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2화 시나리오(3) >
‘너 왜 그래… 왜 그래.’
김현성의 모습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무섭다. 대충 보기에도 인간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만 같다.
제정신은 유지하고 있는 건지 의심이 될 지경이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조금 찝찝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현재 김현성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녀석의 모습을 훑어보자 김현성의 탄탄한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여긴 별로 변하지 않은 건가?’
장화에 뒤덮여 있어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다. 뒤에 달린 꼬리가 유일하게 이전과 다른 점이다.
처음 보는 형태의 꼬리는 무슨 짐승을 빗대어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무척 위협적으로 생겼다는 것, 저건 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팔은 대충 봐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변화했다. 칙칙한 검은색으로 감싸져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까?
마치 짐승의 팔 같은 모습이다. 무기를 쥘 수 있을지 의심이 될 정도다. 손톱과 손의 경계가 없어진 검은색의 손은 대충 보기에도 날카롭게 보인다.
전체적으로 덩치도 조금은 커다랗게 변한 것 같은 느낌, 미세하지만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원래부터 근육으로 꽉 차 있었던 전신에 조금 더 근육이 붙었고 키도 조금은 커진 게 확실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머리 위에 자리한 커다란 뿔, 마치 산양의 뿔처럼 안쪽으로 말린 형태가 눈에 띈다.
‘저건 솔직히 간지날 것 같긴 해.’
왜 하필 산양 뿔인지는 모르겠지만 김현성의 이미지와도 들어맞는 부분이 있다.
뿐만이 아니다. 정리되지 않은 채로 삐죽삐죽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머리카락도 멋있어 보이기는 한다.
미친 까마귀의 취향인지는 모르겠지만 허리까지 길게 내려온 장발이 눈에 들어온다.
대충 봐도 단순한 머리카락으로 보이지 않는다. 소재가 달라졌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저 머리카락은 평범한 방법으로는 잘라낼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진다.
딱 저 모습까지는 괜찮다. 저기까지는 용인해 줄 수 있다. 문제는….
‘우리 현성이 얼굴 어디 갔어.’
김현성의 얼굴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게 문제였다. 완전히 검은색으로 덮여 있다. 날카로운 이빨도 보이고 그 안에 기다란 혀도 눈에 띈다.
추하게 혀를 내밀면서 침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지는 않았지만 만약 저 혀를 바깥으로 내밀 수 있다면 평범한 인간보다는 확실하게 긴 모습일 것이다.
‘현성이가 원래 혓바닥이 길었었나?’
그렇게 길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누가 봐도 몬스터나 다름이 없는 모습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
무슨 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다.
짐승이 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는 않았지만 이성이 있는지도 판단할 수 없다. 말하는 방법을 까먹고 있지 않은가.
조용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얼굴이 왠지 모르게 무섭다.
다른 건 다 변해도 상관없지만 얼굴을 봐야 이 새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시바, 얼굴 돌려내. 시바. 이게 뭐야. 시바, 괴물이잖아. 이런 게 어디 있어. 아니, 이성은 남아 있는 거지, 그렇지? 아직 우리 현성이 완전히 타락한 거 아니지?’
불안한 눈빛으로 위를 올려다본다. 김현성의 주먹을 맞고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 처박혔는지 쓰로누스 이 새끼는 모습도 드러내지 않는다.
김현성이 천천히 내 팔을 잡고 들어 올린 것은 바로 그때.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는 녀석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뭐야. 완전히 맛탱이 간 거야? 진짜로? 진짜?’
내가 누구인지 확인해 보는 것만 같지 않은가. 짐승처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지 않은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이상하게 두려운 마음이 생겨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커다란 입을 벌려 이쪽을 콱 깨물어 버릴지 누가 알겠는가.
내가 김현성에게 너무 자극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닌지 걱정이 생겨나기도 했다.
‘너무 오버했었나? 눈물 흘리면서 제발 그만해 달라고 막 소리 지르고 아픈 척했던 게 문제였던 거야?’
당장 죽을 것처럼 난리 부르스를 쳤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내 연기력이 너무 실감 난 나머지 김현성이 너무 몰입해 버린 것은 아닐까.
조금이라도 늦으면 쓰로누스의 날카로운 검이 내 목을 찌를 거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마지막에 공포에 질린 표정은 뺏어야 했는데… 어쩌면 악마의 모습이라도 괜찮다는 발언이 문제가 됐을 수도 있다.
괜찮다 괜찮다 하니까 정말 괜찮은 줄 안 것일 수도 있지. 근데 이런 모습이었으면 안 괜찮아 시전했지.
사실 원인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한 가지로 확정을 지을 수가 없다. 중요한 건 내 눈앞에 있는 김현성이 괴물이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시바 각성 실패. 시바….’
내 팔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아프다는 듯 표정을 찡그리자 깜짝 놀라는 것 같은 느낌. 이윽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도 시야에 비쳤다.
아주 약간은 정신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나를 찢어 죽이거나 깨물어 죽이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진짜 변한 거 아니지? 이제 그 모습으로 시바 평생 살아야 하는 거 아니지?’
그건 아닐 거야.
카스가노 유노를 통해 봤던 미래의 모습은 이게 아니었으니까. 만약 미래가 변하지 않았다면 김현성은 다시 한번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어쩌면 이 상태로 김현성에게 찔리는 게 진정한 각성 김현성의 모습을 되찾는 실마리일 수도 있다.
어디에선가 많이 본 것 같은 클리셰가 아니었던가.
이성을 잃은 히어로가 친우의 죽음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진정한 영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서사는 클래식이나 다름이 없다.
주변 상황이 아직 타이밍이 아니기는 했지만 이게 열쇠가 아닐까. 내가 마취 물약을 어디다 놔뒀더라. 시바. 가지고 오긴 가지고 왔나.
이거 저 손에 뚫리면 아픈 정도로 안 끝날 것 같은데… 분명히 엄청 아플 거다. 여기서 잘못 깝치다가 개죽음당하면 그것보다 더 우스운 꼴이 어디 있을까.
라파엘도 아직 안 일어났으니까 타이밍이 지금은 아닐 것이다. 결코 스컬 그레이 김현성에게 배때지가 뚫리기 싫어서 나오는 자기 합리화가 아니다.
‘쓰로누스 이 미친 비둘기 새끼는 도대체 왜 안 오는 거야? 이쯤 되면 막아줘야 되는 거 아니야?’
그렇게 김현성이 다시 한번 천천히 내 몸을 들어 올렸을 때였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김현성의 몸이 반대쪽으로 튕겨 나간 것, 김현성이 들고 있는 내 몸은 자연스럽게 바닥에 떨어진다.
흑색의 괴물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은색의 쓰로누스.
‘시바. 왔구나.’
이 순간만은 누가 영웅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
커다란 이빨을 벌리며 다시 등장한 적에게 적의를 표출하는 각성 둠현성. 잔뜩 표정을 일그러진 채로 들고 있는 검을 휘두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검은색의 참격이 날아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시바.’
사정거리에는 분명히 이쪽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나를 조준하고 쏜 것은 아니었지만 쓰로누스가 저 참격을 흘리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검은색 기운에 휩쓸렸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망했다. 시바. 망했다고.’
왠지 모를 설움이 밀려들어 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너 이 새끼, 진짜 안 보이는 거야?’
피 토할 때까지 내조하면서 키워줬더니 돌아오는 게 검은색 참격일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이빨을 벌리며 적의를 보내고 있는 대상이 내가 아닐까 무섭다. 이제는 쉴드를 쳐줄 선한 얼굴도 없지 않은가.
손절 버튼을 눌러도 이상하지 않을 타이밍이었지만 그간 함께 살아온 정이 뭔지 태세전환 버튼을 누르기가 쉽지가 않다.
적절한 예는 아니었지만 긴 시간을 함께한 부부가 어째서 이혼 도장을 찍을 때 망설이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뭔지 그 와중에도 쓰로누스의 등이 점점 듬직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괜찮은가?”
“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저자는 이미 괴물이라고. 이제야 그 실체를 드러낸 것뿐이다.”
‘시바 어떻게 하지.’
“이미 완전히 검은 마력에 잠식됐군. 너의 눈앞에 있는 저것은 파괴와 살육을 일삼는 괴물이야.”
‘무슨 개소리야. 우리 현성이 괴물 아니야.’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할 거다.”
‘네가 시바 뭘 안다고 그렇게 이야기해. 우리 애가 얼마나 착하고 순한데. 이게 다 나쁜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그런 거라고 시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현실을 직시하거라. 네 눈앞에 있는 저게 무엇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모르는 척하고 싶을 뿐이야. 사실은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저건 되돌릴 수 없어.”
‘시바. 안 되는데… 진짜 안 되는데.’
하지만 눈앞에 있는 김현성은 아무 말도 없다. 김현성의 두 눈에 나를 지키겠다는 감정은 없다.
은색의 쓰로누스의 말처럼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자 하는 욕구 말고는 다른 감정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한번 천천히 녀석의 얼굴을 바라봤었던 때였다.
“어?”
아까 보지 못했던 부분이 눈에 들어왔던 것.
‘시바… 되찾을 수 있어.’
턱 쪽에 검은색 형태 물질이 김현성의 얼굴을 덮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 검은색 마력의 밑에 있는 피부는 틀림없이 정상이었다. 인위적으로 누군가가 씌어놓은 것만 같은 형태.
틀림없이 가면이다.
‘시바 되찾을 수 있다고!’
완전히 먹힌 것이 아니다. 김현성은 지금 벗지 못하는 가면을 쓰고 있을 뿐이다. 저 가면 뒤에는 평소대로의 김현성의 얼굴이 자리해 있다.
‘벗기면 되는 거야.’
간단하지 않은가. 저 가면이 김현성의 이성을 잃게 하고 있다면 저 가면을 벗게 만들면 그만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일단은 정신을 차리게 되지 않을까.
얼마나 급했으면 저런 가면을 썼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갑작스레 가슴이 미어지기 시작했다.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던 게 분명하겠지.
쓰로누스는 김현성이 이성을 잃은 괴물이 되었다고 판단했지만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만약 정말로 김현성이 파괴와 살육을 일삼는 빌런이 되었다면 나는 이미 죽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무의식 속에는 아직 이기영이라는 빛이 남아 있다.
어두운 가면을 쓰기 직전 김현성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였을 터.
‘쓰로누스를 죽여야 돼.’
어째서?
그래야 이기영이 살 수 있으니까.
자신의 이성을 포기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것.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지켜내고 싶었던 것.
내가 녀석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녀석을 이해할 수 있을까.
커다란 입을 벌리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지르는 김현성의 모습은 마치 절규하는 것만 같았다.
지킬 거라고,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내가 아니게 되더라도 지켜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는 것만 같다.
‘되돌릴 수 있어. 그렇지? 형 기억하지?’
문제는 지금의 김현성을 누가 막아낼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지 않은가.
“도와주세요.”
“뭐?”
“저… 저 사람을 도와주세요.”
“말하지 않았나.”
“아니요.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원래대로 되돌아올 수 있어요. 아직 불씨가 꺼지지 않은 것이 제 눈에는 보입니다.”
“…….”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당신이 어떻게 저를 알고 있는 것인지, 또 당신들이 어째서 이곳에 왔는지에 대한 것은 다시 묻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믿음을 보이고 싶다면 저를 도와주세요. 아주 작게 남아 있는 빛이라도 지킬 수 있다는 의지를… 이미 타락해 버린 자라도 저버리지 않겠다는 걸… 보여….”
“…….”
“만약 도움을 주신다면….”
“…….”
“원하는 게 무엇이든 그 뜻에 따르겠습니다.”
“…….”
긍정의 뜻인지 부정의 뜻인지는 알 수 없지만,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인 쓰로누스가 김현성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이 두 눈에 들어왔다.
당연하지만.
무엇이든 뜻에 따르겠다는 건 새하얀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고맙다. 가면의 구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