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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700화 (691/1,590)

< 700화 알고 있다(1) >

‘우리 희라 누나 진짜 오늘 간지 폭발하네.’

개인적으로 점수를 매겨 보건대 각성 김현성의 첫 등장 신보다 더 임팩트가 있는 모습이라 할 만했다.

시간 내에 제대로 도착할 수 있을지 불안함에 떨었던 것도 잠시, 딱 제때 도착했다고 생각이 든다.

아군 피해는 전무했고 댐에 구멍이 나기 전에 틀어막았다.

‘날 가져요. 누나. 진짜.’

흥분했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모습은 마치 짐승 같지 않은가.

‘방금 그 말 취소여.’

어서 빨리 싸우고 싶다는 듯이 눈동자가 천천히 뒤바뀌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시동을 걸고 있는 듯한 모습.

빨리 뚝배기를 깨버리라고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당장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전쟁터는 넓다.

짧게 끝날 전쟁도 아니다.

대륙의 북부 전체가 전쟁터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고개를 들어 올리자 수천 개가 넘는 화면이 시야에 들어온다.

마음의 눈이 있다고는 한들 저 정도 정보량을 모두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거기에 플러스로 망원경까지 사용하고 있으니, 점점 더 여유가 없어진다.

모든 성벽이 수성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약간은 숨을 쉴 수 있었지만 전장 자체가 굳어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제대로 전투에 들어간 지역이 50%도 되지 않는다. 적 병력의 일부는 아직도 북부의 먼 거리에서 이동하거나 상황을 지켜보는 중.

지금 상황에서 무작정 들어간다고 득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녀석들 역시 인지하고 있다는 거다.

“34번.”

-네… 네.

정하얀의 마법을 컨트롤 하는 것도 일. 무한에 가까운 마력을 얻었다고 한들 정말로 무한한 것은 아니었다.

장시간 마력을 컨트롤해야 하는 만큼 정하얀은 마력의 소비를 최소화해야 했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계속해서 그녀의 상태를 봐줘야 했다.

조금 더 조여야 하는 부분은 어딘지, 풀어줘야 하는 부분은 어딘지,

수만 개의 손가락이 건반을 누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하지 않을까.

몇 번 손가락에 들어가 있는 힘을 빼라고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걸 컨트롤하고 있는 정하얀의 능력이 사기인 거지.

허벅지를 툭툭 두드려 본다. 아직까지도 제대로 반응하지 않고 있는 악마들의 모습에 의구심이 점점 불어닥친다.

상정하고 있던 여러 가지 상황 중에 가장 최악의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분이 점점 찝찝해지기 시작했다.

곧바로 빛의 군대가 더러운 악마를 쓸어버리는 모습을 기대하기는 했지만….

“만만치 않다는 거네.”

‘전부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가장 원하고 있었던 그림이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곧바로 전면전.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그림은 전혀 다른 그림이었다.

‘어째서 케루빔 혼자 나타난 거지?’

다른 사대악마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

뻔한 이야기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녀석들은 곧바로 대응했고, 마치 이쪽의 반응을 지켜보고 싶다는 듯이 케루빔을 던졌다.

말하자면 한 번 찔러본 것에 불과하다는 거다. 아마 여기서 케루빔을 끝장낼 생각으로 들이민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 건가?’

한 가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녀석들에게도 컨트롤 타워가 존재한다는 것. 전장을 넓게 보고 상황 판단을 내리는 녀석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가면쓰레기는 없잖아.’

1회 차와는 다르게 2회 차 외신 세력에는 머리가 없다. 혹시나 진청이 살아나 놈들에게 합류한 것은 아닐지 생각해 봤지만 가능성은 적다.

가면쓰레기는 확실하게 죽었다. 지금 녀석들을 컨트롤 하고 있는 것은 사대천사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게 개연성이 맞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언제나 그렇듯 정보, 그건 녀석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차희라와 케루빔의 이 만남은 중요하다. 어느 정도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지 알아야 했으니까.

‘현성이는 아직 출격시키면 안 돼.’

나머지 녀석이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까.

‘하얀이는 묶여 있는 상황이고.’

전쟁이 중반으로 치닫기 전까지는 정하얀을 뺄 수 없다.

‘라파엘 얘는 진짜로 뒤졌나?’

슬쩍 바라보니 숨은 쉬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쪽은….’

-빛의 성자를 위해 싸워라!

-베니고어의 아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자!

-더러운 악마 놈들에게 절대로 틈을 보이지 마라! 그들의 모습에 현혹되지 말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마라.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은 빛의 성자뿐이라는 걸 명심하고 싸워라. 목숨을 아까워하지 마라. 죽음 끝에 빛의 성자가 우리와 함께할 것이니!

-아아아아아악! 사제… 사제!

-올라온 녀석은 둘러싸! 넘어가지 못하게 해! 마법사들은 속박 마법 상시 유지하는 거 잊지 마! 퍼부어! 퍼부어!

-흐어어어엉… 아아아악!

-나… 이렇게… 죽는 건가.

-명예추기경님이 보고 계실 거다. 마루앙. 대륙을 위해 싸운 네 목숨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겠어.

한쪽에서는 이미 처절한 전투가 진행되는 도중. 악마들에게 쓰러지는 이들을 볼 때마다 괜스레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이 든다.

아이스 커피를 들어 쭙쭙 빨아올리자 머릿속이 조금은 차가워지는 듯한 느낌.

슬픈 일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다행히 전황은 예상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다.

물론 사망자와 부상자가 생기고는 있었지만 그건 적들 역시 마찬가지다. 전쟁이라는 게 본래 그렇다.

뒤집을 수 있는 곳도 보이기는 하지만 녀석들이 패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내가 먼저 꺼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속적으로 피해자가 생기고 있다는 사소한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크게 봤을 때는 패를 꺼내는 것보다는 낫다.

대충 고개를 돌린 이후 곧바로 차희라를 쪽을 응시한 것은 당연지사. 이성을 잃기 전에 원하는 것을 얻어야 했기 때문이다.

“희라 누나. 무리할 필요 없다는 거 알지? 어차피 미끼….”

콰아아아아아아앙!!!

하지만 이미 싸움은 시작되고 있는 도중, 귀를 울리는 커다란 굉음에 괜스레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핫!

콰드드드드드득!

‘아… 시바….’

거대한 검과 도끼가 휘둘러지는 동시에 푸른빛이 번쩍인다.

성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터져 나가기 시작한 시점부터 주변의 다른 병사들은 거리를 벌리고 있다. 저 싸움에 휘말리면 곧바로 빛의 성자의 품으로 향한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왠지 이럴 것 같더라니.’

태산도 가를 것 같은 거대한 대검이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멈춘다. 케노보노가 한 손으로 대검을 붙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물론 차희라는 당황하지 않는다. 곧바로 대검을 손에서 놓아버린 이후, 그녀가 붙잡은 것은 녀석의 머리카락.

휘잉 소리와 함께 케노보노가 반대쪽 벽으로 처박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머리를 그대로 부여잡고 무기를 휘두르듯 휘둘러 버린 것이다.

왼손에 있던 도끼도 놓아버린 이후에는 곧바로 주먹을 내리꽂는다.

콰아아아아아앙!!

마치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계속해서 머리를 부여잡고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 희라 누나의 모습은 정말 이성을 잃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아… 이거… 진짜… 이러다 이기면 진짜 좋은데… 생포하면 꿀 각인가?’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하고 있지만 차희라는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고개를 돌려 피하려고 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팔꿈치가 턱에 그대로 내리꽂혔다.

콰드드드드드득!

‘힘내라. 시바.’

마구잡이로 망치질하는 것처럼 주먹으로 얼굴을 내려치고 있다. 아마 일반인이었다면 첫 번째 주먹에 그대로 머리통이 터져 나갔으리라.

어떤 형식도 방법도 존재하지 않는 개싸움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광경이었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개싸움과는 거리가 멀다.

거대한 파편이 여기저기로 튀어 나가고 퍼엉 퍼엉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런 상태로 정신을 잃지 않고 상대방을 마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도 대단해 보이기는 했지만, 녀석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붉은색 전신. 마치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활화산을 보는 것만 같았다.

무난한 승리, 아마 이 싸움을 바라보고 있는 다른 이들은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미지를 입었다는 기색이 없는 모습을 보고서는 그 기대감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언뜻 보면 조노보노의 새로운 친구가 마구잡이로 처맞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녀석은 여유가 있다. 당연히 차희라도 제대로 싸우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는 주변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녀석을 다른 곳으로 밀어내거나 주변 병사들을 대피시키는 것이 먼저라는 걸 머릿속에 담고 있지 않을까.

스케일이 큰 만큼 커다란 무대가 확보된 이후에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될 것 같았다. 물론 거기까지 가게 할 생각은 없다.

“누나! 누나!”

-끼어들지 마. 내 말 알아들어? 전투에 끼어들지 말라고.

암요. 알아듣고 말고요. 당연히 알아들어야겠죠.

“지금 싸우지 마. 정신 놓으면 안 돼. 누나.”

-…….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 거지?

-내가 알 바 아니잖아. 파랭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강하군.

-뭐?

-그대는 강해. 인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콰지지지지직!!

-뭐? 안 들리는데?

-믿기지 않을….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말을 좀 제대로 해야지.

-않을 정도….

콰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뭐라고?

-인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야.

드디어 차희라의 팔을 뿌리친 녀석이 공중에 선 채로 입을 여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조금은 스타일이 구겨진 듯한 모습. 쥐여 뜯기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엉망이 된 머리 스타일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조금은 더럽혀진 것 같은 외관도 말이다.

이질적인 빛이 녀석의 머리를 감싸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풀어헤친 푸른색의 머리카락이 단정하게 하나로 묶이는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희라 누나는 흥이 식었다는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몸은 언제든지 다시 전투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겉모습에도 신경을 쓰나?’

완전히 감정이 거세된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그건 또 아니지 않은가.

본인이 의식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녀석들 역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게 인간의 기준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지만, 조노보노의 새 친구는 자신의 스타일이 구겨지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한번 푸른색의 빛이 하나로 모여들어 낫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하고 차희라는 놓아버렸던 검과 도끼를 들어 올린다.

‘조금 더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기본적인 정보야 대충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녀석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특히나 케루빔이라는 녀석에 대한 정보는 매우 한정적이다.

차희라의 눈이 계속해서 뒤바뀌는 게 보이고는 있었지만 일단은 정보, 무조건 정보다.

“여기에 온 목적이 뭐지?”

-여기에 왜 왔어. 퍼랭아.

-듣지 않았나. 구원을 위해서라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집어치워.

-그대는 짐승이로구나. 붉은색 짐승, 내게 말을 건네면서도 싸우고 싶어 하고 있어. 누군가 네게 전하고 있구나. 지금은 싸우지 말라고 말이야.

“무시해. 누나.”

-…….

-대륙은 썩어 있다. 무능한 빛과 어둠에 사이에서 암 덩어리 같은 존재에 의해 부서지고 있지. 착각이 아니다. 붉은 머리 짐승이여. 우리가 말하는 구원이란 대륙의 안전과 관리이다. 그것 외에 다른 뜻은 없다. 우리는 구원자다. 대륙을 구하기 위해 당도했을 뿐 다른 뜻은 없다.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준비가 잘 되어 있는 것 같은데… 내 눈이 이상한가 봐? 무장한 악마들의 모습이 아주 잘 보이는데… 응?”

-이렇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뜻은 없다.

“어떻게 알 수 있었지?”

-내가 말하지 않았나. 네놈들 안에 대륙을 좀 먹는 암 덩어리가 있다고 말이야.

케노보노는 영문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며 천천히 이쪽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어쩌면 상정하고 있는 최악의 상황이… 정말로 도래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새끼들은….

이 새끼들은 1회 차를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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