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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706화 (697/1,590)

< 706화 소울 메이트(5) >

의도는 확실했다.

‘1인 전술.’

내가 갑자기 멍청이가 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꽉 막힌 답답한 전장에 균열을 만들어야 하는 작업은 현재 비둘기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녀석들의 날개는 완전히 봉인되어 있었고, 거대한 성벽이 아군을 완전히 막고 있는 상황, 정공법으로 공성전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마치 조이기를 당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분명히 공격은 본인들이 하는 것 같은데….

‘포위당하고 있는 것 같았지?’

사실 그게 맞다.

애초 성벽의 형태를 북부를 감싸 안을 수 있도록 설계했으니까.

시공에 들어가기 전 이미 수천 번이 넘는 시뮬레이션을 거쳤고, 아군에게 유리하게 싸울 수 있도록 온갖 전문가들과 함께 회의를 진행했다.

북부의 전진기지와 성벽은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1차 성벽이 뚫린다고 하더라도 그 뒤에 다른 전진기지가 버티고 있는 것은 물론, 정하얀의 마법이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방향까지 철저하게 계산했다.

거기다 하늘 위를 날아다니던 녀석들이 순식간에 땅바닥으로 떨어지기까지 했으니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거다.

보통 이런 전장에 변수를 가져오는 것은 소위 네임드라고 불리는 영웅들, 물론 네임드라고 하더라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부분은 한정적이다.

녀석들이 뚫어낼 수 있는 네임드를 보유하고 있다면 우리 측 역시 카운터를 칠 수 있는 네임드를 보유하고 있는 게 당연했으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정말로 전장을 뒤흔들 수 있는 영웅을 찾기는 힘들겠지. 조건은 까다롭다. 전장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민첩함을 가져야 했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경험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압도적인 무력은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1인 전술로 써먹을 수 있다.

넓은 시야, 빠르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두뇌, 변수에 대처할 수 있는 침착함, 여기에 주인공같이 잘생긴 얼굴까지.

마지막은 별로 상관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조건에 부합하는 인재는 김현성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전장을 휘젓고 있는 한 마리의 비둘기를 목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아아아악!

-적 네임드 출연! 지원이 필요하다. 지원!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제한해! 높게 날아오르지 못하게 해!

-아아아아아아악!!

-제기랄! 어디야. 어디냐고!

-뒤, 뒤다. 피해. 피하라고 제기랄!

-그래 봤자. 단신이다. 곧 아군 네임드들이 도착할 거다. 마법으로 방어해. 최대한 버틴다. 탱커들을 앞세우고 사제들을 최우선으로 보호해. 놈은 후방을 노리고 있다. 전력을 깎아 먹게 하지 마.

-왼쪽!

-제길!

-사제! 여기… 여기 사제!

-이게… 이게 뭐야. 제기랄… 이게 뭐냐고!

-이 괴물 새끼! 괴물! 커헉!

-죽어라! 죽….

빠르다. 내 눈으로도 제대로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난전에 빛을 발하는 타입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

애초 평범한 병사가 녀석의 모습을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놈이 움직이는 걸 캐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시야는 한정되어 있으니까.

아군이 밀집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아군 동료가 시야를 가리게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놈을 제압할 수 있는 수단 역시 사라진다.

적의 컨트롤 타워는 우리 측 아군 병력을 방패로 삼을 정도로 똑똑하고 녀석이 갈 길을 차근차근 안내해 주고 있었다. 내가 가장 거슬려 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화살을 날릴 수도 없고 마법을 사용할 수도 없다. 말 그대로 양 떼들 사이에 늑대 한 마리를 풀어놓은 격이다.

순식간에 전장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은 당연지사. 제대로 공성전에 임할 수 없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놈의 첫 번째 목적은 현장지휘관을 처리하는 것이었고 녀석은 훌륭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있었다.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에 벌써 15명이 넘는 야전 지휘관이 목숨을 잃었다. 녀석들은 모두 네임드라면 네임드라고 분류할 수 있는 영웅들.

물론 진짜 네임드와는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하위에 있는 녀석들이었지만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당할 정도로 멍청한 이들은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고 실제로 능력을 인정받아 저 자리까지 올라간 놈들이다.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쉽게 당한다고?’

성벽 위의 양 떼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보인다. 지금 이게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무슨 문제가 생긴 건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아군 병력이 뭉텅이로 썰려 나가고 있는 마당에 야전 지휘관의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심지어 아래에서는 비둘기들이 기어 올라오고 있다. 이것보다 더 공포스러운 상황이 또 어디 있을까.

‘안 좋은데.’

균열을 더 벌어지게 만들면 안 된다. 댐에 생긴 구멍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넓어질 것이다.

빠르게 녀석을 바라보자 여전히 입술을 꽉 깨문 채로 움직이는 비둘기의 모습이 보였다.

악마의 상징처럼 자리 잡은 찰랑거리는 은발을 가지고 있는 남성형. 복잡한 얼굴로 검을 휘두르며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다.

김현성보다는 아니었지만 봐줄 만했고 이야기 속에 나오는 전형적인 용사 같은 얼굴이었다.

녀석은 빠르고 또 빨랐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녀석의 움직임이 무척 익숙해 보였다는 것이었다.

‘처음이 아닌데.’

1인 전술로 사용된 것이 처음이 아니다.

‘도대체 언제?’

외신&비둘기 세력은 차원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1회 차?’

어쩌면 녀석은 1회 차 때 1인 전술을 경험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가정일 뿐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쓰로누스?”

1회 차 가면쓰레기는 녀석이 1인 전술을 사용하기에 적절한 천사라고 판단했다. 너무나도 위화감이 없다.

조금 과장이 섞인 발언이었지만 수백, 수천 번을 움직여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컨트롤 타워에서 내려오고 있는 지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본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완벽하게 인지하고 있다.

확신할 수 있다. 놈은….

“1회 차를 통해서 학습한 거야.”

쓰로누스도 쓰로누스지만 녀석을 부리고 있는 컨트롤 타워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도 생겨난다.

가면쓰레기는 없다. 녀석은 이미 죽었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토록 자연스럽게 쓰로누스를 사용할 수 있는 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천사 중 한 명이 1회 차 가면쓰레기를 보고 배운 거라고 봐야 되나?’

아니면.

‘가면쓰레기가 지옥에서 살아 돌아오기라도 했나?’

뭐가 됐든 최우선 사항은 녀석을 막아야 한다는 것. 곧바로 전술 김현성이라도 등판시켜 놈을 제압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니면 조금 더 숨기는 게 좋을까?

‘아끼다 똥 돼.’

일단은 등판시키는 것이 옳다. 망원경으로 김현성을 바라보자 성벽에 자리를 잡는 녀석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불현듯 ‘엿이나 먹으라지’라고 외친 삐뚤어진 현성이가 생각나기는 했지만 컨디션 자체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이거 괜찮은 건가?’

얘 이거 정신적으로 문제 생긴 거 아닌가. 제대로 임무 수행할 수 있는 건 맞지?

살짝 의욕이 떨어진 것 같기도 했지만 무난하다고 표현해도 위화감이 없을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

심경이 복잡한 것과 전투에 참여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면 이대로 보내고 싶기는 했지만, 김현성이 의외로 멘탈이 약하다는 걸 떠올려 보면 조금 걱정되기도 한다.

외신을 상대해야 하는 우리 소중한 현성이가 혹시나 결전을 앞두고 다치면 어떻게 하나.

평소라면 하지 않을 걱정이었지만 그만큼 은발의 악마가 보여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김현성이 천천히 날개를 펼친 것은 바로 그때. 조용히 쓰로누스를 바라보던 녀석이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분명히 다른 오더가 있기 전까지는 대기하고 있으라는 명령을 전달했던 기억이 있다.

드디어 김현성과 내 마음이 통한 걸까 싶기도 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새끼….’

그냥 지 하고 싶은 대로 움직여야겠다고 마음이라도 먹었나 보다.

“현성 씨?”

-가서 막겠습니다.

“네. 좋네요. 그럼 지시 사항을 계속해서 전달해 드릴 테니.”

-괜찮습니다. 기영 씨.

‘이 새끼 이럴 줄 알고 있기는 했는데.’

왠지 불안하더라니.

-저자는 이전에도 상대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제 손으로 직접 죽인 적도 있고요.

‘아, 그게 쟤였어? 근데 지금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쟤한테 머리 하나 더 붙어 있어. 현성아.’

-기영 씨에게 부담을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네가 다치면 형이 더 부담스러워지는데.’

-뭘 걱정하고 계시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강해졌으니까요. 다른 전장을 보시면서 저까지 따로 봐주신다는 건… 네. 너무 기영 씨를 힘들게 하는 일입니다.

“아니, 그건….”

-제가 짐을 들어준다는 걸 믿고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짐을 들어드리기는커녕 부담을 얹어 드릴 수는 없습니다. 부디….

‘아니야. 현성아. 너 발릴 것 같아. 왠지 불안하단 말이야.’

쓰로누스 하나라면 모르겠지만 쟤 위에 있는 애가 진짜 신경 쓰인다고.

-잠깐 연결을 끊겠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기영 씨.

“잠, 잠깐!”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연결이 끊긴 것이 보인다. 물론 내게는 김현성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단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 새끼의 각오가 새삼스레 당황스럽다.

‘뭐야, 시바. 너 지금 형 깐 거야?’

중2병이 걸렸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걸려도 단단히 걸린 것 같은 모습에는 실소가 나올 지경,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일단 지켜봐야 하는 건가?’

김현성이 혼자 잘해낼 수 있을지 없을지 지켜보고 판단을 내려야 하나?

‘아니, 걱정할 필요가 있어? 사랑스러운 회귀자 김현성인데? 1회 차 때도 쓰로누스 1킬 성공했다잖아.’

우리 현성이 날개 달고 욜라 세졌잖아.

‘지켜보자.’

일단은 지켜보자.

혼자 고개를 끄덕이기가 무섭게 검은색의 날개가 펄럭인다. 갓 태어난 새처럼 아직 제대로 날지도 못하는 나와는 반대로 김현성은 이미 날개를 다루는 것에 익숙하다.

검은색의 빛이 순식간에 하늘을 가로지르고 거대한 마력이 녀석의 주위를 감싸 안기 시작했다.

신이라도 단칼에 베어낼 수 있는 모습에는 소름이 돋는다. ‘저래야 우리 회귀자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점점 더 커지는 환호성 때문에 김현성의 모습을 제대로 감상할 시간이 없었다.

아군 병력이 김현성이 오고 있다는 걸 알고 환호를 보내고 있는 도중이니 쓰로누스 역시 김현성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예상했던 그대로. 일반 검보다 두 배는 더 길 것 같은 검을 든 쓰로누스는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김현성은 얘가 1회 차를 기억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이것도 전하는 게 좋겠지? 아니, 어쩌면 김현성 스스로도 알게 될 것이다. 예전에 싸운 적이 있었던 적이 오랜만에 만나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을 리 없을 테니까.

예상했던 대로 은발의 악마가 입을 여는 것이 보였다. 냉정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김현성의 모습에 순식간에 얼굴을 구기는 모습이 보인다.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감싸 쥐는 것이 보였다.

루시퍼와 계약을 맺은 흑화 김현성에게 분노를 보내는 것일까. 어쩌면 내 생각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저 비둘기가 보기에도 1회 차의 김현성은 올곧은 사람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들려오는 목소리는 내 예상을 완전히 넘어서고 있었다.

-너였구나.

-…….

-네가 원인이었어. 언제부터 악마와 계약을 한 거지?

-…….

-이전부터였나? 그는… 그 역시 네 꾐에 넘어간 것이냐. 아니, 물어볼 필요도 없겠군. 그 모습처럼 가장 확실한 증거도 없을 테니.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그가 그런 선택을 할 리가 없지. 다른 동지들은 모두 우리가 배신당했다고 말했지만 역시 내가 틀리지 않았던 거야. 그가… 그가 우리를 배신할 리가 없어. 나의 이해자, 내 소중한 친우가 나를 배신하고 죽일 리가 없었어. 역시 그랬던 거야.

-무슨….

-대답해라! 김현성! 이 더러운 기만자야! 네가 그를 타락시킨 것이냐고 물었다!

‘이 새끼는 도대체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야. 누가 네 이해자고 네 친우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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