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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714화 (705/1,590)

< 714화 시나리오(5) >

라파엘이 일어났는지 일어나지 않았는지 확인이 되지 않았다. 아니, 확인할 수 없었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표현이리라.

‘죽은 거 아니야? 죽은 건 아니지?’

가장 중요한 것은 김현성의 생사 여부.

거대한 백금색의 빛이 흩어지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아직까지 주변에 서려 있는 빛 때문에 제대로 확인이 되지 않았지만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걸레 조각의 모습을 한 인형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움직이고 있는지 멈춘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 미동도 없는 모습은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개 시바….’

“살아 있을 거야.”

애초 쓰로누스가 그렇게 두드려도 대미지를 입지 않았던 김현성의 내구를 생각해 보면 살아 있는 것이 정상이다.

아무리 백금색 비둘기가 강하다고는 해도 현재 김현성의 내구를 뚫고 계속해서 대미지를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어쩌면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합리화를 해서라도 김현성이 아직 살아 있다고 믿고 싶다.

‘성검용사 시바 뭐 하고 있는 거야.’

‘깨어나세요, 용사여’로는 부족한가. 강한 용사 라파엘, 강한 용사 라파엘이라는 찬송가라도 만들어서 24시간 내내 녀석을 자극했어야 했나.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뒤죽박죽 뒤흔들고 있는 와중에도 몸은 점점 흩어지는 빛을 향해 쏘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혹시나 이쪽에도 같은 종류의 공격이 들어오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른 위협적인 공격이 들어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쓰로누스가 세라핌을 말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까지도 주변에 서려 있는 빛을 계속해서 손으로 헤쳐 나가는 도중, 김현성의 모습이 시야에 비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

“…….”

온몸에 백금색의 검이 박혀 있는 모습.

“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백금색의 검이 박혀 있다.

“어….”

팔다리 할 것 없이 고슴도치라도 된 것처럼 온몸에 검이 박혀 있었다.

“어… 어… 어….”

생각하는 것보다 행동하는 것이 더 빠르다. 허겁지겁 달려들어 김현성의 몸에 박혀 있는 검들을 뽑아내는 것이 먼저였다.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참혹한 모습에 저절로 입술이 꽉 다물어진다.

계속해서 치이이익 소리를 내며 신체가 타들어 가고 있다. 걸레짝이 된 몸체는 그 어떤 미동도 없다.

“일어나…. 시발. 일어나라고.”

저 검을 하나하나 손으로 뽑아내는 것도 일, 연약한 신체가 원망스러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깊숙이 박혀 있는지 하나를 뽑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흐른다.

“시발… 시발….”

눈앞이 조금 흐려지는 것 같은 느낌, 김현성이 죽는다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없었던 탓이다.

제대로 숨은 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숨을 쉴 리가 없잖아. 목에만 세 개의 검이 박혀 있다. 그래도 일단은 뽑는다.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으니까.

‘죽지 마.’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다. 아니, 이미 찢어져 있다. 손이 저릿저릿 하기는 했지만 이 행동을 멈출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심지어 머리에도 박혀 있는 검, 머리카락과 뿔 때문에 깊숙하게 박혀 있는 것 같지 않았지만 평범한 인간이라면 이미 죽을 정도의 상처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죽었어. 시발.’

죽었다고. 시발. 회귀자는 이제 없어.

“시발… 시발….”

그런데 왜 이 의미 없는 노동을 하고 있는 걸까.

손도 찢어지고 어깨도 빠질 것 같은데. 왜 계속 이 멍청한 시체에 꽂혀 있는 칼을 뽑고 있어.

이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이제 시바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인데 이 새끼는 죽었고 이제는 다음을 준비해야 하잖아.

살아남으려면 그게 맞지. 그렇지 않아? 세뇌에서 풀려난 척하면 끝이야. 외신 쪽에 붙어서 애들 데리고 가면 돼.

아니면 노아의 방주를 들고튀어도 되고. 아니, 그건 아니지. 그전에 할 게 있지. 복수해야지.

주제도 모르는 개 잡것들이 내 걸 건드렸는데. 갈기갈기 찢어서 쓰레기통에 집어처넣어야지.

그다음에는 예전에 했던 대로 하면 돼. 전부 다 죽이고 다시 시작하는 거지.

나도 참 멍청하다. 멍청한 새끼, 처음부터 내가 회귀했으면 됐을 텐데 뭣 하러 김현성을 회귀시켰을까. 시나리오, 시나리오 개소리하더니만 이런 시나리오는 계획에 없었나?

아니면 3회 차까지 보고 있었던 건가. 그렇든 말든 그게 뭔 상관이겠어. 이제 끝났으니까 다음을 준비하자.

그래. 이 의미 없는 헛짓거리는 그만하고 다음을 준비하자고.

“시발… 더럽게 안 뽑히네.”

다음을 준비하는 게 맞다. 그게 합리적인 판단이다.

“왜 이렇게 시발 안 뽑히고 지랄이야.”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의미 없는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검을 향해 손을 뻗게 된다.

검이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검은색의 핏물이 자꾸만 얼굴과 몸에 튄다.

계속해서 울컥울컥 올라오고 있는 혈액은 녀석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알려주고 있는 것 같다.

한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혈액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어처구니가 없어 자꾸만 헛웃음이 나온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는 게 당황스럽다.

죽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몸에 검이 박히는 와중에 이 새끼는 무슨 생각을 머릿속에 담았을까.

이런 가정 자체가 의미 없다. 아마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 김현성의 모습은 짐승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그냥 아프다는 생각만 하지 않았을까. 괴롭고 고통스럽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을 거다.

만약 의식이 남아 있었다면 기뻐했을 수도 있겠지.

드디어 끝났다고.

이제야 끝이 났다고.

길고 길었던 김현성의 삶이, 고통스럽고 괴롭기만 했던 내 삶이 이제는 마무리 지어졌다고.

후회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엿이나 먹으라지.”

후회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지. 없었을 리가 없잖아.”

후회가 없었을 리가 없다.

이 새끼는 분명히 후회한 채로 죽어갔을 것이다. 1회 차 마지막의 김현성과 현재의 김현성은 다르지 않은가.

모든 사람이 죽고 없어진 1회 차와는 다르게 김현성에게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고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했다.

고통스럽기만 했단 1회 차와는 다르다. 취미도 생겼고 하고 싶은 일도 생겼다. 대륙에서의 삶을 어떻게 즐겨야 할지, 여유롭게 휴일을 보내는 방법이나 소소한 하루를 보내는 방법도 깨달았다.

여러 가지 사건으로 많이 고통스럽기는 했지만 녀석은 죽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손톱으로 땅바닥을 긁은 자국이 녀석이 살고 싶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몸이 땅에 박힌 채로 발버둥 쳤던 흔적들이 김현성이 살 의지가 있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최대한 몸을 가린 날개들이 죽기 싫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 말이 맞지? 그렇지?”

“…….”

“살고 싶었지? 시발. 그렇지?”

“…….”

“살고 싶었을 거야. 그래. 뒈지고 싶을 리가 없지. 이제는 끝내고 싶다. 더 편해지고 싶다. 이딴 생각은 하지 않았을 거야. 그런 생각하고 있었으면 진작 뒈졌겠지.”

“…….”

“넌 살고 싶을 거야. 짐은 무거웠지만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니까. 생각보다 2회 차가 즐거웠지? 그러니까 일어나자.”

“…….”

“숨 좀 쉬어봐.”

“…….”

“숨 좀 쉬어보라고! 이 멍청한 새끼! 이 쓸모없는 새끼! 씨발 무능력한 새끼!”

“…….”

“이 더럽게 멍청한 새끼! 나도 참 병신이지! 씨발! 왜 너 같은 머저리 새끼를 믿었을까. 씨발! 왜 멍청하게 시발! 이 사단을 만들어놨을까. 왜 시발 내가 너를 선택했는지 이해가 안 돼. 뭣 하러 너를 회귀시켜서 다시 한번 이 개 짓거리를 또 하게… 시… 시이… 시이… 발….”

“…….”

“퉤. 쓰레기 새끼.”

“…….”

“쓰레기는 새끼는 심했다. 내가 사과할게. 숨 좀 쉬어봐. 진짜 죽었어? 아니, 목에 박혀 있는 검 때문에 그래? 내가 뽑아줄게. 더럽게 안 뽑혀서 그래. 아니면 머리에 박혀 있는 게 문제야? 베니고어. 시발 베니고어. 보고 있어? 이거 보고 있냐고. 시발. 너희들이 자초한 거야. 너희들이 자초한 거라고. 루시퍼 개 잡종 까마귀.”

“…….”

“너도 마찬가지야. 이 미친 까마귀야. 진짜 더러운 꼴 보게 해줄게. 땅바닥에 기어 다니는 미천한 필멸자라 개밥으로 보셨나 본데 진짜 또라이한테 물리면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자고. 우습지? 내가 지금 여기서 병신처럼 질질 짜면서 검이나 뽑고 있으니까 내 말이 우습게 들릴 거야. 근데 두고 봐. 두고 보라고. 장난감이라고 생각했던 놈한테 발등 찍히면 참 볼만할 거야. 너도 똑같이 눈물 나오게 해줄게.”

“…….”

목에 박혀 있었던 마지막 검을 뽑아서 들어 올린다. 무슨 말을 한지도 모르겠다. 소매로 한 번 눈을 훔치고 난 이후에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음.’

다음을 생각하자.

몇 분이나 자리에 앉아 있었는지 모르겠다. 천천히 하늘에서 내려오는 쓰로누스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

“…….”

녀석의 눈에 들어가 있는 감정은 안쓰러움이다. 뭐 그럴 만도 하다. 내 눈으로 보기에도 내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김현성의 피로 온몸이 얼룩졌고 손아귀가 다 찢어져 피만 줄줄 흘리고 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얼굴은 아마 더 엉망일 것이다.

“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녀석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부분이 그리 많지 않으니 기억을 되찾았다고 말하기는 조금 그렇고, 그냥 지금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게 좋지 않을까.

내가 굳이 뭔가를 하려고 하지 않아도 녀석 쪽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

“그… 그자는 악마에게….”

“…….”

“…….”

“아니, 미안하구나.”

“…….”

“본의가 아니었다. 최대한 말려보려고 했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내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우리에게도 우리의 입장이….”

“…….”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은 함께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래.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지치고 힘들어 보이는구나. 쉴 수 있는 곳을 마련해 주고 싶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일단 따라가는 게 좋나.

“아니, 쓰로누스. 나는 동의하지 않았어.”

“세라핌.”

그래. 너구나. 백금색 비둘기. 너였어.

“이자는 적이야. 쓰로누스. 네가 지금 눈이 멀어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할 뿐이야. 이 자는 우리의 대의에는 관심이 없어. 저 얼굴을 봐. 세뇌를 당해? 웃기지 마.”

“그는 이전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세라핌.”

“그럼 확인해 보면 되겠네.”

“…….”

“당황할 필요 없어. 쓰로누스. 정말로 이 자가 깨끗하다면, 정말로 죄가 없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야. 그렇지 않아? 나도 이 자가 우리와 뜻을 함께했으면 좋겠어. 너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야. 어디 너뿐이겠어? 케루빔도 도미니온스도 우리와 같은 생각일걸?”

“하지만.”

“하지만? 여기서 하지만이라는 말이 필요해? 확인해 보는 것뿐이야. 내 검으로, 이 자의 죄의 무게가 어느 정도의 고통을 안겨다 줄지… 확인해 볼 뿐이라고. 저기 죽어 있는 쓰레기처럼 말이야. 얼마나 죄를 많이 저질렀으면 저런 꼴이 됐겠어? 이건 정당한 심판이고 정당한 처형이었어. 쓰로누스.”

“…….”

“전부 본인이 저지른 죄야.”

“…….”

“김현성 저자의 죄악이라고.”

“…….”

“이제는 눈앞에 있는 이자를 시험해 볼 차례야. 쓰로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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