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2화 원탁 회의(1) >
‘뭐, 잘 만들어지기는 잘 만들어졌네.’
거대한 건축물의 외관도 외관이었지만 안쪽 역시 상당히 신비롭다.
지구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양식으로 디자인된 천장은 높고 거대하다.
커다란 기둥에는 천사들이 조각되어 있고 벽면에는 그들의 신화를 그려놓은 것 같은 그림이 눈에 띈다.
계속해서 일렁이는 그림 같은 것들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감상은 딱 그 정도였다.
본래 종교란 게 이렇다. 베니고어 교단이나 다른 교단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압도적인 광경을 연출하는 예술품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작은 피조물로 느끼게 한다.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게 만들고 신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그게 보통이다.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쏟아지는 햇빛과 웅장한 찬송가, 드높이 떠 있는 종교적 상징과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 모든 것들이 계산되어 있다는 걸 눈치채지 않을 수가 없다.
이들은 문명화되어 있다. 인간과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지만 천사들 역시 문명을 가지고 있다.
‘너무 당연한가.’
악마들 역시 문명을 가지고 있을 진데… 무려, 대륙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분들이 이런 것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을까.
대충 예상하기도 했고, 이미 몇 번의 확인 작업을 거쳤지만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들은 이성적이다. 개똥철학이지만 본인들의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대의를 위해서 움직인다.
진심으로 본인들이 하는 일이 대륙에 도움이 될 거라고 믿으며 그걸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있다. 쓸데없는 즐거움과 쾌락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놈들이 없다고 확정을 지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겉으로는.
그래. 겉으로는 말이다.
천천히 도미니온스와 함께 발걸음을 옮기자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네는 이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날아야 이동할 수 있게 설계된 공간을 향해 날개를 뻗자 조금 어색하게 몸이 위로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거대한 문이 스스로 열리자 안에 있는 황금색의 원탁이 시야에 비쳤다.
사대천사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함께 자리한 모습, 그들보다 강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이들이라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으리라.
도미니온스는 천천리 자리에 몸을 앉힌다. 쓰로누스 역시 조심스레 자리를 잡았고 나 역시 도미니온스의 옆자리에 안착했다.
“회의를 소집했다고 들었다. 도미니온스.”
“그렇습니다.”
‘이 누나 진짜 왜 이렇게 연기를 잘해.’
아마 모르고 본다면 안에 이지혜가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도미니온스의 성격과 말투, 사소한 행동까지 모든 것을 복사한 것만 같다. 당장 다른 이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다른 말이 필요할 리가 없다.
“그렇습니다.”
“오랜만이군. 네가 직접 회의를 소집한 것은 말이야.”
“그리 오랜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비교적 최근에도….”
별로 쓸데없는 말을 나누는 와중에도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무능력 쓰레기 비둘기 쓰로누스가 아니다.
‘케루빔.’
붕대로 몸을 칭칭 감은 채로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는 파란색 장발. 희라 누나한테 제대로 두들겨 맞은 모양새였다. 물론 차희라 역시 몸이 성치는 않은 상태라고 들었지만….
‘대미지를 입은 건 둘 다 마찬가지네.’
반반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붕대를 감고 있다는 건 신성력으로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을 정도로 처맞았다는 걸 의미할 테니 아마 내 생각이 맞을 것이다.
시선에 적의는 없지만 짜증은 있다. 아무래도 내가 이 자리에 함께 있는 게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은 모양. 아니나 다를까 입을 여는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저 인간은 왜 이 자리에 함께 있는 것이냐.”
“그는 인간을 벗어난 초월자입니다.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저희와 더 가까운… 가까운 쪽입니다. 그와 함께하기로 결정했다면 그를 배재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우리 편에 서기로 결정을 내렸고 우리의 뜻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럴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저자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우리를 이해한다고 한들, 나는 저자가 우리와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번 등을 돌린 이는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음을 기억해라.”
“그는 이전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순한 추측과 의심만 가지고 그를 핍박하는 것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 행동입니다. 체통을 지켜주세요. 케루빔. 당신이 인간에게 당해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건 이해하지만.”
“…….”
“그는 이제 우리에 속해 있습니다.”
“말은 잘하는군. 정말로 그가 우리에 속해 있다면 어째서 그를 통제하는 것이냐. 도미니온스.”
“통제가 아니라 보호입니다. 케루빔.”
“난 인정할 수 없다.”
‘보통 그런 놈들이 제일 먼저 인정하게 되더라. 퍼랭아.’
“너무 심한 발언은 자제해라. 케루빔.”
‘이제 와서 보호해 주는 척하지 마. 이 무능력한 비둘기 새끼야.’
“내가 네게 하고 싶은 말이다. 쓰로누스.”
“사담은 그만. 분명히 말했습니다. 케루빔. 우리는 당신의 화를 들어주려 이곳에 모인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거대한 문을 열고 들어온 세라핌이 입을 연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 중요한 이야기가 뭔지 궁금한데… 모두를 불러 모을 일인가?”
“…….”
“…….”
백금색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녀석은 특유의 오만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은 이후,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고 있다.
아마 습관 같은 행동이겠지. 마치 내가 허벅지를 두드리는 것과 비슷해 보여 짜증이 일어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는 여유가 있어 보이는 모습, 하지만 그 표정이 바뀌기 전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정확히 도미니온스가 말을 이은 직후였다.
“타락한 검이 되살아났습니다.”
“뭐?”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나는 그런 농담 별로 안 좋아해. 도미니온스.”
“농담이 아닙니다. 세라핌. 그가 일어나는 걸 제 눈으로 직접 확인했고, 이번에도 많은 동지를 잃었습니다.”
“…….”
“네. 이번에도 말입니다. 정말로 그에게 죄의 심판을 사용한 것이 맞습니까?”
“…….”
꿀 먹은 벙어리네.
이해할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다는 얼굴, 초조해 보이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녀석의 표정은 확실히 일그러져 있었다.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가지를 상황을 상정하고 있지 않을까.
김현성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부터, 어쩌면 본인에 능력에 대해 의심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확률은 적다.
녀석만 입을 다물게 된 것이 아니다. 미리 이야기를 들었던 무능력 쓰레기는 담담하게 도미니온스의 말에 경청하고 있었지만 케루빔을 비롯한 다른 원로천사들의 얼굴은 누가 보기에도 심각해 보였다.
“허허… 어떻게 이런 일이….”
“그 말이 정말입니까?”
“네. 어떤 이유와 경위로 그가 몸을 일으키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타락한 검은 현재 살아 있습니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가 아닙니다. 세라핌. 당신이 이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나는… 나는 틀림없이 그의 죄를 심판했어. 도미니온스. 그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심판에 검에 박혀 처형당했어. 살아 있을 리가 없어.”
“하지만 살아 있습니다.”
“그 말이 맞다면 다시 한번 그를 처형하면 그만이다. 심각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어.”
“그건 당신 생각입니다. 세라핌. 이번에는 얼마나 많은 신성을 사용해, 얼마나 많은 동지를 희생시킬 생각입니까? 타락한 검을 다시 한번 처형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수할 생각입니까.”
‘비둘기 새끼 아무 말도 못 하죠?’
“당신의 실수를 문책하고자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는 당신의 책임입니다. 세라핌.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말한 것은 아닙니다만 이는 당신의 실수였습니다.”
“나는 실수 같은 건 하지 않아. 도미니온스. 분명히 우리가 놓친 게 있었을 거야. 그는 확실하게 숨을 멈췄어. 악마에게 영혼을 판 또 다른 인간이 그를 살렸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자가 다시 한번 악마에게 힘을 빌렸을 수도 있지.”
“…….”
“물론 미래에 일어날 일까지 상정하지 못한 건….”
“할 말은 그것뿐입니까?”
“…….”
“…….”
“내가 부주의했다. 사과하지.”
“…….”
“…….”
“부디 내 사과가 성에 찼으면 좋겠지만… 내 입에서 잘못했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한 건 아니겠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도미니온스.”
“상황이 달라졌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어떤?”
“말 그대로입니다.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많은 동지를 첫 번째 전투에서 잃었고 인간들이 우리에게 생각보다 더 적대적입니다. 전투를 지속할 수는 있지만 많은 인간이 목숨을 잃을 겁니다. 물론 우리가 감당해야 할 희생 역시 늘어난다는 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죠.”
“그래서.”
“너무 강압적으로 나가는 것은 서로에게 좋지 않다는 겁니다. 그들은 우리를 원망할 겁니다. 아니, 이미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는 감수하고 있는 일이야. 이곳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이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걸 알고 계셔야 합니다. 끊임없는 성전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서로에 대한 증오와 분노뿐 아무것도 얻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애초에 우리는 인간들의 개체 수를 조절하려고 하고 있다. 도미니온스. 그들이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원래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지 않았나. 우리는 그들에게 이해를 받고자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니야. 지금에 와서….”
“그들의 이해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노선을 바꿔야 할 필요성이 있다 느꼈을 뿐입니다.”
아주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 다시 한번 세라핌이 말을 이어왔다.
“네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 아니군.”
“네. 그 말이 맞습니다.”
살짝 움찔하는 도미니온스가 눈에 보였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이쪽으로 쏠리기 시작한 것은 당연지사.
예상한 상황이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눈치가 더 빠르다.
갑작스레 생뚱맞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외부의 영향을 받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아마 내게 들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뭐. 받아들여질지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입을 여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녀석이 빨리 말해보라는 듯 나를 재촉했으니까.
“말해 봐라. 이기영.”
“원하신다니… 실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리겠습니다.”
“…….”
“인간을 사랑하시고 아끼시며 인간과 대륙을 위해 노력하시고 계신 분들의 노고를….”
“본론만.”
“물론 그래야지요. 하지만 본격적으로 말씀을 드리기 전에 간단한 질문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
“이 일이 그만큼 급한 일입니까?”
“무슨 소리지?”
“이 과업이 코앞에 들이닥친 것처럼 급한 일입니까?”
“…….”
“인간의 위험성이라면 저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인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당장 10년, 아니, 20년 이후에 대륙의 균형이 깨어질 거라고 보시는 겁니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아직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네. 굳이 절반이나 되는 인간들을 가슴 아픈 죽음으로 내몰면서까지 일을 진행해야 하느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들은 우리와 다릅니다. 그들의 목숨은 유한합니다. 직접적으로 말씀드리면 굳이 우리가 손을 쓰지 않아도 그들에게는 끝이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들과 적대시하며 우리가 가진 것을 희생하며 싸우고 있는 겁니까.”
“그건 대륙을 구하기 위해.”
“그러니까 왜 전쟁이라는 방법으로 답을 찾고 있는 것이냐 묻고 있는 겁니다. 세라핌님.”
“…….”
“…….”
“재미있기는 하지만 의미가 있는 행동인지 모르겠군. 인간. 그들에게 끝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이 자리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의미에서 무한하다. 끊임없이 후대를 남기고 이전에 했던 실수들을 반복하지.”
“그 말이 맞습니다. 케루빔 님.”
“지금 나와 말장난을 하자는 건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 말에 힌트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뭐?”
“…….”
“후대를 남기지 못하게 하면 됩니다.”
“?”
“그럼 개체 수는 알아서 조절돼요.”
“…….”
“…….”
“신성이 조금 많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이건 어떻습니까.”
“…….”
“그들의 욕구를 잘라버립시다.”
순식간에 장내에 침묵이 가라앉았다.
“시스템을 바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거예요.”
몇몇 원로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우리가 인류의 새로운 진화에 기여하는 겁니다.”