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5화 시나리오(6) >
“내가 용납할 수 없다. 세라핌.”
“나는 네게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야. 쓰로누스. 이건 해야만 하는 일이지. 너도 이해하고 있잖아. 아니면 무서운 건가? 그가 수많은 죄를 저질렀을까 봐 그게 두려운 거야?”
“…….”
“…….”
“내 믿음은 확고하지만….”
“너도 궁금하잖아. 쓰로누스. 이 배신자가 얼마나 많은 죄를 가지고 있을지, 진짜로 네가 믿는 사람이 맞을지. 궁금하지 않아?”
“…….”
“우리가 정말로 함께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야. 나도 가슴이 아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우리는 확인해야 해. 정말로 이자가 우리를 배신한 것이 아닌지. 정말로 악마들에게 세뇌당한 것이 맞는지. 본의가 무엇인지, 정말로 선한 이가 맞는지. 이걸 알아야 우리가 같이 움직일 수 있어. 이게 내 최소한의 양보야. 쓰로누스. 더 이상의 타협은 없어.”
“…….”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은색 비둘기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알아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전부 다 해줄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결론이 내려진 것 같았다.
슬쩍 옆을 바라보자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는 김현성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
여전히 몸통을 찌르고 있는 검들이 눈에 띈다.
목과 머리에 박혀 있는 것들을 정리하면 호흡 정도는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여전히 김현성은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위기에 순간에 눈을 번쩍 뜨며 이쪽을 도와줄 만도 했지만 녀석은 움직이지 않는다.
계속해서 박혀 있는 백금색의 검들도 눈에 띈다. 아마 저 검이 세라핌이 말하는 심판의 검이지 않을까.
‘알 것 같아.’
녀석의 권능이 뭔지, 저 백금색 검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가설일 뿐이다.
하늘을 가득 메웠던 백금색의 검들로 미루어봤을 때 생각할 수 있는 가설이었다.
‘김현성이 죄를 지었어?’
당연히 김현성은 죄를 지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게 녀석의 기준인지 아니면 보편적인 기준 안에 들어가 있는 죄인지는 모르겠지만 김현성은 분명히 살아오면서 죄를 저질렀다.
전쟁에 휩쓸려 살인을 하기도 했고 본인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이들을 외면하기도 했다.
차마 내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사건들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런 꼴을 당할 정도는 아니다.
모든 것들 고려해 보더라도 김현성에게 박힌 검의 개수가 너무나도 많다.
몸에 박힌 검뿐만이 아니다. 땅바닥에 박혀 있는 검들까지 계산해 보면 공간을 꽉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말도 안 돼.’
만약 죄의 기준이 비둘기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인간의 기준으로는 죄가 아닐 수도 있는 것들이 녀석들의 기준으로는 죄로 판단될 수도 있으니까.
쓸데없이 자원을 소비하거나 대륙의 균형을 어지럽히는 모든 행위를 모조리 죄로 판단하고 계산하고 있다면 이런 광경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가설에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초월적인 존재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들은 완벽하지 않다.
신이나 신에 근접한 존재들도 결코 완벽하지는 않다.
답안지를 채점하듯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죄의 유무를 판단해 심판을 내리는 권능이라는 게,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한 차원을 유지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나 다름없다.
만약 녀석이 권능으로 신성을 사용해 죄의 심판이라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다면 녀석은 베니고어를 비롯한 다른 신들의 머리 위에 있었을 것이다.
‘김현성의 죄악? 지랄하고 자빠졌네, 미친놈이.’
쓰레기 같은 가설을 뒤로하고 가장 먼저 생각한 가정은 저 검이 본인의 죄책감에 의거한 감정일지도 모른다는 것.
세라핌이 판단한 것이 아니라 김현성이 판단했을 때의 경우다.
이 경우에는 저 검의 개수와 김현성이 느낀 고통이 이해가 간다.
물론 딱 이거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었지만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졌다.
여기 무수히 박혀 있는 검들이 김현성의 죄책감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씁쓸해지기는 했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다.
김현성은 자신의 잘못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본인이 죽인 사람들의 얼굴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실수나 잘못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백번 양보해 김현성에게 뒈진 놈들이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해자가 없는 죄는? 아니, 애초에 그런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기는 해?
인격신 위에 있는 초월적인 신이 망치 땅땅 두드리면서 대법관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세라핌은 이 모든 것들을 판단할 능력이 없어.
여러 가지 복잡한 것들을 전부 제외하고 살인죄에만 책임을 묻는다고 해도 저 새끼는 그것에 대해 판단할 능력이 없다고.
애초에 대륙을 위해 개체 수를 조절해야 된다고 말하는 놈이 살인죄에 대해 판단할 수 있어?
저 새끼는 신이 아니야. 자기 집도 없어서 차원이나 떠돌아다니는 거렁뱅이 새끼라고.
‘사기꾼 새끼.’
이제야 알 것 같다. 놈은 교묘한 사기꾼이다.
아니, 사기꾼도 되지 못한 반푼이 새끼다. 자신의 능력이 정말로 죄의 유무를 판단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멍청한 놈일지도 모른다.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확신이 깃들어 있는 얼굴, 정말로 본인의 권능이 인간의 선악을 가릴 수 있다고 판단한 표정이었다.
‘그래 한번 해봐.’
한번 해보라고.
내 가설이 맞는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다.
만약 정말로 놈이 그런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초월적인 존재라면 더 이상 내가 손을 쓸 수 있는 부분이 없다.
저런 어처구니없는 권능을 가지고 있는 놈과 어떻게 드잡이질을 할 수 있을까.
‘백금색 비둘기는 신이 아니야.’
반푼이지.
희미하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김현성이 살아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심판.”
‘심판은 개뿔. 지랄하지 마. 나는 죄지은 거 없어.’
“심판.”
‘나는 죄 같은 거 저지른 적 없다. 미친 비둘기야. 나처럼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
“심판?”
‘조금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모든 게 인류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었다고.’
“…….”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한 커다란 그림이었지. 내가 죽인 놈들은 모두 죽어 마땅한 놈들이었고 굳이 판단해보자면 네가 말하는 인류의 개체 수 조절에 기여했을 거야. 그렇지? 우리 알 만한 사람들끼리 이러지 말자. 내 말이 맞지. 넌 그걸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아니, 설사 판단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시스템을 마련할 능력이 없지.’
당황하고 있는 얼굴이 눈에 띈다. 그럴 리가 없다는 듯이 얼굴이 구겨지는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자신의 능력에 혹시나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지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작은 가능성이었지만 내 가설이 맞았다는 것은 기쁘다. 아, 그전에 몇 가지는 해야지. 나도 감당할 게 있잖아.
살면서 죄를 저질러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녀석의 권능에 조금은 호응해 줘야지. 그게 자연스러우니까. 그게 평범한 인간다운 거잖아.
이기영이 죄책감을 느낄 만한 것들이 뭐가 있을까.
굳이 떠올려보지 않았지만 있기는 있었던 것 같아. 굳이 개수로 환산해 보자면 다섯 가지 정도. 아니, 여섯 가지인가.
스스로 죄책감을 가졌단 사건들을 떠올려보자 하늘에서 백금색의 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워했던 세라핌도 그제야 만족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하나, 둘, 셋, 숫자는 딱 여섯 자루.
가면의 구세주치고는 조금 많지 않은가 싶기도 했지만 그나마 현실적인 개수였다.
내가 딱 허용할 수 있는 사건들이기도 했고… 쓰로누스는 조금 안심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여섯 자루….”
“비현설적이야. 인간이… 어떻게 인간이 겨우… 겨우 여섯 자루….”
“아니, 현실적이다. 세라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하… 하하.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를 받아들인 거였어. 이토록 깨끗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를 신뢰할 수 있었던 거다. 이런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가 우리를 이해해 줄 수 있었던 거야.”
“…….”
“이 정도면 세라핌 너도 만족했겠지. 이제 이리로 와 내 손을 잡거라.”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어. 쓰로누스.”
“뭐?”
“처형.”
“세라핌!!”
여섯 자루의 검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쓰로누스는 곧바로 이쪽으로 몸을 날려 검을 뻗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떨어지는 검을 쳐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는지 검 한 자루가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모습이 똑똑히 시야에 비쳤다. 당연하지만 피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어깨에 끔찍한 고통이 번지기 시작한다. 불에 덴 것처럼 뜨겁고 아프다. 무겁고 쓰라리다. 자신도 모르게 비명이 튀어나온다. 살아오면서 이 정도 고통을 느껴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입술을 꽉 깨물어 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고통스러운 목소리가 안에서부터 튀어나왔다.
‘이렇게 아프다고?’
시발.
‘이렇게?’
어떻게 비명도 안 지르고 참았던 거지?
한 자루, 겨우 한 자루가 어깨에 박혔을 뿐인데도 고통스럽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왈칵 튀어나오고 숨을 쉬기가 어렵다.
머릿속이 어지러워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쓰러져 있는 시체는 어떻게 이걸 견딜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괜찮으냐. 괜, 괜찮은 것이냐.”
“…….”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쓰로누스의 모습도 보였지만 놈의 얼굴이 제대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만큼 고통스럽다. 그 어떤 고통도 이것보다 아프지는 않을 거다.
“이게 무슨 짓이냐. 세라핌.”
“…….”
“이게 무슨 짓이냐고 물었다! 세라핌!”
“해야 할 일을 한 거야. 쓰로누스.”
“…….”
“검을 거두고 흥분을 가라앉혀. 쓰로누스. 그 말 그대로야.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야. 겨우 한 자루가 박혔을 뿐이잖아. 원래 저자가 감당해야 할 죄는 여섯 자루였어. 네 얼굴을 봐서 이 정도로 참아 주는 거야.”
“세라핌….”
“이자가 정말로 우리와 함께할 생각이라면 죄를 지울 필요가 있어. 그 한 자루, 어깨에 꽂혀 있는 그 한 자루로 그자는 다시 태어나는 거야. 맞아. 쓰로누스. 네 예상이 맞아. 우리는 다시 이자를 받아들일 거야. 케루빔은 어떤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도미니온스는 긍정적인 것 같네.”
“너… 너….”
“제멋대로 하는 건 이제 그만할 때도 됐잖아. 쓰로누스. 네가 원하는 대로 된 거야. 그자는 깨끗해. 그러니 우선 치료라도 해주는 것이 어때?”
그제야 허겁지겁 검을 뽑아 신성력을 전해주는 쓰로누스의 모습이 보였다.
“미안하구나. 많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래. 맞아보니까 얼마나 아픈 줄 알겠더라고.’
“괜찮으냐?”
‘괜찮을 리가 있겠어? 미친 비둘기야? 괜찮을 것 같아?’
“이제 안심하거라. 더 이상 너를 핍박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치료가 끝났으면 슬슬 돌아가자. 쓰로누스. 내 손을 잡아. 인간.”
상처는 완벽하게 치료되어 있었다. 머뭇거리자 곧바로 이쪽의 손을 들고 잡아끄는 모습은 다소 강압적이지만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아니, 한 가지는 있지. 될지 안 될지도 모르고 아직 확신할 수도 없지만 작은 가능성에라도 걸어 봐야지.
때마침 김현성을 치료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오고 있는 것 같으니까. 내가 할 일은 메시지를 보내는 것 정도밖에는 없을 것 같네.
[전설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내가 너의 죄를 사하노라. 일어나라 알타누스의 회귀자여. (0/1)]
[알타누스의 회귀자 김현성에게 전설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퀘스트 클리어 보상을 등록합니다.]
[퀘스트 클리어 보상 - …… (0/1)]
[퀘스트 클리어 보상을 입력합니다.]
[퀘스트 클리어 보상 - 미래 (0/1)]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