습니다.]
[역천사홍보위원장은 존재하지 않는 아이디입니다.]
“뭐야?”
순식간에 위로 올라가는 채팅방이 눈에 보인다.
다들 물음표만 찍어내고 있을 뿐 다른 말이 없는 상황, 계속해서 손거울을 바라보고 있던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는 오류 난 적 없었는데.’
베니고어 넷은 지구의 인터넷과는 그 원리부터가 다르다. 애초에 서버 오류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알려진 거 아니었어?”
[역천사홍보위원장: 물론 해결되지 않은 문제야 있죠. 벽을 넘어야 하는 사람이 넘지 못하고 있고… 뭐, 이건 해결될 게 뻔한데….]
[천연사러버: 지금 서버 이상해요? 베니고어 넷 왜 이래?]
[역천사홍보위원장: 우리 불쌍한 회색 아이가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걸리네요.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대륙의 수호자들을 포섭했다는 건 박수를 드릴 만하니… 아마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 우리 이기영 님이 그리고 있는 그림에 문제는 없을 거라고 보는데… 변수야 많지만… 이겨내시지 않을까요.]
[린델마을주민: ㅎㄷㄷ 전쟁 터지면 서버 닫힌다고 누가 그랬어요? 뭐예요? 지금 뭐예요?]
[천연사러버: 차단 안 돼요. 존재하지 않는 아이디라고 떠요.]
[아이디미정: 너 누구임?]
[역천사홍보위원장: 그래도 가장 궁금한 건 김현성이 어떤 선택을 할지에요. 뭐가 어찌 됐든 나한테는 나쁘지 않은 내기지만 이기영 님이 주사위를 던진 것 역시 상당히 의외고… 역시 인간은 재미있다는 생각을 해버렸지 뭐예요.]
[천연사러버: 너, 누구야. 당신 누구인지 지금 당장 이야기 안 하면.]
[역천사홍보위원장: 뭐가 어찌 됐든 간에 당신들한테는 좋은 이야기일 겁니다. 외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준비가 끝났으니까요.]
[아이디미정: 지금 역천사홍보위원장 아이디 검색해 보고 있는데 아무것도 안뜸;;; X나 무서워. 쟤 뭐야. 누구야.]
[린델마을주민: 역천사홍보위원장 님이 썼던 글들도 사라지고 있는데요? 회원정보는 아예 없는 것 같고 가입은 어떻게 함? 추적 안 돼요. 아무것도 안 떠요, 진짜.]
[흙수저: 저 그냥 나갈게요. 무서워요.]
[역천사홍보위원장: 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지 간에… 저는 흥미롭게 지켜볼 수밖에 없겠네요.]
“…….”
[역천사홍보위원장: 그럼 다음에 또 봐요, 여러분]
“저건 누구야….”
[역천사홍보위원장 님이 퇴장하셨습니다.]
“누구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