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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688화 (679/1,590)

# 688

회귀자 사용설명서 688화

이기영 이 개 쓰레기 같은 사기꾼아 (2)

정신병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정말로 내가 미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옆에서 김현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그게 귀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괜찮다는 듯이 손으로 살짝 녀석을 밀치자 반 발자국 정도 떨어지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조금… 조금 취한 것 같네요.”

“기영….”

“방으로 들어가야겠습니다.”

‘진짜 정신병 생길 것 같은데. 진짜로… 개 시바….’

“하… 하지만… 지금… 방금….”

“잠깐 어지러워서 말입니다. 죄송합니다만 먼저 들어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남은 시간 재미있게 즐기시고 자리는 현성 씨가 마무리해 주세요. 길드원들한테도 잘 말씀해 주시고요.”

“…….”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요.”

뭐가 진짜고 뭐가 거짓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악마 소환사 진청이나 악마 숭배자 이토소우타,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악마 계약자 여러분들과 이설호 같은 놈들이 어째서 그렇게 이성을 잃었는지 대충 알 것도 같았다.

사람 하나를 완전히 보내버리는 구덩이에 빠뜨린 이후, 흙을 들이부으며 놀리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이기영 이 개 같은 사기꾼 새끼! 이 개자식!

라고 흥분하며 외쳤던 그간의 빌런들을 비웃었던 과거의 나를 조금 되돌아본 것은 당연지사.

종국에는 이성을 잃고 짐승마냥 달려들었던 그 빌런들을 인간이기를 저버린 미개한 금수라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악마와 계약한 대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혀를 쯧쯧 차지 않았던가.

처음에 저 빌런들이 보여줬던 침착하고 카리스마 있었던 모습들이 모두 가면이었다는 생각에 인간의 본성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해볼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이놈들 모두가 흥분할 이유가 있었다. 이성을 잃은 것이 아니라 화를 참으려야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악마의 하수인들 역시 지금의 나와 비슷한 기분을 느낀 게 분명했다. 이게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허우적거리며 주변을 바라봤을 테고, 도대체 뭐가 진실인지에 대해 파헤치고 싶었을 것이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겠지만 종국에는 모든 게 선동되고 날조된 정보라는 걸 깨달았을 때의 분노.

본인도 원치 않은 사이에 주변의 모든 환경이 달라져 있었고 정신병이 생긴 건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달라진 환경을 바라보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김현성을 떨쳐낸 이후 방으로 빠르게 들어가는 순간, 창문에 비친 얼굴을 보니 이지혜가 말한 도발 토템 이야기도 이해가 간다.

‘이, 더러운 사기꾼 새끼 진짜.’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따라 더욱더 비열한 표정을 보내는 것만 같은 느낌. 영화처럼 손을 뻗어 창문을 깨버리는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지만 손가락에 유리가 박히는 상상을 하자 분노가 천천히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이 새끼는 믿으면 안 돼. 절대로 믿지 마. 시바. 진짜. 이 사기꾼 새끼.’

남의 뒤통수를 치고 다니는 것으로 모자라 이제는 자기 자신의 뒤통수까지 치고 다니고 있지 않은가.

손가락에 유리가 박히는 상상이 효과가 있기는 있었나 보다. 이제야 조금씩 호흡 안정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방금 그건 뭐였는지 천천히 다시 한번 생각이나 해보자.

‘블러핑이겠지?’

대충 던진 거라고 판단하는 게 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알타누스한테 고맙다는 건 뭘 의미하는 거지?’

그렇지만 계속해서 여러 가지 가능성이 맴돌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이건 사약이었다. 마시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벌컥벌컥 들이킬 수밖에 없는 떡밥이다.

1회 차 이기영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는 건 솔직히 내 알 바 아니지만, 만약 녀석과 알타누스가 모종에 관계에 있었던 게 맞다면 어떤 식으로든 김현성의 회귀에 영향력을 끼쳤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김현성의 선택이 무엇을 뜻하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곳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하지만.

‘함정이야. 이기영 이 새끼가 사기 치는 거라고.’

당연히 함정일 가능성이 높다. 루시퍼와의 내기에 점점 가까워지자 이기영 이 새끼가 함정 카드를 발동시켰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당장 내가 이렇게 흔들리고 있다는 게 가장 커다란 증거가 아니겠는가.

만약에 나와 알타누스가 유착관계에 있었다는 게 진실이라면 녀석이 이걸 이런 식으로 내게 보여줄 리가 없다.

내 무의식이 보여준 풍경이라고 가정한다면 상황이 조금 더 복잡해지겠지만 지금은 그런 변수들까지 고려할 시간이 없다.

‘루시퍼와 나누었던 내기 자체가 함정일 가능성도 있나.’

만약 이기영이 정말로 숨기고 싶었던 게 루시퍼와의 내기가 아니라 1회 차의 기억이었다면?

‘아니지. 이건 너무 갔어.’

진실을 거짓인 것처럼 포장해 내게 드러내고 있는 거라면.

‘너무 갔어. 이렇게 빠져들면 안 돼. 이게 그 사기꾼 새끼가 원하는 거라고.’

중심을 잡는 게 옳다. 본격적으로 모임이 시작하기 전에 했던 생각처럼 흔들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이곳저곳 둘러보다가는 모든 게 망가질 수도 있으니까.

더군다나 나는 보물 상자를 억지로 꺼내놓는 타입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간혹 꺼내놓기는 하지만, 이기영은 본인의 것을 잃어버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이걸 먼저 꺼내놓을 이유가 없다는 거다. 이 새끼는 절대로 드러내는 타입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걸 깨닫고 있다고 하더라도 녀석은 보물 상자를 내 손에 직접 쥐여주지 못한다.

물론 가능성을 완전히 저버리는 것도 멍청한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가능성에 대해 다시 한번 파고드는 것은 카스가노 유노와의 사라진 기억을 확인해 본 이후여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곧바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 정하얀을 함께 데려가고 싶기는 했지만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갈지 모르는 만큼 일단은 카스가노 유노가 있는 곳으로 향할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단서를 가지고 있는 게 그녀다. 답은 그녀가 가지고 있다.

‘뭐지?’

이렇게 개지랄을 떨면서까지 녀석이 숨기고 싶어 하는 비밀이 뭘까. 당연하지만 평범한 게 아닐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스케일을 너무 크게 벌렸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기에는 의아한 점들이 너무나도 많지 않은가.

서둘러 그리폰의 고삐를 쥔 이후에 하늘로 향하는 와중에도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에 꽂혀 들어오기 시작, 하지만 별 의미 없는 가정이라는 것에는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할 수 없으리라.

‘시바. 시바. 시바.’

솔직히 지금 내가 카스가노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게 정답인 건지도 확신할 수가 없다.

거리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싹트고 있다. 다시 돌아가는 게 더 나은 선택은 아닌지에 대해 몇 번이나 고민을 해볼 정도.

하지만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얼굴의 카스가노 유노를 목도한 이후에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녀는 내가 이곳으로 향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

“…….”

무척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는 게 당황스럽다.

분명히 최근에 나와 그녀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본 적이 있다. 그만큼 완벽하게 기억이 삭제되어 있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했다.

‘도대체 뭐야.’

감고 있는 눈으로 조용히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얼굴에는 불안감이 담겨 있다. 반갑지 않아 보이는 얼굴에 괜스레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온 게 정답이 아닌 건가?’

정말로 기억을 되찾으면 내기에서 지는 게 맞는 건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의문이 꼬리표를 물기는 했지만 양보하는 것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타인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 절대로 타협은 없다.

막 입을 떼려고 한 찰나에 카스가노 유노가 먼저 입을 열어왔다.

“오셨습니까.”

“…….”

“…….”

“기다리고….”

“네.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건 좋네.’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 내가 여기 무엇 때문에 왔는지도 알고 있겠군요.”

“네.”

‘이것도 좋아.’

“하지만.”

“…….”

“하지만 저는 두 분이 나눈 내기나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옵니다. 주인님께서 알고자 하시는 답은 저를 통해서는 찾을 수 없을 거라는 걸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눴고, 내가 숨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면 됩니다.”

“주인님께서는… 제가 이후에 찾아올 주인님에게 이것에 대해 말씀드리는 걸 원치 않으셨지만.”

‘그래. 그랬겠지.’

“제가 그 뜻에 거스를 수 없다는 것 역시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도 맞아.’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것은 정답이 아니옵니다.”

‘판단은 내가 하게 될 거야.’

“또한 이것을 본 이후에도 절대 흔들리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왜 흔들려.’

“그리 전해 달라고 몇 번이나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도대체 뭔데.’

자꾸만 뜸만 들이고 있으니 괜스레 걱정이 앞선다.

‘애초에 시바. 정답도 아닌데 도대체 왜 이렇게 뜸을 들이고.’

괜스레 허벅지를 톡톡 두드렸을 때였다.

카스가노 유노의 눈이 천천히 떠지기 시작한 것. 당연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이미 몇 번이나 그녀와 함께 검은색 세계나 미래를 바라보지 않았던가.

텅 빈 것만 같은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나는 그 두 눈을 똑바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몸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고 내가 내게 숨기고 싶어 하던 것들이 단편적으로 눈에 들어온다.

커다란 전쟁터.

‘라파엘?’

눈에 보이는 것은 라파엘이었다.

‘뭐야 이 새끼 어떻게 움직이고 있어?’

생명 유지 장치를 떼어내지 않은 보람이 있는 모양.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이게 내가 숨기고 싶어 하던 비밀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라파엘은 김현성이 아닌 천사 중 한 명과 검을 맞대고 있었으니까.

이후에는 다시 한번 장소가 뒤바뀐다.

‘차희라?’

차희라의 모습 역시 보이기 시작한다. 온몸이 넝마가 된 채로 끊임없이 대검과 도끼를 휘두르고 있는 모습, 몸에 대여섯 개의 창을 꽂은 채로 싸우고 있는 모습은 걱정된다기보다는 무섭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외관이라기보다는 싸움 자체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커다란 웃음을 터뜨리며 천사들을 짓이기는 모습은 내가 차희라에게 기대하고 있던 것 그대로였다.

‘제노지르아.’

아군이 되기로 한 금빛의 용 역시 신화 속에 한 장면 같은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중.

회의가 좋게 진행됐다는 것과 진배없는 장면이었기 때문에 이 장면 역시 만족스럽다. 마치 기둥과도 같은 거대한 황금빛의 숨결이 한 지역 전체를 뒤엎고 있지 않은가.

‘정하얀.’

이 정도까지 생각한 대로 정황이 흘러가고 있는 걸 보니 정하얀 역시 벽을 뛰어넘는 데 성공한 모양.

예상했던 그대로 끊임없이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눈에 가득 들어 있는 독기가 그녀가 얼마나 커다란 결심을 했는지 알려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다른 길드원들이나 지혜 누나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어디에선가 제 역할을 해주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가능성을 10%로 잡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

대륙은 비둘기들에게 전력으로 저항하고 있었고, 또 일부는 몰아붙이기까지 하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가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을 지경. 숨길 게 뭐가 있는지,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되는지 전력으로 찾아보려고 했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다. 기대하고 있던 그대로의 모습이라 기쁘기까지 하다.

혹시 카스가노 유노가 실수로 다른 장면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뭐야….’

저거 뭔데.

믿기지 않는 광경이 두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

전장의 한가운데. 천천히 내 모습이 정확히 보이기 시작한다.

‘저게 도대체 뭔데.’

문제가 있다면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

성치 않아 보이는 것 정도가 아니다. 완전히 넝마가 되어버린 모습이지 않은가. 심지어….

심지어 숨을 쉬고 있지도 않다.

그리고 그 뒤,

검은색 날개를 꺼낸 채.

나를 내려다보는 김현성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뭐야… 시바. 나… 나 죽어?”

“…….”

“현성이가… 나 죽여?”

“…….”

“현성이가… 나… 왜 죽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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