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8화 소울 메이트(7) >
귀를 찢을 것 같은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시바. 도대체 뭔데.’
어째서 1회 차 가면쓰레기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내게 보여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계속해서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은 감각이 혼란스럽다.
똑바로 눈을 떠 김현성과 쓰로누스를 바라봤지만 마치 화면이 섞이는 것만 같다.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는 김현성과 그걸 막아내는 알콜 중독 비둘기. 사방이 전부 다 터져 나가고 있는 모습에 주변의 지형지물들이 형태를 잃어가고 있는 게 시야에 비쳐왔다.
문제가 있다면 구별할 수 없었다는 것.
‘이게 뭐야. 지금은 2회 차인 건가?’
아니.
‘방금 전에 1회 차로 전환된 것 같은데? 다시 2회 차?’
뭐가 1회 차고 뭐가 2회 차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그만큼 연속적인 장면들이 뇌에 전달되고 있다.
이건 같은 장면이라고 판단해도 되지 않을까. 저 둘은 1회 차에서도 같은 싸움을 했을 테니까.
1회 차와 2회 차를 구별할 수 있는 것은 김현성 등 뒤에 달린 날개 말고는 없다. 그마저도 계속해서 겹쳐 보이는 마당에 뭐라 코멘트를 내리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이질적인 무력을 가졌는지는 똑똑히 보인다.
‘강해.’
1회 차 김현성은 강하다.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거지?’
루시퍼의 힘을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로도 비슷한 움직임을 선보이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더 빠르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무척이나 잘 만들어진 한 자루의 검.
1회 차의 김현성은 그것을 떠올리게 했다. 거추장스러운 날개나 어두운 힘없이도 녀석은 사대천사라고 불리는 이들 중에 하나와 당당히 맞서고 있었다.
그런 김현성과 검을 부딪치고 있는 알콜 중독 비둘기 역시 만만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쓰로누스가 사대천사 중에 가장 약하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적어도 내 눈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느껴진다. 녀석은 강하다. 김현성과 비견될 정도로 경지에 올라가 있는 검술, 아니, 그 이상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되는 기다란 검을 다루는 솜씨는 경지에 올라 있다. 확실히 보통 천사와는 다르다는 것이 느껴진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힘으로 차희라를 상대하는 케루빔이나 이지혜를 상대하고 있는 도미니온스와는 다르다.
녀석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인간의 기술이었다. 누군가에게 배운 적도 없었으니 본인이 직접 체득했을 것이다.
경험으로, 눈대중으로 인간을 동경했던 녀석은 인간의 기술을 훔쳐 배워 경지에 올라섰다.
지금 보고 있는 1회 차의 광경은 아마 녀석이 성장한 이후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콰드드드득!
콰직!!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1회 차에서도 2회 차에서도 말이다.
이빨을 털면서 상대방을 도발해 정신을 뒤흔들 만도 하건만 이 새끼들은 그저 검을 부딪치고 있을 뿐이었다.
나였다면 실컷 털었을 텐데. 뭐 경지에 오른 검사들끼리는 검만 부딪쳐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그런 거라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녀석들은 계속해서 긴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쓰로누스 쪽.
‘현성이가 밀리나?’
완전히 1회 차로 전환된 화면 속에서 점점 더 얼굴이 굳어가는 김현성의 표정이 시야에 들어왔다. 쓰로누스가 새로운 검술을 선보인 이후였다.
물론 나는 저 새끼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른다. 어떤 검술을 펼치는지도 모르고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아차릴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이미지가 그려졌기 때문이다. 마치 별들이 쏟아지는 것만 같다. 제대로 알아볼 수 없지만 느낌이 그랬다.
당연히 김현성은 막아내기 급급해하는 중, 결국에는 몸을 뒤로 빼 한 차례 숨을 고르려고 했지만 알콜 비둘기가 그걸 가만히 내버려 둘 리 만무. 녀석들이 사용하는 전장이 넓어지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두 녀석이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지형이 변한다. 아마 전과 후를 보여준다면 대부분의 갤러리들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여줄 것이다.
검을 한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나무들이 뭉텅이로 잘려 나가고, 튕겨 나가는 김현성은 폐건물을 몇 번이나 뚫고 나가 벽에 부딪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얼굴을 가격당한 쓰로누스는 폐허가 된 도시로 튕겨 나가고 그들의 무대는 근처의 숲으로 뒤바뀐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점점 더 피투성이가 되고 있다. 천사에게도 혈액이 흐르는지, 녀석의 얼굴 역시 붉은색으로 뒤덮여 있다.
김현성은 왼손이 불편해 보인다. 온몸은 이미 넝마가 되어 있다. 그들의 모습은 처절해 보이기까지 하다.
말 그대로 처절한 사투였다.
조금 이상했던 것은 쓰로누스의 몸이 계속해서 삐걱거리고 있었다는 것. 올바른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마치 버퍼링이 걸린 것 같은 모습이 눈에 보인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하고 있어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지만 녀석의 움직임이 변하고 있었다. 무척이나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녀석이 무리하고 있다는 것은 보인다. 충분히 유리한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무리한 공격을 이어나간다.
‘뭐지?’
김현성의 검이 녀석의 심장을 꿰뚫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거대한 싸움의 끝은 예고 없이 찾아왔고 녀석은 그 자리에서 바로 허물어져 버렸다.
사랑스러운 회귀자 김현성의 승리였다.
검으로 놈의 심장을 꿰뚫은 김현성 역시 이미 한계를 맞은 상황, 계속해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김현성의 눈에 성취감은 없다. 남아 있는 것은 지독히도 힘들었고 길었던 이 싸움을 끝냈다는 안도의 감정이었다.
“하아… 하아… 하아….”
김현성 역시 옆으로 쓰러진다. 다시 일어나 발걸음을 옮기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해 옆으로 풀썩 쓰러져 버렸다.
가면을 쓴 남자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녀석은 심장에 검이 박힌 채 죽어가는 쓰로누스의 앞에 서 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죽어가는 녀석의 옆에 서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작은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
“이렇게 죽는… 건가.”
“쓰로누스 님.”
“이게 내 마지막이었구나.”
“쓰로누스 님….”
“이게… 내 마지막이었어. 끝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
“죽음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태어나고 사라지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태어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쉽구나.”
“…….”
“하지만 아쉬워. 네가, 아니, 우리가 그렸던 세상을 함께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아쉽고 이렇게 사라진다는 게 아쉽고 무섭구나.”
“…….”
“네 잘못이 아니다. 내가 패배하고 죽어가는 것은 네 잘못이 아니야. 네 지시는 언제나처럼 곧았다. 내가 패배한 것은 네 지시를 수행하지 못한 내 탓이다.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네 기대를 충족시킬 수는 없었….”
“푸… 푸흡.”
“없었던….”
“푸…푸흐하하하핫.”
“…….”
“푸흐하하하하하하하헤헤핫!”
“뭐?”
“비융신. 푸하하핫! 멍청한 새끼.”
“지금….”
“아직도 모르겠어? 이 멍청한 비둘기야. 그렇게 눈치가 없어서 어떻게 하나 몰라. 이러니까 다른 비둘기한테 아둔하다는 소리나 듣지.”
“너….”
“정말로 일이 어떻게 된 건지 감이 안 와? 비둘기 새끼야. 미안해할 필요도 없고 사과할 필요도 없어요. 이게 내가 바라던 상황이었으니까. 오히려 감사할 따름입니다. 쓰로누스 님. 너는 훌륭히 임무를 완수했거든. 좋은 배역으로 좋은 마무리를 하게 된 거야.”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내가 너를 죽인 거야. 이 아둔한 비둘기야. 김현성이 너를 죽인 게 아니라 내가 너를 죽인 거라고.”
“…….”
“나는 처음부터 네가 이기길 바란 적이 없어. 쓰로누스. 넌 여기서 죽어야 했으니까. 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죽기 위해서 내 지시를 기다려왔던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돼? 김현성의 품 안으로 뛰어들라고 지시했던 건 네가 검에 찔려 뒈지길 바랐기 때문이라고. 푸하핫!”
“무슨 말을… 하는 것이… 콜록. 콜록.”
“이렇게 잘 설명해 줬는데도 쳐 알아듣지 못하는 거 보면 너도 참 멍청한 놈이다. 쓰로누스. 내가 처음부터 너를 선택했을 리가 없잖아. 병신아. 냄새나는 비둘기한테, 퉤, 정말로 맡길 거라고 생각했어?”
“너… 너….”
“내가 선택한 건 여기 있는 이자야. 훌륭히 자신의 과업을 달성하고 지쳐 쓰러져 버린 영웅 말이야. 이겨내지 못한 자. 희생을 등에 업은 자. 깨달은 자. 실패한 영웅 김현성. 크으… 좋은 울림이야. 그렇지 않아? 실패한 영웅 김현성! 모든 짐을 짊어진 영웅 김현성. 세상을 바꾸는 건 너희 비둘기들이 아니라 이거야. 여기 있는 이 자가 너희들을 대신해서 이곳을 구원할 거다.”
“뭐….”
“왜 내가 여기 와서 울고불고 드라마라도 한 편 찍어줄 줄 알았어? 멍청한 새끼야. 이 멍청한 놈아. 하하핫. 이 멍청한 새끼야. 아! 이건 말해줘야겠네. 고맙다. 쓰로누스. 김현성에게 죽어줘서 고마워. 너는 큰 경험치가 된 거야. 자신감을 심어주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불어넣어 줬지. 오늘의 기억은 우리 현성이에게 아주 큰 힘이 될 거야.”
“누구냐….”
“뭐? 푸하핫.”
“너를 그렇게 만든… 자가… 누구냐.”
“이 또라이 새끼는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너를… 너를 그렇게 타락시킨 자가… 누구….”
“이 새끼 이거 물건이네. 멍청한지는 알았지만… 그보다 이제 슬슬 뒈질 때 되지 않았어? 역시 목숨이 질겨, 비둘기들은. 퉤.”
“너를 그렇게 만든 자가 누구냐고… 물었… 하아… 하아… 기다리거라. 조금만… 기다리면 내가….”
“…….”
“내가 너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할 수… 있… 내… 잘못… 내가… 조금 더… 신… 신경을….”
“이런 상황은 예상 못 했는데.”
“이렇게… 될 거라고는…생각… 하아… 하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멍청한 비둘기였구나.”
“구할….”
“너희들도 울 수 있구나. 인간 같지도 않은 놈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조금만… 더… 시간을….”
“좀 닥쳐봐. 쓰로누스. 너 때문에 시나리오에 문제가 생겼잖아. 제기랄. 아. 제길. 제길… 웬 멍청한 새끼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아….”
“제발….”
“조용히 하라고 했잖아.”
“…….”
“아, 이렇게 하면 되겠네. 맞아,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쓰로누스.”
“…….”
“내가 누군가한테 당해서 타락한 것 같네. 사실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타락한 것 같아. 누가 구해줬으면 싶었는데 결국에는 도와준 사람이 없었네. 모두가 나를 외면했거든.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전부 죽고 나도 정신적으로 많이 무너지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 미안하다. 쓰로누스. 칠흑 같은 어둠의 기운을 뿌리칠 수가 없었어. 결국… 결국 당해버렸지 뭐야.”
“하아… 하아….”
“내가 정말로 널 배신할 리가 없잖아. 쓰로누스. 우리는 친우고 서로의 이해자인데. 나는 아직도 함께 봤던 밤하늘을 기억해. 좋았잖아. 선선한 바람은 불어오고 별은 쏟아지고 있었지. 이야기를 나눈 것도 즐거웠고… 응. 뭐 그랬지. 솔직히 조금 지루하기는 했는데… 아니다. 나도 재미있었어. 쓰로누스.”
“…….”
“우리 소울 메이트 같은 거잖아. 그래서 말인데… 네가 꼭 나를 구해줬으면 좋겠네. 만약에 다시 만나면 말이야. 꼭 나를 구해줬으면 해.”
“…….”
“아, 중요한 걸 알려줘야겠구나.”
“하아… 하아… 하아….”
“내 이름.”
“하아….”
“내 이름은 이기영이야. 똑똑히 기억해야 돼. 내 이름은 이기영이야.”
“하아… 하아….”
“이. 기. 영.”
“…….”
“때가 됐나 보다. 그럼 잘 가라. 쓰로누스.”
“…….”
“…….”
저도 모르게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역겨운 쓰레기의 모습, 저 자리에 있는 건 틀림없이 내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